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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궁 도시 루크에이스.
루크에이스 미궁의 입구에는 자판기가 놓여 있다. 모험가 길드가 관리하는 자판기는 단 한 가지의 물건밖에 판매하지 않는다. 바로 ‘귀환부’라 불리는 종이 쪼가리다. 시스템이 만든 귀환부는 미궁 1층에 있는 ‘귀환석’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다.
고층 미궁에서 바로 귀환하거나 위기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다. 모험가에겐 필수품인 물건으로 시스템이 만들고 모험가 길드가 판매하고 있다.
미궁에선 텔레포트류의 장거리 이동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기에 테드도 만일을 위해 구입한다.
가격은 10골드. F등급의 모험가에겐 적잖게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목숨 값으론 싼 편이다.
귀환부는 하얀색의 손바닥만 한 종이에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10골드를 자판기에 넣고 구입한 테드는 곧장 아공간에 넣었다.
루크에이스 미궁의 1층에는 토끼가 나온다. ‘루크에이스 래빗’이라 부르는 놈들로 보통의 토끼보다 몸집이 2배 이상 크고 네모난 앞니 대신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로 대부분 혼자 다니니 방어구만 제대로 갖추면 큰 위협이 없다.
주로 F등급의 초보 모험가가 혼자 사냥하는 몬스터다. 작은 마나석과 가끔 송곳니를 드랍하는 몬스터다.
1층은 초원 같은 곳이다.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바닥에 풀과 흙이 있고 천장은 5M 정도지만 보기엔 하늘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탁 트인 공간은 최대 1KM가 넘는다. 미궁이 바깥세계와 다른 공간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초원의 중앙에는 귀환석이 있고, 초원의 끝 부분엔 투명한 벽이 있어 입구를 제외한 곳으로 나갈 수가 없다. 결계보다 단단한 벽은 어떠한 마법, 공격도 먹히지 않는다.
테드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루크에이스 래빗을 피해냈다. 미궁의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선공이다. 모험가가 보이면 바로 달려든다.
“라이트닝(lightning).”
가벼운 전기쇼크 한방에 래빗은 그대로 감전되어 사망한다. 시체는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마나석을 남긴다.
나온 것은 새끼손가락 크기의 작은 마나석이다. 순도가 낮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따로 정제해야 한다. 가격은 마나석 하나당 대략 5~10쿠퍼 정도로 값싸다.
물가가 높은 루크에이스에서 모험가가 래빗을 잡으며 살아갈 수 없다. 생계를 위해선 위층으로 올라갈 필요가 있다.
테드 또한 위층으로 올라가 생각이다. 마법 한 방에 죽는 몬스터로 수련이 될 리가 없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던전의 끝 부분에 있다. 아무런 지지대도 없이 공중에 떠
있는 계단이기 때문에 허공계단이라고 불린다.
테드는 이 허공계단을 밟으며 2층으로 올라왔다. 미궁의 1층이 튜토리얼이라 불리 정도로 안전한 곳이라면 2층부터는 진짜 미궁이다. 미로처럼 길이 꼬여 있고, 천장에서 나오는 빛은 밝지 못하다. 더군다나 위험한 함정이 2층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까딱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긴장하며 걸어야 한다.
함정의 위치나 길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지도는 의미가 없다. 필요한 것은 정찰에 뛰어난 레인저다. 미궁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이라 할 수 있다.
레인저가 없는 테드는 스스로 탐색 마법을 사용한다. 적당한 마력을 소모해 발동해, 테드를 중심으로 5M내의 함정을 발견하는 마법이다. 30분마다 다시 걸어 줘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30분간은 레인저가 있는 파티보다 안전하게 미궁을 걸을 수 있다.
“스켈레톤이었나.”
단점이라면 레인저보다 몬스터를 발견하는 게 늦다는 점이다. 2층에 나오는 스켈레톤의 경우엔 그렇게 위험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미궁의 중층에선 여러 종류의 몬스터가 나오기에 정찰을 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150cm의 스켈레톤은 보기에도 앙상한 뼈만 남아 약해 보이는 몬스터다. 최하급 언데드로 사냥은 그리 어렵지 않다. 손톱과 손에 쥔 단검을 조심하면 된다. 지능이 없어 가까이 다가가 팔을 휘두르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스켈레톤은 테드를 발견하자마자 뛰어 달려들기 시작한다. 뼈밖에 남지 않아 둔해 보이지만 의외로 스켈레톤은 민첩하다. 일반 사람과 비슷한 속도다. 방심하면 당할 수 있다.
