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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34화 (3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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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레드 헥사그램.

시온은 조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쓸어 넘겼다. 우아한 손짓이었지만, 결투 결과에 흥분한 주위에 있는 관객들 중에서 그녀의 행동을 본사람은 없었다.

“저 인간, 정말 마법사니?”

고운 미성에 서린 경계심을 느낀 메리코가 어색하게 웃었다. 확실히 마법사치곤 보여준 마법이 손에 꼽을 정도다. 제대로 본 마법은 마지막에 보인 주먹 앞에 나타난 작은 마법진 정도다.

“환생전에 전쟁터에 있었다고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

“……그 전투방식은 마법사라기보다는 마투사에 가까워.”

“마투사…?”

처음 들어보는 명칭에 메리코가 시온을 바라봤다. 테드의 결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펼쳐져 있던 마법서는 닫혀서 그녀의 무릎위에 얹어져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무투가를 말해. 그들은 주로 육체 강화계 마법을 사용하거나, 방금전 그가 사용한 것처럼 전투에 마법을 접목시키지.”

“아, 그녀석 주먹 앞에 나타난 마법진 말이지. 그건 무슨 마법이냐?”

“충격 강화(Power Strike) 마법이야. 보통 일반 주먹을 망치로 때리는 것처럼 강화해주지. 그걸 정통으로 복부에 맞고 일어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

“호오. 그런 마법도 있었나.”

메리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솔직히 그것보다는 한 순간에 보인 살기에 대해 더 관심이 간다.

“……메리코. 너도 느꼈니?”

목소리를 한 단계 낮추고 조심스럽게 시온이 물어 왔다. 듣는 이도 없는데 그렇게 조심한다는 것은 그녀 또한 놀랐다는 뜻이리라.

“살기……, 말이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확실히 느꼈다. 상대역인 피나 키틴이 몸이 굳어버린 것도 이해가 갈 정도다. 아마 이곳에 있는 감이 날카로운 실력파 모험가들은 그 한순간의 살기를 느꼈으리라.

시온은 얼굴이 살짝 굳은, 우려의 기색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도…… 소름이 돋았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였는지,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는지 상상도 가지 않아. ……될 수 있으면 적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해.”

“……네가 그 정도로 말할 정도인가. …뭐, 나도 동감이다.”

살기를 느낀 그 순간은 사신이 등줄기를 손으로 훑고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모험가가 가질만한 살기는 아니었다. 살기를 저 정도로 뿜어낼 수 있는 자는…… 메리코의 머릿속엔 피로 물든 지면위에 서있는 학살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뛰어난 마법 실력이야. 처음 버프 마법을 걸때도 아주 약간의 시간이 소모되었어. 캐스팅만큼은 나보다 더 숙련되어 있어.”

“응? 버프 마법을 걸었었다고?”

“처음에 걸었어. 마력 회복계 하나와 신체 강화계 2개. 마법사에게 시간을 준 여자 쪽이 멍청했어.”

메리코는 힐끗 그녀의 푸른색 눈동자를 바라봤다. 상급의 마법안이라는 것을 자신의 두 눈에 이식했다고 들었다. 그게 어떤 물건인지 마법쪽 지식에 자신이 없는 메리코로선 잘 모르지만, 마력이나 마법을 시각적 정보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메리코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것을 그녀는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인데.”

메리코의 조심스러운 서두에 시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메리코는 가끔씩 되도 않는 이야기나 의견 등을 낼 때가 있다. 또 대답하기 곤혹스러운 질문을 할 때도 있다.

“시온, 네가 테드 녀석과 싸운다면 이길 수 있겠냐?”

질문을 듣는 순간 시온의 머릿속에서는 가상의 경기장에서 어린 마법사와 대련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대련은 시작부터 막힌다. 버프 마법으로 강화하고 투사처럼 직접 달려들까?

그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그 또한 전력을 다한 것 같지는 않으니까.”

테드가 보여준 것은 아주 짧은 공방이다. 거기에 그가 사용한 마법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전부 보여주지도 않았다.

“흠. 그러냐.”

메리코는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팔짱을 끼며 주변을 둘러보는 테드를 멀리서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솔직히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의외의 말에 시온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알고 있는 메리코란 남자는 약한 소리를 쉽게하지 않는다. 오히려 허세를 치며 강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남자가 메리코였다.

