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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36화 (3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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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레드 헥사그램.

“……어, 어떻게 된 거냐?!”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갑작스레 키노의 몸이 허공에 떠오른다 싶더니, 백색의 전류가 허공에서 휘몰아치며 키노를 공격한 다음에 엄청난 속도로 키노의 몸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걸 또 관객석에 있던 누군가가 움직여 낚아챈다.

사회자 아가씨가 뭐라 뭐라 설명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전문가인 그녀의 견해 따윈 듣고 싶지 않았다. 시선을 옆으로 돌려 시온을 바라보자, 시온은 멍한 얼굴로 테드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 같다.

“시, 시온!”

“어!? …응, 미안 듣지 못했어. 다시 한 번 말해줄래?”

메리코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 흔들자, 깜짝 놀란 시온이 되물었다. 그녀는 항상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어 지금처럼 얼빵한 목소리를 내거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표정은 메리코도 거의 본적이 없다.

“난 봐도 잘 모르겠으니까, 설명 좀 해주라.”

“…아, 그래. 환상마법을 이용해 저 수인족을 교란시키는 것 까진 알겠지?”

“어, 음. 대충은.”

어물쩍 넘기는 메리코의 대답의 뜻을 알아차린 것인지 시온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전도 잘 모른다. 검사간의 결투였다면 반대로 메리코가 시온에게 설명했겠지만, 마법사와의 전투는 뭐가 뭔지 전혀 알 수 없다.

“저 마법사, 테드라고 했었니. 테드가 검을 피하면서 발을 이용해 마법진을 그린 것은 너도 눈으로 확인했을 거야.”

“그건 알지. 이래 보여도 눈은 좋으니까. 더군다나 위에서 보니 훤히 보이더군.”

자신처럼 눈이 좋은 모험가들은 모두 바닥에 그려지고 있던 마법진을 확인했을 것이다. 솔직히 여유롭게 키노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던 테드의 모습을 보면 결코 마법사로 보이지 않았다.

“그건 미끼야. 간단한 라이트 마법진을 그저 경기장에 맞게 거대화 시켰을 뿐인, 마법진이 완성되어도 눈을 가리게 하는 것이 전부야.”

“저 복잡한 게 고작 라이트 마법이라고?”

메리코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마법 수련생도 라이트 마법은 할 줄 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라이트 마법은 쉬운 마법이자 입문 마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기장위에 그려졌던 마법진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복잡해보이지만, 자세히 구조를 들여다보면 구성요소가 반복되어 있는 걸 알 수 있어.”

메리코가 두 눈을 끔뻑였다. 쉬운 마법진이라곤 하나,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모험가들은 구분하지 못한다. 마법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어려운 학문으로 장평이 나있다. 당연히 키노 또한 마법적인 지식에 대해 몰랐을 것이다. 라이트 마법임을 몰랐던 그는 미끼를 위험한 마법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미끼를 던지기 전부터, 정학하게는 수인족의 등에 주먹을 때리고 난 뒤부터, 허공에 보이지 않는 마법진을 그렸어.”

“보이지 않는 마법진?”

시온은 앞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검지를 내밀어 허공에 선을 긋자 은은한 푸른색의 빛이 허공에 고정된다. 마력을 가시화시켜 보이게 하는, 마법의 기초중의 기초다.

“마법선이라 하는 거야.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이걸로 마법진을 그려.”

손가락을 움직여 슥슥 허공에 마법진을 그린다. 그리는 것은 간단한 라이트 마법진이다. 거침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에 따라 서서히 마법진이 완성된다. 약식으로 줄여서 했기에 위력은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30초도 걸리지 않아 완성할 수 있었다.

메리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실력은 대단하긴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시온은 전투 중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마법진을 그리지 않았다.

“마법진은 파앗, 하고 갑자기 생성되는 게 아니었어?”

시온이 손바닥을 펼치자 푸른빛의 마법진이 허공에 녹아 사라진다. 다시 손바닥을 쥐어 주먹을 만들어 순식간에 보자기로 펼친다. 손바닥 앞에 붉은색의 마법진이 파앗, 하고 나타났다.

“마법을 발동하는데 굳이 마법진을 사용할 필요는 없어. 수인이나, 영창 등의 방법이 있지만, 가장 마법의 위력이 좋은 게 마법진이라 대부분의 마법사가 사용하는 것뿐이야. 그리고 이 마법진은 마법사의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진 마력 덩어리야. 머릿속으로 마법진을 그리고 순식간에 마법선으로 만들어 냈을 뿐이야.”

