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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궁 도시 루크에이스.
“주인님 일어나세요.”
테드의 아침은 사이나가 깨워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악마인 사이나는 루크에이스에 오기 전 숲이나 길에서 노숙할 때도 항상 테드보다 먼저 일어나 테드를 깨운다. 그건 루크에이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침대에서 자는 거라 푹 잤어.”
테드는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제 구입한 집과 가구인지라 조금 낯설지만 기억력을 더듬어 1층의 욕실로 들어간다.
집은 미궁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2층 주택이다. 정원까지 딸려 있지만 항상 겨울 날씨인 이곳에서 하늘에서 내린 눈으로 가득한 정원을 가꾸는 등의 행위는 불가능하다.
은퇴한 모험가의 주택이었던 이곳의 1층에는 거실과 부엌, 욕실, 방 하나가 있고. 2층엔 방 3개가 있다. 복도 끝 방이 테드의 방이고 바로 옆방이 사이나의 방이다. 나머지 한 방은 집무실로 사용하기로 되어 있으며, 1층의 방은 창고 겸 언제 올지 모를 손님방이다.
“분명 어제 산 집인데. 정리가 다 되어 있잖아.”
욕실에서 나온 테드가 자신의 집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분명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 본 집안은 개판이었다. 이것저것 사온 생필품과 대충 집 안에 넣어 놓은 가구 등. 정리보단 혼돈 같은 상황이었다. 절대 지금과 같은 깔끔한 집이 아니었다.
“과연 악마 메이드라고 해야 하나… 엄청 우수해.”
소파, 테이블, 옷걸이. 벽시계. 기타 장식품 등 전부가 정리되어 있다. 자고 일어났더니 인테리어가 끝나 있었다. 우렁각시 사이나다.
정리된 집에 감탄하며 둘러보고 있을 때, 코끝에서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움찔하고 몸이 굳는다. 익숙한 냄새지만 아주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다. 몸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부엌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엌에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는 사이나가 있었다. 메이드복 위에 새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를 손에든 채 요리를 하고 있다. 그 뒷모습이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정말 오랜만에 생각나는 기억에 눈물이 핑 돌았다. 테드는 누가 보기 전에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오셨나요. 잘 됐군요. 이제 곧 완성된 참입니다.”
사이나가 국자를 놓고 된장찌개가 담긴 냄비를 들고 식탁으로 다가와 중앙에 놓는다. 주위에는 김치와 시금치, 계란말이, 두부조림 등의 밑반찬이 놓여 있다.
“…….”
“가만히 서서 뭐하시죠? 어서 앉으세요.”
테드가 멍한 표정으로 식탁을 보며 식탁 앞에 앉았다. 사이나는 냄비에서 쌀밥을 퍼서 식탁 위에 놓는다. 테드와 사이나의 것, 두 공기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끝내고서 앞치마를 벗어 옆에 두고 테드의 맞은편에 앉는다.
“이걸… 혼자서 전부 한 거야?”
“네. 어제 한식을 먹고 싶다고 하셨기에… 요리책을 보고 해봤습니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이나를 위해 책 여러 권을 구입할 때, 전시된 요리책을 보고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다. 다음 날 아침에 한식을 차리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었다. 아니, 그전에 책을 보고 이런 완벽한 요리를 만드는 사이나가 정상인가.
“일단 처음 하는 요리인지라 간은 제 입맛에 맞췄기에, 주인님의 입맛에 맞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데 그럴 리가.”
테드는 숟가락으로 된장찌개 한 숟가락을 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를 그대
로 입에 넣는다. 테드는 시간 회귀 전 식당에서 파는 된장찌개를 먹어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이 된장찌개만큼 맛있지 않았다.
“……엄청 맛있어.”
“처음 하는 요리라 불안했는데 다행이군요.”
사이나가 숟가락을 드는 것을 보고 테드가 빙그레 웃었다. 처음, 사이나는 하인으로서 주인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없다며 거절했었다. 괜히 혼자 먹기 싫어서 앞으로 식사는 같이하자고 명령했다. 테드는 지금 이 순간 최고의 명령이었다고 생각했다.
‘사이나와 만난 것 자체가 행운이지.’
다른 악마였다면 사이나처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행운이 좋은 편이었다.
[행운이 1 상승합니다]
메시지가 나타났다. 원래 행운이란 스탯이 느닷없이 오르지만 지금 이 타이밍에 메시지가 뜨니 묘한 기분이었다.
“아, 도시락도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주인님.”
“그래 주면 고맙고.”
