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31화 (31/277)

31====================

7. 레드 헥사그램.

[ 첫 번째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결투자를 남고 전부 경기장 밖으로 나가 주세요! ]

경기장 위에 남은 것은 두 명이다. 레드 헥사그램의 소속이자 티탄 족의 전사인 브론 비드다. 건틀릿을 제외한 방어구는 일제 없고, 이번엔 상의마저 탈의해 단단한 근육을 내보이고 있다. 양손에는 위협적인 한 손 도끼가 각각 들려 있다.

[ 먼저 레드 헥사그램 소속의 결투자! 드워프 왕국 튜논의 북쪽 지역에서 찾아온 티탄족의 전사! 브론 비드!!! 그의 용맹한 도끼는 그 어떤 몬스터의 두개골이라도 단번에 쪼개버리죠! ]

브론은 쓴 웃음을 지었다. 사회자 아가씨는 누가 기자 아니라고 할까봐. 크게 과장해 설명해준다. 고작 D등급의 모험가에 불과한 그에겐  소개다.

브론은 마음을 다잡고 눈앞의 전사를 바라보았다. 기사처럼 풀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다. 등 뒤에 대검, 클레이모어를 장비하고 있다. 투구를 쓰고 있기 때문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다.

[ 이어서 실버 울프 클랜의 결투자! 기사가 되기 위한 수행을 위해 루크에이스 미궁에 당당히 찾아온 기사 지망생! 미랄 대콘! 그의 대검은 어떤 적이라도 압도적인 파워로 박살 내버릴 것입니다! ]

“재밌게 소개하는 아가씨로군.”

얼굴을 가린 투구 속에서 저음의 목소리가 흘려 나왔다. 그는 등 뒤의 클레이모어를 양손으로 들어 전투를 준비하며 브론에게 말한다.

“힘 조절은 잘하지 못한다. 미리 말하지만 죽을 수도 있다.”

“……우린 닮은 점이 있군.”

[ 그럼! 양 선수 모두 준비하시고! ]

브론과 미랄은 마나를 끌어 올린다. 그들의 전투법은 간단하다. 돌격해서 적을 박살낸다.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다.

[ 카운트 다운을 시작합니다. 3, 2……. ]

누가먼저 할 것 없이 동시에 무릎을 굽혀 달려 나갈 준비를 한다. 신호가 떨어지는 순간 쏜살같이 뛰어가 적을 격퇴할 것이다.

[ 1. 결투 개시! ]

무거운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미랄은 앞으로 달려 나가지만, 갑옷이라곤 건틀릿을 제외하곤 전혀 없는 브론은 곧장 도약했다.

브론이 양손에 쥔 도끼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힘, 중력, 질량, 속도, 마나 온갖 것들이 살인적인 공격력이 되어 브론의 도끼에 담긴다. 미랄이 브론의 도끼를 향해 클레이모어를 휘두른다.

두 개의 한 손 도끼와 클레이모어가 부딪힌다. 콰앙! 쇠와 쇠가 부딪혔다곤 믿을 수 없는 굉음이 울리고, 그 둘을 중심으로부터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한다. 미랄은 뒤로 3발자국 물러나고 공중에 떠있는 브론은 등 뒤로 날아간다.

“과연 티탄족인가. 엄청난 힘이로군. 갑옷이 없었다면 장외실격 당했을지도 모르겠군.”

“……너 또한 만만찮군.”

충돌하는 그 순간에 막아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클레이모어를 휘둘러 브론을 날려 보냈다. 힘과 기술, 둘 모두 뛰어나다.

브론은 미랄을 향해 달려갔다. 미랄은 피하지 않고 양손으로 클레이모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브론이 도끼를 휘두르면 여지없이 미랄의 거대한 클레이모어가 나타난다. 브론이 양손의 도끼를 번갈아 가듯 제각각 다른 타이밍, 다른 궤도를 통해 공격해 들어간다. 그러나 쉽지 않다. 클레이모어를 휘두르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며, 도끼 하나는 가볍게 튕겨낼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미랄은 풀플레이트 아머로 몸을 지키고 있다. 강력한 힘을 싣지 못한 도끼는 갑옷에 흠집을 내거나 아주 약간 찌그러뜨리는 것이 전부다. 갑옷 내부에도 체인 메일을 걸치고 있는 미랄에게 피해를 전혀 줄 수 없다.

클레이모어의 단점은 공격 속도에 있다. 실제로 그는 브론의 빠른 공격을 완벽히 막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갑옷이 단점을 보완해주고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브랄의 공격에 익숙해지고 있다.

