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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1화 (1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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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이나 루키페르.

4. 사이나 루키페르.

그곳은 넓은 초원이었다. 발목까지 오는 풀들이 무성한 초원이다. 초원의 군데군데에는 갈색의 바위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초원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배낭을 등에 멘 회색 코트의 소년이 손에든 지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분명히 이 근처야.”

테드가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갈색의 바위를 살펴본다. 무언가를 찾듯이 바위를 살펴보지만 그가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내 기억으론 분명히 여기야.’

기억 속에 있는 바위는 삼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삼각형의 바위는 의외로 적었다. 발견한 근처의 삼각형 바위는 총 3개다. 그중에서 2M 크기의 바위를 향해 걸어갔다.

‘찾았다.’

삼각형의 바위의 앞으로 걸어간 테드는 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언 엘프 마을 제누를 떠난 지 3일, 로크에게 받은 지도를 의존하며 어떻게든 혼자서 이곳까지 왔다. 중간에 몬스터를 만나긴 했지만 강력한 몬스터가 아니었기에 간단히 마법으로 처리하며, 잠자는 것도 아껴가며 이곳에 도착했다. 감회가 남다르다.

그렇지만 마냥 바위 앞에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양손을 뻗어 바위에 손바닥을 댄다. 바위의 차가움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져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스트랭스(Strength). 스트랭스(Strength). 스트랭스(Strength).’

힘을 강화시켜주는 마법을 자신의 몸에 걸고서 바위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힘을 주자. 드르륵, 소리와 함께 바위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뒤로 밀려나간다.

테드는 1M 정도 바위를 밀어내고 손에 묻은 약간의 흙을 털어냈다. 바위로 밀려 갈색의 흙으로 덮인 곳을 바라보며 테드가 씩 미소 짓는다.

바위가 위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바위를 밀어낸 지금은 확실하게 마법을 느낄 수 있다.

2번째 삶일 때는 한 달이나 걸려서 겨우 해석한 결계마법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결계의 패턴과 해답을 기억하고 있다.

“언락(Unlock).”

투두두둑, 갈색의 흙이 아래로 무너져 내리며 계단이 나타난다. 어두컴컴한 장소를 바라보며 테드는 배낭에서 램프를 하나 꺼낸다. 연료가 되는 마나석을 램프의 아래에 집어넣어 작동시킨다. 주위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테드가 씩 웃었다. 이곳은 첫 번째 회귀 후, 2번째 삶 때 우연히 발견한 기연, 마도사의 동굴이다. 마도사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아 모르지만 마법서와 마법물품과 마법재료, 영약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마도사의 공방으로 생각된다.

계단을 전부 내려오자 넓은 공동이 나왔다. 공동에는 오래된 책상, 의자 등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먼지에 싸여 알아볼 수 없는 종이나, 실험도구로 보이는 유리관이 여기저기 깨져 있기도 하다.

공동의 벽, 오른쪽과 왼쪽에 문이 있었다.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처리가 되어있는 문은 낡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

오른쪽 문을 향해 다가간 테드는 문손잡이를 잡고서 문을 밀었다.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이 방엔 상자 5개가 있다. 이 상자 안에 마법재료, 마법물품, 영약, 마법서가 들어있다. 테드는 방의 맨 끝에 있는 상자 쪽으로 걸어갔다.

상자는 폭 50cm, 높이 30cm의 직사각형의 아무 장식 없는 나무 상자다. 당연하지만 마법으로 락(Lock)이 걸려 있다. 처음에 왔을 땐, 상자에 걸린 마법을 해석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언락(Unlock).”

딱, 잠긴 상자가 자동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상자의 뚜껑이 위로 젖혀진 것이다. 들어 있는 것은 액체가 들어간 4개의 작은 병이다. 어른 남성의 굵은 검지 크기의 작은 병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액체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테드는 4개 중 유일하게 색이 다른, 자주색의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들었다.

≪ 엘릭서

회복약입니다. 복용할 시 모든 질병과 상처가 회복됩니다. 소모된 마나 또한 회복되어 최상의 몸 상태로 돌아갑니다. 선천적인 질병마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연금술의 극의에 다른 실력과 최고급의 재료로 만들어지는 비약이다. 워낙에 유명해서 원하는 자들도 많다. 가격은 당연하지만 매길 수 없을 정도다.

테드는 자신의 아공간에 엘릭서를 집어넣었다.

