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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33화 (3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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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레드 헥사그램.

[ 레드 헥사그램의 파티 리더인 천재 마법사 테드 크루시안이 출전합니다! 그의 뛰어난 마법실력과 잠재력은 적인 실버 울프 클랜마저 반했다고 하죠! 장래가 정말 기대 되는 마법사입니다! ]

“너, 운이 좋네.”

그녀는 주먹을 이리저리 흔들어 손목을 풀어주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매력적인 목소리지만 그 안에 담긴 조롱은 결코 반갑지 않았다.

“운이 좋다니. 다짜고짜 올라오자마자 무슨 소리야?”

“그거야 그렇잖아? 이게 정말 전쟁이었다면…… 넌 뼈도 추리지 못하고 죽었을 텐데.”

“…….”

테드는 입을 다물었다. 클랜 워는 전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쟁과는 거리가 멀다. 초기의 클랜 워는 클랜원 전원이 전쟁마냥 떼로 싸우는 것이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어졌지만, 확실히 지금은 전쟁보다는 결투에 가깝다. 그것도 일종의 이벤트 퍼포먼스 격이다.

그녀는 클랜 워를 비꼬면서 테드의 실력을 깔보고 있었다. 마주치자마자 하는 소리가 도발이다.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인성은 그리 예쁘지 않았다.

[ 실버 울프의 간부가 등장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피나 키틴! 키노 키틴 씨의 동생으로 모험가들에게선 사나운 짐승이라 불립니다! 가벼운 몸놀림과 일격의 공격력이 엄청납니다! 거기다 손속의 자비가 없기로 유명하죠! ]

“키노의 동생이었나.”

테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꼬리와 귀가 키노와 판박이였고 얼굴을 잘 보면 입매나 눈등의 키노와 닮은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수인족 특유의 청력으로 테드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일까.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한심한 오빠지만 유전적으로 내 오빠야.”

피나의 말에 테드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한다.

“오빠에 대한 존경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잖아.”

피나는 잠시 경기장 밖에 있는 키노를 노려본다. 키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마주친다. 피나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경질 적으로 주먹을 붕붕 휘두른다.

“나였다면 이딴 이름만 전쟁인 같잖은 놀이까지 끌고 오지도 않았어. 미궁에서 그대로 끝을 봤을 텐데.”

“……어리구나, 너.”

키노가 클랜 워를 받아들인 것은 그곳에 수많은 모험가들의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 클랜이기 때문에 평판을 중시했다. 명분이 없는 파티와의 전투는 클랜 입장에선 일반적인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루크에이스의 거대 클랜이라 해도 모험가 전체에게 악감정을 심어주고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키노가 클랜 워를 거절했다면 루크에이스에선 겁쟁이 실버 울프 클랜이라는 말이 가십거리가 되어 루크에이스 주민들에게 회자되었을 것이다.

그 깊은 뜻을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다.

“…뭐? 야! 그게 무슨 소리야?!”

피나는 테드의 말을 도발로 받아들인 듯, 꼬리를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타이밍 좋게 사회자의 안내가 그녀를 막아선다.

[ 자! 그럼 네 번째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3! 2. 1. 결투 개시!! ]

습격을 대비했던 테드는 가만히 서 있는 피나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법사는 근접전에서 불리하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마법의 위력만큼은 무시하지 못하므로 시작하자마자 접근해 끝내는 것이 정식 공략법이다.

“마지막 경기인데 볼거리 정도는 있어야지. 특별히 기다려 줄게. 마법이라도 사용해봐. 전쟁이었다면 가장 먼저 죽었을 거지만.”

키득키득 웃는 그녀를 보며 테드는 문득 실버 울프가 걱정되었다. 이런 여자가 간부여도 제대로 클랜이 돌아가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면 실버 울프가 부패할 대로 부패해 연줄로 간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시간을 준다면 이쪽에선 고마울 뿐이야.’

마력 회복의 기운(Mana Recovery Aura), 신체 강화(Bless), 힘 강화(Strength). 총 세 개의 마법을 사용한다. 다음 경기를 위해 최소한의 마법을 이용한다.

피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테드를 바라봤다.

“마법을 사용한 것 같은데…… 아무 반응 없잖아.”

“보이지 않는 마법이라곤 생각하지 않는 거냐?”

“보이지 않는 마법…? 그런 것도 있었나?”

