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19화 (1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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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궁 도시 루크에이스.

문을 열자 보인 것은 넓은 동공이었다. 문은 테드가 들어서고 얼마 뒤 스스로 닫히기 시작한다. 바닥은 검은색 돌로 되어 있고, 천장은 돔 형태로 굉장히 높다. 시야는 미궁보다 밝은 편이다.

동공의 반대편에는 하얀색 문이 하나 있다. 테드의 등 뒤에 있는 문과 모양이 똑같이 생겼으나 색이 달랐다.

천천히 감상할 시간은 없다. 동공의 중심에 연기가 모여들어 하나의 형상을 갖춘다. 빠른 속도로 만들어진 그것은 뼈다귀로 이루어진 도마뱀이다.

크기는 호랑이와 비슷하지만 그 흉포성은 호랑이 이상이다.

공룡을 연상시키는 해골과 삐죽한 가시가 빼곡히 박힌 거대한 꼬리. 뼈로 된 4개의 다리는 얼핏 보기엔 빈약해 보이지만 순간적인 속도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5층의 게이트 키퍼, 스컬리스크(Skullrisk).

입에서 불을 뿜기도 하는 해골 도마뱀이다. 지성이 없기 때문에 공격 패턴이 단조로워 조심만 한다면 초보 모험가 파티도 쉽게 잡을 수 있다.

스컬리스크는 뻥 뚫린 두개골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이며 테드를 포착한다. 그리고 탐색 시간도 없이 그대로 짐승처럼 달려든다.

“늦어.”

테드는 가볍게 몸을 옆으로 이동시키는 것으로 스컬리스크의 공격을 피했다.

전투의 기본은 ‘보는 것’이다. 상대의 시선과 육체의 움직임을 보고 공격을 피할 수 있다. 숙련되면 예측 또한 가능하다.

지성이 있는 몬스터라면 자신의 동작을 속이기도 하지만 5층의 게이트키퍼인 스컬리스크에겐 지성이 없다. 그저 정해진 대로 공격한다.

스컬리스크는 그대로 꼬리를 휘두른다. 원심력을 담은 꼬리는 엄청난 속도로 쇄도해오지만, 테드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뒤로 물러서며 꼬리를 피해낸다. 꼬리가 지나가며 날카로운 풍압이 발생한다. 눈에 부딪히는 풍압에 미간을 찌푸리며 스컬리스크를 향해 오른손을 뻗는다.

“그래비티 해머(Gravity Hammer).”

쾅!

보이지 않는 중력의 망치가 그대로 스컬리스크의 두개골을 강타한다. 두개골의 일부가 부서져 바닥으로 튀었지만 스컬리스크는 멀쩡하다. 비틀거리지도 않는다.

“……살아 있었다면 못해도 기절했을 텐데. 이래서 언데드는 성가셔.”

고통을 모르기에 팔이 부러져도 움직인다. 완전히 멈추기 위해선 핵이 되는 두개골을 박살내는 수밖에 없다.

스컬리스크는 테드를 향해 입을 쩌억 벌렸다. 그리고 거기서 붉은색의 불이 이글거리며 나타난다.

“아! 이 자식 불도 내뿜었었지.”

불을 내뿜는다고 해도 파이어볼처럼 물리적인 파괴력은 없다. 그냥 단순히 불을 내뿜는 것뿐이다.

테드는 쉴드를 사용해 불을 막아냈다. 그러나 불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스컬리스크는 그대로 몸을 회전해 원심력을 담은 꼬리를 휘두른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쉴드가 산산이 조각나 사라진다. 테드가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났다. 꼬리가 아슬아슬하게 테드의 머리를 지나친다. 만약 스컬리스크의 꼬리가 머리에 부딪혔다면 그대로 머리가 박살 났을 것이다.

‘……내가 죽을 뻔했다고?’

스컬리스크는 당황하는 테드를 물어 죽이기 위해 도약한다. 입을 쩌억 벌리고 그 작은 머리를 한입에 삼키기 위해 덤빈다. 그러나 그 주변으로 검은색 십몇 개의 검은색의 마법진이 나타나며, 잘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 속에서 검은 쇠사슬이 모습을 드러내 그대로 스컬 리스크의 몸을 감는다.

앞다리와 뒷다리, 몸체, 꼬리, 입 할 것 없이 묶어서 허공에 속박시킨다.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속박된 상대의 마나를 봉인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다크 체인(Dark Chain)』이라 불을 내뿜을 수도 없다.

테드가 스승에게서 배운 비전 마법 다크 체인은 순수한 완력이나 기술로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테드의 입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흘려 나왔다.

“……자만했어.”

방심하고 얕봤다. 고작 5층의 게이트키퍼라며 무시했다. 방금 전 추영에게 충고를 들

은 주제에 방심해서 죽을 뻔했다.

