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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46화 (4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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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성의 남자.

“……아?”

뮤렌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뻑였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 붉은 눈을 보자면 확실하게 사탄의 피를 주입당해 마성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천마에게 교육받지 못한 것일까?

“…나, 나는 사탄교의 간부야! 얼른 그 여자를 죽여!”

“…….”

테드가 귀찮은 파리를 내쫓듯이 오른손을 허공중에 휘저었다.

그리고 이변이 발생했다.

따뜻한 액체가 뮤렌의 왼쪽 볼에 튀었다. 뮤렌은 갑작스런 감촉에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서 천천히 뺨에 손을 가져다 대어 액체를 확인한다. 붉은색의 피였다.

뮤렌이 천천히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지옥의 시작을 알리듯, 사방에서 비명이 울러 퍼졌다.

남성의 가슴에는 검은색 손이 뚫고 나와 있었다. 뮤렌의 뺨을 향해 피를 튀긴 원인이었다. 남성의 뒤에 있던 인간형의 데비크가 낮게 끼끼거리며 웃었다. 입을 쩌억 벌리고 남성의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그대로 음미하듯 살은 물론이고 뼈까지 와그작와그작 씹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꿀꺽 삼킨다. 데비크의 붉은 눈이 만족스럽게 반달모양으로 휘어졌다.

“……머, 멈춰!!”

등골이 오싹해진 뮤렌이 데비크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데비크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되려 마주보며 입을 찢어 웃어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살아 있는 남성을 발견하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오지마!!!”

사탄교의 남성은 꼴사납게 비명을 내지르며 손에 든 검을 데비크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데비크는 날아오는 검날을 그대로 손으로 잡았다. 손이베여 피가 방울져 떨어졌으나, 데비크는 개의치 않고 검을 당긴다.

과거 어떤 상황에서도 검을 놓지 않기 위해 훈련받은 대로 성실하게 이행하며 검과 함께 데비크의 앞으로 이동한다.

남성의 시야안에 데비크의 얼굴만이 들어왔다. 검은색 피부 속, 하얀 흰자 안에 있는 붉은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데비크가 입을 쩌억 벌렸다. 그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빨에는 누구것인지 모를 피와 살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데비크의 뜨겁고도 역겨운 숨결이 남성의 얼굴에 닿았다. 남성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가랑이 부분이 젖어들고 바닥에 노란색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사, 살려줘…….”

기어가는 목소리로 목숨을 구걸했으나, 데비크는 자비 없이 입을 쩌억 벌려 남성의 턱과 코를 물어뜯었다. 꼭꼭 씹어 삼킨 데비크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른 먹이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그만둬어어어어!!!”

뮤렌이 절규어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데비크 중 한 마디도 멈추는 이가 없다. 사탄교의 교인들을 하나같이 사냥한다.

“왜,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야?!”

사탄교의 간부는 데비크를 조종하는 특수한 마력의 파장을 배운다. 이 마력의 파장을 이용해 지성이 없는 데비크를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뮤렌은 마력의 파장은 물론이고 권능인 유혹까지 사용했다. 그러나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데비크의 살육이 멈춘 것은 그곳에 있던 사탄교의 남성들이 모두 죽은 뒤였다. 저항으로 인해 데비크 또한 반 정도 죽어버렸으나, 나머지 절반인 10마리가 남아 있다. 그것들은 테드 일행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뮤렌을 포위하듯 빙 둘러 싸기 시작했다.

뮤렌이 꿀꺽 침을 삼켰다. 그녀는 스스로의 전투 능력이 높지 않음을 안다. 마계에서도 전투 능력만을 따지면 최하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악마다. 2~3마리의 데비크 정도라면 처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마리의 데비크가 전부다 덤벼든다면 승산은 전혀 없다.

날카로운 손톱을 위협하듯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양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뮤렌의 정면에 있던 데비크가 앞으로 나섰다. 공격해 오지 않은 행동에 뮤렌이 의아한 눈으로 데비크를 바라봤다.

데비크는 붉은 눈으로 뮤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에 누군지 모를 내장의 찌꺼기가 끼여 있었다.

“놈…은, 어…디, 에… 있지…?”

