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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3화 (1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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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이나 루키페르.

“…….”

테드는 종이를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어 마법서와 함께 사이나에게 내밀었다.

“배낭에 이거 좀 넣어주지 않을래?”

“물론입니다. 주인님.”

사이나는 배낭을 열어 마법서와 종이를 넣었다. 테드는 그 모습에 자신의 아공간을 늘릴 생각을 했다. 천천히 집중할 수 있는 주거 지역을 구하면 아공간부터 늘려야겠다.

테드는 책상의 뒤로 다가가 시체의 옆에 있는 3개의 서랍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첫 번째 서랍을 열자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없잖아?!”

종이에는 분명히 서랍에 보수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혹시 거짓말인가. 테드는 재빨리 서랍의 두 번째 칸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

세 번째 서랍에도 없다면 해골을 향해 욕을 할 각오를 하며 열었다. 다행히도 해골에게 욕할 상황은 오지 않았다. 거기에 들어 있는 것은 총 3가지의 물품.

하나는, 네모난 투명한 케이스에 들어 있는 동그란 구슬이다. 구슬의 표면에는 복잡한 붉은색의 마법진이 빼곡히 그려져 각인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자주색의 액체가 담겨 있는 병, 엘릭서다. 한 병더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해진다.

마지막 하나는, 검은색 장갑 하나다. 오른손 부분밖에 없다. 특별한 문양도, 효과도 없어 보이는 평범해 보이는 장갑이지만 테드의 눈은 순식간에 정체를 파악한다.

≪테리온의 마법안

A급의 마법안입니다. 마법으로 눈동자에 이식하면 마법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동그란 구슬 같은 마법안은 악마의 마안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마법눈이다. A~D등급이 있으며, D등급의 경우엔 효과가 한정되어 있다. 고작해야 비가시적 마법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A급이 되면 기능이 늘어난다. 마나를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유령, 악령 등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걸,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법을 보는 것으로 자동으로 해석하고 계산할 수 있다. 일종의 컴퓨터다.

마법사라면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들 물건이지만, 테드의 경우엔 ‘고결한 눈’이 있기에 굳이 목매달 필요 없는 물품이다.

A급이면 엘릭서에 버금가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글로리아

완드 대용으로 만들어진 마법 장갑입니다. 착용자의 마법의 위력을 소폭 증가시킵니다. 착용자의 마법 효율을 대폭 증가시킵니다. 하루에 한 번, 버프 마법 글로리아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

마법사의 무기로 완드나 스태프가 유명하다. 마법의 위력을 약간이지만 상승시켜준다. 마법 장갑의 경우 완드를 장갑 형태로 바꾼 것이다. 당연히 완드를 제작하는 것보다 몇배나 어렵다. 가격도 완드의 몇 배나 된다. 뛰어난 물건은 몇 십 배나 된다.

글로리아의 경우엔 마법안에 비하면 값싸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마법 장갑이다.

“……하나 줄까?”

테드가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는 사이나를 향해 물었다.

“아뇨. 저에겐 그다지 필요 없는 물건들입니다. 그리고 저의 것은 모두 주인님의 것입니다.”

“……아, 그래.”

그러고 보니 검을 주로 다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지금 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안타깝게도 그건 테드 또한 마찬가지다. 배낭에 나이프 한 자루 있지만 싸구려로 비상용이다. 전투용으로 사용할 만큼의 물건은 아니다.

“그럼 여기서 조금 이르지만, 저녁 식사를 하고 나가도록 할까.”

해골을 힐끗 바라보고서 테드는 아공간을 열어 음식을 꺼낸다. 배가 고파서가 아닌 아공간을 비우기 위해서 하는 식사다. 책장에 있는 책은 모두 아공간에 넣을 수 없으니 나중에 골라서 넣기로 한다.

해골과 함께하는 식사지만 테드는 물론이고 사이나 또한 아무렇지 않았다. 해골을 보며 놀랄 만큼 그들의 멘탈은 약하지 않았다.

⁂ ⁂ ⁂

초원에 3명의 모험가가 나타났다. 3명 모두 남성으로 제각각 직업에 맞는 장비를 걸치고 있다. 그들은 익숙하게 배낭을 지고서 초원을 지나고 있었다.

3명밖에 없는 작은 파티, 레드 베어의 리더로 허리에 바스타드 소드를 장비한 야크는 초원을 둘러보았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탁 트인 상쾌한 공간이었다. 그는 그늘을 만들고 있는 갈색 바위가 무더기로 보인 곳을 바라봤다.

