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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50화 (5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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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루크에이스 페스티벌.

9. 루크에이스 페스티벌.

그 집무실은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는 방이었다. 정리정돈이라는 말보다는 삭막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집무실이다.

커다란 방에는 책상과 의자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벽에는 무엇도 걸려 있지 않고, 장식되어 있지 않다. 유일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은 책상위에 올려 진 잉크와 깃펜뿐이었다.

방의 천장에는 마광등이 달려 있어 주변을 밝히고 있었으나, 방안을 감싼 기류는 결코 따뜻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특이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문이 없었다.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문이나, 작은 창문조차 없었다. 주변은 완벽하게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밀실 공간이었다.

책상의 앞에는 한 명의 여성이 앉아 있다. 진홍빛의 긴 머리칼을 가진 여인은 붉은색 눈동자로 무심하게 서류를 읽고 있었다. 진홍빛 머리칼 위에는 검은색의 매끈한 광택을 가진 산양 뿔이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몸매의 곡선을 강조하는 듯한 검은색 드레스였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검은 드레스다.

그녀는 굉장히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은연중에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막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말도 붙이지 못하고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도망갈 것이다.

서류를 훑던 메피아가 돌연 미간을 찡그렸다.

“디. 이게 뭐지?”

그녀의 부름에 한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벽속에서 나타난 그림자는 곧장 책상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검은색 야행복을 입고, 검은색 복면을 쓰고 있는 그는 복면에 뚫린 두 개의 구멍으로 갈색의 눈동자만을 노출 시키고 있었다.

디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사탄교에 대한 정보입니다.”

“그건 알고 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왜 이게 지금 보고 된 건지에 관해서다.”

메피아가 검지로 책상을 툭하고 건드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면 종종 나오는 버릇이었다.

복면인의 고개가 면목 없다는 듯이 아래로 숙여졌다.

“죄송합니다.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습니다.”

“모험가 길드가 협조를 요청하고 나서야 알아차린 것부터가 잘못이지. 그건 알고 있겠지?”

“예. 저희들 그림자의 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

검지가 연신 책상을 툭툭 건드린다. 그녀는 붉은색 눈동자를 싸늘하게 빛내며 입을 열었다.

“……얼마나 모았지?”

“2,000명 정도 남았습니다. 사탄교 덕분에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물음이었지만, 복면인은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것은 메피아에게도 흡족한 대답이었는지, 책상을 두들기던 검지가 멈췄다. 그러나

다시 책상을 천천히 두들긴다.

“석연치가 않는군. 드리븐이라는 레인저는 아직도 찾지 못했나?”

“사자의 숲에서 행방이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그날부터 쭉 찾고는 있으나… 발견은 할 수 없었습니다.”

“1년이 가까이 되었는데도 너희들이 찾지 못 했다라……. 거기에 넣은 인원을 회수하고 사탄교에 대해서 빠짐없이 알아와.”

“예. 알겠습니다.”

메피아는 기분이 좋지 않은 듯 거칠게 서류를 넘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있는 왕국 딥크스에 사탄교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잡것들이 숨어 있었지 않나, 보물의 운반책이었던 드리븐은 행방불명되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물 중 하나인 ‘하늘의 눈’은 접선 장소에 떡하니 놓여 있지 않나.

일은 잘 풀리고 있다. 그러나 입안에 끈적한 무언가가 들어 있는 듯한 찝찝함이 느껴졌다.

애써 다음 서류로 시선을 돌린 그녀의 눈이 한순간 커졌다.

“은빛이 루크에이스에 떨어졌었다고?”

루크에이스의 최북쪽에 있는 프로스트 포레스트의 일부에 떨어졌다고 적혀 있었다. 그 결과는 프로스트 포레스트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일대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에프가 마법이라고 주장해서 보고서에 올리게 되었습니다만, 정확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복면인의 차분한 말에 메피아는 흥분해 있는 몸을 진정시킨다. 그 마법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 아직 완벽히 해석도 되지 않은 마법이다. 메피아는 비슷한 마법이라 생각하며 넘어갔다. 어쩌면 마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까한 말을 철회하지. 그림자를 이곳에 파견해 이 현상에 대해서 조사해라.”

