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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성의 남자.
“어,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볼품없게 말을 더듬으며 당황한 기색을 조금도 숨기지 못했다. 눈앞의 테드는 분명히 죽었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일격을 맞고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멸했어야 한다.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그 모습은 기이했다. 엉망진창인 옷을 보자면 확실히 자신이 상대했던 그 인물이 맞다. 그러나 걸레짝인 옷과 대조적으로 육체의 상태가 너무나 깨끗하다. 작은 상처하나 없다. 자신이 직접 베어낸 오른팔은 멀쩡하게 붙어 있다.
그리고 뒤늦게 테드의 눈동자가 자신처럼 붉게 변한 것을 깨닫는다.
“사탄의 피에 적응 한 것이냐?!!”
아니, 어떤 기회로 사탄의 피에 적응 했다지만, 그 회복력은 말이 되지 않는다.
“포, 포션인가. 그래. 최상급의 포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억지로 상식을 끼워 맞추어 냉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왼팔은 붙이지도 못했고, 내력은 바닥을 기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근처에 검도 없다. 천마는 현재 상황이 최악임을 상기했다.
“암브로시아.”
고대마법을 사용해 능력을 강화시킨다. 그 외에도 버프 마법을 건다. 마법안을 이식하며 마법 캐스팅에 어시스트를 받게 되었다. 캐스팅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졌다. 버프 마법을 전부 거는 것에도 몇 십초면 충분할 것이다.
“…당신,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테드가 붉은색 눈동자만을 움직여 옆에 있는 시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늦게 검에 박혀 죽어 있는 메리코를 확인한다. 테드는 아무 말 않고 시온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테드가 손을 뻗자 시온의 몸이 흠칫하고 떨렸다. 그의 손이 머리에 닿는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시온의 입에서 무의식적인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방해다.”
시온의 밑바닥에 푸른색의 마법진이 순식간에 그려지고 발동한다. 그녀의 몸이 사이나가 있는 곳으로 전이되어 사라졌다.
테드가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고 있는 천마가 있었다.
“잠깐! 굳이 우리가 싸울 필요가 있나? 너 또한 본좌와 같은 사탄의 피의 적응자다. 동료란 말이다!”
“너 따위의 동료가 된 기억은 없다.”
천마의 주위에 손바닥만 한 수 십 개의 검은 마법진이 그려진다. 당황한 천마가 황급히 진각을 밟았다. 천마군림보의 파장이 마법진을 깨뜨린다. 파장은 테드에게도 닿았으나, 몸을 감싸고 있던 투명한 마법 배리어가 그대로 파장을 막아내며 소멸한다.
‘파장이 눈에 보이는군.’
고결한 눈의 랭크가 올라서인지 확실하게 보였다. 검푸른 색의 마력 파장이다.
따라하는 것은 무리다. 마력이지만, 마력보다 더 탁하고 거친 마기(魔氣)이기 때문이다.
천마군림보의 파장은 구의 형태로 퍼진다. 아래는 물론이고 위의 천장까지 골고루 퍼지는 것이다. 다만, 엄폐물을 통과하면 파장이 약해진다. 두꺼운 벽이라면 완벽하게 파장을 막아 낼 것이다.
“잠시! 잠시만 기다려라!”
천마의 외침에 마법을 준비하려던 테드의 몸이 멈칫한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르게 말을 잇는다.
“거래다. 거래를 하지 않겠나!?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봐라! 본좌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최대한 들어주겠다!”
“거래? 거래를 하기에는…….”
블링크를 이용해 순식간에 천마의 앞으로 다가간다. 테드의 오른손에는 푸른색의 빛으로 만들어진 에너지 블레이드가 반짝이고 있다.
“우리 관계가 이미 극악이군.”
검강에 필적하는 빛의 검을 천마를 향해 휘두른다. 천마는 이를 악물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팔을 그대로 테드를 향해 내던졌다.
에너지 블레이드는 두부를 자르듯이 팔을 양단한다. 그러나 한순간 테드의 시야에 팔로 인해 가려졌다.
도망치듯 등을 돌린 천마는 허겁지겁 철문을 향해 달렸다. 철문에 박혀 있는 자신의 검을 향해 오른팔을 내민다.
손잡이에 닿기 직전에 수십 개의 검은색 마법진이 주변에 그려진다.
천마는 오른발을 바닥으로 찍어 누르듯이 천마군림보를 밟는다. 천마군림보는 확실하게 발동되었다. 그러나 마법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순식간에 그려져 발동한다. 검은 쇠사슬이 파도처럼 쏟아진다.
