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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궁 도시 루크에이스.
레이나는 빵 하나에도 불구하고 고급스럽게 먹는 반면에 테드는 레이나의 눈치를 보며 먹었다. 레이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테드지만 적어도 음식 때문에 트집을 잡거나 할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점에서는 안심이지만, 변덕을 부린 그녀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국가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의 권력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식사가 끝난 뒤, 레이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허기를 채울 수 있었네.”
“…아니 뭐, 음식을 나눠 먹었을 뿐인데요.”
상대가 불편해질 정도로 정중하다. 기사도를 품은 기사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신분은 귀족보다 위에 있는 집행관이다. 테드는 예법을 모르는 자신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답례는 반드시 하겠네. 자네의 이름을 알려주겠나?”
테드의 몸이 멈칫한다. 될 수 있으면 관여하고 싶지 않다. 이름을 거짓으로 알려주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은인으로 생각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테드 크루시안입니다.”
“테드 크루시안…… 테드 크루시안…. 음, 기억했네.”
그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듯 몇 번 중얼거린다. 레이나는 투구를 들어 올려 그대로 머리에 쓰기 시작했다. 투구까지 완벽히 갖춘 무장상태의 기사가 되었다. 전신 갑옷이라 겉모습을 보자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아, 잠시만요.”
테드는 망설임 없이 향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집행관인 그녀의 무력이라면 큰 문제 없이 미궁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함정만 없다면.
“같이 가도록 하죠. 이래 보여도 탐색 마법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해주지 않아도 되네. 더 이상 빚을 늘리고 싶지도 않
고.”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투구로 가려 보이지 않기에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테드로선 알 수 없다.
“함정에 걸리면 90층 이상의 최상층으로 전이될 수도 있어요. 아무리 집행관이라도
최상층을 혼자서 돌파하는 것은 무리겠죠.”
“…….”
운이 좋으면 그 반대, 저층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는 정말 운이 좋을 경우다. 미궁의 함정은 대부분이 위층으로 전이된다.
“그럼 미안하지만, 한 번 더 빚을 지도록 하겠네. 갚아야 할 게 늘어났군.”
테드는 빈 도시락을 아공간에 넣고서 쪼르르 걸어 레이나의 옆으로 다가갔다. 원래 키가 작은 테드였으나 키가 180cm에 달하는 그녀의 옆에 서자 한층 더 작아진 느낌이다.
“그럼 일단 가보도록 하죠. 길을 모르니 일단은 되는 대로 걸어볼까요.”
“그게 좋겠군. 아, 그러고 보니 여긴 팔콘맨이 나오더군.”
“……팔콘맨이요?”
얼굴이 굳어진 테드는 제발 농담이기를 바라며 레이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레이나는 자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 사살을 한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네만, 분명 매의 머리를 가진 몬스터인 팔콘맨이었지.”
“그 말이 사실이면 여긴 76층이군요.”
팔콘맨은 미궁 76층에 나오는 몬스터다. 다행인 점이라면 팔콘맨은 대부분 혼자나 둘이서 다닌다는 점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혼자서 다닐 만큼 무력이 뛰어나다.
팔콘맨은 머리는 매의 것이고 몸은 건장한 남성의 몸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개의 머리를 한 몬스터, 놀과 비슷하지만 가지고 있는 무력의 차원이 다르다. 완력의 차이도 엄청날뿐더러 팔콘맨은 마나를 이용한 검술을 사용한다.
웬만한 기사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몬스터가 팔콘맨이다.
“몬스터의 종류만으로 층을 알 수 있는 건가?”
“일단 현재 공략된 92층까지 나오는 몬스터는 모두 알고 있어요. 팔콘맨의 경우는
76층에만 나오니까요.”
“……내려가기 위해선 제법 시간이 걸리겠군.”
“아뇨. 내려가다 보면 고층을 공략하는 클랜을 만날 가능성도 있어요. 그들 중에서
귀환부를 2~3개 가지고 다니는 모험가도 있을 테니 구입하면 되요. 바가지를 쓰겠지
만… 뭐, 미궁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레이나의 신분을 밝힌다면 바가지를 쓸 가능성도 적어진다. 집행관을 상대로 바가지 장사를 하라면 어지간한 담으로는 안 된다.
“과연. 테드 공(公)은 해박하군.”
“…일반적인 모험가라면 알고 있을 지식이죠.”
고작 이 정도의 지식으로 공이라고 불러주면 오히려 곤란하다. 그러나 기분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음. 팔콘맨이군.”
먼저 발견한 것은 레이나였다. 눈으로 포착한 것이 아니라, 길의 모퉁이 너머에 있는 기운을 느끼고 말한 것이다. 거리로 치자면 약 30M다. 테드는 느끼지도 못했다.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테드 공은 뒤에 있게.”
