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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성의 남자.
“매직 미러를 실제로 이용하는 마법사는 처음 봤어. 말도 안 되는 마법사구나. 내 스승은.”
시온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동시에 테드에게 배울 마법을 생각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앞으로 더 강해질 수 있다.
“이 근처인 것 같군요. 제가 추격할까요?”
메이드 복을 전부 입고, 코트까지 위에 걸친 사이나가 다가와 물었다.
“아니. 넌 마력도 없잖나.”
테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약해도 악마라는 것일까. 일반 모험가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제아무리 사이나라고 해도 마력이 없는 지금 쫓아가봤자 잡을 수 없다.
“여기서 내가 처리한다.”
광장의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진다. 은빛으로 반짝이며 나타난 마법진은 광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거대했다.
처음 보는 마법진에 시온이 두 눈에 힘을 주고서 두뇌를 가동시켰다. 기억해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거울 속에서 달리던 뮤렌이 멈췄다. 그녀의 가슴 앞에는 은빛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마법진은 마치 록온 되어 있는 것처럼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같이 움직인다.
“저건…….”
사이나가 나직히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마법이었다. 마법 실력은 몰라도 마법 지식에 관해선 자신이 있는 사이나였다. 실제로 그녀가 본 마도서만해도 1000권이 넘어간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이 마법에 대해선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고대 마법 궁니르(Gungnir)다.”
테드의 말에 사이나의 무표정한 얼굴에 경악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시온의 경우에는 기절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크게 헛숨을 들이키고 있다.
그리고 은빛의 마법은 발동하기 시작했다.
⁂ ⁂ ⁂
하얀색으로 가득한 숲이었다. 가지만 남은 나무는 얼어붙어 하얀색의 얼음처럼 되었으며, 땅에는 갈색의 흙 대신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피부를 대패질하는 듯한 추위가 몸을 덮쳤다. 뮤렌은 개의치 않고 꾸준하게 다리를 움직였다. 더 이상 뒤를 따르는 추격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리 악마의 몸이라 해도 걸친 옷이 적은 그녀다. 이 숲에서 멈추는 순간 동사할 것이다.
뮤렌의 입과 코에서 거칠고 뜨끈한 숨이 나오는 순간 동결되어 떨어진다. 평소에 단련하지 않은 몸 때문인지 몸이 무겁고 심장이 괴롭다.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야해.’
뮤렌은 계약을 하지 않고 마력을 이용해 네메스에 소환된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계약을 하지 않은 대가로 마력을 스스로 생성할 수 없어 남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녀에 몸에 남아 있는 마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이나와 싸울 때도 아끼고 아낀 마력은 이제 일주일 정도 분량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안에 마력을 섭취하거나, 마계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뮤렌은 마계로 돌아가는 방법따윈 모른다. 그러니 그녀에게 실제로 남은 선택지는 마력을 섭취하는 방법밖에 없다.
‘내 속도면 반나절 정도로 이 숲을 벗어날 수 있어. 그러니 생물을 유혹해 마력을 보충시키면서 그에게 가야해.’
사이나와 그녀의 계약자에 대한 정보를 넘긴다. 그라면 반드시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녀는 정신없이 달리던 와중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가슴 앞에 나타난 은빛의 마법진
을 바라봤다. 온몸의 핏기가 지하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시험 삼아 몸을 움직였다. 마법진이 가슴 앞에 고정된 듯이 함께 움직인다. 뮤렌은 손톱에 마력을 싣고서 마법진을 향해 휘둘렀다. 검은 손톱이 은빛의 마법진을 가른다. 그러나 마법진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법진이… 아니야?’
겉모습만을 보자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마법진이다. 그러나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신기루 같았다.
뮤렌의 깊은 마음속에서 불안이 싹터 순식간에 자라기 시작한다. 이런 마법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이 마법은 사이나의 계약자, 테드의 짓 일거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불안감을 떨쳐내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불안감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떨어지는 눈밭을 구르는 눈덩이마냥 불러나간다.
이 마법진을 무시하고 도망갈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멈춘 다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뮤렌은 양팔을 축 늘어뜨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건 일종의 육감, 여자의 감이란 것이었다.
루크에이스의 하늘은 언제나처럼 몽환적인 회색의 구름이 가득했다. 뮤렌에게 불안감을 줄 요소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녀에게 보이지 않았다. 너무 멀어서 느끼지도 못했다.
상공 약 1000Km의 높이다. 대기권 밖, 저궤도에서 은빛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우주에 그려진 은빛의 거대한 마법진은 신비스럽기까지 하지만,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느낄 수 있는 인물은 한 명 있었다. 마법의 시전자인 테드 크루시안이다.
