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30화 (30/277)

30====================

7. 레드 헥사그램.

“창고에 있는 검을 구입하고 싶습니다.”

테드의 뒤에서 조용히 시립 해있던 사이나가 입을 열었다. 몰드의 안색이 변했다. 저번에 돌솥을 받으러 오면서 창고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창고 구석에 있는 검을 본 모양이다.

“……그 검은 많이 비쌉니다.”

유명한 대장장이가 만든 검으로 장인의 이름값이 있는 검이다. 몰드가 물건을 볼 줄 모르는 상인에게서 우연히 값싸게 구한 물건으로 가격이 비싸기 때문인지 전시 해두어도 사가는 모험가가 없어 3년 전에 창고에 넣어둔 물건이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검을 원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져오겠습니다.”

평생 창고에 넣어둘 순 없다. 팔 수 있을 때 파는 게 좋았다.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니 검도 분명 만족할 것이다.

창고에 들어갔다 나온 몰드가 하나의 검을 가지고 왔다. 하얀색의 검집 채로 가지고 와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한손으로 들만큼 가벼운 무게다.

“3년 동안 관리를 하지 않은 검입니다.”

몰드의 말을 들으며 사이나는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스르릉, 매끄럽게 빠져 나온다. 3년 동안 창고에 처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녹이 전혀 슬어 있지 않다.

“우와. 3년 동안 관리 하지 않았다고요? 보통 물건이 아니네.”

테드의 말에 몰드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마법이 걸린 마법검도 아니다. 순수한 장인의 실력만으로 만들어낸 검이다. 세간에선 흔히 명검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새하얀 검이었다. 힐트에서 부터 검신까지 전부가 새하얀 검이다. 아름다운 검이지만 실용성이라는 것을 느끼기 힘들다.

검은 레이피어 종류일까. 검신의 폭이 2cm 정도로 좁다. 이 세계에선 찌르기 위주의 레이피어는 모험가들 사이에선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명검이라도 레이피어라 하면 거절하는 모험가가 수두룩하다.

“‘나찰’이라는 이름의 레이피어입니다. 보기와 달리 굉장히 단단하죠. 바스타드 소드와 겨누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또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나 무게가 굉장히 가볍습니다. 그러나 몬스터를 상대하는 모험가들에겐 인기가 없어 창고에 던져 놓은 물건입니다.”

무게는 곧 공격력이다. 몬스터 중에선 단단한 가죽으로 육체를 보호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기술로 어떻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모험가 중에서 제대로 된 기술을 익힌 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 검이 좋군요. 얼마 입니까?”

“인기가 없는 검이라 해도 유명한 대장장이인 ‘정석’이 만든 물건인지라……. 7천

골드입니다. 원래 1만 골드였으나 3년간 관리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서 가격을 낮추었습니다.”

테드는 눈을 크게 뜨며 검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아름다운 검이지만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정당한 가격이군요. 지불하도록 하죠.”

사이나는 곧장 그렇게 말하며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월드 뱅크에서 발행된 1천 골드짜리 수표를 7장 꺼낸다. 마도서를 경매에 붙여 얻은 돈을 그녀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이나는 가사는 완벽한데 재정 관련은 좀…….’

손이 크다고 해야 하나. 돈을 쓰는데 주저함이 없다.

제법 많은 돈이 지출되었지만 말리지 않는다. 검에 관해서 지식이 얕은 것도 이유지만 그가 알기로 사이나의 안목은 정확하기 그지없다.

“감사합니다! 아, 검집은 그냥 드리겠습니다.”

물론 테드의 롱소드 값 15골드도 확실히 지불했다.

가게를 나와 거리를 걸어가며 양손으로 백색검을 들고 있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 검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거야?”

“이 검은 악마의 뼈를 섞어 만들어졌습니다. 악마의 뼈를 특수한 금속에 섞으면 하얗게 변한다는 지식을 책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호. 그럼 천사의 뼈를 섞으면 검은색으로 변하는 거야?”

“아뇨. 푸른색으로 변합니다.”

무기점의 주인이 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감정 스킬에도 나타나지 않는 사실 일 것이다. 일종의 비법으로 취급되는 것이라 감정으로 알 수 없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럼 이 검에도 특수한 능력이 있는 거야?”