나머지 3개의 병에는 검푸른 색의 액체가 들어 있다. 신기하게도 병 속의 액체가 은은한 빛을 내고 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이 될 정도로 매우 아름답다.

≪ 마력의 정수.

순수한 마력의 정수입니다. 섭취하면 마력이 상승합니다. ≫

“드디어 마력 조루에서 탈출하는구나.”

테드는 망설임 없이 뚜껑을 열어 꿀꺽꿀꺽 마셔대기 시작한다. 맛은 없다. 미지근한 맹물을 마시는 느낌이다. 그러나 몸속의 마력이 충만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테드는 지체하지 않고  다음 병을 연거푸 들이마셨다.

[ 마력의 정수를 섭취합니다. ]

[ 마력이 20 상승합니다. ]

[ 마력이 15 상승합니다. ]

[ 마력이 12 상승합니다. ]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오른다. 테드는 내친김에 능력치창을 켜보았다. 오랜만에 확인하는 능력치창이다.

『 이름: 테드 크루시안.

종족: 인간.

칭호: 아이언 엘프의 친구.

정의: 고결한 영혼.

재능: 마법. 전투. 행운. 생산. 영혼.

속성: -

능력치: 힘-12, 민첩-16(+3). 지능-14. 체력-13. 마력-68.

특수 능력치: 행운-21. 영력-30. 손재주-18. 내성-10』

마력을 제외한 능력치는 별다른 상승을 거두지 못했다. 아이언 엘프와 사냥을 하며 힘과 민첩, 체력이 늘어났지만 크게 강해진 것은 아니다. 민첩의 경우 칭호의 효과로 3이 상승했다. 칭호를 빼면 사라질 능력치다.

“마력량은 일반 마법사보다 조금 더 많은 정도네.”

테드는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어린 나이를 생각하면 대단히 많은 양의 마력이다.

마법하나를 사용하고 마력이 고갈되어 비틀거리던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늘어난 마력량에 히죽히죽 웃으며 다음 상자를 열기로 한다. 마법물품이 들어 있는 상자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얻었다. 아공간 주머니를 제외하면 당장 쓸만한 마법물품은 별로 없었다.

다른 상자 2개에선 마법재료가 들어 있었다. 온갖 몬스터의 부산물과 은과 수은 등의 금속까지. 마법 연구에 관심이 없는 테드에겐 환호할 정도의 물건은 아니었다. 기회가 되면 팔아 치울 생각을 하며, 수은을 제외한 물건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수은은 그대로 들고 있기로 한다.

남은 마지막 상자에는 두꺼운 검은색 표지의 마법서 하나가 덩그러니 있다.

“내용은 전부 기억하고 있고. 고등의 마법서니까, 월드 뱅크 경매에 붙이면 비싸게 팔 수 있을 거야.”

중얼거리며 앞으로의 미래를 계획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의식주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기본이 되는 의식주는 돈이 든다. 마법서가 제 가격에 팔린다면 어지간한 저택 하나 정도는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마법서를 배낭에 넣고 방 밖으로 나섰다. 먼지가 쌓인 공동으로 나온 테드는 왼쪽 편에 있는 문을 바라봤다. 기억에 따르면 저기에는 비상식량이 구비되어 있다. 세월도 세월이고 음식이다 보니 마법이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썩어 있다. 먹을 게 못 된다.

‘일단 청소부터 해야겠어.’

가라앉은 먼지가 엄청나다. 어지간히 더러우면 군말 않겠지만 심해도 너무 심하다.

“클린(Clean).”

마력이 빠져나가고 테드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하얀빛이 퍼져나간다. 빛이 지나간 장소에는 더 이상 먼지는 찾아볼 수 없다. 바닥의 대리석이 램프의 빛을 반사시키며 반짝 반짝거린다.

사실 램프의 필요성은 별로 없었다. 테드의 눈에는 어둠 속에서도 물체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드는 먼저 수은 병을 바닥에 놓고, 등에 메고 있던 배낭과 아공간 주머니를 그대로 바닥에 내려다 놓았다. 아공간에 자리가 있다면 배낭을 넣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테드의 아공간은 가득 찬 상태다. 물품을 집어넣을 공간이 없다. 그리고 아공간 주머니 또한 마찬가지로 마법물품과 재료를 넣으니 가득 찼다.

뻐근한 어깨를 한번 풀어주며 또다시 마법을 발동한다.

“윈드(Wind).”

테드를 중심으로 바람이 몰아치며 공동 내에 있던 썩어빠진 나무 가구들과 깨진 유리조각 등을 모조리 구석으로 밀어낸다.