테드는 스켈레톤이 휘두르는 단검을 여유롭게 몸을 젖혀 피해내며 그대로 하이킥을 꽂아 넣는다. 스켈레톤의 몸이 충격을 받아 뒤로 물러나 바닥에 쓰러졌다.
테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해골을 부숴버릴 생각이었는데…….”
어린아이의 신체 능력이 약하다. 마법을 쓰면 간단하지만 이런 잡것들에게 마법을 펑펑 쓰면 마력은 금방 소모된다. 미궁에서의 마법사는 마력을 어떻게 사용 하냐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스켈레톤은 다시 일어선다. 뇌가 없는 스켈레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기절도 하지 않는다.
“적당한 검이라도 구해서 검술을 연습해야겠어. 에어 붐(Air Boom).”
덤벼들던 스켈레톤의 몸이 허공에서 터진 공기 폭발에 그대로 박살 난다.
스켈레톤이 드랍한 마나석을 주우며 테드가 혀를 찼다. 이래선 도저히 수련이 되지 않는다. 최하층의 몬스터는 너무 약하다.
“대충 13~14층 정도로 올라가 볼까.”
테드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스켈레톤이 몇 마리가 덤벼들었으나 간단한 마법으로 가볍게 해치웠다.
미궁 2층부터는 세이프티 존이라는 것이 있다. 바닥이 녹색으로 변색되어 있는 곳을 말하는데 몬스터에게서 안전한 유일한 장소다. 몬스터는 세이프티 존으로 가지 않으며, 세이프티 존에 있는 모험가를 발견해도 공격하지 않는다.
1층에는 존재하지 않고 게이트키퍼(Gatekeeper)가 있는 5의 배수 층에도 없다.
게이트키퍼는 수문장이라고 해서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꺾어야 하는 놈들이다. 게임으로 치자면 네임드 혹은 중간 보스 몬스터에 속한다.
게이트키퍼를 꺾지 못하면 당연히 위에 올라갈 수 없고,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로 게이트키퍼를 꺾어야 한다.
5층, 게이트키퍼가 있는 방의 앞에는 수많은 모험가들이 줄 서 있다. 게이트키퍼의 방에는 입장인원이 정해져 있다 보니 자연스레 생기는 줄이다. 그러나 줄은 빠르게 줄어든다. 5층의 게이트키퍼인 스컬리스크(Skullrisk)는 초보모험가 파티도 조심만 한다면 아무 피해 없이 충분히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어도 5분이 걸리지 않아 전투는 끝나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어린애잖아.”
“애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혼자 여기까지 온 건가. 하프 드워프 아니야?”
모험가들은 테드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미궁은 어린애가 아무렇게나 올 정도로 평화로운 장소가 아니다. 테드같은 어린아이가 5층까지 온다면 관심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너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냐?”
테드의 앞에서 줄 서고 있던 등에 할버드를 장비한 전사가 물어왔다. 덩치가 크고 얼굴엔 흉터가 가득해서 무표정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다.
“걸어 왔어.”
테드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저층의 미궁은 그리 넓지 않고 길도 복잡하지 않다. 테드의 경우 덤벼오는 몬스터들 모조리 상대한다고 2시간 정도 걸렸다.
“사도냐?”
드워프라 하기엔 귀가 뾰족하지 않고, 수염도 없다. 겉모습만 보면 완전한 휴먼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밖에 없다. 이름 없는 신의 사도. 환생자들.
“그래. 사도야. 이젠 궁금한 건 없겠지.”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미궁에서 마주친 모험가들을 향해 일일이 전부 다 설명해야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이 누군지 소개하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엄청나게 귀찮고 짜증도 났다.
전사는 테드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입고 있는 옷은 회색의 코트다. 흙먼지나 핏자국은 찾아볼 수 없다. 찢어진 부분도 보이지 않는다. 특이한 것은 장갑이었다. 오른손에만 검은색 장갑을 끼고 있다. 전사는 한 눈에 범상치 않은 물건이란 걸 알아차렸다.
“무투가라 하기엔 손이 너무 곱군. 마력이 느껴지는 것을 봐선… 마법사인가?”
“……그 근육과 흉터, 무기를 봐선… 전사인가?”
테드가 되받아치듯 말했다. 전사는 ‘전사의 표본은 나다!’라고 말하는 듯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어디를 봐도 전사다.
“하하하. 훑어보듯 봐서 기분 나빴나?”
“그렇게 품평하듯 쳐다보면 당연히 기분 나쁘지.”
건방지게 느낄 수 있지만 전사는 호탕하게 웃어넘긴다. 살벌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성격은 나쁘지 않다.