테드가 감정해보았지만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른 것보다 내구도가 높고, 관리가 필요 없으며 날카로운 정도가 전부다.

“특별한 능력은 없습니다. 그저 악마의 뼈가 들어가서 조금 불길한 정도가 전부지요.”

“불길하다고?”

“악마는 흔히 불길하다고 합니다. 이 검이 명검이지만 팔리지 않았던 것도 불길한 악

마의 뼈를 이용해 만들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확실히 난 구입하고 싶지는 않았어.”

사이나가 원했기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스스로 사용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명검이 아니라 일반 검을 사용하고 말 것이다. 고개가 저을 정도의 불길함은 느끼지 못했다.

“검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네.”

뛰어난 검사는 검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익숙한 검과 낯선 검의 차이는 명백하다.

“제겐 지배의 권능이 있기 때문에 문제없습니다. 검을 지배하는 것으로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거 흔히 신검합일의 경지라고 부르지?”

권능을 사용한 편법이라곤 하나 시작부터가 신검합일이라니…… 과연 악마다.

“아, 오늘 저녁은 뭐야?”

“오늘 저녁은 닭갈비로 할 예정입니다. 싫으신가요?”

“싫은 건 아니지만…… 최근 매운 걸 많이 먹는 것 같아서.”

“기분 탓입니다.”

“…….”

⁂ ⁂ ⁂

루크에이스에 위치한 원형 경기장에는 사람이 가득 차있다. 최대 수용인원 7,000명이 넘는 이 경기장의 천장에는 돔 형태의 천장에 수많은 조명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경기장의 객석에는 루크에이스 주민들이 앉아 있으며, 곧 벌어질 경기를 기다리고 있다. 경기장의 허공, 천장의 아래에는 반투명한 스크린이 떠있는데 경기장을 비추고 있다. 마도구를 이용한 대형 카메라 스크린이다. 가격과 유지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지만 오늘만 특별히 모험가 길드에서 사용을 허가했다.

메리코는 경기장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관객석에 위치하고 있다. A등급의 자리로 스크린을 통해서 보지 않아도 곧바로 경기장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위치다.

메리코가 가만히 앉아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의 비어있는 옆의 자리로 한 명의 여성이 다가와 앉는다.

웨이브 진 금발 머리를 한 가녀린 여인으로 검은색의 로브를 걸치고 있다. 졸린 듯한 눈을 한 그녀는 푸른색의 눈동자로 경기장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

“메리코. 무엇 때문에 이런 낮 시간에 날 불러낸 거니?”

시온 잔메이든. 뱀파이어 마법사로 메리코의 파티인 황금 들소가 야간에 미궁으로 향하는 이유의 장본인이다.

“이전에 말했잖나. 시온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가 있다고.”

“흐응.”

시온은 가지고온 마법서를 꺼내 펼친다. 주변이 시끄럽긴 하지만 집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사람 보는 눈은 있다고 자부하지만, 같은 마법사인 네 평가도 들어 보고 싶어서 말이지.”

“……클랜에 권유할 생각이니?”

그녀의 물음에 메리코는 고개를 저었다. 메리코는 사람을 모아 클랜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어중이떠중이는 전부다 가려내고서 만드는, 공략을 위한 클랜이다. 클랜은 거의 완성단계에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아니. 그 녀석은 자유기사가 되는 게 목적이라고 했으니까. 클랜을 권유해도 하지 않을걸.”

시온은 눈동자만을 굴러 메리코를 힐끗 보고서 툭 내뱉었다.

“……쓸데없는 호기심이야.”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이지. 시온, 너는 저 새싹이 나중에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하지 않냐?”

“별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흥미 없어.”

메리코는 눈을 반짝이며 경기장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렸다. 입가에 묻은 미소는 기대

를 품고 있다. 오늘,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시온. 네가 올해 17살이었나? 테드에게 듣기로는 환생하기 전에는 전쟁 마법사였다더라.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전쟁 마법사였다라…… 그건 조금 흥미가 가네.”