상대가 약하다는 이유로 설렁설렁 상대했다. 전생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며 무심코 마음을 놓고서 싸웠다.

“하아.”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답답한 한숨이 나왔다.

육체능력, 마력량, 스킬, 장비. 그 전부가 전생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는 대마도사가 아니야.”

대마도사의 지식과 경험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미궁에서는 일개 마법사일 뿐이다.

“……이젠 자만하진 않아. 노는 것도 없어.”

전투는 간결하게.

테드는 오른손바닥을 위로 치켜들었다. 미궁의 저층이라 할지라도 방심한 모험가는 죽는다. 다시금 그걸 깨닫는다.

“모험가의 일보에는 목숨이 달려 있다.”

더 이상의 방심은 없다.

치켜든 오른손바닥을 주먹으로 말아 쥔다. 검은색 마법진에서 쇠사슬이 늘어나며 스컬리스크의 몸을 칭칭 감싸기 시작한다.

그 하얀색의 뼈를 검은 쇠사슬로 뒤덮는다. 얼마안가 스컬리스크는 쇠사슬에 둘러싸인 거대한 고치가 되어 있었다.

테드는 오른 주먹을 아래로 내렸다.

빠지직! 검은 쇠사슬의 고치가 수축하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린다.

마법을 풀자 검은 마법진과 쇠사슬은 그대로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아이 주먹보다 조금 작은 마나석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마나석을 주워 아공간에 집어넣은 테드는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과 달리 테드의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 ⁂ ⁂

“……이걸 어쩐담.”

녹색 바닥에 앉아 있는 테드는 곤란한 듯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8층에서 재수 없게 함정에 걸려 미궁의 몇 층인지 모를 곳으로 이동되었다.

방심은 하지 않았다. 운이 나빴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궁은 무작위로 함정이 나타난다. 테드의 경우엔 길을 이동하는 중, 함정이 나타난 것이 바로 자신의 발밑이었다. 공격계 함정, 불이 솟거나 화살이 나온다든가 하는 등의 함정이었다면 발동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기에 마법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이계, 미궁의 랜덤한 장소로 이동시켜버리는 최악의 함정은 대처할 시간 자체를 주지 않는다.

다행히 테드는 몬스터와 마주치기 전에 안전지대인 세이프티 존을 발견하고 들어올 수 있었다.

‘모험가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미궁의 중층이나 고층인가.’

지금이라도 당장 미궁을 벗어날 수 있는 귀환부가 있으니 당황할 필요는 없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먹지 않았나.’

7층에서 세이프티 존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8층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점심을 먹지 못했다. 아공간을 열어 사이나가 만들어 준 도시락과 젓가락을 꺼낸다.

아공간 덕분에 도시락은 따끈따끈하다. 내용물은 이미 알고 있지만 한껏 기대를 품으

며 뚜껑을 열었다.

하얀 쌀밥 조금과 갈색의 소스로 덮인 돈가스. 단 두 종류뿐이지만 벌써부터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지나가듯 말한 걸 용케도 기억하고 있단 말이야.’

솔직히 테드는 언제 말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사이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감격스러움과 동시에 감탄을 흘러내리게 할 정도의 기억력이다.

‘사이나 앞에선 말조심해야지.’

드래곤 고기를 먹고 싶다고 넌지시 말하면 정말 드래곤을 사냥해 요리할 것 같다.

먹기 쉽도록 한입 크기로 잘려진 돈가스를 젓가락으로 집어 든다. 갈색의 소스 사이로 엿보이는 돈가스의 튀김옷과 하얀색의 속살은 테드의 이성을 잠시나마 마비시킬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그대로 돈가스를 조심히 들어 한입에 먹는다. 바삭바삭, 듣기에도 황홀한 소리가 울린다. 빨리 먹을 필요는 없다. 아니, 빨리 먹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이 부드러운 속살을 혀로 즐기고 싶다.

‘이번엔 밥과 먹어 보자.’

윤기가 좔좔 흐르는 밥을 입 안에 넣는다. 조금 밥을 씹자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지체하지 않고 돈가스를 입 안에 넣는다.

환상,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맛이 온몸을 지배한다.

‘너무 맛있어. 사이나는 혹시 요리 스킬 있는 거 아니야?’

손을 멈추지 않고 다시 젓가락으로 돈가스를 집으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생물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공복에 의한 소리다.

빠르게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다.

“…어, 음. 미안하네.”

하얀색의 전신갑옷을 입은 짧은 금발의 여자였다. 살짝 그을린 피부의 그녀는 하얀색 투구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있다. 허리춤에는 고급스러운 은색의 검집에 들어 있는 롱소드가 보인다. 힐트는 황금색으로 만들어져 있고, 품멜에는 황금색 장미가 조각되어 있다.