테드는 자신의 온 마력을 담아 고대 마법 궁니르(Gungnir)를 사용했다.
과거 테드는 이 마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 엘프 사냥꾼 리자드맨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다. 그때 이 마법으로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버렸지만, 그건 궁니르라는 마법을 최대한으로 억제해 위력의 일부를 재현했을 뿐이었다.
이 궁니르의 진짜 목적은 상대가 어디에 있든 반드시 죽이기 위해서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한 오딘의 창처럼.
타겟이 록온되어 있다면, 네메스 대륙의 어떤 곳이든지 공격할 수 있다. 위력은 어지간한 산하나는 가볍게 소멸시키는 정도의 위력이다. 범위는 생각보다 낮은 편이지만, 일인대상용 마법치고는 굉장히 범위가 넓다.
현재 테드가 가지고 있는 마력으로도 완벽히 발동하지는 못하는 마법이다. 어떻게든 구색은 갖추었으나, 위력면에서 반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뮤렌을 죽이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은빛의 마법진이 천천히 회전하며 발동하기 시작한다. 마법진의 중심에 은빛이 대량으로 생성되며 뭉치기 시작한다.
고대 마법, 현대의 마법으로 재현이 불가능한…… 신의 마법이라고도 불리는 지금 여기서 발동한다.
마법진 앞에 모인 은빛은 뭉치면서 길쭉하게 변한다. 마치 거대한 창같은 스틱형태였다.
준비가 끝나자 마법진에서 은빛의 창이 목표를 향해 발사된다. 은빛의 마법진은 할 일을 끝마치고 천천히 소멸되어 사라진다.
필중의 창은 네메스의 대기권을 순식간에 찢어발기며 앞으로 떨어진다. 검은 하늘을 뚫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뚫는다. 그리고 루크에이스를 가리는 구름마저 뚫어 마침내 지상에 도달한다.
뮤렌이 본 것은 시야 가득히 들어온 은빛뿐이었다. 육체가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무엇에 당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있던 주변 일대에 순식간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나타났다. 하얀 눈에 가려져 있던 얼어붙은 땅이 드러났으며, 충격의 여파로 인해 주변의 하얀 나무는 뽑히거나 쓰러졌다.
그곳에 있는 생물은 아무도 없었다.
성공적으로 마법을 발동한 테드는 줄이 끊어진 꼭두가시 처럼 바닥에 쓰러져 기절했다. 한계까지 마력을 끌어 모아 사용한 대가였다. 동시에 암브로시아의 부작용이 그를 덮쳤다.
그러나 그는 뮤렌의 소멸을 매직 미러를 통해 확인했다. 입가에 희마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루크에시스 모험가 길드의 귀빈실에는 두 명의 사내가 고급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소파의 앞에는 탁자가 있었고, 달콤한 과자와 따뜻하고 향기로운 홍차가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다.
테드의 앞에 있는 인물, 모험가 길드의 본점에서온 간부로 테드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나온 인물이었다. 종족은 인간으로 검은색 머리칼을 말끔하게 뒤로 넘긴 올빽머리의 남성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지구의 예복인 검은색 정장이었다. 이름은 ‘락 스턱스’. A급 모험가다.
“테드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이번 당신의 공적에 모험가 길드는 경의를 표하며, 이것과 같은 보상을 지불할 것입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도?”
테드가 그가 내미는 서류를 받아 읽어보았다.
우선 테드의 랭크가 D에서 B로 올랐다. 내심 A급을 바랬으나, 테드는 고대 유적에 있었던 일의 대부분을 귀찮아 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은폐했다. 길드에 제공한 정보는 사탄교에 관한 정보들뿐이다. 참고로 본거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했다.
고대 유적에 있었던 일은 모두 공개했다면 귀찮은 일과 생기는 동시에 A급의 모험가가 되었을 것이다. 조금 아쉽긴 하나 불만은 없었다. 어차피 목표는 B급의 모험가였다.
다음 보상으로 약 3,000골드가 지급되었다. 이건 파티 전체에 주는 것이 아니라, 고대 유적에 살아남은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죽은 인물들의 가족들에겐 삼분지일의 골드를 지급한다고 아래에 써져 있었다.
“서류에는 작성되어 있지 않지만, 모험가 길드는 테드씨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사탄교와 데비크를 발견하고 정보를 알린 행동은 영웅의 행동이었으니까요.”