“쉬기에 딱 적당한 곳이군. 쉬다 가자.”

“탁월한 선택이다. 슬슬 힘이 부치기 시작했는데. 잘되었군.”

갈색 로브를 걸치고 검은색 봉 같은 긴 스태프를 오른손에 쥔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내가 말했다. 마루마, 파티 레드 베어의 마법사로 모험가다. 로브를 입은 그는 30대임에도 불구하고 코밑에 염소수염과 팔자주름이 있어 40대의 중년으로 보였다.

“…빠른 편이니 상관은 없겠지.”

일행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레인저, 제녹이 말했다. 그는 활동하기 편한 가죽 갑옷을 입고 있다. 등에는 배낭과 활을 메고 있고 양 허벅지 옆에는 짧은 단검이 각각 3개씩 장비되어 있다.

“천천히 걸어도 일주일 정도면 도착한다고. 조금 늦어도 상관은 없어.”

배낭을 초원에 주위에 내려다 놓고 바위 그늘에 편하게 앉은 야크가 말했다.

“네 태평한 성격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엔 도움이 되는군.”

마루마는 스태프와 배낭을 내려놓았다. 일행 중 그의 배낭이 가장 작고 가볍다. 마법사로서 신체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녹 녀석, 쉬지도 않고 뭐하는 거냐.”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제녹을 바라보며 야크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제녹은 일행 중에서 가장 신중하고 철저하다. 누가 레인저 아니랄까 봐. 지금도 주위를 살피며 함정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 있다.

“저건 직업병이야. 직업병. 미궁도 아니고 이런 초원에 누가 함정을 설치한다고.”

마루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궁이나 던전에서라면 몰라도 지금 이곳은 탁 트인 초원이다. 주변에 몬스터가 나오는 숲이 있고 얻을 것도 별로 없는 곳이라 인적이 드문 곳이기도 하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곳에 함정을 설치하겠는가.

그러나 제녹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한껏 소리 질렸다.

“야크! 여기 발자국이 있다!”

발자국이란 소리에 야크가 얼굴을 굳히고 일어났다. 덩달아 마루마 또한 피곤한 몸을 일으킨다. 만에 하나 몬스터의 발자국이면 여유롭게 쉬고 있을 시간은 없다.

“제길! 몬스터야?!”

“아니. 사람의 발자국이야!”

야크는 제녹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냥 볼 때는 몰랐지만, 그가 가리키는 곳을 집중해서 보자 풀이 눌린 자국이 보인다. 솔직히 너무 희미해서 발자국인지 의심스럽다.

“용케도 발견했구나. 도적 같은 놈들의 발자국이냐?”

“……보면 몰라?”

제녹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야크의 얼굴을 바라봤다. 발자국의 크기나 숫자를 보면 대충이지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모르니까 묻는 거 아니야?!”

야크가 인상을 팍 썼다. 제녹은 야크의 높은 언성에도 불구하고 덤덤했다. 야크의 다혈질 기질이야 알고 있었다. 제녹은 옅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발자국을 가리켰다.

“발자국의 크기를 보면 어린애와 여자의 발자국이야. 도적일 가능성은 작아지지.

내 생각엔 여행자나 모험가로 생각돼. 또 방향을 보자면 우리랑 목적지가 같을지 몰라.”

“……고작 발자국을 보고 알아내는 네가 감탄스럽다.”

“내가 괜히 레인저 아카데미를 졸업 한줄 알아? 거기선 이게 기본이야. 이것도 못하면 레인저 자격증도 못 받는다고.”

“그놈의 레인저부심.”

야크가 피식 웃으며 다시 그늘로 돌아가려 했다. 도적도 아니고, 몬스터도 아니라면 자신들과 상관없는 이야기다.

“잠깐. 조금 이상하지 않나?”

야크를 멈춰 세운 건 마루마였다. 그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여긴 근처에 몬스터가 나오는 숲이 있다. 굳이 이 초원을 지나갈 필요가 있나? 그것도 애랑 여자 둘이서.”

“우리처럼 근처에 볼일이 있었던 건 아니야?”

야크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분명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말이다. 마루마는 그가 파티의 리더로서 합당한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야 제대로 된 모험가이니 몬스터가 나온다 해도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애와 여자애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굳이 이곳을 지나가 필요 없이 몬스터가 적은 길을 가면 될 일이다.”

마루마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이상했지만 지나친 추측일 가능성도 있다. 세상엔 굳이 위험한 곳을 제 발로 찾아가는 특이한 놈들이 넘쳐나는 곳이니까.