“한순간에 보인 살기. 그런 살기는 절대로 우연으로 나올 수 없지.”

그 살기를 정면에서 받아낸 피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압도적인 살기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메리코는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

메리코의 심각한 분위기에 시온이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메리코는 진지한 표정을 지우고서 실실 웃기 시작한다.

“그래도 그 녀석과 약간이지만 친분을 쌓아두어서 다행이지 않냐?”

“……아무 의미 없을 정도로 얇은 친분이겠지만, 그거라도 좋다면 그렇게 생각하렴.”

시온이 획하고 고개를 돌려 경기장을 쳐다봤다. 이제 곧 마지막 결투가 시작될 시간이다.

⁂ ⁂ ⁂

[ 자! 자! 자! 마지막 다섯 번째 결투를 시작합니다! 양 선수는 경기장으로 신속히 올라와 주세요!! ]

키노가 기다렸다는 듯이 경기장을 향해 도약했다. 경갑을 입은 검사답게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착지까지 깔끔해서 관객들 중 몇몇이 감탄한다.

[ 어이쿠! 말이 끝나자마자 실버 울프 클랜의 간부, 키노 키틴이 등장했습니다! 고고한 늑대라 불리는 그의 실력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 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여동생이 무참히 패배했기 때문일까요. 그의 분위기가 굉장히 살벌합니다! ]

거칠게 등장한 키노와 달리 테드는 천천히 경기장 위로 올라섰다. 몸 상태는 최상이다. 네 번째 결투 상대가 좋아서 마력도 상당히 아껴둘 수 있었다. 이전 결투에 대한 피로는 전혀 없다.

[ 레드 헥사그램에선 테드 크루시안이 중복으로 출전합니다! 팀의 리더와 리더끼리 맞붙게 되었군요! 개인적으로 냉형의 메이드가 출전하기를 바랐습니다만……, 이런 빅 경기도 놓칠 수 없죠! 이번 결투에는 클랜 워의 승리가 걸려 있습니다! ]

“화난 걸보니 동생을 꽤 아끼는가 보네.”

테드의 말에 약간의 텀을 두고서 키노가 입을 열었다.

“아니, 화나지 않았다. 그 녀석도 한 번은 큰 패배를 알아야 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난 지극히 냉정한 상태다. 괜한 도발이라면 관둬라. 내겐 통하지 않는다.”

“……그래 보이네.”

테드는 그와의 간격을 살폈다. 처음 등장할 때의 도약은 의도한 것인지 간격이 생각보다 좁다. 힐끗, 키노의 얼굴을 살핀다. 냉정한 표정이다. 그러나 풍기는 분위기는 불붙은 도화선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위험하다.

그의 말대로 도발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도발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이미 용량이 한계까지 가득 차있는 상태다. 도발해봤자, 기폭제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이 정말로 분노로 미치면 무슨 짓을 할지 예상이 쉽지 않다. 이곳에서 진심으로 생사결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3…. ]

테드는 그의 몸이 살짝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테드의 민감한 기감은 키노가 몸 내부에서 마나를 일으키는 것 까지 느낀다. 십중팔구 시작되자 말자 덤벼들 것이다. 여동생과 달리 제대로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 2. 1. 결투 개시! ]

테드의 예상대로 키노는 사냥하는 독수리처럼 날카롭게 쇄도한다. 테드는 그를 향해 허리춤에 장비된 검을 빼내 던졌다. 일직선으로 달려들던 키노가 한 순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허리춤에서 검을 발검해 날아오는 검을 쳐낸다.

팅겨 나가는 자신의 검에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키노가 멈칫하며 발생한 아주 약간의 시간에 버프 마법을 사용한다.

사용할 수 있었던 마법은 분할 사고(Multi Commander)뿐으로 순식간에 앞에 다가와 자신을 베어내려는 키노를 단거리 순간 이동(Blink)마법을 사용해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검에 대한 자긍심이 전혀 없군.”

“마법사에게 뭘 바래.”

검사들의 앞에서 검을 내던지면 그들은 좋든 싫든 반응을 보인다. 개중에는 검을 모욕했다며 미친 듯이 욕을 내뱉는 자들도 있었다.

