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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성의 남자.
던전의 입구에 도착하기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몬스터도 마주치지 않고 순조롭게 도착할 수 있었다. 각각 마법사가 있는 파티라 그런지 야영도 힘들지 않았다. 집만큼은 아니지만, 마법 덕분에 추워서 벌벌 떨며 잠드는 일은 없었다.
고고학자인 니클은 던전의 위치를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던전을 찾는 것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던전은 동굴 형태였는데 좁은 입구가 하얀 눈에 파묻혀 있어 삽으로 몇 번 파내야 했다. 겉보기엔 눈으로 위장되어 있어 레인저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니클이 이곳을 발견한 것은 고고학자 특유의 눈썰미 덕분일까.
동굴을 감추는 눈을 치우고 들어온 던전의 내부는 아주 약간이지만 바깥보다 따뜻했다. 입구에 쌓인 눈이 내부의 온도를 유지시켰던 모양이다. 더군다나 지하로 이어져 있는 던전은 상당히 깊었다.
“여기가 틀림없습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동굴이군요.”
니클이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메리코는 기대했던 것과 달리 초라한 동굴의 모습에 약간 실망한 모습이었다.
“고대 유적의 입구는 아래 쪽 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냥 보기엔 평범한 동굴입니다만.”
“곰이라도 나올 것 같은 동굴이군요.”
메리코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루크에이스에 곰은 살지 않는다. 그 점에 관해선 안심해도 좋다.
“여러분들은 힘들지 않습니까? 저는 조금 쉬다가 탐색해도 상관없습니다.”
니클의 의견에 메리코가 주변을 훑어본다. 모험가들은 제각각 동굴을 살피거나 망토에 묻은 눈을 털어낸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장비를 점검하는 모험가도 있다.
“난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인데. 쉬고 싶은 사람?”
테드가 앞으로 나섰다.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망토의 후드를 젖히며 얼굴을 드러냈다. 붉게 상기된 볼이 탐스러운 어린아이였다.
“점심 안 먹었잖아. 밥부터 먹고 하자고.”
“던전 탐색전부터 밥이냐……. 우린 여기에 놀러온 게 아니라고?”
메리코가 못마땅한 듯 중얼거렸다. 검사의 입장에선 탐색전에 바로 먹는 음식은 꺼려진다.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도 있을뿐더러, 격렬한 전투를 치르다 보면 역동적인 움직임과 몬스터의 역겨운 시체 때문에 구역질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전투 직전에 음식을 먹고 몬스터의 시체에 토하는 모험가들을 몇 번 본적이 있다.
“밥은 에너지의 원천이야.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먹으라곤 하지 않아. 먹기 싫으면 먹지 않아도 상관없어.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 30분 정도만 기다려. 우리 파티는 항상 배를 든든히 하거든.”
“……그게 너희 파티의 룰이라면 어쩔 수 없나.”
메리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박한다면 할 수 있다. 실제로 메리코의 머릿속엔 몇 개의 사례가 떠올랐다. 그러나 탐색에 들어가기 전이다.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고 싶다. 30분 정도면 아무렇지 않게 기다릴 수 있다.
“메리코, 넌 안 먹을 거야?”
“일하기 전에는 먹지 않는 주의라서.”
초보 모험가 시절의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전투 직전에 무턱대고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로 먹은 후 전투에 들어갔다. 그때 상대했던 몬스터는 어보미네이터였다. 사람의 시체를 덕지덕지 뭉쳐 놓은 듯 한 형상의 몬스터로 악취를 풀풀 풍기는 최악의 몬스터였다. 검으로 몸을 벨 때마다 피가 터져 나와 자신의 몸에 쏟아진 것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참기 힘든 역겨움에 전투 도중에 식도를 역류하는 음식을 참지 못하고 내뱉어버렸다. 떠올리기 싫은 대참사다.
적당히 넓은 곳으로 이동한 테드는 우선 아공간을 열어 탁자를 꺼냈다. 그 위에 조미료를 비롯한 음식 재료들을 늘어놓았다. 다음으로 아공간에서 커다란 바비큐그릴을 꺼낸다. 검은색의 바비큐 그릴은 성인 남성의 허리만큼 올 정도의 높이였고 크기도 컸다. 그릴의 안에는 검은색 숯 몇 개가 깔려 있다. 그 위에는 깨끗한 석쇠판이 놓여 있다.
마법을 사용해 숯에 불을 피운 테드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메리코를 바라봤다.
“안 먹는다고 했지.”
“…….”
조금 시간이 흘러 석쇠가 달궈졌을 때, 메이드복위에 걸쳤던 적색의 코트를 벗어 아공간 주머니에 넣은 사이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오른손에는 집게를 들고 있었다. 왼손의 접시에는 선홍빛 고기와 소시지, 버섯이 가득이다.
