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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광기를 알리는 밤.
사자의 숲을 지나면 바로 딥크스의 ‘나이트 보더라인(Night Borderline)’이 나온다. 그리고 그 입구에 ‘나이트 아이(Night Eye)’라는 요새도시가 있다. 딥크스에 들어가기 위해선 어떤 종족, 설령 마족이라도 신분증을 확인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원래 이렇게 삼엄하지 않았으나, 과거 300년 전에 있었던 천족의 대규모 워프 침공이 있었던 후부터 변했다.
드리븐과 용병들은 빠른 속도로 사자의 숲을 지나고 있었다. 사자(死者)의 숲이라 불리는 만큼 아주 기괴하고 꺼림칙한 숲이다.
땅에는 그 흔하디흔한 잡초 하나 자라지 않고, 나무는 모두 검정색이다. 나뭇잎이 달려 있는데 그것마저도 검정색이라 숲의 내부는 밤처럼 어둡다. 그리고 이 숲에는 ‘데스 우드’가 있다. 숲에 있는 나무 전부가 데스 우드인건 아니지만, 적지 않은 숫자의 데스 우드가 있어 숲에 들어온 자의 마나를 서서히 갉아먹는다. 마나가 없으면 생명력을 갉아먹는 악질적인 놈들이다.
드리븐과 용병들 사이에 말이 없다. 드리븐은 원래부터 과묵한 성격이고 어차피 헤어질 용병들이다. 괜히 정을 붙일 이유가 없다.
용병들의 경우엔 모두 바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바론이 입을 꾹 다물고 걷고 있으니 자연스레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선두에는 드리븐과 바론이 걷고 있다. 바론이 길을 잡아주면 레인저인 드리븐이 앞을 살피면서 걷는 식이다.
첫날은 휴식 없이 빠른 걸음으로 숲속을 들어갔다. 운이 좋았는지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숲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음날부터 가끔씩 언데드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나 밤이 되면 나오는 고스트가 극성이었다. 그들의 실력으로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다.
“드리븐 씨! 슬슬 배고파. 식사하자고.”
말을 건 것은 바론이었다. 그는 일행들 중에서 가장 긴장하지 않고 있는 인물이다.
“벌써 그런 시간인가. 좋다. 여기서 휴식을 하지.”
잠을 자지 않는 강행군을 펼치고 있지만 식사는 필요하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그들에게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드리븐의 말에 여기저기서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린다.
용병 중 한 명이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나뭇가지를 모아 부싯돌을 몇 번 부딪히더니 모닥불을 만들었다.
바론은 자신의 품속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붉은색 비단으로 만든 고급스런 주머니다. 당연히 평범한 주머니는 아니고 아공간 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 주머니다.
바론은 이 주머니에서 음식을 꺼내기 시작한다. 빵과 고기, 음료수 등 모두 튜덕스에서 파는 음식들이다. 바론이 웃으면서 일행들에게 나눠준다.
“자. 자. 먹으라고, 특별히 대접할 테니까.”
“고마워. 바론. 잘 먹을게.”
“네가 있어 다행이다.”
“이거 또 신세를 지게 되는군.”
드리븐을 제외한 일행들은 모두 바론에게서 음식을 받아간다. 그들은 따로 음식을 챙기지 못했다. 그럴 시간도 없었지만 나흘간의 강행군을 버티기 위해 무기를 제외한 다른 짐은 튜덕스에 놔두고 온 것이다. 있는 거라곤 무기와 부피가 작고 가벼운 비상식량 육포 정도뿐이다.
“난 거절하도록 하지.”
드리븐은 등에 멘 배낭에서 육포를 꺼내 먹기 시작한다. 그 또한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긴 매한가지지만, 살아온 거친 삶이 문제인지 잘 모르는 타인이 주는 음식은 찝찝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여기처럼 낯선 곳에선 더 심하다.
바론은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보란 듯이 맛있게 먹을 뿐이다.
“그런데 드리븐씨. 왜 그렇게 쫓기듯이 딥크스로 가는 거야? 누군가에게 원한이라도 샀어?”
“…….”
바론의 물음에 시선이 모인다. 용병이 의뢰주에 대한 정보를 캐묻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정식 의뢰가 아니더라도 그건 틀림없는 무례다.