테드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하얀 기사가 움직였다. 분명 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갑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의 실력을 약간이지만 알려주고 있다.
레이나는 순식간에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고, 팔콘의 찢어지는 듯한 기합소리와 병장기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30초도 지나지 않아 전투는 끝났다.
상성이 좋았다. 갑옷이 단단한 괴수형 몬스터라면 몰라도, 몸집이 작은 인간형 몬스터인 팔콘이 그녀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검술을 익힌다고 해도 레이나는 국가
내의 최강자 중 한 명이다. 검술로 덤비는 행위는 자살지원이다.
돌아온 레이나의 하얀 갑옷엔 팔콘맨의 피가 묻어 있었는데, 마법이 걸려 있는지 표면에 묻은 피를 스스로 제거한다.
“웬만하면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말아 주세요. 제 탐색 범위는 5M 인지라… 그 이상
은 함정을 탐색할 수 없으니까요.”
“……몬스터를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나가버리네. 일단 주의하도록 하겠네.”
일단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반사 속도와
착용하고 있는 장비를 보자면 어지간한 함정으론 상처도 내지 못할 것이다.
팔콘은 자주 나왔다. 때로는 2마리씩 덤벼오기도 했지만 테드가 나설 것도 없이 레이나가 움직였다. 테드의 눈에는 팔콘의 검술이 겨우 보일 정도였다. 그것도 일부분은
너무 빨라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레이나의 경우엔 아예 보이지 않는다. 눈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빠른 검술이다. 거기에 그녀는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과연 집행관. 격이 달라.’
그녀의 검에 팔콘맨은 파죽지세로 참살당하고 있다. 나오면 죽어서 오히려 불쌍할 정도다.
“내려가는 계단이 있군.”
레이나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테드는 그곳을 힐끗 봤다. 계단 끝에는 하얀색의 문이 있다. 75층 게이트키퍼가 있는 방의 출구지만, 내려가는 지금은 입구다.
“75층의 게이트키퍼는 노블 라이칸 슬로프입니다. 보통의 라이칸 슬로프보다 배 이상으로 빠르고, 라이칸 슬로프와 다이어 울프를 소환하죠.”
“라이칸 슬로프라……. 그 정도면 혼자서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군.”
“노블 라이칸 슬로프입니다. 일반적인 라이칸 슬로프보다 빠르고, 가죽이 단단해 마나가 담긴 검 정도가 아니면 생채기도 낼 수 없죠. 속성이 바람이라, 발톱이 굉장히 날카롭죠. 어진간한 방어구는 그냥 찢어버려요. 거기에 하울링이라는 스킬과 버서커라는 스킬도 있는 게이트키퍼에요. 될 수 있으면 이 계단에서 다음 모험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솔직하게 말해 레이나가 이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노블 라이칸 슬로프는 게이트키퍼 중에서도 높은 지성을 가지고 있어 성가시기로 소문난 녀석이다.
75층의 인원 제한은 110명이고, 적어도 숙련된 C등급 이상의 모험가 60명 이상이 필요하다. 더욱 안전하게 공략하기 위해선 그 이상의 모험가가 필요하다.
보스 정도가 아닌, 레이드 급의 몬스터다.
“……공이 그렇게 걱정할 정도로 강한가?”
“예. 강합니다. 상대해 본 적은 없지만….”
회귀 전에 한 번 상대해본 적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나는 가야만 하네. 왕명이 있기에 여기서 멈춰 있을 수는 없네.”
레이나가 성큼성큼 계단을 밟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테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노블 라이칸 슬로프가 어떻게 공격하는 지, 약점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다. 미친 짓이다.
“자네는 귀환부를 사용해서 돌아가게. 여기까지 고마웠네.”
하얀 문의 앞에서 그녀가 뒤돌아서 테드를 보며 말했다.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테드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의 등 뒤에 있는,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문이 소리 없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 뒤! 뒤에!!”
테드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문은 열렸고 회백색의 짐승의 털로 둘러싸인 팔이 나타나 레이나의 어깨를 잡아 뒤로 던진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노블 라이칸 슬로프는 끝장을 내기 위해 그녀를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빛내며 달려간다.
“이런 젠장!!”
테드는 어금니를 악물고 계단을 향해 뛰었다. 게이트키퍼는 방에서 나올 수 없다. 당연하지만 문도 열 수 없다. 아무리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시스템이 정한 규칙이기 때문이다.