“예. 알겠습니다.”

메피아의 손이 마지막 서류로 향했다.

그것은 한명에 대한 보고서다. 아니, 관찰보고서에 가깝다. 아침에 언제 일어났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로 움직였는지 빠짐없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여전하군. 늙은이들도 접촉하지 않았고. 큰 문제는 없겠어.”

그녀가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붉은색의 마법진이 책상위에 그려지더니 불을 만들어내 서류릍 태우기 시작했다. 책상을 태우지 않고, 서류를 재마저 남기지 않고 태운다. 그것은 소멸에 가까웠다.

“디. 너는 남은 2,000명을 모아라. 그리고 허튼 생각을 하는 늙은이들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라.”

“알겠습니다.”

검은 남자의 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땅으로 흡수되듯이 사라졌다.

그녀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발목까지 감싸는 검은 드레스의 치맛자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메피아는 진홍빛의 머리카락을 한 차례 쓰다듬고서 오른쪽 벽을 향해 움직였다. 그녀가 벽에 손을 대자 붉은색의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마법진 속으로 거침없이 발을 내딛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몸이 벽의 안으로 스며들 듯이 사라졌다.

그녀의 몸이 완전히 사라지자, 벽에 그려진 마법진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그 방에는 싸늘한 공기가 맴돌았다.

⁂ ⁂ ⁂

9월에 이루어지는 루크에이스 페스티벌은 3년에 한번 루크에이스 지부 모험가 길드가 주최하는 축제다. 총 7일간 이루어지는 축제는 50년도 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온 전통이다. 각종 대회와 이벤트는 물론이고 볼거리를 제공한다. 모험가뿐만이 아니라, 여행가나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기로 루크에이스의 모험가들의 의뢰가 폭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레드 헥사그램은 항상 모이는 모험가 소개소에 옹기종기 자리 앉아 있다. 총 6명의 파티원들은 전원 파티 리더인 테드를 향해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내일부터 축제기간인데… 뭐, 약속 있는 사람?”

거수한 것은 션, 카론, 브론 세 명이었다. 예상했었던 지라 테드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드의 시선이 션에게 향했다.

“둘째, 셋째 날에 디스본으로 수행을 간 사촌동생이 찾아온다고 하더군. 그 녀석도 모험가이니 오래는 있지 못한다. 될 수 있으면 그 시간에는 미궁공략을 빼주었으면 하는데. 안되겠나?”

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션은 이 파티의 레인저다. 그가 없으면 미궁 공략은 되지 않는다. 아니, 테드의 탐색 마법이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함정의 위험도가 증가할 뿐이다. 몬스터는 사이나와 테드가 있으니 크게 문제없다.

“둘째, 셋째라… 좋아. 축제인데 즐겨야지.”

테드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층에서도 상층을 공략하는 테드의 파티다. 삼일 정도 빡세게 미궁을 공략하면 일주일 정도의 수익을 만회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으니, 한 달 정도 쉬워도 상관없다.

“나와 브론은 넷째, 다섯째 날이다. 무투대회가 열리는 날이지! 동시에 드워프들이 대거 참가한다는 얼음 조각 대회가 열린다! 손재주는 없지만 일단 참가할 예정이다. 물론 리더의 허락이 필요하다만…… 리더 어떻게 안 되겠나?”

카론이 불안한 눈초리로 물어왔다. 하기야 루크에이스의 모험가들은 축제를 제대로 즐길 시간이 없다. 이 시기면 괜찮은 의뢰가 폭주하듯이 들어오기 때문에 돈 벌기에 바쁘다.

테드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축제를 즐기자고 유혹하는 악마가 마음속에 있었다. 축제를 즐겨본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으니까, 이번 기회에 제대로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좋아. 이번기회에 축제기간동안은 전부 쉬자고. 일주일 풀로 쉬는 거야. 어차

피 올해에는 제대로 된 휴가도 없었잖아.”

고대 유적에 갔다 온 직후에 열흘 정도 쉬웠지만, 그건 병가로서 논외다. 제대로된 휴가도 아니었다.