“이리 좀 와봐. 이 바위 조금 이상한데?”

어느새 조금 떨어져 있는 바위가 있는 곳으로 간 제녹이 그들을 불렀다. 마루마는 눈을 번뜩이며 제녹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고, 야크는 귀찮다는 듯이 건들거리며 걸었다.

“이번엔 또 뭘 발견하셨나?”

야크의 귀찮음이 담긴 물음에 제녹은 바위가 아닌 바위아래 부분을 가리켰다. 그것은 야크가 보기에도 이상했다. 무언가에 쓸린 듯 흙이 주변에 퍼져있다. 바위 뒷부분에는 풀이 무언가에 짓이겨져 나간 듯한 처참한 형상을 하고 있다.

“발자국을 보면 반대쪽엔 어린아이의 발자국밖에 없어. 여기서 여자의 발자국이 나타나지. 즉, 여기서 애와 여자가 만나 같이 떠난 거야.”

“그럼 이 바위 밑에 뭔가가 있다는 거군.”

마루마가 자신이 낸 결론을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을 보자면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늘에서 여자가 떨어진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 바위를 한 번 밀어보자.”

야크가 바위에 양손을 짚었다. 허리를 낮추고, 하체에 힘을 준다. 쓰읍. 숨을 한껏 내쉬고 그대로 바위를 밀었다. 드르륵, 바위는 야크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밀려났다.

제녹이 재빨리 흙으로 덮인 곳을 손으로 털어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오오. 정답인데? 근데 결계가 쳐져 있잖아.”

아래의 계단은 보이지만 유리 같은 결계가 막고 있어 내려갈 수가 없다. 야크는 발로 결계를 탕탕 쳤다. 제법 단단한 결계다.

마루마가 무릎을 꿇어 결계에 손을 댄다. 눈을 감고 마법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

“결계를 열 수 있겠냐?”

“……보통 결계가 아니다. 마법식이 엄청나게 복잡하다. 나로선 무리다. 결계를 열기 위해선 상급 마법사 이상의 실력이 필요하겠군.”

“그럼 부숴버릴 수밖에 없겠군. 제녹. 짐 좀 가져와라. 결계를 부수면 바로 안으로 들어갈 테니.”

제녹이 고개를 끄덕이며 야크와 마루마의 배낭을 가지러 갔다. 야크는 자신의 허리춤에서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낸다. 날이 상하지 않은,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검이다. 야크는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고서 결계를 향해 내려찍었다.

그러나 결계는 멀쩡했다. 오히려 반동으로 인해 야크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엄청나게 단단하잖아.”

“보통 결계가 아니라고 말했다만.”

“그래 봤자. 마법일 뿐이지.”

야크는 다시 검을 내려찍을 준비를 한다. 그러나 이번엔 무턱대고 내지르지 않는다. 몸 안의 마나를 끌어 올린다.

어렸을 적, 옆집에 사는 은퇴한 모험가에게 조르고 졸라서 겨우 배운 비기다. 단 하나뿐인 비기지만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엄청났다. 이 비기로 스스로의 목숨을 구한적도 여럿이다.

야크의 검에 푸르스름한 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렬한 빛은 아니다. 은은하게, 미약하게 빛나는 푸른색의 빛이었다.

“비기. 매직 카운터.”

그대로 검을 내려찍는다. 쩌억, 하고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매직 카운터는 마법에 한해 거대한 위력을 발휘한다. 마법사에겐 최악의 기술이다. 자신이 만든 마법을 파괴하는 기술이니까.

“한 번으로 안 되나? 제법 견고하잖아.”

총 3번의 매직 카운터를 사용하고서야 결계를 부술 수 있었다. 야크는 제법 놀랐다. 2번까지 버티는 마법을 본 적 있지만 3번까지 버틴 마법은 처음이었다.

“이거 3번까지 견디다니…. 안에 뭐가 있을지 기대되는데?”

때마침 제녹이 배낭을 가지고 왔다. 배낭을 받아든 그들은 자신의 장비를 확인한다. 배낭을 가져갈 생각은 없다. 혹시 모를 전투에 방해가 된다. 마루마는 자신의 스태프를 손에 들고 배낭에서 물약을 꺼내 챙겼다.

“준비는 됐냐?”

허리띠에 회복 포션을 전부 매달아 놓은 야크가 물었다. 마루마와 제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다.”

============================ 작품 후기 ============================

모기가 글쓰는걸 방해합니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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