처음에 막기에만 급급한 미랄이었으나, 점점 브론을 향해 공격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수십 초에 걸쳐 주고받는 공방은 조금만 방심하는 순간 결판이 날정도로 아슬아슬하다. 눈을 떼지 못한다.

‘슬슬 물러나서 태세를 다시 정비할까?’

브론과 미랄의 머릿속에 동시에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의견을 묵살했다. 물러서는 것도 쉽지 않은 것도 이유지만, 물러선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결투를 오래 끌 이유는 없다. 지금 여기서 결판을 짓는다.

브론과 미랄의 도끼와 대검에 마나가 실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무기가 은은한 푸른빛을 내기 시작하며 공방을 주고받는 속도가 늘어난다. 그리고 기회는 찾아왔다.

쾅!

강력한 힘을 실은 무기가 서로 부딪치며 발생한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그들의 몸이 한 발자국씩 물러난다. 양팔을 높이 치켜든 브론과 클레이모어의 검극을 바닥에 닿을 정도로 비스듬히 낮춘 미랄은 서로 동시에 생각했다.

‘결전의 때다.’

고이 아껴놓은 비장의 한수를 개방한다. 많은 관객들이 보고 있어 더 이상 비장의 한수라는 말을 쓸 수 없겠지만, 아쉬움은 없다.

브론의 두 개의 도끼가 밝은 청색의 빛에 감싸인다. 미랄의 클레이모어는 그와 반대되는 적색의 빛으로 무장하고 있다.

스킬, 하늘의 분노.

브론의 도끼가 허공에 가득 찬 공기를 부수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다.

스킬, 파워 슬래시.

미랄의 클레이모어가 역류를 하듯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순간 브론의 눈이 커진다. 미랄이 앞으로 반보 나서며 왼쪽 어깨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대로면 오른쪽 도끼가 갑옷과 함께 왼쪽 어깨를 박살낼 것이다.

미랄의 클레이모어가 브론의 왼쪽 도끼와 맞부딪히는 순간 도끼의 날이 클레이모어의 검신을 타고 미끄러진다. 동시에 클레이모어는 도끼의 자루와 날이 이어진 부위를 걸어서 날려 보낸다.

브론의 도끼 하나가 손을 벗어나 허공을 빙빙 돌다 날아가고 클레이모어를 그대로 궤도를 수정해 북부를 향해 쇄도한다.

브론은 이를 악물고 오른쪽 도끼에 정신을 집중했다. 복부를 내준다. 허나 그 어깨는 받아가겠다.

도끼의 날이 갑옷과 부딪히는 순간, 미랄의 몸이 아주 살짝 흔들린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도끼의 공격방향을 수정해 힘을 흘려 낸다.

푸욱.

단단하고 질긴 티탄족의 근육을 뚫고서 브론의 복부에 대검이 꽂힌다.

“힘으로 맞섰다면 분명 내 패배였겠지. 하지만 전투에는 기술이라는 게 있다.”

브론의 꾹 다문 입술의 틈에서 피 한줄기가 내려온다. 직접 눈앞에서 겪었다. 기술이라는 녀석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웬만하면 갑옷을 입어라. 네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줄 것이다.”

[ 맹렬한 공방의 끝과 함께 첫 번째 결투가 끝났습니다! 승리자는 실버 울프 클랜의 미랄 대콘!! ]

경기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심판과 성법사들이 나타나 빠르게 응급처치를 하며 브론을 데리고 나간다.

“브론!!! 괜찮나?!!”

카론이 다급하게 달려와 브론에게 물었다. 당황과 걱정으로 얼룩진 오랜 친구의 표정에 브론이 씩 웃었다.

“네 차례다. 이겨라.”

“무, 물론! 이기고말고! 걱정 붙들어 매라고!”

[ 두 번째 결투는 5분 뒤에 시작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미랄은 성법사들에게 응급 처치를 받아 구석에 눕혀지는 브론을 바라보고서 몸을 돌렸다. 그에게 심판이 한 명 다가오더니 이윽고 갑옷과 함께 찌그러진 어깨 부위에서 철제 갑옷을 타고 내려오는 핏줄기를 발견한다.

“어깨가 박살나셨군요. 성법사를 부르겠습니다.”

미랄은 자신의 왼쪽 어깨를 바라봤다. 분명히 공격을 완벽히 흘러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 꼴이다.

“흘러 보낸 힘이 이 정도인가……. 티탄족의 타고난 힘이 부럽군.”

미랄은 알고 있다. 압도적인 힘에는 기술이건 무엇이건 소용이 없음을.

