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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광기를 알리는 밤.
사자의 숲은 출몰하는 언데드도 언데드지만 전문가가 없으면 쉽게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복잡한 곳이다. 검은색의 나무, 다크 우드가 낮, 밤 할 것 없이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을 완벽히 차단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드리븐이 뛰어난 레인저라고 해도 지도도 없고, 나침반도 통하지 않는 사자의 숲에선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내가 길을 잃으면, 놈도 쉽게는 날 못 찾을 거다.’
바론은 레인저가 아니다. 짐승을 쫓는 사냥꾼도 아니다. 전투 능력은 뛰어날지라도 추적 능력까지 뛰어나지는 않을 터다.
‘약속된 날에 도착할 순 없겠지만… 지금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숲 속을 전력으로 달린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해도 레인저로써 교육받은 것이 몸에 배어있다. 숲에서 달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탕!
사자의 숲을 울리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드리븐의 옆으로 주황색 빛줄기가 날아들어 나무에 박힌다. 나무의 박힌 부분에서 연기가 보란 듯이 피어난다.
“……총?”
그건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또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아아. 총을 알아? 드리븐 씨도 환생자였구나?”
저 뒤에서 바론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조금의 초조함도 없이 평탄한 어조로 드리븐에게 말을 건다. 그의 오른손에는 검은색의 리볼버가 들려 있다.
“이 세계에 총은 없어야 한다! 직접 총을 만든 것이냐?!”
그 위험성을 알고 있는 드리븐이 버럭 소리 질렸다. 저 조그만 무기는 이 세계의 판도를 바꾸고도 남을 위험한 것이다.
“아, 드리븐 씨는 모르는 구나.”
바론이 천천히 걸으며 리볼버의 방아쇠를 매만진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머리를 시원하게 해준다. 이 가벼운 손가락의 움직임에 총알은 발사되고, 목숨은 촛불처럼 사라질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최고의 무기다.
“이미 총은 만들어져 있어. 그도 그럴게 이 대륙에 환생자가 몇 명이라 생각하는 거야? 만들 수 있는 재료와 기술이 한정되어 있다곤 하지만…… 구조나 원리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으면 충분히 만들 수 있잖아? 마법으로 냉장고나 세탁기를 만든 것처럼.”
“이미 총이 만들어졌다고?! 거짓말하지 마라! 그렇다면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없다.”
“정말이라니까. 다만, 총기는 철저하게 관리 받고 있어서 말이지. 아는 인물이 적을 뿐이야.”
“관리… 받고 있다고?”
“응. 이 세계의 절대자, 시스템에게 말이지.”
탕! 또 한발 리볼버의 총신에서 불이 번쩍인다. 그러나 드리븐의 몸에 총알이 닿지 않고 옆으로 스쳐지나간다. 일부러 빗나가게 쏘았다.
“권총 5,000정, 소총 800정, 기관단총 500정, 중기관총 200정, 산탄총 300정, 저격총 200정. 현재 대륙 곳곳에 있는 총기 7,000개야. 꿀팁이지? 대가는 드리븐 씨의 배낭에 있는 거로 하자!”
총은 확실히 편리한 무기지만 물량이 적은 이 세계에선 그 효과가 미미하다. 뛰어난 전사들은 총알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법등의 방법으로 총알을 완전히 막을 수 있다. 무서운 것은 저격총을 제 수족처럼 다루는 저격수들이다.
드리븐을 이를 악물고 활을 들었다. 빠르게 화살을 시위에 걸고 놈을 겨눠 쏘았다. 그대로 확인하지 않고 몸을 나무 뒤에 엄폐한다. 상대가 접근하지 않고 원거리 전을 택한다면 승산은 있다. 엄폐물이 없었다면 참담했겠지만 이곳은 숲속이다. 활도 잘만 사용하면 총에 꿇리지 않는다.
‘놈은 지금 방심하고 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바론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이 다가오면 접근전이 벌어질 것이고 질 수 밖에 없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드리븐은 떨리는 손으로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살아남을 기회는 있다. 호흡을 하며 머리를 빼꼼 내밀어 바론의 위치를 확인한다.