문이 굳게 닫히기 전, 안으로 들어온 테드는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눈앞의 펼쳐지는 전투는 그의 인식속도를 벗어나 있었다. 빠르게 주고받는 공방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으며, 레이나의 검과 노블 라이칸 슬로프의 손톱이 부딪힐 때마다 충격파가 나타난다.
[ 스킬, 《고결한 눈(Noble Eye)》의 랭크가 1단계 상승합니다. ]
99%에 있던 고결한 눈이 때마침 1%를 채우고 랭크를 채웠다. 그리고 드디어 테드의 눈에 둘의 전투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보이기만 하는 게 아니야. 검과 손톱의 궤도가…… 보인다.’
레이나가 검을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날카로운 손톱이 그어지지 않았음에도 어디로 향하는지 잔상같은 궤도가 보인다. 그리고 검과 손톱은 테드에게 보이는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 고결한 눈 (Noble Eye) - E Rank, 0%
미약하지만 영력이 깃들어 있는 신안(神眼)입니다. 통찰력과 투시력을 가지게 되며 사물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생명체의 경우 일부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주 가깝고 한정된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
스킬을 확인한다. 고작 E랭크인데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이건 테드에게 가장 큰 축복이자 행운이었다.
‘몸은 따라갈 수 없지만 적어도 보인다.’
보이고 안 보이고의 차이는 명백하다. 지금 고착된 상태에서 레이나에게 버프 마법을 걸어주면 놈을 이길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좋게 흘러가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앙!
노블 라이칸 슬로프가 레이나의 바로 앞에서 하울링을 내지른 것이다. 거대한 소리만으로 물리력을 행사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하울링의 진짜 효과, 정신 공격.
레이나의 신체가 아무리 마법 갑옷에 보호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갑옷은 그녀의 정신까지 보호해줄 정도는 아니었다. 정면이 아니었다면 정신에 타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바로 코앞에서 하울링이 터졌다.
비틀, 하고 그녀의 몸이 취객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틈을 노리지 않고 노블 라이칸 슬로프가 손을 뻗는다.
그러나 허공에 나타난 검은색 마법진에서 쇠사슬이 뻗어 나와 그대로 노블 라이칸 슬로프의 몸을 속박한다. 수십 개의 검은 쇠사슬은 팽팽하게 당겨져 삐그덕 거린다.
‘다크 체인으로 오래 버틸 수는 없어.’
단거리 공간이동 마법, 블링크를 이용해 비틀거리다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레이나의 몸을 잡아 지탱했다. 하얀 투구속의 눈동자는 이미 풀려 지진을 일으키듯 흔들리고 있다. 정신 공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정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면 앞으로 몇 분… 아니, 그녀의 힘이라면 몇 초 정도는 제대로 몸을 다루지 못할 것이다.
‘정신 공격에 터무니없이 약하잖아. ……아니, 나 때문인가?’
레이나의 몸을 잡고 마법을 사용한다. 레이나의 몸이 사라지고 벽의 구석에 나타나 쓰러져 있다. 레이나는 전투 중 몇 번이나 테드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얼굴이 투구에 가려있기 때문에 테드는 처음엔 몰랐지만 고결한 눈의 랭크가 상승하고 난 뒤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한 것이다.
‘하기야 집행관의 무력은 펠리스의 최고수준. 왕국의 정보를 노출하고 싶지 않았겠지.’
빠직, 검은 쇠사슬이 금가는 소리가 울린다. 다크 체인에 묶인 자는 마나가 봉인된다. 노블 라이칸 슬로프는 오직 순수한 완력만으로 다크 체인에 금이 가게 한 것이다.
테드는 부서지기 일보 직전의 쇠사슬에 묶인 라이칸 슬로프를 바라봤다. 회백색의 털 사이에 있는 노란색 눈동자는 살의를 내뿜고 있으며, 벌린 늑대의 주둥이는 흥분으로 인한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키는 약 250cm 정도로 온몸에 털이 나 있다. 자세히 보니 왼쪽 손목에 털에 묻혀 잘 보이지 않던 은색의 팔찌가 있다.
테드의 입가가 저도 모르게 말아 올라간다.
온몸이 긴장되는 것을 넘어 흥분될 정도의 전투는 얼마 만이지?
조금의 실수로 죽을 수도 있는 강자와의 전투는 회귀 전에서도 흔하지 않았다. 처음엔 이러지 않았으나, 반복된 전투는 자신의 목숨을 칼에 맡기고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 마지막 회귀의 권능을 사용할 때, 이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번 한 번 정도는 상관없지 않을까.
그냥 잠시 동안만,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회귀 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애써 눌러 놓았던 투지를 일으킨다.
“지금부터 내가 상대해주마.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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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속담.
제 버릇 개 못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