시온은 메리코의 목적을 알아차렸다. 그는 마법사의 전투를 보면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 자, 루크에이스의 주민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는 루크에이스 통신의 기자이자, 오늘 하루 사회역을 맡은 나리 클로운이라 합니다!! 나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

경기장만을 비추던 화면에 수인족 여성이 나타난다. 분홍빛의 단발 머리카락의 여성이다. 고양이귀가 달려 있는 여성은 갈색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하고 있다.

“저 아가씨는 여전하구만.”

메리코가 감탄 하듯 중얼거렸다. 엘프도 아니면서 3년전의 모습과 변한 게 없다. 뛰어난 화장 기술이라면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 우선 이번 클랜 워의 규칙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5 대 5 팀 결투 방식으로 한명씩 사각형의 경기장에서 1대1 결투를 벌입니다. 3번을 먼저 이기는 쪽이 클랜 워의 승리자가 됩니다!

결투에서 이긴 자는 다음 경기에 중복 출전이 가능합니다. 출전하지 않고 다른 팀원과 교체도 가능하지요!

그럼 중요한 결투 규칙을 말해드리겠습니다!

마법이 깃든 물건은 사용금지이며 고의적으로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으며 경기작을 벗어날 시 장외 실격패가 됩니다! 결투 심판은 모험가 길드 소속의 모험가 3명이 공정한 심판을 맡게 됩니다! 부디 양팀 모두가 그의 지시를 잘 따라주시길 바랄게요! ]

우웅, 거리며 관객석과 경기장의 경계선에서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시온은 책에서 눈을 떼며 중얼거린다.

“상급의 보호 결계 마법이네. 술식도 철저해. 쉽게 풀 수는 없겠어.”

메리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관객석을 보호하기 위한 결계다 굳이 분석할 필요는 없었다. 마법사의 직업병 같은 것이려나.

[ 관객석은 마법이 보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모를 사태에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전혀 걱정할게 없습니다! 안심하고 즐겨 주세요!! ]

경기장 주위에는 하얀색 로브를 걸친 모험가 길드 소속의 성법사들이 나타난다. 천족인 그들은 강력한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팔 하나쯤 날려간다고 해도 그 자리에서 바로 고칠 수 있을 정도다.

[ 여러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클랜 워에 걸린 보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레드 헥사그램이 이 클랜 워에서 승리하면, 실버 울프 클랜이 정식으로 그들에게 사과를 받게 됩니다! 실버 울프 클랜이 승리하게 되면 레드 헥사그램의 파티장인 테드 크루시안이 실버 울프 클랜 소속이 되어버리죠! 이거 테드 크루시안은 딱히 이겨도 져도 상관없지 않나요?! ]

“일반적으로 보면 실버 울프 클랜에 소속된다면 손해는 아니지. 뭐, 본인은 클랜에 가입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는 것 같지만.”

메리코가 킬킬 웃었다. 클랜에 가입할 것이라면 자신이 먼저 데리고 갔다. 이런 일이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 실버 울프 클랜 마스터인 천랑님은 참가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구경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모습을 숨기고 있겠군요! 부디 발견하면 저에게 알려 주세요! ]

관객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서로를 바라보며 천랑을 찾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어디에서도 천랑이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 앗! 양팀에서 모두 준비가 끝났다고 하군요! 그럼 슬슬 시작할까요?! ]

쿵쿵쿵! 경기장 여러 곳에 달린 마이크에서 웅장한 북소리가 들려온다. 동시에 경기장의 대문이 활짝 열리며, 각각 팀의 리더인 테드 크루시안과 키노 키틴을 중심으로 한 열명이 나타난다.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경기장을 향해 올라선다.

테드와 키노는 경기장의 중심에서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어 마주 잡는다. 악수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모험가 길드가 시켜서 하는, 일종의 보여주기 위한 쇼다.

꽈악, 마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테드의 경우엔 이미 스트랭스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고, 키노는 미약하지만 마나까지 끌어 올렸다.

“무릎 꿇고 사과해줬으면 좋겠는데.”

“클랜에 들어온다 해서 평탄한 생활을 기대하고 있다면, 일찌감치 접어둬라. 토가 나올 정도로 굴러주지.”

[ 자아, 그럼! 실버 울프 클랜과 레드 헥사그램 파티의 클랜 워를 지금 시작합니다!!! ]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관객석에서 거대한 함성소리가 울러 퍼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