미궁에서 저층을 사냥을 할 때는 도시락을 가지고 간다. 하루 안에 충분히 사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층이나 고층을 공략할 때는 따로 식량배낭을 가지고 가야한다. 중층부터 올라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미궁 안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파티 단위로 올라갈 수 있는 미궁에는 한계가 있다. 몬스터의 위험 때문이 아니라 짊어질 짐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보통 중층을 공략할 때는 2~3개의 파티가 함께 모여서 가거나 파티의 상위개념인 클랜이 공략을 한다.
테드는 오늘 저층에서 홀로 사냥할 생각이다. 마나석이 목적이 아니라 무뎌진 전투감각을 갈고닦기 위해서다. 그리고 중층이상은 테드로서도 무리다. 신체능력도 신체능력이지만 마력에도 한계가 있다. 미궁의 특성상 층이 높을수록 더 강한 몬스터가 더 자주 나타난다. 지금으로선 무리다.
‘사이나라면 고층까지 혼자서 가능하려나?’
고층의 초입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신체능력과 힘은 1할로 줄어들었지만
그녀가 200년간 쌓아온 전투경험과 단련해온 검술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저녁엔 김치찌개를 준비하겠습니다.”
“어? 진짜? 할 줄 알아?”
“책에 나와 있더군요. 자신은 있습니다.”
생전 처음 하는 된장찌개를 놀랄 정도로 맛있게 만드는 그녀라면 김치찌개도 맛있게 끓일 것이다. 하지만 김치가 불안하다. 10실버나 주고 산 김치 1포기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맛없다. 차라리 10실버로 돼지고기나 살 걸 하고 후회가 될 정도다.
아침 식사는 테드가 밥 1공기를 더 먹고 나서야 끝이 났다.
테드는 현관을 나서기 전, 자신을 맞아주는 사이나를 보았다. 무표정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테드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좋을 대로 생각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경우엔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고 멋대로 상상했다.
“위험할 땐 망설이지 말고 저를 불러주십시오.”
사이나는 작은 열쇠를 하나 그에게 건넸다. 대문은 마법식이라 열쇠가 필요 없다. 이건 마법 방지가 걸린 현관문의 열쇠다.
“제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가지고 다녀주십시오.”
“알았어.”
테드는 열쇠를 코트의 주머니에 넣고서 현관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무단으로 침입한다.
“그럼 다녀올게.”
“잘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그녀의 인사를 받으며 현관을 나서 미궁으로 향한다.
미궁으로 향하는 중, 테드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만져 봤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집 열쇠를 가져 봤다. 회귀 전, 집을 가져본 적 있지만 집을 신경 쓴 기억은 없다. 정이 붙지 않는 여관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거기에 집보다 막사나 병영에서 생활하는 일이 더 많았다.
“환생하고 처음이네. 집 열쇠를 가져 보는 건.”
미궁으로 향하는 모험가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아공간에 열쇠를 넣는다. 잃어버리면 큰일이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얼어붙은 지면을 밟는 발걸음이 가볍다.
⁂ ⁂ ⁂
파티 레드 베어의 리더, 야크는 자신의 방에 모인 제녹과 마루마의 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오늘 새벽, 루크에이스에 도착한 그들은 제각각 흩어져 할 일을 했다. 야크의 경우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방에서 쉬게 되었지만 제녹과 마루마는 새벽부터 도시를 돌아다니고 아침이 지난 지금에서야 여관에 들어왔다.
마루마는 얼어있는 턱에 난 염소수염을 매만져 녹이며 입을 열었다.
“정보 길드에 갔다만, 별다른 소식은 얻지 못했다. 애 쪽은 ‘테드 크루시안’이란 이름으로 마법사라 하더군. 어린 나이란 점과 재능 때문에 정보길드에서도 눈여겨보는 모양이다. 여자는 ‘사이나 루키페르’. 미녀 메이드라는 점을 제외하곤 정보길드가 알고 있는 건 없다. 정보 길드에 둘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
“정보 길드에 정보가 없다니……. 어디 깡촌의 부잣집 도련님인가?”
그들에겐 좋은 일이었다. 네메스 대륙의 귀족이란 귀족은 모조리 꿰고 있는 정보길드가 모른다는 것은 적어도 이름 있는 귀족 집안의 자식은 아니라는 것이니까.
“어, 정말 그것뿐이야? 내가 알아낸 정보가 더 많잖아. 요즘 정보 길드에 인원이 부족하다더니 사실인가 보네.”
제녹이 고개를 으쓱였다. 루크에이스에서 발이 넓은 제녹은 정보 길드가 아닌 직접 도시를 뛰어다니며 정보를 긁어모았다. 은밀하진 않지만 정보길드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경우가 지금처럼 종종 있다.