얼굴이 살짝 붉은 것은 자신의 꼬르륵 소리가 부끄러운 것이다.

“그… 초면에 이런 말하기도 그렇지만, 음식을 나눠줄 수 있겠나? 답례는 꼭 하겠네.”

‘돈가스를 달라고? 미친 소리!’

테드의 행동은 빨랐다. 도시락의 뚜껑을 그대로 닫고서 양손으로 꽉 잡는다.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테드의 필사적인 행동에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꼭 어린아이의 음식을 뺏어먹는 불한당이 된 기분이다.

“아주 약간이라도 상관없네만…… 주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미안하군.”

그녀가 풀죽은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테드는 아공간을 열어 빵을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빵을 받아든 그녀는 테드의 아공간을 보고 입을 벌렸다.

“어려 보였는데 마도사급 마법사였나. 하긴 그러니 이런 곳에 혼자 있겠지.”

“아…뇨. 아티펙트에요.”

순간 반말이 나올 뻔 했으나 곧장 존댓말로 고쳤다. 상대방이 입고 있는 하얀 갑옷을 보자면 모험가가 아닌 기사로 보였기 때문이다.

‘왜 기사가 미궁에 있는 거지?’

테드가 의문을 가질 때 그녀는 테드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테드는 놀란다. 자존심 강한 기사는 일개 모험가에게 고개를 잘 숙이지 않는다. 그것도 처음 보는 인물에게는 특히나.

“고맙네. 이 은혜는 언젠간 꼭 갚도록 하지.”

“뭐, 은혜까지야…….”

여기사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빵을 먹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져 있기에 안심하고 도시락을 연다. 언제 달라고 할지 모른다. 아까처럼 천천히 식사를 즐길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 몇 층이신지 아시나요?”

문득 생각난 질문을 묻자 그녀가 손을 멈추고 테드를 바라봤다. 머리색과 같은 황금색 눈동자다.

“……자네도 함정에 걸려 이곳에 왔나?”

“…….”

그 말에 테드는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 또한 자신처럼 전이계 마법에 걸려 이 층에 떨어진 것이다.

“귀환부는 있으시죠?”

“……그게 함정 방에 걸려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상대할 때 잃어버린 것 같네. 혹시 여분의 귀환부가 있다면 팔아줄 수 있겠나? 지금은 대금을 지불 할 수 없지만 나의 이름, 레이나 델톤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지불하겠네.”

“저도 한 장 뿐인지라…… 아니, 그보다 레이나 델톤?!!”

“없다면 어쩔 수 없지. 혼자서 어떻게든 내려가는 수밖에.”

레이나 델톤.

인간왕국 펠리스의 12 집행관 중 한 명, 금장미의 수호자.

펠리스의 최고 무력을 보유한 인간 중 한 명이다.

“확실히 신문에서 ‘루크에이스의 과실’을 얻으러 왔다고 읽었어요. 설마 여기서 마주칠 줄이야.”

“그 신문을 읽었나. 그 말대로 루크에이스의 과실을 얻기 위해 왔다만… 미궁을 너무 얕봤어. 설마 고층은 가지도 못하고 42층에서 함정에 걸릴 줄은 몰랐네.”

그녀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자신의 무력이라면 미궁 공략 정도는 손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숙련된 모험가 파티들이 없었다면 중층도 못가고 함정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을 것이다.

“준비가 부족했지. 루크에이스의 과실은 포기해야 할 듯싶군.”

레이나의 말에 테드는 이상함을 느꼈다. 12집행관은 왕의 빠돌이. 빠순이가 모인 집단이다. 왕이 구해오라고 명령하면 아무렇지 않게 강도짓도할 수 있는 게 집행관이다. 그런 집행관이 ‘왕명’으로 받은 루크에이스 과실을 간단히 포기 한다고?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왕명을 사칭할 리는 없다. 그건 반역죄에 해당된다. 실제로 그녀는 루크에이스 과실을 구해오라는 왕명을 받았을 것이다.

‘루크에이스의 과실은 효과가 무척이나 뛰어난 정력제. 내가 아는 지금의 왕은 정력제를 구하는 사람이 아니야.’

생각이 깊어지려고 하자 테드는 고개를 저었다. 정치가 관련된 일일 수도 있다. 괜히 말려들면 큰일 나는 건 테드 쪽이다.

‘이 세계는 정치도 판타스틱하게 한단 말이지.’

그냥 관련되지 않고 쥐죽은 듯이 지내는 것이 최선이다.

============================ 작품 후기 ============================

-저층 구간: 1 ~ 19층

-중층 구간: 20 ~ 59층.

-고층 구간: 60층 ~ 89층.

-최상층 구간:90층 ~ 99층.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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