드리븐이 눈을 치켜뜨면서 바론을 노려봤다.
“……이유를 꼭 네게 말해야 하나?”
“아니~. 꼭 말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궁금하잖아. 사자의 숲을 굳이 나흘 만에 통
과해야 하는 이유 말이야. 다들 안 그래?!”
바론이 주위를 돌려 다른 용병들에게 물었다. 용병들은 제각각 고개를 끄덕였다. 드리븐의 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드리븐은 용병들의 행동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들이 정말로 호기심을 가졌는지는 두 번째 문제다. 그저 바론이 원하니까 고개를 끄덕인 것뿐일 것이다. 용병이란 이름
이 아까운 놈들이다.
“…별일 아니다. 딥크스에 있는 형이 많이 위독하다더군.”
마족 제국이라고 해서 마족들만 살아가는 국가는 아니다. 소수지만 인간을 물론이고 엘프 또한 딥크스에서 살아가고 있다. 드리븐은 인간이지만 딥크스가 고향이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흐음~. 그럼 그 가방은 왜 들고 온 거야?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면 두고 오는 게 좋았을 텐데.”
“형의 약과 미궁에서 모은 돈이 있다. 아무리 급해도 놔두고 가면 의미가 없지.”
“후하하! 그것도 그렇네! 미안, 우문이었어!”
바론이 시원스럽게 웃고 드리븐은 다시 육포를 손에 쥐었다.
딱!
일행의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한다. 검은색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용병들이 제각각 자신의 무기를 쥐고서 일어났다. 가능성은 아주 미세하지만 도적일 가능성도 있다.
“아아. 내버려둬. 다크 우드는 가끔씩 나뭇가지가 부러진다 말이지. 도적이라면 벌써 덤벼들었을 거고. 안 그래, 드리븐씨?”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너의 말대로 그냥 부러진 듯 하군.”
시간이 지나 모닥불이 연기조차 내지 않으며 저절로 꺼졌다. 사자의 숲에선 모닥불에 주기적으로 장작을 넣지 않으면 10~15분 만에 꺼져 버린다.
“슬슬 일어나지.”
드리븐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병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이윽고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난다. 70골드의 보수는 용병들의 불만을 말끔히 없앴다.
모두가 일어났지만 바론만이 자리에 앉아 일어나지 않는다.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 앉아 있다. 드리븐이 무언가 입을 열기 전에, 바론이 근처에 있는 용병 한 명에게 손짓했다.
“잠시 이리로 와봐.”
“…….”
지목받은 용병이 쭈뼛거리며 천천히 바론의 앞으로 다가갔다.
바론은 곧장 허리춤의 검집에서 검을 빼들어 용병의 목을 찔렸다.
“…크. 컥…커컥…?”
목이 꿰뚫린 용병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크게 뜨고서 바론을 바라봤다. 어째서 자신이 찔린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후하하하!”
바론이 목을 젖혀 크게 웃으며 용병의 옷자락을 잡아 그대로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긴
다. 푹! 푹! 용병의 등에 화살 두 개가 날아와 무자비하게 박혔다.
“……이게 무슨 짓이지, 바론?”
드리븐이 재차 활의 시위에 화살을 걸며 물었다. 용병을 방패삼아 몸을 숨기고 있는 바론은 대답 대신 옆에 있는 용병들을 훑어보았다. 소름이 돋은 용병들은 그 즉시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려고 했다.
“…으, 아…. 아.”
용병들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못한다. 입마저 굳어버려 말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들의 두 눈동자에 공포가 물든다.
“엄마한테 배우지 않았어? 남이 주는 걸 덥석덥석 받아 처먹으면 안 된다고.”
흡사 연인을 끌어안듯, 용병의 시체를 안으며 바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에 꽂은 검을 빼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드리븐이 가장 멀리서 활을 겨누고 있고, 그 앞에 용병들이 있다.
“……다시 한 번 묻지. 이게 무슨 짓이지? 대답해라, 바론!”
“뭘 그리 소리 지르고 그래. 당신이 보고 있는 대로야. 드리븐 씨.”
안고 있던 용병을 놓는다. 용병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목에서 피를 벌컥벌컥 흘리고 있다. 파란색 꽃무늬 셔츠를 붉은 피로 적신 바론은 천천히 용병들에게 다가간다.