준비동작도 없이 사방에서 덮쳐오는 쇠사슬을 피해내는 것은 무리였다. 온몸이 사슬에 구속되어 허공에 떠오른다. 테드가 검지를 까딱였다. 쇠사슬이 움직이며 테드의 앞에 천마를 대령한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끝났군.”
사슬에 붙잡힌 이상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 순수한 완력만으로 끊어내는 수밖에 없는데 천마의 몸을 구속하는 사슬만 20개가 넘어간다. 거기에 천마는 왼팔도 없는 지쳐있는 상태다. 끊어낼 육체의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인격이 변했군. 넌 사탄의 피에 적응한 게 아니다. 두렵지 않나? 자신이 변한다는 게. 본좌가 제대로 적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마. 거래를 하자.”
사탄의 피에 완전하게 적응하면 눈은 붉은색으로 변해도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사탄의 피에 적응하는 데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렸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의 경우는 무언가 이상하다.
“웃기는군.”
테드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자신의 마성(魔性)은 의지에 따라 끄고, 키는 것이 가능한 액티브 스킬이 되었다. 적응은 이미 되어 있다.
천마의 몸을 구속한 쇠사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천마의 몸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게 된다. 얼굴을 땅에 묻는 굴욕에 천마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고개를 들어 테드를 올려다본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최악의 굴욕이다.
“네 이놈!!!”
분노가 담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낮은 비웃음뿐이다.
테드는 그의 머리위로 오른발을 턱하니 올렸다. 발에 힘을 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천마의 머리가 바닥에 박힌다. 머리의 옆으로 핏줄기 하나가 흘러나왔다.
방안에 검은 나비(Black Butterfly)들이 나타난다. 수십 마리의 검은색 나비는 테드의 주위를 팔랑거리며 날고 있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말해라. 사탄교의 본거지는 어디에 있지?”
테드의 발이 천마의 머리에서 떨어졌다. 천마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거래를 하자는 거냐!?”
“아니. 협박이다.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정보를 알아내는 방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정신계 마법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지만, 천마의 정신력이라면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하! 본좌가 협박에 굴하리라 생각하나?”
“잘 생각해서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천마의 머리 위에 하얀색의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진다. 빛을 내뿜으며 천천히 회전하고 있다. 천마가 이를 악물었다. 말한다 하더라도 살려줄리 없다는 것 즘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죽여라. 네놈에게 말해줄 정보는 없다.”
“마교를 세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네놈에게 고개를 숙여 구걸하면서까지 천마신교를 세우고 싶진 않군. 그렇게 정보가 원한다면 처음 거래를 했을 때 받아들였어야지.”
테드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 불쾌해하는 얼굴을 보며 천마가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비록 자신은 죽을 것이지만 놈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후회 하나?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해도 늦는 법이지.”
테드가 발을 무릎높이 만큼 들어 올렸다. 아래에는 천마의 머리위에 있는 마법진이 있다.
“……그래. 후회는 아무리 해도 늦는 법이지.”
힘을 담아 아래로 내려찍듯이 밟는다. 부츠의 굽이 마법진을 지나며 위력이 한층 더 강력해진다. 자비 없이 천마의 머리로 떨어진다.
머리가 박살난다. 검은색 두피가 함몰하고 피와 함께 뇌수가 흐른다. 분홍색의 뇌가 테드의 발에 짓밟히며 탁구공만한 눈알이 찌부러진다.
주변에 날고 있던 수 십 마리의 검은 나비 중 3마리가 날아온다. 1마리는 천마의 몸안으로 흡수되듯 사라지고, 2마리는 박살난 머리에 내려앉아 녹아내리듯 사라진다.
놀라운 이변이 일어났다. 산산조각 난 천마의 머리가 시간이 되돌아가듯 한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꾸물거리며 모여든 조각들은 이윽고 뭉치기 시작하며 머리를 형성한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천마의 머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천마가 바닥을 본다. 의문을 표하듯 두 눈이 천천히 깜빡인다.
“하, 하하하! 환상이었나! 이런 유치한 환상을 보여주면서까지 정보를 원하는 것이냐?!”
“넌 확실하게 죽었다.”
테드의 말에 한껏 비웃던 천마의 표정이 굳어진다. 무심코 확인하고 말았다. 무인으로서 몸 상태를 점검하는 버릇이 튀어나왔다.
심장이 멈추었다. 맥박이 없다.
육체는 확실하게 죽었다.
“…무슨, 무슨 짓을 한 거냐?!!”
“언데드로 만들었다.”
테드가 간단히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오른발을 들어 올린다. 천마의 머리위로 마법진이 그려진다.
검은 나비(Black Butterfly)는 회귀 전 만난 스승에게서 훔쳐 배운 마법이다. 그의 스승은 이 마법은 금기라며 가르쳐주지 않았었다. 테드는 우연한 기회에 마법서를
접하고 독학으로서 이 마법을 익혔다.
