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51화 (5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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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루크에이스 페스티벌.

축제 첫째 날.

테드는 늦은 오전에 집밖을 나섰다. 아침에는 사이나와 시온의 요리대결을 구경하고 심사를 평가했었다. 사이나는 언제나처럼 굉장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고, 시온은 요조숙녀같은 외모와 달리 요리랑은 전혀 맞지 않았다.

머릿속에 수많은 레시피가 있다했으나, 손이 레시피를 따라가지 못했다. 요리의 종류를 보자면 테드도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완성된 물건은 평균이하의 것이었다. 모양은 뭉개져서 식욕이 싹 달아났고, 맛은 어느 부위는 짜고 어느 부위는 달았다. 오물렛이 그렇게 다채로운 맛을 가진 요리인지 처음 알았다.

시온의 실력은 사이나가 얼굴을 굳힐 정도로 심각했다.

결론으로 테드의 집에는 사이나에게 요리 교육을 받고 있는 시온이 있다. 테드는 방해가 되지 않게, 정확하게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모험가 소개소로 향한다.

‘집밖으로 나와 봤자. 할 게 없으니 말이지.’

축제의 첫째 날은 기대되는 볼거리도 없었다. 거리의 주변에는 외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또 본적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평소에는 추위 때문에 나오지 않았던 노점상도 몇 십 개나 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길을 가다 노점상에서 파는 음식들을 군것질하며 평소보다 늦게 도착한 모험가 소개소는 한적했다. 늦은 오전이라 모험가들이 모두 일을 보러갔기 때문이다.

의뢰게시판의 앞에서 게시판에 걸린 의뢰들을 한차례 훑은 테드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평소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의뢰가 붙어 있었다. 대부분이 미궁 관광객 호위 의뢰다. 루크에이스의 미궁을 관광한다는 돈 많은 부자들이 낸 의뢰다.

미궁에는 볼 것은 없다. 오히려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지역이다. 그럼에도 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일반인들이 모험가를 동경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이 관광객 호위 의리는 일반 파티가 할 수 없다. 모험가 길드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으며, 관광객의 경우엔 29층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한다. 그게 모험가 길드가 내건 조건이었다.

20층대는 중층의 시작부분으로 관광객이 파티 리더의 말을 잘 듣는다는 조건하에서 실력 있는 파티라면 문제없이 공략할 수 있다. 관광객 입장에선 파티가 아니라 1층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는 귀환부를 더 믿는다.

‘의뢰비는 좋네.’

의뢰주는 오락에 굶주려 있는 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미궁에 다녀온 경험은 일종의 자랑거리로 이야기 주제에 올릴 목적으로 관광 호위 의뢰를 하는 놈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테드의 시선이 게시판에 구석에 향한다. 거기엔 흔한 관광객 호위 의뢰가 붙어져 있었다. 그러나 적혀 있는 의뢰비가 제법 후하다.

‘70골드인데 아직 남아 있다고?’

게시판의 구석을 향해 다가간 테드가 지긋이 의뢰지를 읽었다. 그리고 어째서 이 의뢰가 아직 남아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의뢰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오히려 쉬운 편에 속했다. 문제가 있는 것은 기간이었다. 7일, 오늘부터 페스티벌이 끝나는 날까지 미궁을 포함한 도시를 안내하는 것. 의뢰지에는 도시 안내는 2~3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되어 있었다. 7일 내내 비어있는 파티는 좀처럼 없을 것이니 의뢰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루크에이스의 전속 가이드를 구하는 것이다. 미궁 관광의 경우엔 중층까지 갈 필요 없이 저층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적혀 있었고, 의뢰지의 마지막 글에는 같이 축제를 즐길 모험가였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여져 있다.

마지막에 적힌 글이 테드의 시선을 끌어 잡았다.

‘한 번… 해볼까.’

테드에게도 이번 축제를 즐긴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투 속에 있던 테드가 축제를 즐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주변을 돌아다니며 노점상에서 음식을 구매해 먹는 것과 구경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왠지 축제에서 혼자서 돌아다니면 궁상맞은 모습이었다. 이 기회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뢰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2시간 정도만 어울려 주면 되는 일이었다. 70골드의 보상은 의뢰 내용에 비해 굉장히 후한 편이었다.

‘일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뭐, 상관없나. 하루에 2~3시간일 뿐이고.’

게시판에서 의뢰서를 떼어낸 그가 3층으로 올라갔다. 미궁 관광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모험가 길드 직원이 있는 3층으로 가야했다.