피나가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지만 테드는 굳이 대답해주지 않는다. 마법사 중에서 대부분이 화려한 원소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마법을 잘 모르는 자들이 가지는 ‘마법은 화려하다’라는 선입견이다.

상대가 정보를 모른다면 반길 일이다. 자신의 입으로 떠벌릴 생각은 없다.

테드는 주먹을 꽉 쥐고서 한발자국 앞으로 나선다.

“응?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거야? 특별히 시간도 줬잖아.”

“마법사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어?”

“오빠나 길드의 동료들이 그렇게 말했지만, 네가 그렇게 우수한 마법사처럼 보이지 않는데? 천재 마법사니, 뭐니 해도 내 눈엔 약해 보여. 마스터가 널 원하는 이유도 모르겠어.”

허리에 양손을 올리며 말한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방심하고 있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다음 결투를 위해 마력을 아껴야 하니 무투기로 상대해줄게.”

피나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뀐다. 여유롭던 얼굴이 얼음장처럼 굳어지고 눈동자에는 분노의 빛이 서린다.

마법사가 마법이 아닌 무투기로 상대한다. 그것도 무투가인 자신을. 그것은 자신의 기술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피나에겐 견디기 힘든 도발이었다.

“헤. 말은 잘하…… 네!”

피나는 바닥을 박차며 달려든다. 확실히 재빠른 움직임이지만, 테드의 눈에는 전부 보였다. 깨문 아랫입술, 꽉 쥔 주먹, 지면을 밟는 발. 너무 잘 보여서 옷 너머 근육의 움직임이 전부 예상될 정도다.

머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스트레이트를 고개를 기울이는 것으로 한 끗 차이로 피해내며, 준비해둔 오른 주먹을 내지른다. 키의 차이가 위로 향하는 어퍼컷이 되어 버렸다. 그녀의 복부에 주먹이 닿는 순간 살짝 비틀어 스크류를 걸어 준다.

“커억!”

이어서 멈추지 않고 오른발을 휘두를 준비한다. 그러나 생각이상으로 빠르게 그녀가 뒤로 물러났다. 과연 괜히 무투가로 실버 울프 클랜의 간부가 된 건 아니라 할까. 데미지를 받고서도 곧바로 정신을 다잡아 거리를 벌린다.

물러선 피나는 몇 번 기침을 콜록 이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테드를 바라봤다.

“뭐야… 너. 어떻게 마법사가 이 정도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지?”

“……마법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종류가 많고 다양해. 원소를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육체를 약화시키거나 강화시키는 것까지. 또한 근접 전투가 전문인 마법사도 분명히 존재해.”

“마법으로 육체를 강화시켰다고? 그거…… 반칙이잖아.”

마법은 편법이다. 전사가 몇 년에 걸쳐 만들어낸 몸을 마법을 이용해 한 순간에 재현할 수 있다. 이런 육체 강화계 마법을 사용해 접근전을 선호하는 마법사들을 마법 전사라고도 불린다. 또, 쉽게 볼 수 없지만 지금의 테드처럼 무투기와 마법을 조합한 마투사도 있다.

그러나 기술이 없다. 너무 사용하기 좋을 정도의 만능은 아니라는 뜻이다.

“부러우면 너도 마법 익히던가.”

테드가 주먹을 휘두르지만, 피나는 몸을 젖혀 피해낸다. 이어서 그가 공격해 들어가면 뒤로 물러가면서도 피나는 착실히 그의 주먹을 피해냈다. 이를 악물고 아슬아슬하게 겨우 발차기와 주먹을 피해낸다.

클랜 마스터에게서 배운 몸을 움직이는 방법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공격을 허용했을 것이다.

‘…피하기 힘들게 공격해오잖아. 정말 마법사 인거야?!’

그러다 갑작스레 공격이 뚝하고 멈춘다. 느닷없이 찾아온 기회에 의문을 가지기 보다는 주먹을 내지른다. 너클을 끼고 있는 주먹은 단 한방에 상황을 역전시켜줄 것이

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주먹을 뻗을 수 없다.

“전쟁이었다면 뼈도 추리지 못하고 죽는다고 말했지?”

