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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8화 (28/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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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레드 헥사그램.

미궁의 일은 순조로웠다. 레인저 아카데미 수석 졸업이란 말은 거짓말이 아닌 듯, 확실하게 함정을 파악하고 정찰까지 완벽하게 해낸다. 거기다, 개인의 무력까지 범상치 않다.

션은 가르트의 성을 괜히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실력은 5층의 게이트 키퍼인 스컬리스크를 무리 없이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그 뿐만이 아니라 미궁의 구석구석에 피어나는 약초를 발견할 정도로 세심하고 의외로 박식하다.

“이 약초는 소화제의 주재료다. 큰돈은 되지 않지만 공돈은 충분히 모을 수 있지.”

“약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잖아. 공부라고 했어?”

“알아두면 미궁에서 도움이 된다고 들어서 책을 보고 독학했다.”

몬스터에 대한 지식도 가지고 있고, 적당히 물러설 줄도 알고 파티장인 테드의 말도 귀담아 듣는다.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션은 초보 모험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잘해주고 있다. 모험가 등급이 오르고 실적만 확인된다면 여기저기서 그를 원할 것이다.

‘저층은 크게 문제없을 듯하네.’

빠르게 14층까지 올라왔지만 위험한 상황이나, 돌발 상황은 전혀 없었다.

시큰둥했던 테드였으나, 탐날 정도의 능력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말았다. 션은 뛰어난 레인저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테드는 적당히 시험에 통과했다고 말하며 정식으로 파티에 가입시킬 생각을 했다.

“거대 클랜은 스틸을 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냐?!”

“우리 쪽으로 온 몬스터를 처치했을 뿐이다. 몬스터 관리를 하지 못한 너희들 잘못이 아닌가? 애초에 그 몬스터가 너희들의 것이었다고 어떻게 믿지?”

“뭐가 어쩌고 어째?!”

미궁 14층 중 한쪽이 모험가들의 언성으로 인해 소란스러웠다. 테드는 시선을 한 번 주고서 흥미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모험가들의 갈등은 미궁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저층의 경우에는 남이 사냥하고 있는 몬스터를 가로채는 일이 많고, 중층에선 몬스터를 몰아서 파티에 떠넘기는 악질적인 경우도 있다.

둘 다 모험가 길드에서 금지하는 일이지만 전자의 경우엔 적당히 마나석을 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면 되는 일이다.

지금의 경우, 몬스터 스틸 때문에 일어난 일인 듯하고 주변에 목격자들이 많으니 시간이 지나면 적당히 알아서 해결할 것이다.

“이런 일은 흔하니까 그냥 가…….”

고개를 돌려 말을 잇던 테드는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션이 소란스러움의 중심지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 망설임 없이 걸어가는 그 뒷모습에 테드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미궁에 들어오기 전부터 예상은 했다. 교육을 어떻게 받은 것인지 모르지만 그에겐 정의심이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넘어가는 귀찮은 성격이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까지 소란스럽지?”

대치하고 있던 3명의 모험가들이 갑자기 나타난 션을 바라본다.

3명은 모두 제각각 다른 종족이다. 1:2의 구도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우선 1명 쪽은 수인이다. 하늘색의 머리카락 위로 하얀색 늑대 귀와 골반 부분의 꼬리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입고 있는 경갑의 어깨 팔뚝 부분에는 루크에이스의 거대 클랜 ‘실버 울프’의 마크인 늑대가 포효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실버 울프의 간부 ‘키노 키틴’이다.

“넌 또 뭐지? 앞의 두 명의 동료인가?”

키노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앞의 두 명만으로도 짜증나 죽겠는데 다른 한 명이 또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니, 나는 지나가던 모험가다. 너희들의 높은 언성을 듣고 찾아 왔다.”

“그냥 지나갈 것이지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퉁명스럽게 말한 것은 키노와 대치하고 있는 두 명 쪽이었다. 두 명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입을 열고 있는 것은 한 명이고, 다른 한명은 입을 굳게 다물고 서 있다.

입을 여는 한 명은 테드보다 키가 작은 드워프였다. 대략 1M 정도 크기의 드워프는 투구를 비롯한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있는데 수염이 없다. 등에는 자신의 키보다 큰 할버드를 착용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카론 지리뉴트’로 엘프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수염이 나지 않는 드워프다.