⁂ ⁂ ⁂

테드는 모험가 길드의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 수인족 남성을 향해 다가갔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은 갈색 곱슬머리의 부드러운 인상을 한 남자였다. 머리에는 갈색의 고양이 귀가 쫑긋이 나있었다.

두꺼운 갈색의 모피코트를 입은 그는 주변이 신기한지 연신 고개를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의 분위기는 누가 봐도 외지인이다.

테드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의뢰인인 알릭 세르숀 씨지요?”

회색 코트를 입은 꼬마가 물어오자 갈색의 눈동자를 크게 뜨고서 당황했다. 그러나 빠르게 당혹감을 지우고서 웃었다. 사람의 마음을 편안케 하는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아! 테드 크루시안 씨이군요. 겉모습에 순간 당황했습니다. 사도이신가 보죠?”

“이래 보여도 B급 모험가에요.”

테드가 그를 향해 신분증을 내밀었다. 의뢰인에게 등급을 속이는 모험가들도 있기에, 처음 만나는 의뢰인에게는 신분증을 보여주어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일종의 절차였다.

“정말 B급이시군요. 그 나이에 엄청나네요.”

신분증을 테드에게 돌려주며 알릭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순수한 감탄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저는 알릭 세르숀, 보시다시피 고양이 수인이고 여행가입니다. 그리고 저도 테드씨

와 같은 환생자입니다. 저는 지구 출신인데… 테드 씨는 어디 출신이신가요?”

알릭은 테드를 향해 악수를 청하듯 오른손을 뻗으며 물었다.

깔끔하고 부드러운 인상과 담백한 말투.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테드가 알릭과 눈을 마주치며 손을 마주잡았다.

“지구 출신이에요. 같은 지구라곤 단정할 순 없지만요.”

“그래도 반갑네요. 이런 곳에서 사도를 만날 줄은 몰랐거든요. 그런데 정말 혼자서 괜찮으신가요?”

의뢰 내용 중에는 알릭을 호위하며 미궁을 관광도 있었다. 알릭도 모험가 길드에서 테드 혼자 나온다는 걸 들었다. 그리고 승낙했다. 모험가 길드가 적극적으로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20층 정도면 저 혼자서도 충분해요. 레인저가 없어도 탐색마법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위험해지면 귀환부를 사용하면 되고요.”

“그럼, 저는 테드씨만 믿겠습니다. 도움 안 되는 짐이라 해서 미궁에 버리시면 안 됩니다?”

“하하. 설마 그럴리가요. 그럼 오늘 먼저 미궁으로 들어갈 건가요?”

20층 정도면 테드 혼자서도 빠르게 갈 수 있다. 혹시 모를 함정만 조심하면 된다.

“저야 아무 때나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바쁜 것은 아니니까요. 테드 씨의 컨디션이 좋은 날로 잡으면 됩니다.”

“오늘 끝내도록 하죠. 미궁 20층이면 다녀오는데 반나절 정도 걸리겠네요. 시간은 괜찮은가요?”

“남아도는 게 시간입니다. 관광이 목적인 여행가인지라… 딱히 약속도 없지요.”

테드와 알릭이 미궁을 향해 움직였다.

알릭은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는 여행가다. 이번에 루크에이스에 온 것은 우연히 중립지대를 여행하다가 루크에이스 페스티벌에 대해서 듣고서 찾아왔다.

이 네메스 대륙은 여행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숲이나 초원 등 마을 밖에선 심심치 않게 몬스터가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여행가 노릇을 하려면 적어도 몬스터에게서 살아 남을 실력을 가져야 한다. 말이 여행가지 거의 모험가나 다름없는 직업이다.

그러나 여행가인 알릭에겐 전투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네메스 대륙을 여행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스킬에 있었다. 처음 환생하고 얻은 스킬은 ‘기척 차단’이었다. 이름 그대로 기척을 차단하는 것이다.

스킬의 숙련도가 오늘수록 효과는 상승했고, A랭크인 지금은 《은신》으로 바뀌었다. 모습을 5분간 감추는 스킬이다. 기척은 물론이고 몸의 냄새까지 완벽하게 없애 버리는 스킬로 몬스터에게서 도망가기 좋은 스킬이었다. 그는 이 스킬을 이용해서 네메스 대륙을 여행해왔다고 테드에게 말했다.

“미궁의 몬스터에게도 통할까요?”

“충분히 통할거에요. 미궁의 몬스터는 밖의 몬스터보다 감각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래도 제 옆에선 떨어지지 말아주세요. 미궁의 함정은 자비가 없으니까요.”