“……빌어먹을 새끼.”
드리븐이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바론은 여유롭게 피해낸다. 장난을 치듯이 과장된 동작으로 몸을 흔든다.
“그 정도 속도로는 내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한다고?”
“…….”
드리븐이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에서 피가 나와 턱을 타고 주르륵 내렸다.
“아니면 마나가 움직이지 않아?”
인정하기 싫지만 바론의 말대로 몸 안의 마나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커다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네가 주는 음식은 먹지 않았다. 마법이라도 사용했나?”
“후하하하! 난 마법은 전혀 몰라. 그리고 한순간이지만 틈은 있었어.”
근처에 있는 용병의 복부의 검을 쑤셔 넣고, 그 옆의 용병에게 향해 움직이며 바론이 말했다.
드리븐은 이마에 맺힌 땀의 불쾌감을 느끼며 바론을 노려봤다. 단 한순간의 틈, 그건 아마도 방금 전 휴식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졌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때 일행들 모두의 시선이 나뭇가지로 향했었다. 약간의 틈이지만 바론이라면 드리븐의 육포에 충분히 장난을 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마나도 없이 도망칠 수 있을까?’
용병들이 시간을 벌어준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마비된 용병은 벌써 3명 째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버려져 있다. 상대는 B급의 용병, 거기다 사자의 숲에서 활동하는 용병이다. 성공적으로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왜 마비독을 쓰지 않았지?”
용병들에게 사용했던 마비독을 자신에게 사용했더라면 그의 입장에선 훨씬 더 수월하게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응? 마비독은 입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하니까 말이지. 드리븐 씨랑 대화를 해보고 싶었어.”
남은 용병 2명의 목을 그대로 검으로 베어낸다. 머리가 하늘을 날고, 잘린 목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와 무너진다. 온몸에 피를 묻힌 바론이 천천히 드리븐에게 걸어갔다.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는 말에 희망을 느꼈다.
‘어쩌면 협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바론을 겨누었던 활을 내렸다.
“안 쏘는 거야?”
“……협상을 하지.”
유일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 그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자비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것 또한 성공 가능성은 극악이지만 도망치는 것보다 높으리라.
“협상? 좋아.”
바론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가능성이 조금 커진 느낌이다.
“뭘 원하지? 돈이라면 가진 것 전부 주겠다. 지금 대략 700골드를 가지고 있다.”
바론의 입가가 귀까지 올라간다. 만족하는 것인가?
“나 말이야. 이래 보여도 엄청나게 주도면밀하거든? 처음 보는 사람은 나도 모르
게 ‘세 번째 눈’으로 살필 정도야.”
바론의 이마에 있는 눈이 열리기 시작한다. 보통의 눈처럼 상하가 아닌 좌우로 벌리며 눈동자가 나타난다. 레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세 번째 눈이다. 보통은 통찰력을 높여주지만 아주 희소한 레안족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내 눈은 특별해서. 투시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나는 주점 밖에서 드리븐 씨를 투시했지.”
드리븐의 얼굴이 굳어진다. 투시를 했다는 것은 자신의 배낭 속 물건들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우연히 본 드리븐 씨의 배낭엔 정말, 정말 특별한 물건들이 있지 뭐야?! 깜짝 놀랐다고.”
“……이건 안 된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건 모르는 일이야.”
드리븐이 뒷걸음질 쳤다. 차라리 배낭 속에 있는 물건을 넘겨주고 딥크스에 알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딥크스가 자신을 용서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실패했다는 이유로 죽일지도 모른다.
“자, 잠깐. 이건 딥크스와 관련된 물건이다. 이걸 가지면 네가 위험할 수 있다.”
“후하하하하하!!”
바론이 배를 잡고 포복절도한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큰소리로 웃는다. 그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드리븐은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딥크스를 무서워하리라 생각해?”
그 말에 드리븐은 뒤돌아 달려나갔다. 약탈자와의 협상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이렇게 뒤돌아 도망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빌어먹을! 저놈을 고용하는 게 아니었는데…….’
드리븐은 있는 힘껏 발에 힘을 주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어. 무언가 후기에 쓰려고 했던 말을 깜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