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43화 (4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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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성의 남자.

“호오. 본교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나. 뮤렌의 반응을 보면 우리 측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얻은 정보지?”

“……메타엘.”

테드가 주저하며 말했다. 메타엘은 그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탄교의 세 명의 교주 중 한명이다. 그는 천사다. 악마인 뮤렌과 사이가 나쁠 것이다. 그러나 중년 남자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이군. 본좌는 그를 만나봐서 알고 있지. 그는 함부로 교의 정보를 발설할 인물이 아니야.”

테드가 식은땀을 흘렸다. 방금 전에 화염구를 베어내며 잠깐 보인 실력을 보며 느낀 것이지만, 보통의 인물이 아니다. 뮤렌과 동시에 덤벼들며 위험하다.

사이나를 긴급 소환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녀를 부르면 다른 파티원들. 션과 카론과 브론은 죽는다. 데비크의 공격을 받아 확실하게 죽을 것이다.

뮤렌이 종종걸음으로 사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오른쪽 팔에 몸을 기대며, 왼손으로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는 천마(天魔)라고해서 내 소환자야. 엄청 강하다고~?”

“불필요한 소릴.”

“뭐 어때, 어차피 죽일 거잖아?”

“아니. 마음이 바뀌었다. 그에겐 가능성이 보인다.”

“흐응. 그래?”

천마와 뮤렌이 대화하는 사이에 테드는 조용히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온갖 버프 마법을 사용해 육체를 비롯한 마법 능력을 강화시킨다. 천마는 물론이고 몽마인 뮤렌까지 마력의 흐름을 눈치 챘다. 그러나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뮤렌은 천마의 거친 입술을 검지로 쓰다듬고서 곁에서 떨어졌다.

“난 위에 있는 사이나를 보고 올게. 그 년에겐 마계에 있을 때 조금 빚이 있거든.”

천마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흥미가 깃든 붉은 눈동자로 테드를 보며 말했다.

“전투를 준비하는 건가? 의미 없는 일이겠다만, 같은 악마 소환자로서 특별히 기다

려주지.”

너 따윈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 여유를 알고 있는 테드는 모욕감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굳이 거부하지 않는다. 이 빚은 배로 갚아주면 된다.

‘암브로시아(Ambrosia).’

테드의 몸에 압도적인 힘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대는 느끼기엔 미궁 75층의 게이트 키퍼인 노블 라이칸 슬로프보다 강하다. 괜히 뒷일을 걱정한다고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걸리는 최상급의 버프 마법을 연달아 사용한다. 버프를 사용할 때마다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게 개의는 느낌이었다.

“천마라고 했지? 그… 마교랑은 어떤 관계지?”

“본교를 알고 있나, 그럼 가르쳐 주지. 본좌는 전생에 천마신교의 18대 교주였다. 대대로 교주는 천마라는 이름과 고금절학의 무공인 천마신공을 물러 받지.”

무협지를 조금 읽어본 한국인이라면 모를 리가 없다. 이제는 희미한 전생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정도로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천마다. 설마 실존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잔재주는 좋지 않군.”

쿵! 오른발로 강하게 진각을 밟는다. 기의 파장이 발생해 주변에 은밀하게 그려지고 있던 마법진이 순식간에 깨져 나간다. 뿐만이 아니라 파장을 받은 테드에게도 영향이 왔다. 몸속이 살짝 흔들린 느낌이다.

“……그거 혹시 천마군림보?”

“뮤렌에겐 듣기론 너는 본좌와 같은 환생자라고 했다. ……전생에 본교와 관련이 있

었나? 이상하게 잘 알고 있군.”

“…….”

테드는 대답하는 대신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명검도 아닌 그냥저냥의 검이다.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법사 주제에 검을 빼들었나. 네놈 혹시…….”

천마의 몸이 순간 흐릿해진다고 느낀 순간, 어느새 테드의 바로 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의 뒤에는 여전히 신형이 남아 있다. 수준 높은 고수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이형환위(移形換位)다.

“검을 얕보는 것이냐?”

천마의 검이 위에서 떨어지며 어깨를 베어내기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그 검이 닿기 직전, 테드의 몸이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천마는 재빠르게 검의 궤도를 바꾸어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카앙! 블링크를 이용해 순식간에 뒤로 이동해 횡으로 휘두른 테드의 검을 막아낸다. 테드가 양손으로 휘두른 검을 한손에 쥔 검만으로 막아낸 천마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

다. 어린아이의 힘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실려 있다.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테드의 손에서 발생한 강렬한 전류가 맞댄 검을 타고 천마의 몸으로 넘어간다. 파지직, 파지직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마의 몸에 전류가 내달린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옷 하나 태우지 못했다.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 하는 건가. 재밌게 싸우는군.”