천마가 죽었을 때, 한 마리의 나비가 천마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혼과 백, 영혼과 육체를 잇는 구속구로서 천마의 영혼이 사라지는 것을 막았다.
두 마리의 나비는 부서진 머리를 시간을 되돌린 것 같지만, 실제론 다르다. 한 마리가 부서진 파편을 끌어 모으고, 다른 한 마리가 그것을 조립해 복원했다. 이것은 천마가 살아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리 말해두지. 언데드라고 해서 고통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집어치워라.”
대상의 영혼을 지배해 자신의 종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테드는 그 방법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 천마 정도의 실력자라면 실패할 확률도 없잖아 있으면서도, 굳이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천마는 언데드가 되었다. 그러나 감각은 남아 있다. 뇌가 움직이고, 손가락이 움직이고, 말도 할 수 있다.
심장이 움직이지 않으나, 마력을 이용한다면 심장을 강제로 기능하게 할 수 있다. 음식을 소화시키고 배설을 할 수 있다.
맛을 즐기고, 성의 쾌락을 느끼고, 수면까지 취할 수 있다.
테드는 이 완벽한 언데드와 생물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발을 내렸다.
천마의 머리가 부서지고 다시 나비 3마리가 날아든다.
천마가 눈을 떴다.
죽을 때의 그 박탈감과 두려움. 환상 따위가 아닌 진짜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절망에 가득 찬 표정의 천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죽음. 생물이라면 누구나가 가지는 권리를 빼앗겼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내 스승은 말했지. 마법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천마의 등위에 하얀색의 마법진이 그려지며, 마법진에서 푸른빛의 에너지 블레이드 3개가 나타나 허공에 멈춘다. 그 검의 끝은 각각 천마의 머리와 목, 등을 가리키고 있다.
“넌 몇 번의 죽음까지 견딜 수 있을까.”
천마가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검은 사슬에 묶여 있는 몸은 조금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푸른 빛의 칼이 아래로 떨어졌다.
검은 나비가 춤을 추듯 팔랑였다.
“말하겠다! 사탄교의 본거지를 말하겠다! 사탄교는 딥크스의 나이트보더 요새근처
지하에 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뒤로 갈수록 천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능욕이며, 모욕이었다. 그러나 분노 대신 절망감과 공포가 자리 잡았다.
“…끝내다오…….”
테드가 오른손을 위로 끌어올리듯이 들었다. 천마의 몸이 사슬에 이끌려 위로 일으켜
세워진다.
힘없이 축 늘어진 천마를 바라보는 테드의 눈에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고작 세 번인가. 천마라는 이름이 아깝군.”
“…….”
테드의 오른쪽에 에너지 블레이드가 생성된다. 염력 마법을 사용해 허공에 고정시킨다.
힘없이 숙이고 있던 천마의 고개가 미중유의 힘에 의해 올려졌다.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눈빛이었다.
에너지 블레이드가 천마를 향해 날아간다. 목표는 천마의 닫힌 입이었다. 에너지 블레이드는 닫힌 입을 간단히 꿰뚫었다. 천마의 후두부에 검신이 삐져나왔다.
검은 나비가 모여들었다.
“……어째서.”
천마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째서 끝내지 않는 거냐!!”
그 쉰 목소리에는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데비크.”
테드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담긴 섬뜩함이 천마의 몸을 훑고 지나간다.
“그것들은 생체에 사탄의 피를 주입해야 하지.”
유리관 안에 있는 데비크로 변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직 사탄의 피에 완전히 육체가 변하지 않아 귀여운 여자 아이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아이 뿐만이 아니라, 노인도 있었다. 아이와 닮은 여자도 있었고, 소년도 있었다.
아마도 루크에이스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가족단위로 납치했을 것이다. 혹은 작은 마을 사람들 전부를 납치했거나.
“……그들을 대신해 복수할 권리 따윈 내게는 없다.”
회귀 전 그보다 더한 것도 보았던 테드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 갔을 것이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기분이 더러웠다. 울컥한 무언가가 치솟았다.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이유 없는 파괴욕구, 분노가 충동질한다.
어쩌면 마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성은 본능적인 충동을 자극해 파괴성을 일으키니까.
“그러니 이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원래는 여기까지 질질 끌 생각은 없었다. 깔끔하게 얻을 것은 얻고 끝낼 생각이었다.
“단순한 화풀이다.”
우드득, 천마의 목이 꺾인다. 입이 벌려지고 혀가 밖으로 삐져나왔다.
수 십 마리의 검은 나비가 춤을 췄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