차갑게 반짝이는 그 눈동자를 보며 피나는 막 모험가가 되었을 적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빠와 함께 10층의 게이트키퍼에게 도전했었다. 그때 그녀는 게이트키퍼인 코볼트킹과 눈을 마주치고 몸을 굳혔다. 그 압도적인 살기에 사고가 정지하고 몸을 덜덜 떨었다.

지금 그녀의 몸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농후한 살기와 쇠사슬처럼 조여 오는 본능의 공포였다.

“전쟁이었다면 넌 포로가 되어 노리개가 되었을 거야.”

피나는 필사적으로 육체를 향해 명령한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그러나 통제를 벗어난 육체는 돌덩이마냥 요지부동이다. 자신의 무력함을 절찬리에 체감하고 있을 때, 테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쟁이란 단어는 쉽게 입에 담을만한 게 아니야.”

전장터 속에서 살았기에 알 수 있다. 그 속엔 영광 따윈 없다. 그저 죽음의 비명과 침범하는 공포와 넘치는 광기가 뒤섞여 있을 뿐이다.

검은색 장갑에 감싸인 주먹이 피나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들어온다. 뿌드득, 코뼈가 부러지고 자그마한 입술이 벌어지며 이빨이 부러진다. 핏방울과 이빨조각이 허공에 뿜어져 나와 바닥에 떨어진다.

넉 백 되어 날아가는 그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테드는 몸을 돌렸다.

“……아…직. 안 끝났어……!!”

그녀는 처음엔 방심했고, 그 이후에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마법사라고 은연중에 깔보던 것이 패배로 이어졌다. 패배의 원인은 그녀 스스로에게 있었다.

테드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몸을 그대로 다시 돌렸다. 여기까지 왔다면 결과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가능성이다.

코가 부러지고 피로 얼룩진 얼굴의 피나가 주먹을 쥐며,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달려들었다. 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 고집 센 어린아이처럼 일어난다. 보는 관객들이 애처로울 정도의 모습이었지만 테드의 눈에는 어떠한 동정도 없다.

“불임이 되어도 원망마라.”

어떤 데미지를 입는다고 해도 살아 있다면 성법사들이 치료해주겠지만, 혹시 모를 가능성이 있기에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테드는 그대로 달려가 그녀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를 준비를 한다. 머리에 맞은 데미지는 크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나를 사용해 정신을 차릴 가능성이 있다. 마나를 사용할 생각도 못하고 있는 지금이 단숨에 끝낼 기회다. 그녀의 작은 가능성 마저 빼앗는다.

테드의 검은 주먹 앞에 작은 마법진이 그려진다. 푸른색의 마법진은 주먹 바로앞에서 빛나고 있다. 테드는 그대로 피나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마투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충격 강화(Power Strike) 마법을 이용한 공격이다.

주먹은 깔끔하게 복부에 작렬한다. 둔탁한 타격음이 귓가를 스친다.

피나는 비명마저 허락하지 않는 충격에 입을 크게 벌렸다. 거대한 충격에 숨이 턱하니 막히고 생각이 사라진다. 무의식적으로 복부를 부여잡고 자리에 쓰러졌다. 컥컥, 거리며 필사적으로 숨을 내쉬려 한다.

테드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죽을 정도의 공격은 아니다.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어난다면 다시 주먹을 내지를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결투의 끝을 알리는 사회자의 말이 경기장내에 울러 퍼진다.

[ 결…, 결투 끝났습니다!! 승자는 레드 헥사그램의 리더 테드 크루시안 입니다!! ]

뒤돌려던 테드는 문득 느껴지는 살기에 그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표정한 키노가 조용히 노려보고 있다. 뒷짐을 쥐고 있지만, 흔들리는 어깨를 보며 주먹을 부러지도록 쥐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테드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연하게 경기장에서 그를 내려다 봤다.

“…….”

테드는 달려온 성법사들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피나를 보며 몸을 획 돌렸다. 이건 분명히 정당한 결투다.

환호를 연발하는 관객들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심판들을 보면 문제는 없다.

‘그런데 왜 이리 기분이 더럽지?’

사이나가 있는 쪽을 향해 걸어가며 곰곰이 생각한다. 그리고 뒤늦게 깨닫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녀에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서? 분명 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그녀에게 진심으로 살기를 내보였다는 점이다.

스스로가 깨닫지 못할 정도로 한 순간이었지만 그녀를 죽이려고 생각했다.

자신의 미숙함에 짧게 혀를 찼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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