바론은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손에든 리볼버를 장난치듯 돌리면서 걷는다.
조심스럽게 활을 겨눈다. 어둡기 때문일까. 알아차린 행색은 아니었다.
꿀꺽.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 한계까지 당긴 시위를 놓는다. 화살은 바론의 미간을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바론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것으로 가볍게 피해낸다.
“와우, 놀래라.”
바론이 어깨를 으쓱였다. 드리븐이 다시 화살을 시위에 넣어 당기는 순간이었다. 총소리가 울린다. 드리븐은 서둘러 나무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나무에 부딪힌 소리가 이전의 것과 달랐다.
쾅! 흡사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소리와 함께 나무가 활활 타오르며 주위를 밝힌다. 드리븐은 화상을 입기 전에 옆으로 굴러 자리를 피한다.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마탄이야. 마탄(魔彈). 무려 한 발에 100골드가 넘어가는 귀중품이라고?”
일반 탄알의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마탄의 가격은 헉 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비싼 것은 하나에 1,000골드가 넘어가는 것도 있다.
바론은 리볼버의 실린더를 열어 주머니에서 하나의 탄알을 꺼낸다. 금색의 총알의 표면에는 은색의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그려져 있다. 마탄이다.
“이건 300골드짜리.”
다시 나무 뒤로 몸을 엄폐한 드리븐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탕! 시원한 격발음과 함께 총신이 불을 뿜는다. 허공을 나는 총알은 그대로 하얀색 빛을 내며 허공에서 사라진다.
서걱! 거대한 바람이 불어 나무와 함께 드리븐의 종아리가 잘려나간다.
“크읏……!”
몸을 던져 나무가 떨어지는 걸 피해낸 드리븐이 신음을 흘렸다. 바닥에 쓰러진 채 고
개만을 위로 젖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바론을 바라본다. 세 개의 눈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방심했다? 아니, 바론은 처음부터 방심하지 않았다. 그의 세 번째 눈은 투시가 가능하다. 즉, 드리븐이 어디에 있든지, 전부 세 번째 눈을 통해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드리븐에게 처음부터 승산은 없었다.
“후하하하하하하하하!!!”
한껏 광소하며 다시 리볼버를 장전한다. 총 6발, 전부 마탄이 아닌 일반 탄알이다.
“드리븐 씨, 유언은?”
“……딥크스가 네놈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바론은 킥 웃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 탕!
“후하하하하하하!”
총 여섯 발의 총알을 쉴 틈 없이 쏜다. 래더 아머를 뚫고 살을 찢고 들어가는 총알의 감촉을 느끼며 바론이 미친 듯이 웃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리볼버를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은 바론은 드리븐이 메고 있는 배낭을 벗겨 냈다.
“음. 거울이랑 단검이네.”
거울은 손바닥만 한 원경이다. 둥근 거울 뒷면은 돌로 되어 있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바론의 세 번째 눈은 결코 평범한 거울이 아님을 꿰뚫어 본다. 바론은 거울을 감정한다.
≪하늘의 눈.
1만 명의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총 3번을 사용할 수 있으나, 2번은 이미 사용되어 1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휘유~.”
바론이 휘파람을 불었다. 어느 한도의 미래를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이거라면 충분히 딥크스가 원하는 물건이 될 수 있다.
“딱 봐도. 주권 결정전을 위해서네.”
킥킥, 웃으며 이번엔 단검을 손에 든다. 단검은 특이하게도 붕대에 감싸여 있는데, 바론이 투시한 바에 의하면 검신이 새빨간 붉은색이다.
≪루나틱 블레이드
마력을 먹는 마검입니다. 어떠한 마력, 마법을 베어 마력을 흡수해 사용자에게 힘을 줍니다. 어떤 위대한 마법이라도 검신에 닿기만 한다면 벨 수 있습니다. 사용자에게 강력한 힘을 주지만 사용자를 미치게 만드는 마검입니다.≫
“후하하하하하! 미치게 만든다고? 난 이미 미쳐있어. 이걸 사용하면 여기서 더 미치게 되나?!”