“다른 파티에 임시로 끼어서 의뢰를 하든, 미궁을 탐사해도 상관없어. 난 이번에 축

제를 즐길 생각이니까.”

사이나 또한 다섯째, 여섯째 날에는 모험을 하지 못한다. 요리대회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즉, 모두의 스케줄을 보자면 실질적으로 파티 전부가 일할 수 있는 날은 첫날과 마지막날 밖에 없다.

특히나 사이나도 요리 대회를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테드가 듣기로는 요리대회의 우승 상품으로 걸린 것이 쉽게 구할 수 없는 이름 있는 셰프가 직접 메모한 레시피와 제법 많은 우승상금이라 한다. 드물게도 사이나가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 관심을 표했기에 쉽게 허락했다.

“맞다. 시온은 사이나의 도움 역으로 같이 참가하도록.”

꾸벅꾸벅 졸고 있던 시온이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뱀파이어로서 아침에는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인다. 테드의 파티에 들어온 순간부터 야행성에서 주행성이 되어버렸지만, 지금 같은 아침은 유난히도 약했다. 그래도 햇빛이 차단된 미궁에 들어서면 생생해진다.

“스, 스승! 무, 무슨 소리야?! 사이나의 도움 역으로 참가하라니?”

“요리 대회는 요리사와 보조 요리사, 두 명까지 참가 가능한 모양이더라. 대부분이

2명으로 참가할게 뻔하니까. 사이나 혼자서 보낼 순 없잖아? 내가 나가려고 해도 요리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오히려 방해만 될 테니. 너 저번에 요리 잘한다고 했지?”

사이나라면 혼자서도 충분할 것이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함께 살고 있는 테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테드의 머릿속에는 사이나가 요리대회에서 우승하는 그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무, 물론이야. 요리 정도야 내게 손쉬운 일이야. 내 머릿속에는 희귀한 요리의 레시피가 들어 있으니까.”

뜨끔한 시온이 한 차례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뒷말이 전혀 미덥지 못했다. 테드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시온은 틈만 나면 테드에게 마법을 가르쳐달라고 쫑알거린다. 테드의 입장에선 매우 귀찮은 인물이었다. 명령을 하면 그 순간에는 조용해지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마법을 가르쳐달라고 덤벼온다.

휴가 내에 귀찮음을 방지하기 위해 그녀를 사이나에게 넘긴 것이다. 조금 사이나에게 미안해진다.

“그럼, 내일 와주시겠습니까? 일단 요리 실력은 확인해봐야 하니까요.”

가만히 있던 사이나가 말했다. 시온이 일순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빠르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서 우아한 말투로 말한다.

“내 실력을 보면, 네가 보조역을 하게 될 거야. 그래도 상관없니?”

“그때는 제가 보조역을 하겠습니다. 다만, 제 실력에 미치지 못한다면… 사정없이 부려먹도록 하지요.”

사이나와 시온이 서로를 노려봤다. 테드는 어색하게 웃었고, 다른 파티원들은 제각각 눈을 피하며 딴 짓을 했다. 저번에 정의심 깊은 션이 말리겠다며 끼어든 적이 있었다. 그때 사이나와 시온의 공공의 적이 되어 엄청난 잔소리 폭탄과 비난을 받고 구석으로 찌그러진 것을 파티원들 모두가 목격했다.

참고로 시온이 무언가를 요리하는 모습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 그녀는 항상 미궁의 앞에 있는 도시락 가게에서 음식을 준비해온다. 가끔은 뱀파이어답게 수혈팩을 챙겨올 때도 있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테드는 그게 피가 아닌 토마토 주스인줄 알

았다.

“그럼 그렇게 정해진 걸로 하고. 오늘은 42층에 있는 라프스의 꽃을 채취하는 의뢰

를 해결하자.”

테드가 일어나자 모두가 일어난다. 당일로 42층까지 올라가려면 쉴 틈 없이 움직여야했다.

오늘도 레드 헥사그램은 의뢰를 해결하며, 미궁을 공략한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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