고지식해보이는 키노지만 이런 짓거리에 열을 받을 정도로 융통성이 없진 않았다. 그렇다고 마음에 드는 행위는 아니었다. 그에겐 고작해야 약간의 불쾌감을 주는 것이 전부다.

마법 강화 (Magic Booster), 마법 숙련 (Magic Mastery), 마나 증폭(Mana Blast), 신체 강화(Bless).

키노가 방향을 바꿔 다시 자신을 향해 공격하기 까지 총 4개의 버프 마법을 시전 한다. 아슬아슬하게 검이 어깨를 가르기 직전에 블링크를 사용해 또 다시 거리를 벌린다.

“……짜증나게 싸우는군. 그게 마법사의 방식인가? 아까와는 다르군.”

퉁명스럽게 불만을 내비치면서도 키노는 다리를 움직였다. 그의 달리는 방식에서 일종의 규칙이 있는 것을 간파한다. 키노의 여동생과 같은 보법이다.

“그 멍청한 여자와는 다르니, 상대법도 다를 수밖에.”

공기를 가르며 왼쪽 대각선에서부터 시작되는 키노의 검기를 그대로 양팔을 벌려 받아들인다.

무저항의 행동과 태연한 표정에 키노가 몸을 흠칫한다. 그러나 휘둘러진 검을 멈추는 것은 쉽지 않다.

서걱, 테드의 몸을 그대로 베어낸다.

‘생물을 베는 감촉이 아니다!’

키노가 테드의 얼굴을 바라봤다. 소리 없이 비웃고 있다. 테드의 몸이 폭발하며 냉기가 사방으로 뿌려진다.

키노는 자신의 몸에 쏟아지는 냉기에 손을 들어 올려 눈을 보호했다. 폭발한 것 치곤 큰 충격은 없었다. 다만 몸이 파랗게 얼어붙으며 바닥에 얼어 미끄럽게 변했다.

키노는 시범삼아 다리를 움직였다. 뿌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옷에 달라붙은 얼음 조각들이 떨어져 내린다. 약간이지만 둔해진 몸놀림에 이를 갈았다.

“얼음 분신(Ice Fake)이라는 마법이지.”

목소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거기엔 한손을 위로 들어 올린 테드가 있었다. 그 오른손의 위에는 이글거리는 화염구가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다. 키노도 잘 알고 있는 마법, 파이어 볼이다.

몸을 긴장시키며 검에 마나를 불어 넣는다. 마스터에게서 배운 월랑검식(月狼劍式)이라면 충분히 저 화염구를 베어낼 수 있다.

키노는 돌연 등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몸을 흠칫 떨었다. 재빠르게 허리를 돌리려 하지만, 어린아이 치곤 지나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제지한다.

“늦었어.”

키노의 등 위에 작은 충격 강화 마법진이 순식간에 그려지고, 테드는 그곳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강화된 주먹의 충격에 의해 키노의 몸이 앞으로 날아가 화염구를 준비하고 있는 테드와 부딪힌다.

화염구를 들고 있는 테드의 몸은 그대로 키노를 통과시키고 수면에 비친 모습마냥 흔들리며 유유히 사라진다.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 검을 바닥에 꽂아 몸을 지탱해 일어난 키노를 향해 테드가 입을 열었다.

“마법사는 접근전에 약해. 누구나가 아는 공략법이지.”

제대로 된 데미지를 주려면 신체강화 버프 하나만으론 부족했다. 혹시나 해서 해본 공격이었지만, 기본적인 육체 스펙이 달라 생각만큼의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발전하지 않는 마법사는, 마법사(Mage)라 불릴 자격이 없어.”

검사가 검술을 발전시킨다면, 마법사 또한 마법을 발전시킨다.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킨다. 비단, 검사와 마법사에만 특정된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그렇게 발전하고 있다.

“…….”

키노가 굽혔던 허리를 일으켰다. 손에 쥔 검에서 우웅 거리는 청명한 검의 소리가 작게 허공중에 퍼진다.

누군가는 검기, 누군가는 오러라고 부르는 백색의 빛이 검날에 희미하게 맺힌다.

진짜 결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 작품 후기 ============================

어제는 갑자기 조회수나 선작수가 2배가까이 늘어서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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