카론의 옆에는 커다란 인물이 있었다. 키로 따지자면 카론의 두 배 이상인 2.5M로 온몸이 근육으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제대로 된 방어구가 손과 팔목을 감싸는 건틀릿 뿐이라는 점이다. 허리 부근에 손도끼 2개가 장착되어 있지만, 사용자에 맞게 특수 제작되었는지 일반적인 크기보다 크다. 그는 티탄족의 ‘브론 비드’다.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션을 주시하고 있다.

“미궁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너희들을 그냥 지나가는 것은 나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다.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지 말해봐라. 이 내가 중재해주겠다.”

키노와 카론의 얼굴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연실색해진다. 방금 이 자식이 뭐라고 한 거지?

“중재? 네가 뭐길래 중재를 하겠다는 거지? 모험가 길드 소속이라도 되나?”

“딱 봐도 초보 모험가인 녀석이……. 혹시 너 어렸을 때 별명이 빙신 아니었냐?”

돌아오는 반응이 차가웠지만 션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되려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가슴을 내밀었다.

“내 이름은 션 가르트다. 펠리스 레인저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 기사 직위까지 가지고 있다. 중재자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만?”

“…….”

그들이 입을 다물었다. 압도되어서가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다. 기사 직위를 가진 놈이 뭐가 아쉽다고 모험가 일을 하는 것도 의문이고, 고작 그걸 가지고 나서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참고로 내 어렸을 적 별명은 빙신이 아니라 ‘검재(劍才)’였다. 검의 기재라는 뜻이지.”

“…….”

키노와 카론은 그냥 무시하기로 정했는지 다시 시선을 돌려 서로를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거대 클랜이 저층에서 자리 잡고 사냥하는 것부터가 문제지! 댁들, 들어보니 어제부터 여기서 자리 잡고 사냥했다며?!”

“신입들의 전술 훈련을 위해서다. 그리고 자리 잡아 사냥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된 것도 아니지 않나? 문제는 없다.”

“도리가 있지! 도리가!! 전술 훈련은 니들 집에서 하라고! 우리 모험가들은 수입이 걸려 있단 말이다!!”

화풀이 하듯 카론이 발을 구른다. 드워프의 타고난 완력으로 조금이지만 바닥이 진동한다. 키노는 같잖다는 듯 코웃음 쳤다.

“즉, 그거군. 우리보고 당장 여기서 떠나라는.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았다. 너희들이 옆에서 사냥을 하든, 춤을 추든 상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우리 쪽으로 몬스터를 몰고 오지마라.”

“이 빌어먹을 자식이!! 니들이 14층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잖아?!”

“불만이 있는 건 너희 둘뿐이다. 다른 모험가들은…….”

키노가 주변을 쓱 훑어본다. 구경꾼들의 절반 이상은 모두 실버 울프 클랜 소속의 모험가들이다. 나머지 모험가들은 키노가 훑어보자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불만이 없는 모양이군.”

키노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고, 카론이 어금니를 꽉 물었다. 거대 클랜의 행패도 행패지만, 거대 클랜의 눈치를 보는 모험가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카론은 제 성질을 못 참고 등뒤에 있는 할버드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그의 어깨를 브론이 붙잡았다. 시선을 돌리자 브론이 고개를 저었다.

빠드득, 카론이 이가 부서져라 갈았다. 여기서 전투로 결판을 내는 것은 상대가 원하는 바다. 명분이 생기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았을 땐, 너희들이 잘못했군.”

카론이 분노를 필사적으로 참고 있을 때, 션이 끼어들었다. 평탄한 어조로 키노를 삿대질 하며 잘못을 꾸짖었다.

키노가 뜻밖의 참견에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아직 가지 않았나. 지나가던 모험가.”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지 않았다. 그리고 갈등의 해결 방법이 지금 막 보였다.”

“판사 납셨군.”

키노가 조소를 머금었다. 이미 사건은 끝났다. 질질 끌었던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어차피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거대 클랜과 일개 모험가. 누가 승리할 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너희들이 잘못했다. 이 자들에게 사과하고 그 훈련이라는 걸 당장 그만둬라.”

“……앙?”

키노의 머리에 달린 삼각형의 늑대귀가 팔락인다. 혹시 자기가 잘못 들었나 쉽지만 귀에는 아무 문제없다.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잘 생각하고 말해라.”