마법을 정확하게 이미지하고 발동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을 캐스팅 시간이라 한다. 주구장창 마법진을 외우는 것으로 캐스팅 시간을 극한까지 줄일 수 있다.

“마법선은 그저 마력에 가시화시킨 것뿐이야. 그럼 왜 마법선으로 마법진을 그릴까?”

메리코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게 물어보아도 뭐라고 대답해야하는지 알 수 없다. 다행히도 그녀는 메리코의 멍청한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마나는 퍼지는 경향이 있어. 마나가 기반인 마력이나 성력 또한 마찬가지로 대기 중에 퍼지려고 하지. 그걸 마법선으로 가시화시켜 마력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리고 일종의 확인 작업이기도 해. 마법진이 제대로 그려졌는지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거지.”

발동시키고 싶은 마법이 산수 문제이고, 그 문제의 답이 마법이라고 한다면 답을 도출해내는 풀이가 마법진이다.

“흔히들 마법진의 색깔에 따라 속성마법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틀린 생각이야. 그저 속성에 맞게 마법선의 색깔을 정하는 게 편하니까, 혹은 스승에게 그렇게 배운 마법사들이 생각 없이 마법진의 색깔을 규정해버린 것 뿐.”

붉은 마법진에서 작은 돌멩이 크기의 물방울이 나타났다. 허공에 떠있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메리코는 입을 벌렸다. 붉은색의 마법진이라 불꽃 계열의 마법이라 짐작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물의 마법이다.

왠지 사기 당한 기분이었다.

“마법을 발동하는 것에는 수인, 영창, 마법진, 의법, 마도구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미지가 중요하므로 이미지를 마력으로 형상화시킨 마법진이 쉽고, 위력이 강해.”

“아아. 그럼 보이지 않는 마법진이란, 수인으로 만든 거군.”

“…….”

벌레같은 하등생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메리코에게 꽂힌다. 찔끔한 메리코가 어꺠를 움츠렸다.

“……보이지 않는 마법진이라 말했잖니. 수인과 마법진은 전혀 다른 방식이야.”

시온은 허공에 나타난 물방울을 없애며 다시 손바닥을 펼쳤다.

“보이지 않는 마법진이란, 마법선이 없는 마법진이야. 그는 기본적으로 볼 수 없는

마력을 허공에 고정시켜 마법진을 그렸어.”

시온의 손바닥위에 작은 불씨가 화르륵 나타났다. 몇 초간 살랑살랑 흔들리던 불씨는 이윽고 소리 없이 사라진다.

마법진 없이 발동한 마법을 바라보며 메리코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전혀 느끼지도 못했어.”

“허공에 마력을 단단히 고정시켜 미세한 마력이 퍼지는 것을 막았어. 적은 마력량이

니 느끼지 못한 게 당연하지만…… 그는 경기장 위에 거대한 마력을 고정시켰어. 4개나 되는 마법진을 그렸으면서도 조금도 마력을 흘리지 않았지. 아까 전에 그를 이길 수 있냐고 물었었지? 지금 대답할게. 나로선 절대로 못 이겨.”

그녀도 마법 하나 정도라면 전투 중에서 몰래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미끼용으로 발로 마법진을 그리면서 허공에 불가시의 마법진을 4개 동시에 그렸다. 적어도 마도사 이상의 실력자다.

“4개나 있었다고!?”

“그래. 경기장에서 3M 위 허공에 그려진 첫 번째 마법진으로 경기장을 반중력(Reverse Gravity) 상태로 만들었어. 두 번째는 돌풍(Gale) 마법으로 상대를 허공으로 올려 보냈어. 세 번째가 라이트닝 스톰(Lightning Storm)이야. 상대가 스킬을 사용해 속성이 전기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죽었을 걸. 마지막 네 번째 마법은 그래비티(Gravity). 중력을 배가시켜 그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비티는 일종의 확인사살이구나.”

말로써 설명하며 시온은 다시금 감탄했다. 라이트닝 스톰으로 충분히 결투는 끝났을 것인데도 빈틈없이 마지막 한수를 준비한다.

경악스러운 것은 거의 경기 초반부터 준비했다는 점이다.

그의 마법 실력을 가늠해보면 적어도 마도사 이상의 실력이다. 어떤 나라를 간다하더라도 충분히 대우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법사 모험가로 있을 실력이 아니었다.