“사이나 특제 매운 양념 소스도 있는데. 같이 안 먹어서 아쉽다.”
“……,”
사이나가 무자비하게 고기들을 그릴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거리는, 듣기에도 황홀한 소리가 동굴 안을 가득 퍼진다.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던 메리코는 문득 자신의 옆에 있던 파티원들이 어느새 바비큐 파티의 중심지인 테드의 곁에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소시지는 루크에이스의 장인이 만든 수제 소시지네. 부드러운 식감과 매콤한 맛이 일품으로 유명한데. 제법 돈 좀 썼구나? 아, 그 고기는 지금 뒤집는 편이 좋아.”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시온님은 빠져주십시오. 어차피 고기도 못 굽지 않습니까.”
“무례한 메이드네. 나도 고기 정도는 굽을 수 있어. 단지 옷에 냄새가 배길까봐 굽지 않는 것뿐이야.”
믿었던 시온은 사이나의 옆에서 고기를 가리키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있었다. 연신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군침을 삼키고 있는 모양이다.
연기를 흡수하는 우수한 바비큐 그릴에서 위장을 자극하는 달콤한 고기 냄새가 풍겨왔다. 입안이 침이 고이고 시선은 고기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한동안 못에 박힌 것처럼 서있던 메리코가 좀비처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릴을 향해 움직였다.
“내가 잘못했다. 먹게 해주라. 아니, 먹게 해주십시오!”
조금 놀려볼까 했던 테드였으나, 그 간절한 눈빛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놀리는 것을 포기했다.
“많이 먹으라고. 이게 최후의 만찬이 될 수 있으니.”
“굳이 그런 불필요한 말을 할 필요는 없잖냐. 아, 고기는 고맙다.”
테드가 건네는 접시를 받아든 메리코는 한입에 먹기 좋게 썰려 있는 고기를 포크로 찍어 입안에 넣었다. 따뜻한 고기가 입안으로 들어가자 절로 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조심스럽게 이를 움직여 고길르 씹자, 소스와 함께 육즙의 맛이 흘러 넘쳤다. 특제 매운 소스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맵지는 않았다. 오히려 약간 매콤한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절묘하게 고기의 육즙과 어울려 고기의 맛을 빛내고 있다.
“후우.”
만족감의 한숨을 내뱉었을 땐, 접시위의 고기가 모두 뱃속으로 사라지고 난 뒤였다. 메리코는 접시를 들고 그릴 쪽으로 슬그머니 움직였다.
점심은 생각보다 길어져 1시간이나 걸리고 말았다. 뒤처리는 마법으로 가볍게 끝내고 던전을 탐색할 준비를 한다.
저도 모르게 폭식을 한 메리코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으나, 배에 묵직한 느낌이 있었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
테드의 말로 탐색은 시작되었다. 앞장선 것은 레인저 2명이다. 니클의 말에 의하면 내려갈 동안 함정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운이 좋아 함정에 걸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던전이든 미궁이든 레인저가 앞에서 행동하는 것이 기본이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대 유적이 나타났다. 그것은 동굴과 이어진 인공적인 건물이었다.
재질을 알 수 없는 회색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입구가 있었다. 문은 부서져 사라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내부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있다. 더러운 먼지가 쌓인 통로는 금속으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인지 고대라기보다는 미래적인 느낌이 들었다.
“몬스터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함정도 마찬가지이군요. 아니, 함정의 경우엔 잘 모르겠다는 것이 정확하네요.”
주위를 밝히는 램프를 손에 든 션과 황금들소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의 레인저가 말했다.
“미궁이랑은 또 다른 곳이니 그건 어쩔 수 없군. 함정이 발동 되면 그때그때 대처하는 수밖에 없겠어.”
메리코가 의견을 말했다. 이견은 없었다. 일행은 점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리더, 이 금속도 뜯어 가면 제법 돈이 될 것 같지 않냐?”
카론이 낮은 목소리로 테드에게 물었다. 테드는 금속을 슬쩍 훑었다. 확실히 드워프들이 좋아해 보이는 금속들이다. 먼지가 쌓여 있을 뿐 녹이 전혀 슬지 않아 있다. 살
짝 찌그러진 부분은 있으나 완전히 부서져 파손된 부분은 없다.
“몇 천 년 이상이 지났어도 멀쩡한 걸 보니… 굉장히 비싸게 팔릴 것 같은데.”
“내 말이 그거야. 이거 조금만 뜯어 가면 안 될까?”
“아서. 그럴 시간도 없고 괜히 길드랑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어.”
“쯧. 리더는 이런 부분에서 소심한 면이 있어.”
“시끄러. 키도 작은 네가 내 위대한 뜻을 이해 할 리가 없지.”
“키가 갑자기 왜 나와?! 그리고 리더도 만만치 않게 키 작거든!?”