바론이 단검을 둘러싼 붕대를 풀어 헤쳤다. 곧 붉은색의 검신이 나타나며, 그 밑에 마찬가지로 붉은색의 손잡이가 나왔다. 바론은 망설임 없이 손잡이를 잡았다.
시야가 흔들렸다.
[ 죽어라. ]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어온다.
[ 죽어라. ]
온몸의 피부가 산채로 벗겨진다. 눈알이 파이고, 손톱이 빠진다. 검이 날아와 몸에 박히고, 염산이 떨어져 몸이 녹는다. 바위가 떨어져 짓눌리고, 포탄이 날아와 터진다. 목이 막혀 질식하고, 벌레가 내장을 파먹는다.
[ 죽어라. ]
한 여자가 나타난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자는 양손을 내밀어 바론의 목을 잡는다.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지만 바론의 귀에는 그녀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 죽어라. ]
목을 조이는 힘이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숨이 턱턱 막혀온다. 여자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며 무언가를 말한다. 아마도 저주의 말이다.
“후……,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하!”
바론이 웃었다. 미친 듯이 웃었다.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 고통 모든 것이 생생하지만 환상이란 건 처음부터 알았다. 아마도 마검의 사용자를 미치게 한다는 것은 이런 뜻이리라.
“고작 이 정도로?”
몸이 박살나고 재생한다. 죽고 살아나고의 반복. 고통은 완벽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바론의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 정의(定義)가 싸이코패스에서 광기의 지배자로 변형됩니다. ]
[ 속성이 ‘강철(Iron)’에서 '광기(Lunatic)'로 변형됩니다. ]
“후하하하하하하!”
바론이 손에든 루나틱 블레이드는 단검이 아닌 롱소드로 변해 있었다. 피와 같은 붉은색 검신을 내보이고 있다.
“세나!!!”
한동안 웃던 바론이 큰소리로 숨어 있는 자신의 동료를 불렀다. 물론 양쪽 모두 진심으로 동료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거래로 인한, 일시적인 동료일 뿐이다.
“멋대로 이름을 줄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하지?”
바론의 뒤쪽,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명의 여성이 나타났다. 챙이 넓은 검은색 고깔모자를 쓰고 있으며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 있다. 온몸을 감쌀 만큼 커다란 망토지만, 그 안에 얼핏 보이는 그녀의 몸은 놀랍게도 검은색 속옷만을 달랑 걸치고 있다.
고깔모자 아래, 웨이브 진 검은색 머리칼이 바람에 따라 살짝 흔들린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검은색 눈동자에 비해 피부는 눈처럼 희다. 눈 꼬리가 약간 처져 있어 나태해 보인다. 왼쪽 눈 밑에 눈물점이 있다.
“드리븐 씨 좀 살려줘.”
바론의 말에 세르미나는 고운 눈썹을 찌푸렸다. 자기가 죽여 놓고 살려달라니, 억지도 정도가 있다.
“이미 죽은 걸 완벽히 되살리는 건 불가능해. 그건 너도 알고 있잖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 일으켜줘.”
“알고 있겠지만 그건, 4번째 부탁이야.”
“응. 그래. 7번 남았던가?”
“6번 남았어.”
세르미나가 손을 흔들자 검은색 나비가 나타났다. 검은색 나비를 살랑이며 허공을 날아 드리븐의 시체의 안으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움찔, 드리븐의 몸이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드리븐은 종아리가 잘려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마냥 멍한 얼굴이다.
“음! 드리븐 씨?!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이 물건들 어디서 얻었어?”
드리븐은 초점 없는 눈으로 바론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력자가 루크에이스 미궁에 숨겨 놓았다. 나는 숨겨놓은 물건들을 가져왔을 뿐이다.”
“헤에……. 조력자라. 그럼 이 물건들의 원래 주인은?”
“펠리스 왕가의 것이다.”
바론이 힐끗 거울을 바라 봤다. 미래를 볼 수 있는 거울은 확실히 보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1만 명의 제물이 필요하기에 사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딥크스라면 충분히 은밀하게 1만 명의 제물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드리븐 씨. 딥크스의 목적과 접선장소. 전부 가르쳐 줄래?”
바론의 미소가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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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번 편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편입니다.
다음편부터 다시 주인공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