“……이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결론은 엄청난 녀석이었구만.”

메리코의 마지막 말은 시온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아무리 클랜 워라도 정당한 결투야. 경기장 난입이라니…… 무슨 생각이지?”

떨어지는 키노를 중간에 가로채 자신의 앞에 가뿐히 착지한 누더기 망토를 뒤집어쓴 인물을 향해 테드가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테드 또한 키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다시 한 번 리버스 그래비티를 사용해 그를 지면과 재회시켜줄 생각이었다.

“너무 그렇게 적의를 키우지 말게. 어차피 결투는 자네들의 승리로 끝나는 것은 변하지 않네.”

고지식해보이는 말투와 달리 목소리는 굉장히 젊고 고왔다.

누더기 망토 아래에 보이는 갈색 부츠에 감싸인 종아리는 가늘고 길었다.

뒷덜미가 잡힌 상태로 구해진 키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망토의 인물을 올려다보고 있다.

테드는 망토의 안으로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유일하게 나와 있는 얼굴 부분에서 하얗고 가는 턱과 입술이 보였다. 붉은 입술의 꼬리는 살짝이지만 올라가 있다.

“……일단 정체부터 밝히는 게 어때?”

테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충 누더기 망토 속 인물의 정체는 예상이 가고 있다.

“아, 이런. 자기소개를 깜빡했군.”

키노의 뒷덜미를 놓은 손으로 어깨 부위의 망토를 잡고서 터프하게 잡아 당겼다. 바닥으로 화려하게 집어 던져진 망토가 일으킨 바람에 칠흑같이 검은 흑발이 흔들렸다.

매끈한 광택이 도는 흑과 백의 가죽 옷을 입고 있다. 몸에 착 달라붙은 가죽 옷 위로는 어깨와 가슴을 보호하는 은색의 브래스트 아머와 팔목을 보호하는 건틀릿을 끼고 있다.

어딘가 늑대와 닮은 호박색의 눈동자는 자신감을 품고 있다. 검은 머리 위에는 하얀색의 늑대귀가 쫑긋이 솟아 있으며, 골반에서 나온 풍성한 하얀 털의 꼬리가 미약하게

살랑이고 있다.

“실버 울프 클랜의 마스터, 천랑 캐미솔이라 하네.”

테드는 그녀의 특이한 이름을 듣고 확신했다. 이름 없는 신의 사도, 즉 환생자다.

천랑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빠르게 말을 잇는다. 마나가 담긴 그녀의 목소리는 작게 입을 벌렸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석들에게 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결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끼어들게 된 점, 정말 미안하네!”

테드를 향해 상체를 45도 이상 숙여 인사한다. 갑작스런 난입에 웅성거리던 관객들

의 행동이 멈춘다. 시선이 천랑에게 집중된다.

더욱이 그녀의 허리가 숙여져 직각이 된다.

“레드 헥사그렘에게도 면목이 없네! 말로만 그럴게 아니라 물리적인 보상도 준비하겠네. 정말 미안하네!”

“…….”

갑작스럽게 변한 분위기과 상황에 테드가 멍하니 그녀의 정수리를 바라봤다. 새까만 머리카락이라 비듬이라도 생기면 바로 눈에 띄겠네. 같은 아무래도 좋은 생각이 머리를 나돌았다.

‘아니, 여기선 정신을 차리고…….’

천랑의 행동의 의미를 생각하고 대처방법을 떠올리려고 노력할 때, 천랑은 키노에게 전음을 보내고 있었다.

“뭐하나, 얼른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귓가를 울리는 천랑의 호통에 화들짝 놀란 그가 재빠르게 테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상태였기에 졸지에 절을 하게 된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어른 두 명의 모습이라 보기엔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관객들의 시선이 테드의 반응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툭툭, 누군가 어깨를 치자 테드가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경기장 위로 올라온 션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테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좋은 클랜 마스터가 아닌가! 얼른 사과를 받아들여라, 리더!”

“…….”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제하며 시선을 돌렸다. 관객석에서 자신을 욕하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수많은 관객 중 한 명의 목소리지만, 신기

하게도 비난의 목소리는 테드의 귀까지 닿았다.

‘남자도 아니긴 개뿔.’

실버 울프 클랜의 마스터인 천랑은 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풍만한 몸매와 청순한 얼굴에 적지 않은 수의 남성 모험가들은 사모의 감정을 품고 있다.