테드는 흥하고 카론을 비웃었다. 드워프인 그는 성장이 멈췄지만, 자신은 시간이 지나면 키가 클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한 뼘 정도 카론보다 키가 더 크다.
씩씩거리는 카론의 모습에 만족한 테드는 니클을 살폈다. 고고학자인 그는 통로를 탐색하며 걷는다기보다는 그저 멍하니 걷고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 금속 통로엔 그다지 가치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조금 긴 금속 통로는 곧이어 끝나고 두 갈래로 나누어진 통로가 나타났다. 돌로 만들어진, 이제야 고대 유적같은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의 앞부분에는 바위덩어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무언가를 조각해 놓은 듯한 인공적인 모양이었다.
“이런… 여기부터 갈림길이군요.”
니클이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바위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통로의 입구에서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한다.
“입구에선 뭐가 다른지 알 수 없군요. 둘 다 똑같습니다.”
“그럼 어느 쪽으로 갈련지?”
메리코가 물었다. 이런 경우에는 고고학자인 니클에게 선택권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두 개다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죠.”
니클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입구의 벽을 쓰다듬었다. 먼지가 손바닥에 묻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니 여기서 파티를 나누는 것이 어떻습니까?”
“……파티를 나누자는 것은 양쪽 모두 동시에 탐색할 생각이시군요.”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표출하며 메리코가 눈썹을 찡그렸다. 이 던전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몬스터를 만나지 않았다곤 하나, 이 앞에도 몬스터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될 수 있다면 전력의 분산을 피하고 싶다.
“만약 한 쪽 통로에 모두 가서 안전을 위했다고 해도, 이 고대 유적이 얼마나 긴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시간이 부족해 다른 한쪽을 탐색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면 길드에 보고해야하는 제 입장이 난처해집니다. 무리한 부탁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만 된다면 시간도 절약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든 안되겠습니까?”
“…….”
메리코는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까칠한 수염의 감촉을 느끼며 생각한다.
위험은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파티가 고고학자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메리트도 있다. 즉, 던전에서 얻은 물건을 몰래 숨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니클의 말대로 탐색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힐끗 니클을 바라보자 간절한 눈으로 메리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속의 탐욕이 슬그머니 기지개를 킨다.
“……그럼 잠시 테드와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예. 그래도 시간은 없으니 모쪼록 빠르게 끝내주시길.”
메리코는 테드를 이끌고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니클의 눈치를 보며 들리지 않게 목소를 최대한 낮춘다.
“테드. 아무래도 여기서 갈라져야겠다.”
“상관은 없는데 저 고고학자는 누가 데리고 가게?”
의뢰의 내용은 던전의 탐색과 그의 호위다. 던전의 탐색보다는 호위가 더 목적에 가깝다. 테드의 입장에선 귀찮은 짐이었다. 될 수 있으면 메리코가 데려가기를 바랬다.
“우리가 데려갈게. 그래서 말인데. 던전 내에서 무언가 발견하면 네 아공간에 넣고 나누지 않겠냐? 6대4… 아니, 7대3이라도 좋다.”
테드가 어이없다는 듯이 메리코를 바라봤다. 그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번 의뢰를 끝내고 클랜을 창설할 계획이다. 거기서 돈이 좀 많이 필요해서 말이지. 될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돈을 모으고 싶은 게 지금 심정이다.”
“……돈이 될 만한 걸 찾을 수 있을 진 알 수 없어.”
“그럼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잠시 생각하던 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5대5로 하자. 대신 물건의 처리는 내 것까지 네가 해.”
일반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면 길드에서 눈치 챌 것이다. 그런 어둠의 연줄이 없는 테드는 절반을 갖는 대신 귀찮은 처리를 요구했다. 그리고 만약에 메리코가 길드에게 발각되었을 때,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최대한 발뺌하면 된다. 처리하다 걸린 메리코의 잘못이다. 그의 성격이라면 물귀신처럼 같이 죽자는 식의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의 사태까지 완벽히 상상한 테드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메리코가 미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확실하게 5대5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서 니클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테드가 동의했습니다. 저희가 니클 씨를 호위하도록 하죠. 어느 쪽 동굴로 가면 됩니까?”
“아. 그거 참 다행이군요. 우리는 오른쪽으로 가지요. 레드 헥사그램 여러분은 왼쪽으로 가주셔서 탐색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황금 들소 파티가 니클과 함께 오른쪽 입구에서 최종 점검을 한다. 익숙한 형태를 보자면 영락없는 베테랑 모험가들이다.
“그럼 탐색이 먼저 끝나는 쪽이 여기서 기다리기로 하자. 무슨 일이 있다면 여기에 흔적을 남기고.”
“알았어.”
그들이 오른쪽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레드 헥사그램이 왼쪽 입구의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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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