“…….”

테드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천마는 여유가 담긴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검에 마기를 주입한다. 검은색의 연기같은 아지랑이가 검에 맺힌다. 가볍게 힘을 주자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테드의 검이 잘라졌다. 검강(劍罡)이다.

검이 잘리자마자 뒤로 물러난 테드는 손가락을 튕겼다. 천마의 발아래에 붉은색의 마법진이 나타나며 곧바로 발동한다. 거대한 불기둥(Fire wall)이 바닥에서 솟구친다. 천마의 몸을 태울 기세로 천장까지 닿은 불기둥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가라앉아 사라졌다.

“호신강기를 뚫기에는 위력이 한참이나 부족하군. 네 마법은 이게 전부인가?”

“그럴 리가.”

검을 한 손에 쥐고 털어내듯이 휘두른다. 우웅, 공기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부러진 검날부분에서 푸른빛의 검날이 새로이 나타난다.

“무형검?! …아니, 그건 마법이군.”

놀란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떳던 천마가 자신의 말을 정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대로 무형검같은 게 아니다. 에너지 블레이드(Energy Blade)라는 마법이다. 일반적인 에너지 블레이드는 일반 검보다 가볍고 절삭력이 뛰어나다는 장점밖에 없다. 원거리 계열의 마법사들이 대부분인 관계로, 접근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마법은 마법사들 사이에선 쓰레기 마법이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근접 전투를 주로 했던 테드는 에너지 블레이드를 자기식대로 개조했다. 원래는 뭐든지 벨 수 있는 단분자 블레이드를 목표로 만든 마법이었으나, 에너지 블레이드를 단분자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 했기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에너지 블레이드의 에너지를 고속으로 회전시킨 초진동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무게가 존재하지 않는 에너지가 회전하기 때문에 사용자에겐 부담이 전혀 없다.

테드가 천마를 향해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천마의 주위에 검은색 마법진이 6개가 그려지며 쇠사슬이 모습을 드러내 테드와 동시에 천마를 향해 쇄도한다.

천마가 오른발을 들어 진각을 밟는다. 천마군림보의 파장이 퍼져나가 날아드는 검은 쇠사슬의 저지 한다. 쇠사슬이 힘을 잃고 허공에 축 늘어졌다.

테드는 보이지 않는 배리어도 파장을 막아내고서 천마를 향해 검을 대각선으로 휘둘렀다.

천마의 검과 검을 막아내며 고착상태에 들어갔다. 칠판을 긁는 듯한 듣기 싫은 소리가 맞부딪힌 검 사이에서 울렸다. 천마의 검강은 테드의 검을 자르지 못했다. 오히려 검은색 검강이 에너지 블레이드에 의해 갉혀나가고 있다.

“……성능 좋은 검이군.”

천마가 왼손을 올려 검을 잡았다. 양손으로 검을 쥐자 테드가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부스터(Booster).”

테드의 입에서 낮은 음성이 흘러 나왔고, 동시에 천마의 검은 연기 같은 검강이 크게 흔들렸다. 천마가 재빠르게 테드의 검을 흘려내며 거리를 벌렸다. 테드의 허공을 가르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은 에너지 블레이드의 검날은 단단한 지면을 두부를 자르듯이 손쉽게 베어냈다.

테드는 짧게 혀를 찼다. 부스터 마법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에너지 블레이드의 진동속도를 상승시켰다. 마음 같아선 부스터 마법을 중첩해 걸고 싶으나, 에너지 블레이드엔 한번이 한계다. 그 이상으로 진동 속도를 높이면 하면 에너지가 분산되어 없어질 것이다.

“방금 전의 공격은 위험했다. 설마 검강을 잘라내는 검이 존재할 줄이야. 마법이란 것도 무시할게 못 되는군.”

“아니.”

천마의 발치에서 검은 쇠사슬이 나타나 천마의 오른발을 칭칭감는다. 천마의 두 눈동자가 당혹스러움을 표시하듯 흔들렸다. 내력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위험은 지금 부터야.”

천마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그대로 마법을 발동시킨다. 천마의 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붉은색의 폭발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속적으로 폭발한다. 5번 정도 폭발하고 난 뒤에는 구름 같은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모여 있다.

내력이 없는 상태의 무인이라도 코앞에서 익스플로전을 당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걸 5번이나 맞았다.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테드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의 고성능의 눈에는 연기 속을 투시해 그가 멀쩡하게 서있는 것을 확인했다.

내력 없이 순수한 육체만으로 폭발을 견뎠다. 상의는 폭발의 여파로 처참하게 터져나갔지만, 그 안의 육체는 멀쩡하다. 피부에 그을림은 있으나 상처는 없다.