또박또박. 그러나 소름끼치도록 탁하고 거친 목소리가 흘려 나왔다. 깜짝 놀란 뮤렌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지성이 없는 데비크는 말을 할 수 없다. 의사표시를 할 수 없다. 기껏해야 짐승처럼 울부짖어 위협하는 것이 전부다.

푸욱. 뮤렌에 주위에 있던 데비크들이 전원 동시에 자신의 심장을 향해 팔을 내질렀다. 붉은 피가 바닥에 쏟아지고 단순한 시체가 된 데비크의 육체가 힘없이 바닥에 떨

어진다.

계속해서 눈앞에 펼쳐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뮤렌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떨리는 눈동자로 무심한 붉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테드를 바라봤다.

테드는 정신제어(Mind Control) 마법으로 데비크를 한순간에 지배하에 두었다. 이성이 있는 동물이라면 성공률이 굉장히 낮은 마법이지만, 지성도 없이 그저 본능에 충실한 데비크에겐 성공확률이 높다. 실패하게 되면 사용자의 정신에 충격을 주는 고난이도 마법이다.

테드는 정신제어에 당한 데비크로 사탄교의 남성들을 죽이고, 데비크들 스스로 자해하게 만들었다.

“……너, 너! 무슨 짓을…!!”

뮤렌의 말에는 원망과 증오가 깔려 있었다. 그가 이곳에 나타나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모든 것은 그 때문이다.

촤르르르륵. 쇠사슬이 굴러가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뮤렌이 반응하기 전에 사방에서 튀어나온 검은 사슬이 뮤렌의 몸을 속박한다.

몸통과 양팔, 목을 구속한 검은 사슬은 쓰러진 뮤렌을 위로 끌어 올린다. 강제로 상체를 일으키게 된 뮤렌이 발버둥 쳤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다. 마력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테드가 뮤렌의 앞으로 다가 왔다.

그녀를 일으켜 세운 이유는 테드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다. 목이 고정되어 고개를 돌릴 수 없게 된 뮤렌은 정면의 테드의 얼굴을 강제로 바라보게 되었다. 뮤렌의 이마에서 비지땀이 흐른다.

“어딨지?”

무미건조한 물음이 들려왔다. 밑도 끝도 없이 묻는 그 말에 뮤렌의 얼굴이 표독스럽게 변한다.

“몰라! 모른다고! 뭘 원하는 게 있으면 제대로 말해!!”

테드가 그녀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손에 뮤렌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두 눈을 질끈 감자 머리위에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손의 촉감이 느껴졌다.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떨리는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테드의 마력이 뮤렌의 몸속으로 파고든다.

“꺄아아아아아아!!”

몸 전체에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온몸의 피부를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었다.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고, 입에선 게거품이 흘러나온다. 그녀의 사타구니 부분에서 노란색의 물이 허벅지를 지나 부츠를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무의식적으로 실금해버린 것이다.

코를 찌르는 지린내에 미간을 찌푸린 테드가 그녀의 머리위에 올린 손을 뗐다.

바닥에 고인 노란색의 액체가 발치에 닿기 직전, 뒷걸음으로 물러난다.

“마력이 아깝다.”

뮤렌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검은 사슬이 사라진다. 그녀의 몸이 노란색 액체가 고인 웅덩이에 쓰러졌다. 액체가 허공에 튀었다.

“어딨지?”

테드가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뮤렌은 대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아주 미약한 의식의 끈은 있었으나, 테드의 나직한 물음을 듣지 못했다. 그저 입에 게거품을 물고 몸 안에 잔류한 고통에 애벌레처럼 몸을 꿈틀 거릴 뿐이었다.

테드가 사이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검.”

사이나의 새하얀 검, 나찰의 손잡이가 테드의 손바닥위에 올려졌다. 하얀 금속에는 사이나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테드는 검을 들어 뮤렌의 오른쪽 어깨를 겨누고 그대로 찔러 넣었다. 뮤렌이 몸이 경직되며 공그랗게 뜬 두 눈이 비명을 대신했다.

“……!!”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딨지?”

뮤렌이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물음에 답하지 않으면 다시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그가 무엇을 찾는지 필사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처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

다. ‘그 놈’ 그가 말하는 놈은 누구일까. 차분히 생각하자 답은 나왔다.

“천마를 말하는 거지!? 말할게! 말 할 테니까…!! 어깨의 검부터 빼!”