한편 테드는 얼굴이 굳어져 있다. 브론과 카론은 D등급의 모험가지만 그가 보기엔 C등급 모험가의 수준이다. 그러나 괜히 거대 클랜이 아니라는 것일까.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지금이라도 카론과 션을 교체할까?’

흐름이라는 것이 적에게 넘어갔다. 보이지 않는 흐름이지만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쟁을 통해 충분히 경험해 알고 있는 테드다.

카론을 힐끗 바라본다. 그는 자신의 할버드를 양손을 쥐고서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투의지가 느껴질 정도다.

‘……여차하면 내가 3번째에 나가면 되는 일이야. 실력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이나도 있고. 문제없어.’

그녀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지만 역시 웬만하면 비장의 수단으로 숨겨두고 싶다. 또 그녀의 실력이 알려지면 여러 가지고 귀찮은 일이 생길것같기도 하고.

“……션, 넌 어떻게 생각해?”

테드가 옆에서 브론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 션을 향해 물었다. 그는 치료를 받고 있는 브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카론의 결투 말인가? 모른다. 전투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가 질수도 있고, 승리할 수도 있다. 거기에 지금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렇지.”

[ 자! 약속된 5분이 지났습니다! 다음 두 번째 결투의 선수들은 지금 당장 경기장으로 올라와 주세요!! ]

투구를 뒤집어쓴 카론이 성큼성큼 경기장의 위로 올라간다.

[ 레드 헥사그램에서는 엘프의 피를 가진 드워프 전사! 카론 지리뉴트! 자신의 키보다 2배는 큰 할버드를 포크마냥 가볍게 휘두르는 용맹한 전사입니다! ]

경기장의 반대편에서 허리춤에 단검을 장비하고 등에 활과 전통을 멘 엘프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온다.

[ 이어서 실버 울프 클랜에서는 백발백중의 엘프 레인저! 디노 디노크가 올라옵니다.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여심에 사랑의 화살을 꽂기로 유명하죠! ……미친! 저게 30대의 얼굴이라고?! ]

“경박한 여자군.”

디노가 미간을 찌푸리며 등 뒤에 멘 활을 꺼내든다.

[ 두 번째 결투의 카운트 다운을 시작합니다! 3. 2…! ]

“기생오라비 녀석!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내 할버드는 피에 굶주려 있으니!”

“……미친놈.”

카론은 앞으로 할버드를 내밀었다. 화살이 날아온다 해도 할버드가 방패가 되어 막아줄 것이다.

무릎을 굽혀 시작하자마자 달려 나갈 준비를 한다. 상대는 활을 주로 사용하는 레인저다. 단숨에 접근해 근접전을 유도하면 자신이 유리해진다.

[ 1, 결투 개시!! ]

예정대로 카론은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거리는 가깝다. 카론의 속도라면 2~3초로 충분히 접근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디노는 곧장 하늘 높이 도약하며 전통에서 화살을 꺼낸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각력만으로 거의 5M 이상 치솟은 말도 안 되는 도약력이다.

“멍청하긴. 멧돼지처럼 달려들 줄 예상하고 있었다.”

시위를 당기며 무방비하게 등을 내보이고 있는 드워프를 향해 쏘았다. 화살은 드워프의 등에 명중하지만 쉽사리 피부 속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드워프의 질긴 피부와, 가죽 갑옷이 보호 한 것이다.

카론은 등에 꽂힌 화살을 아무렇지 않게 빼어내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퉷. 하여간 엘프 놈들은 메뚜기 같이 요리저리 뛰어다닌다니까.”

바닥에 착지한 디노는 강하게 혀를 찼다.

“쯧. 천박한 드워프 놈이….”

카론이 다시금 달려든다. 이번엔 그가 도약해 대비할 것을 대비하며 할버드를 높이 치켜들었다.

카론의 앞에 불꽃이 생겨나 길을 막아낸다. 당황한 카론이 불꽃을 향해 할버드를 휘둘렀다. 강렬한 풍압이 불꽃을 덮쳤지만 불꽃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 불의 중심에는 불로 되어 있는 도마뱀이 있다.

“…샐러맨더!”

불의 하급정령의 등장에 카론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우리 엘프는 자연의 축복을 받았지.”

디노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을 사라진다. 샐러맨더의 불길을 그대로 강행 돌파해 디노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 드워프는 불과 철의 축복을 받았지!!”

장작을 내려 패듯 치켜든 할버드가 디노를 향해 쇄도한다. 디노는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꼴사납게 굴러서 겨우 공격을 피해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