“사과의 뜻으로 나에 대한 정보를 가르쳐 주지.”
“필요 없어.”
테드가 딱 잘라 말했지만 전사는 그대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사람 말을 어지간히 듣지 않는 타입의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 있으면 주위의 사람이 피곤해진다.
목소리도 커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 해도 머릿속에 날아와 박히는 느낌이다.
“내 이름은 추영 바로크. 이름에서 알 수 있겠지만 너와 같은 사도다. 환생하기 전
에는 중원의 무림이란 곳에 있던 3류 무사지. 별호는 없었다.”
“무림 출신들은 보통 기사를 하지 않아?”
무림 출신이란 말에 흥미가 솟은 테드가 물었다. 사도들은 온갖 사람들이 있다. 무
림 출신, 마법사 출신, 과학자 출신 등의 지식과 경험을 지니고 환생한 사도들이 있
다. 그들은 그나마 좋은 편이다. 적어도 네메스 대륙에 통하는 지식과 경험이 있으니
까.
지구 출신의 환생자들도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네메스 대륙과 맞지 않다. 동식물에 대한 지식도 없으며, 평화로운 시대의 도덕이 생물을 손쉽게 죽이지 못하게 한다. 기술이 있다면 그나마 낫다.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대학생이었던 테드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교는 1달도 못 다니고 죽었으며, 고등학교에선 주입식 교육을 받았을 뿐이다. 성인의 육체였다면 막노동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또래의 어린아이보다 조금 더 좋을 뿐인 신체능력은 막노동도 불가능했다.
“내가 익힌 건 외공이고, 낭인 출신이라 기사 일은 성미가 맞지 않아 모험가를 하고 있다.”
외공이란 말에 테드가 그의 몸을 다시금 살펴보았다. 커다란 덩치에 근육질이지만 피부는 흉터투성이다. 외공을 수련하는 그의 몸이 근육질인 것은 당연하지만, 흉터는 수련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몬스터와의 사투, 그 흔적들이다.
“……나는 지구 출신의 마법사야.”
“호오. 지구 출신의 마법사는 희귀하다고 알고 있다만. 지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
야. 이거 운이 좋군.”
테드의 세계에선 마법사나 무림인이 없었지만 평행세계의 지구에선 존재했다고 한다.
테드는 고개를 으쓱였다. 진실을 말해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미궁엔 혼자서 왔냐? 연습 삼아?”
“혼자서 왔어. 수련 삼아. 적당히 전투 감각도 익히고 돈도 벌려고.”
“음. 이해하지. 나도 그랬으니.”
추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미궁도시에 처음에 왔을 때, 테드와 같은 기분이었다. 괴물을 상대로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자는 생각과 강해질 수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신만만하게 미궁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건 미궁을 너무 무시했다.
“일단은 모험가 선배로서 충고하는데… 미궁을 얕보는 건 그만두는 편이 좋을 거다.
그리고 몬스터를 조심하고, 함정을 더욱더 조심해라.”
이미 알고 있고 주의하고 있는 내용의 충고였지만 테드는 고개를 끄덕여 묵묵히 받아들였다. 추영은 선의로 하는 말이고, 몇 번을 들어도 옳은 말이었다.
“모험가의 일보에는 목숨이 달려 있지.”
“……알고 있었나. 지금 막 가르쳐주려고 했었는데… 아쉽게 되었군.”
“워낙에 유명한 격언이니까.”
수다스러운 전사는 불만인 듯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모험가의 일보에는 목숨이 달려 있다.’ 어디서부터, 누구에게서 만들어진 말인지 모른다. 그러나 모험가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격언이기도 하다.
테드는 추영과 대화하게 되었다. 말하는 걸 좋아하는 추영이 주로 미궁이나 몬스터, 자신의 경험담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뿐이지만 들어보면 제법 쓸만한 정보가 들어 있다. 그는 루크에이스에서 무려 11년이나 생활한 B등급의 베테랑 모험가다.
“추영! 우리 차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추영이 속한 파티가 게이트키퍼가 있는 방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스컬 리스크 정도야 조심하면 혼자서도 잡을 수 있을 거다. 그래도 웬만하면 파티에 들어가는 걸 추천하지.”
파티원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시끄러운 남자였다. 아니,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하나.
추영의 파티가 들어가자 게이트키퍼가 있는 거대한 회색의 문이 쿵, 하고 닫힌다. 문의 최상단, 검은 부분에 붉은색 동그라미가 나타난다. 안에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그
들이 통과하거나 죽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1분도 되지 않아, 붉은색 동그라미가 사라진다.
테드는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