키노가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리며 션을 향해 다가갔다. 션의 푸른색의 눈으로 션의 눈을 지긋이 노려본다.

“……특별히 우리 가르트 가문의 가언을 가르쳐 주지.”

션은 그의 위협에 눈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오히려 올곧은 갈색의 눈동자로 그를 마주본다.

“절대로 악에 굴복하지 않는다.”

“……네 말은 우리 ‘실버 울프’가 악이라는 거군.”

“내 눈에는 단체가 개인을 핍박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가문에서 악이라고 배웠다

만, 그걸 세간에서는 악이라고 하지 않나?”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나, 초보자?”

“가르트 일족의 남자는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는다.”

“하! 이래서 귀족 출신의 모험가 놈들은…….”

키노가 허리춤에 달린 검을 향해 손을 서서히 뻗는다. 오랜만에 머리가 달아올랐다. 실버 울프의 간부가 된 후 부터는 그 놈의 성질을 죽여 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명분은 대충 자신을 도발했다고 하면 된다. 클랜 마스터에게 징계를 먹겠지만, 지금의 기분으론 아무래도 좋다.

키노가 검의 손잡이를 잡아 뽑기 직전이었다. 다른 한 명이 다시 끼어들었다.

“분위기가 너무 달아올랐잖아. 일단 진정하라고. 션, 너도 검에서 손 떼고.”

“…….”

션은 망설임 없이 검병에서 손을 놓았다. 반면 키노는 또 다시 끼어든 새로운 놈에 대해 짜증이 치솟았다. 하지만 덕분에 한 차례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하마터면 제대로 된 명분도 없이 싸울 뻔했다. 잘못하면 간부직도 내려놓을 수도 있었다.

키노는 회색코트를 입은 인간 꼬마를 훑어보았다. 평범한 인간의 아이로 생각하기에는 이 상황에서도 너무 태연하다. 표정에도 여유가 있다.

“또 새로운 놈인가……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못 보던 얼굴이다. 자신의 머릿속에 기억되지 않았다면 유명한 모험가가 아닌 명성도 없는 초보 모험가나 어중이떠중이다.

키노는 주변을 살폈다. 실버 울프 클랜 소속을 제외하고서도 모험가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하고 있다. 시간을 끌면 모험가들의 수가 많아지고 수습하기도 쉽지 않다. 여기선 그냥 모험가들을 무시하는 것이 답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일반 모험가들은 실버 울프에 대들지 못한다.

“솔직히 이건 행패가 맞잖아? 나야 귀찮은 건 싫으니 어지간한 건 넘어가겠는데…… 들어보니 좀 심한 것 같네.”

“……넌 또 누구지?”

“레드 헥사그램의 파티 리더, 테드 크루시안이야. 모험가가 된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

들어 본적 있는 이름이다. 분명히 길드 내에서도 마법 재능이 뛰어난 자로 될 수 있으면 포섭하고 싶다는 말이 나왔었다. 듣기론 본인이 거절했다던가.

“모험가는 미궁 어디서든 사냥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전술 훈련을 목적인 사냥을 하고 있을 뿐이다. 행패는 너희들이 부리는 것이 아닌가?”

“절반은 좀 심하잖아. 실전이 목적이라면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굳이 14층의 절반을 차지 할 이유는 되지 않아. 다른 층에 나눠서 훈련을 하면 되는 일이잖아.”

“훈련에는 관리자가 필요하다. 인원을 층으로 나누면 관리가 쉽지 않지. 거기에 14층에 나오는 놀은 저층의 몬스터 중에서 전술훈련에 딱 적합한 몬스터다.”

“하아.”

테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모습을 보자면 절대로 양보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언쟁을 계속하는 것도 지치고,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이해력이 빠르군.”

테드의 목소리를 들은 키노가 만족스럽게 웃었고, 옆에 있던 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션이 무언가 불만을 표하려는 찰나, 테드의 말이 이어졌다.

“나, 레드 헥사그램의 파티 리더 테드 크루시안은 실버 울프에 ‘클랜 워’를 신청한다.”

분위기가 바뀐다. 조용하던 주위의 모험가들 경악하고,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키노의 눈이 커진다. ‘클랜 워’가 뭔지 모르는 션만이 달라진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미쳤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번복할 기회를 주지.”

테드가 한쪽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왜. 쫄려?”

============================ 작품 후기 ============================

자리싸움입니다. 주로 메이플에서 일어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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