내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인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테드는 약간의 초조함을 느끼며 마법을 준비한다. 천마를 중심으로 조금 떨어진 거리의 사방에서 붉은 색의 마법진이 허공에 그려진다.

쿵!

땅이 흔들린 느낌과 함께 마법이 깨진다. 테드의 상체가 살짝 비틀거렸다. 천마군림보다.

오른발을 감은 사슬을 박살낸 천마가 내력을 서서히 일으켰다. 그의 몸 주위에서 공기가 움직이며 검은 연기를 몰아낸다.

“그 나이에 이정도의 실력인가. 엄청난 재능이군. 네가 부럽구나.”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상체에는 단단한 근육이 가득했다. 흉터는 있으나, 그렇게 많지 않았다.

“……네가 그런 말을 하면 비아냥거리는 걸로밖에 들리지 않아.”

테드는 이를 악물었다. 천마군림보는 파장을 발생시켜 허공중에 있는 마력을 흩트린다.

마법진을 그리고 발동하는 캐스팅 시간과 진각을 밟아 파장을 발생시키는 것, 어느 쪽이 빠르냐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아니. 내겐 무공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 이번 생에도, 저번 생에서도.”

“18대 천마였다며. 그런데 무공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고?”

은밀하게 마법을 준비한다. 그러나 천마는 모조리 알아채고서 천마군림보로 막는다. 테드가 다급히 배리어를 사용해 파장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빈틈이 전혀 없다.

“없었다. 상태창이라고 해야 하나? 그곳에 표시되는 재능에도 무공과 관련된 재능은 하나도 없더군.”

“그런 것 치고는 네 강함은 전혀 설명되지 않는데.”

재능은 절대적이지 않다. 확실히 재능이 있다면 조금 더 빠르게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노력에 대한 효율이 좋아지는 것이다.

“마공이란 건 재능 없는 자들을 위한 외도(外道)다. 정도(正道)를 포기하는 것으로 쉽게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지. 그러나 본좌의 천마신공은 마공이면서도 정도에 가까운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수련해서는 평생이 걸려도 대성할 수 없는 무공이지.”

은밀하게 마법진을 그리면 천마는 귀신같이 알아채고서 천마군림보로 파훼한다. 그럼에도 덤벼들지 않고 입을 나불거리는 것을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겉모습이나 분위기를 보자면 수다 떠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영약이 있었다면 충분히 천마신공을 무리 없이 수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마교가 없었다. 권력의 정점이던 아버지도 없었고, 소교주라는 신분도 없었다. 재능도 없었지.”

“…….”

테드는 그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에너지 블레이드를 바라봤다. 에너지 블레이드는 적지만 마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것은 자신이다. 그러나 섣불리 덤벼들 수도 없다. 빈틈을 기다리고 있지만, 빈틈이 없다.

“영약도 없고, 재능도 없으니 수련을 해봤자 천마신공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본좌는 외도를 찾아 헤맸고, 결국 이 사탄교를 찾아냈다.”

“사탄의 피…….”

“그렇다. 사탄의 피. 그것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이 뛰어난 육체를 얻었다. 천마신공과 이 육체는 최고의 궁합이었지. 아마 사탄의 피가 없었다면 본좌는 일류는커녕 삼류무사란 칭호를 달고 살았을 것이다.”

사탄의 피. 정확하게는 사탄의 피를 복제한 레플리카다. 사탄교는 사탄의 피를 생물에게 주입하는 것으로 데비크(魔血者)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보통은 이성을 잃은 괴물, 데비크가 되어버린다만. 너에겐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제안하마. 본좌의 아래로 들어올 생각이 없느냐? 사탄의 피를 제공하마. 재능이 있는 너라면 분명히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다.”

테드는 천마를 향해 에너지 블레이드를 겨누었다. 다행히도 에너지 블레이드는 이미 마법으로서 발동되어 천마군림보의 영향을 조금밖에 받지 않는다. 승리의 가능성은 이 에너지 블레이드에 있다.

“거절이야. 힘 따위를 위해 인간을 버릴 생각은 없어.”

“……그거 참 안타깝군. 강제로 사탄의 피를 주입하는 수밖에 없겠어.”

천마가 지면을 박찬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테드의 앞으로 다가와 흑색의 검강을 횡으로 휘두른다. 테드가 다급히 검을 치켜들어 천마의 공격을 막아냈다.

============================ 작품 후기 ============================

아래부터는 Lizad님의 질문에 답합니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넘어가주세요. 스포를 최대한 조심해 답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사탄교는 악마세력이 아니라 독립세력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천사도 있습니다.

악마는 중간계, 네메스 대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네메스 대륙에 가면 좋지만 안가도 상관없는 느낌입니다.

악마계약의 경우엔 조금 길어질 것같으니 이후에 뜰과 작품설정에 올리도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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