천랑은 가끔씩 신문에 나오기 때문에 거대 클랜 소속 치고는 인기도가 높다. 실력도 인성도 괜찮게 평가되기에 거대 클랜은 싫어해도 그녀를 싫어하는 루크에이스 주민 중에선 거의 없다.

어디서 굴러 온 건지도 모를 테드와는 지명도부터가 달랐다.

“이제 그만 받아 들여라, 리더. 어차피 사과를 받는 다는 목적은 이뤘잖나.”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으며 경기장 위로 올라온 카론이 말했다. 그 뒤로 사이나가 조용히 테드의 곁에 선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천랑을 붉은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테드는 허리를 깊숙이 숙인 천랑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과를 받아 줄때까지 일어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이다.

“……일어나시죠.”

테드의 말과 함께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를 올렸다.

미인에 약한 션이 멍하니 천랑의 얼굴을 바라봤다. 사이나를 처음 봤을 때도 말을 심하게 더듬었던 것이 떠오른 테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그를 노려봤지만, 그는 멍하니 천랑의 얼굴을 보고 있다. 의외로 여자를 밝힌다.

“넌 일어나지 말고. 새끼야.”

옆에선 카론이 키노의 앞에서 깐죽거리기 시작한다. 키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원래 네가 해야 하는 사과를 상냥한 마스터께서 함께 해줬잖아? 염치란 게 있으면

조용히 고개 숙이고 반성해, 인마!”

카론이 껄렁거리며 끊임없이 키노에게 깐죽거린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키노가 안쓰러워 보일 정도다.

“사과를 받아 주어서 고맙네! 보상은 조만간 자네에게 보내겠네. ……뭣하면 조금

있다가 내게서 직접 받아 가겠나?”

뒷말은 마나가 담기지 않아 테드 일행에게만 들릴 정도였다. 노골적으로 붉은 입술을

핥으며 색기 어린 표정을 짓는다.

션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며, 테드는 몸을 획 돌렸다.

“결투는 끝났고, 보상도 받았어. 이만 가자.”

키노를 신나게 놀리던 카론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테드에게 다가왔다.

천랑은 아쉽다는 듯이 물었다.

“응? 벌써 가는 건가?”

“더 이상 여기에 있어봤자 얻을 건 없으니까요.”

“음. 그럼 뒷일은 내가 처리해도 되겠나?”

“그럴 생각으로 끼어든 거 아니었나요.”

떠나가는 테드의 등을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본 천랑은 이윽고 관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갑작스런 사태에 정신이 없는 사회자의 역할을 선수 쳐 빼앗는다.

“우리 실버 울프 클랜은 파티, 레드 헥사그램에게 패배했습니다. 깔끔하게 클랜 워

의 결과를 승복하고, 이후 그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하며 보상하겠습니다! 또한 클랜

내의 법을 새로이 정해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천랑의 낭랑한 목소리가 관객석에 앉은 주민들에게 똑똑히 들려 왔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고, 몇몇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신성한 클랜 워에 끼어든 점, 여러분들에게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식사를 한 끼 대접하려고 합니다. 지정된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는 쿠폰을 하나 드리겠으니, 나가실 때 부디 받아 주십시오!”

관객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 클랜 워는 볼거리 이상의 가치는 없었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는 경기에서 밥한 끼를 공짜로 얻어먹게 되었다. 경기의 결과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다음날 신문에서는 경기의 결과보다 지금, 7,000명에게 한 끼를 대접한 실버 울프 클랜 마스터 천랑에 대한 이야기가 대서특필 될 것이다.

천랑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키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 하길래 승인해주었다니 이 꼴이다.

그의 재능과 그동안 쌓인 정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가로채서 구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키노를 잃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세 달간 근신처분이다. 지하에 박혀서 무공이라도 수련해라. 알겠나?”

“……예. 마스터.”

키노가 하얀 늑대 귀를 축 늘어뜨리며 힘없이 대답했다.

============================ 작품 후기 ============================

설명충 시온 덕분에 용량이 생각보다 늘어났습니다. 설명 부분을 읽어 봤는데 저도 헷갈려서 최대한 수정했습니다. 제 한계입니다…. 이해가 가시지 않는 분들은 넘어가셔도 상관없습니다. 솔직히 세계관 관련 설정이라 몰라도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후기가 3줄 이상으로 뜻밖에 길어졌습니다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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