“그 녀석들이 주택을 구입했는데 마법 상점에서 마법 물품을 대량으로 판매한 모양이더라. 주택도 엄청나게 비싸다고 하던데?”
“들을수록 속이 쓰려 오잖아. 우리가 조금만 빨랐어도 그 주택은 우리 것이었는데.”
야크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순 억지였으나 제녹은 그의 말에 맞장구치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택 말고도 음식이나 가구, 생필품 등 온갖 걸 사 갔다고 하더군. 주인과 하인보다는 신혼 같은 분위기라던가. 메이드가 엄청나게 예쁘다던가. 뭐, 그렇게 유용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정보는 그게 전부인가?”
마루마가 물었다. 제녹이 부정하듯 씩 웃었다.
“유용한 정보도 얻었어. 오늘 아침에 마법사 꼬마가 홀로 미궁으로 떠났지. 듣기에는 길거리에서 아공간 마법을 사용했다고 하던데?”
“……아공간이라고? 꼬마가?”
마루마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진다. 아공간은 적어도 마도사급의 마법사가 아니면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그곳에서 얻은 특별한 아티펙트일게 뻔해.”
제녹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 꼬마가 마도사 급의 꼬마라면 굳이 루크에이스에 올 필요가 없다. 어떤 나라를 가도 환영받는 마도사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험난한 모험가 생활을 왜 하는가.
“요컨대. 지금 집에는 메이드 밖에 없다는 거?”
야크의 눈이 위험한 빛을 품었다.
“……그렇지만 도시 안이라고? 아무리 루크에이스라해도 도시 안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뒤처리가 힘들어. 둘 다 모험가 등록했던 모양이고. 안전하게 둘이 미궁에 들어갔을 때 처리하는 게 어때?”
미궁은 범죄를 저지르기에 최적의 장소다. 몬스터나 함정을 이용해 처리하기도 편하고, 누군가의 시선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미궁에서 모험가를 죽인 경우가 많다. 미궁에서 실종되면 전문적인 조사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말이야. 아까 전 여관에서 예전 동료를 마주쳤거든? 우리가 모험가 길드에게 의심받고 있다고 경고해주더라. 증거는 없는 모양이지만, 알잖아? 모험가 길드에 눈 밖에 나면 모험가 때려 치워야 한다는 거.”
국가의 소속되어 있는 도시라면 모르지만 이곳 루크에이스는 중립지대의 미궁 도시다. 모험가 길드가 수배령을 내렸을 경우 잡히면 끝이다. 모든 모험가가 적이 되고, 유예기간 따윈 없다. 마주치면 그대로 목이 베인다. 현상금이 걸린 몬스터가 되는 것이다.
“속단하긴 이르다. 의심단계라면 조용히 지내는 것으로도 충분할 터다.”
마루마가 말했지만 야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길드에 고발하면? 증거고 뭐고 없을 수도 있어. 루크에이스엔 우리를 아는 모험가가 너무 많아.”
그에게 모험가 길드에 대한 정보를 전해준 예전 동료도 언제 배신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내일 당장 배신 할 수도 있다. 자신이라면 배신하는 것에 이득이 많다면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아공간 관련 아티펙트라고 말했지? 그거면 충분히 평생 동안 놀고먹을 수 있어. 너희들이 계속 모험가를 하고 싶다면 나한테 범죄를 덮어씌워도 괜찮아. 대신 이번엔 두둑이 챙기고 난 떠날게. 어때?”
하아, 제녹과 마루마는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동시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크에게 무슨 말을 해도 설득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용병일도 한번 해보고 싶긴 했어.”
“네가 모두 덮어쓴다고 해도 우리가 정상적으로 모험가 생활을 할 수는 없다. 범죄자
의 동료였다는 기록이 남겠지.”
야크는 씩 웃었다. 세 명은 모험가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였다. 그들이라면 분명 자신을 따라와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우선 그 메이드가 있다는 집에 침입하는 거야. 그리고 마법사 꼬마 놈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메이드가 끝내주는 미인이라며? 적어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겠어.”
제녹과 마루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궁에 들어가 테드를 먼저 처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미궁에서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올 테니 집에서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얻을 건 전부 얻고, 밤에 루크에이스를 떠나면 된다는 건가.”
“친구랑 인사 나눌 시간도 없겠네. 은신처는 확실히 생각해놨겠지, 야크?”
“모험가 길드의 손이 닿지 않는 마을을 알고 있어. 한동안 거기서 지내다가 용병으로 일하면서 적당한 곳에 정착하면 돼.”
야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하긴 하지만 모험가로서 익숙한 일이다. 문제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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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