“아아. 함정이라면 저도 들었습니다. 몬스터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지요?”

“미궁에선 몬스터 보다는 함정에 의해 죽어나가는 모험가가 많으니끼요.”

그들은 손쉽게 12층까지 올라갔다. 제법 많은 모험가가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몬스터와의 전투를 많이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네요. 알릭씨는 미궁 관광같은 걸 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모두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테드의 뒤를 따르며 알릭이 대답했다. 그의 눈동자에 아련한 감정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저는 네메스 대륙의 전부를 보고 싶습니다. 이 세계는 완전히 판타지잖아요. 어느 날 문득 이 네메스 대륙을 여행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말리는 친구를 두고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이젠 3년이 다되어가는군요.”

“3년이나 여행했다고요? 그럼 상당히 많은 곳을 여행했겠네요.”

“아뇨, 아뇨. 그렇게 많은 곳을 가보진 못했습니다. 네메스 대륙이 지구보다 작다곤 하나 엄연한 하나의 세계니까요. 거기에 여행비나 신분문제로 못가 본 곳도 많지요.”

“여행비요?”

의뢰 보상으로 무려 70골드를 내걸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여행비에 시달렸다곤 생각할 순 없다.

“여행 초반에는 돈이 정말 없었거든요. 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을이나 도시에서 한 달 정도는 체류해야 했지요. 여행비를 아낀다고 도시내에서 노숙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부끄럽지만 여행 틈틈이 적은 여행지를 책으로 출간해서 인세를 받아 여행비를 충당하고 있지요.”

“오오. 작가였군요. 책은 자주 읽는 편이 아니라서 알아보지 못했어요. 이거 사인이라도 받아 둬야하나.”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말아주세요. 부끄러우니까요. 책이라면 제가 몇 권가지고 있으니 괜찮으시다면 받아 주시겠나요?”

“주신다면 기꺼이요.”

미궁을 걷던 테드가 도중에 멈칫하고 만다. 그의 시선이 옆으로 향한다. 거기엔 미궁과 어울리지 않는 나무문이 하나 있었다. 벽에 있는 그 문에 테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층인데 비밀방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운이 좋은 건가….”

“비밀방이요?”

“가끔 미궁을 탐사하다보면 나오는 방이에요. 대부분이 함정인데… 운이 좋으면 마석이 담긴 보물상자를 발견할 수 있어요. 들어가 볼까요?”

길이 항상 변하는 미궁에는 가끔씩 탐사하다보면 지금처럼 비밀방을 만날 수 있다. 모험가들이 흔히 대박이라 부르는 것이 이 비밀방에 있는 보물상자를 말한다. 보물상자에는 질좋은 마석이 가득 쌓여 있다. 모험가의 입장에선 공돈이나 다름없다.

“위험하진 않은가요?”

“저층이니까요. 함정도 별건 아닐 거에요. 원래 비밀방은 중층에서 잘 나오는

데…… 운이 좋네요.”

테드가 웃으며 나무문을 향해 다가갔다. 알릭의 몸은 불안감에 굳어 있으면서도 두 눈

만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다.

“그럼 들어갈게요.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말아주세요.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 말은 농담에 가까웠다. 테드는 알릭이 조금 떨어져 있다고 해도 지키지 못할 실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테드의 형편없는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인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안 떨어지겠습니다.”

테드가 나무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멈칫거리며 들어온 알릭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비밀방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동시에 지면에서 나무로 만든 초라한 보물상자가 나타났다.

비밀방은 문이 닫혀야만 보물상자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이 나무 보물상자를 열어서 마석이 쌓여 있으면 대박이고, 마석이 없으면 비밀방에 있는 함정이 그대로 발동한다. 그래서 다르게 이 방을 함정방이라고도 부른다.

잔뜩 기대하게 만든 다음에 똥을 주는, 악취미가 느껴지는 함정이었다.

“보물 상자군요!”

“잠겨 있진 않으니깐 한번 열어보세요.”

벽으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방의 중심에 있는 보물상자를 주워 알릭을 향해 내밀었다.

“제가 열어도 괜찮은가요?

“어차피 마석이 있어도 전부 제 것이니까요.”

의뢰서에 적힌 계약에 의해 미궁에서 얻는 모든 것들은 테드가 갖기로 되어 있었다. 알릭은 그 직설적인 말에 조금 쓰게 웃었다.

“그 말을 들으니 맥이 빠지는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알릭은 선물상자를 여는 어린아이처럼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알릭이 보물 상자를 잡고 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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