편의라고 해봤자, 의뢰에 대한 정보를 다른 파티 보다 조금 더 빨리 알려주는 것이던가, 아니면 직원이 조금 더 친절해지는 것이 전부 일 것이다.
“그것보다 궁금한게 있는데요. 사탄교는 어떻게 되었지요?”
열흘 전, 루크에이스에 돌아온 테드는 곧장 사탄교에 대해서 알렸다. 심상치 않은 내용이라 모험가 길드는 A급의 모험가를 고대유적에 파견해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모험가 길드의 신뢰를 얻었다.
모험가 길드에게 본거지에 대한 정보도 넘겼었다. 지금쯤이라면 어떠한 소식이라도 들렸어야 하는데 신문에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아, 음… 그 건에 관해 저로선 뭐라고 할 말이 없군요. 우선 정보가 새어나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길드 내에 첩자가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모험가 길드는 최정예를 사탄교의 본거지에 투입했다. 수 십 명이나 되는 A급의 모험가는 전투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본거지를 기습했다. 그러나 본거지에 있던 것은 데비크 몇 십마리 뿐이었다.
사람이 생활한 흔적은 남아있었으나,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다. 부랴부랴 기중한 물품만을 챙겨 도망친 것이리라.
“아니면, 협력을 요청한 딥크스 측에 정보가 샜을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딥크스측의 실수라고 믿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길드의 짓인 것 같습니다. 테드님과는 상관없는 이야기기지만, 곧 길드 내에 내부 감사대가 조직될 것 같더군요. 아, 이건 당연히 비밀입니다.”
“……실패 했다고요?”
테드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놈들은 위험하다. 사람을 데비크로 만드는 사탄의 피와, 목적이 위험하다. 회귀전 에는 뒤늦게 토벌대가 편성되어 무리없이 사탄교를 토벌했었다. 미래가 바뀐 이번 생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급습을 실패한 지점에서 길드는 사탄교에 대한 정보를 대륙에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미 국가의 수뇌부들은 데비크는 물론이고 사탄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이나 모레쯤에 전국의 신문사들은 이 정보를 대륙에 알릴 것입니다.”
“온 대륙이 알게 되면 사탄교가 더 깊게 숨을 가능성도 있어요.”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두려운 것이다. 기왕이면 눈에 닿는 곳에 있었으면 한다.
“동시에 사탄교의 활동에 제약을 걸게 되지요. 테드님은 최근 일어나는 실종사건에 관해서 알고 있으십니까?”
“실종사건이요? 루크에이스에선 흔히 일어나는 게 모험가 실종인데요.”
“미궁에서가 아닙니다. 현재 네메스 대륙 전체에서 실종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원래 네메스 대륙에는 실종사건이 많습니다만, 최근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실종사건이 늘어났죠.”
“사탄교의 짓이겠군요. 데비크를 만들려면 살아있는 생물이 필요하니까요.”
테드의 말에 락은 고개를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길드의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전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년이나 숨어서 은밀하게 행동해온 사탄교입니다. 굳이 그들이 섣불리 행동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 군요. 이번 경우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다른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탄교는 은밀하게 행동한다. 들키면 죽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종자들의 대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부족이나 마을의 사람들이다. 거기에 데비크를 만드는 것에 꼭 사람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즉, 몬스터를
사용해도 된다는 점이다. 사람 쪽이 데비크를 만드는 것에 효율이 좋지만, 굳이 우험을 무릅쓰고 사람만을 납치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길드 마스터와 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따로 조사하고는 있습니다만… 꼬리가 잡히지 않더군요. 어쩌면 사탄교의 짓일지도 모릅니다.”
테드는 기억을 짚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탄교와는 다른 세력. 안타깝지만 그의 기억에는 없었다.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은 일에 작게 한 숨을 내쉬며 테드가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락이 내민 서류가 들려있다.
“음? 벌써 가시는 겁니까. 기왕이면 홍차라도 전부 드시고 가시지요.”
“단것은 좋아하지만, 너무 달아서요. 그리고 저도 이래보여도 모험가에요. 쉴 만큼 쉬었으니 미궁에가서 모험을 해야지요.”
어색한 남자와 둘이서 다과를 하는 것도 뭣하다.
“그렇게 말하신다면 잡을 순 없군요. 저도 모험가이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부디 잘 다녀오십시오.”
락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에 테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맞인사를 하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락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과자를 하나 들어 깨물어 먹었다.
“음. 확실히 너무 달아서 맛이 없어.”
그 말을 하면서도 락의 손은 멈추지 않고 다음 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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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