테드가 검을 빼내고 난 뒤였다. 그의 몸이 멈칫하고 정지한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뮤렌이 벌떡 일어나 테드와 거리를 벌렸다. 오른쪽 어깨를 붙잡아 지혈을 하고 눈물이 맺힌 눈으로 테드를 노려봤다. 숨을 내쉬는 입술이 떨렸다.

테드는 사이나를 향해 검을 살짝 던졌다. 무리 없이 받아낸 사이나가 의아한 눈으로 테드를 바라봤다.

“놈을 찾았다. 네가 처리해라.”

“예. 주인님.”

대답하는 사이나의 입가가 아주 살짝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테드는 텔레포트를 통해 유리관이 가득한 넓은 연구실 같은 방에 도착했다. 깨어진 유리관 앞에는 검은 액체가 바닥에 쏟아져 있고, 머리와 사지가 분리된 데비크가 바닥에서 움찔거린다.

주변에 있던 검은색 옷을 입은 사탄교의 남성들이 느닷없이 나타난 테드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앙? 뭐야, 이 꼬마는.”

“갑자기 나타났는데? 죽이면 되나.”

슬금슬금 위협하듯 무기를 꺼내든다. 그들은 모두 재밌다는 듯이 미소를 걸고 있다.

테드는 그들의 밑에 있는 시체더미를 보았다. 고고학자인 니클은 밧줄에 묶인 채로 죽

어 있고, 시체가 된 황금 들소의 파티원들은 사탄교의 남성들의 의자가 되어 있었다.

테드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의 키메라 패밀리어인 하얀색 쥐는 초록색의 철문의 앞에서 문을 긁고 있다.

철문의 상단 부분에는 익숙한 검이 두꺼운 문을 뚫고 나와 있다. 천마의 검이다.

“거기 있나.”

“하?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머리가 이상한 애인 것 같은데.”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길쭉한 턱을 가진 남자가 테드의 앞으로 다가와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그 뒤에서 테드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남성이 무언가 떠오른 듯 다급히 길쭉한 남자의 어깨를 건드린다.

“어이! 잠시, 이 꼬마. 뮤렌님이 말한 그 꼬마라고? 괜히 건드렸다간 우리…….”

그가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주황빛의 바람이 불었다. 그와 동시에 길쭉한 남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양팔은 팔꿈치 아래가 잘려 있었다. 단면에는 뜨거운 불에 지져진 듯 걸쭉한 혈액 대신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끄아아아아아악!!”

블레이즈 블레이드 스톰(Blaze Blade Storm).

주황빛의 칼날을 숨긴 바람이 공간을 휘몰아친다. 유리관, 남자, 벽할 것 없이 테드를 중심으로 미친 듯이 날뛰어 흔적을 남긴다.

주황색 바람은 도륙을 시작했다. 남자들이 비명을 지르든 말든, 이리저리 움직여 무엇이든 베어낸다. 이미 목숨이 끊긴 시체 또한 자비 없이 훑고 지나가며 토막을 낸다. 베이는 순간 지져지기 때문에 피는 나오지 않는다. 깔끔하게 고깃덩어리가 될 뿐이다.

테드는 유린관이 깨지는 소리, 남성들의 처참한 비명, 벽이 갈리는 소리를 일절 무시하고 초록색 문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테드의 주위만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챈 수인족 남성이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그러나 테드에게 다가가려는 그 순간에, 수십 개의 주황빛 바람이 사방에서 그를 훑고 지나간다.

수천조각으로 나눠진 그의 육체는 토막보다는 산산조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꼴이었다.

테드가 초록색 철문 앞에 도달한 순간 주황빛 바람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바람이 남긴 흔적은 명백했다. 유리관은 모조리 박살나있고, 벽이나 천장에 날카로운 검상 같은 흔적이 남겨져 있다. 그곳엔 테드와 하얀 쥐를 제외하곤 살아 있는 생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테드는 철문을 당겨 열었다. 천마와 시온이 낯선이의 방문에 경악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테드의 입에서 짙은 피비린내를 압축해 만든 살기가 담긴 말이 낮게 흘러 나왔다.

“찾았다.”

천마의 등줄기에 오싹한 전율이 내달렸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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