1분도 걸리지 않아 청소가 끝났다.

테드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수은 병을 들어 올렸다. 1L 조금 안 되는 양인 것 같은데 매우 무겁다.

그대로 수은 병을 공동의 중앙에 내던졌다.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은을 담고 있던 병이 박살나고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테드는 오른발을 살짝 들여 올렸다. 발목 높이로 들어 올린 상태에서 그대로 바닥을 내려찍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공동의 바닥에 새하얀 빛의 마법진이 나타난다. 공동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마법진이다.

“소환진은 처음인데… 잘 되겠지.”

공동의 중앙에 뿌려 놓았던 수은이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진의 중앙으로 모여들어 작은 마법진을 스스로 움직여 그리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은 그려졌고,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거대한 바람이 불어온다.

쨍그랑!!

바닥에 내려놓았던 램프가 마법진에서 발생한 마법에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깨졌다. 무거운 배낭은 그대로 있었고, 배낭의 뒤에 놔둔 마법 주머니는 배낭의 덕분인지 날아가지 않는다.

“12실버 램프가!!”

안타까움이 넘쳐흐르는 표정을 한 테드가 램프의 잔해에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그렇게 약 1분 정도가 흘렸을 무렵,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약을 원하십니까?]

괴물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미간을 절로 찌푸리게 하는, 듣기 싫은 목소리지만 의외로 정중한 말투다.

‘악마의 목소리는 전부 이런가?’

악마 소환진은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이용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기록도 전무하기 때문에 계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자세히 모른다.

본래라면 악마를 소환할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러나 현재 테드에겐 전쟁을 막기 위해서 강력한 무력이 필요하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나, 테드 크루시안은 계약을 원한다.”

악마 계약에 대한 지식이 없기에 정령 계약의 기본을 떠올리며 말했다.

[무엇 때문입니까?]

“……강력한 힘이 필요해.”

정령 계약에선 이유 따윈 묻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악마라서 그런가, 묘하게 깐깐한 구석이 있다.

“너는 어느 정도의 힘을 줄 수 있어?”

[악마 계약은 힘을 주는 거래가 아닙니다. 정당한 계약에 따라 악마가 중간계에 현신하는 것입니다. 계약에 따라 제가 당신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었다. 목소리는 악마 같은데 말투를 보자면 악마 같지가 않다. 자신의 상상과는 많이 다른 악마에 테드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계약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럼, 정정해서. 너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지?”

[……마계에서 100위 안에 드는 힘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요. 그러나 중간계에선 계약자의 역량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적어집니다. 보통 1할 정도라 하더군요]

“……하더군요?”

[이번이 첫 계약입니다]

굉장히 친절한 악마라고 생각했으나, 단순히 경험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테드로선 믿음이 가지 않지만 좋은 상황이었다. 악마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강한 힘을 품고 있다는 것이 된다.

“좋아. 그럼 대가로 무엇을 원하지?”

[당신이 지불하는 대가에 따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집니다. 당신은 무엇을 대가로 지불하겠습니까?]

“…….”

테드가 입을 다물었다. 대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진다면, 무엇을 지불해야 악마의 힘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까?

돈? 아쉽지만 가진 건 없다. 물건으로 친다면 아공간에 있는 엘릭서가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다. 엘릭서로 악마의 힘을 어느 정도 부릴 수 있을까. 아니, 엘릭서를 대가로서 받을지도 미지수다.

악마가 대가로 무엇을 원하는가. 생각해보면 한가지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영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지구의 지식이기에 이 세계의 악마가 영혼을 원하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내가 죽은 뒤, 내 영혼을 가져가도 좋아.”

네메스 대륙의 거대한 전쟁을 막는 대가로 자신의 영혼뿐이라면 싼값 아닌가. 거기에 사후라는 조건이 있다. 인생이 질리도록 즐기고 죽는다면 후회는 없을 것이다. 죽은 뒤의 일 따윈 흥미 없다.

[…곤란하군요.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테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의 영혼만으로 부족하다면… 무엇을 대가로 지불해야하지?

[하지만 당신의 영혼은 굉장히 탐나는군요]

악마가 망설이는 것이 느껴졌다. 테드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며 악마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좋습니다. 당신이 수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노예처럼 일하도록 하죠]

“……뭣?”

순간 악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노예처럼 일한다니. 악마의 노예가 되어 일해야 한다는 말인가?

[제 이름은 사이나 루키페르. 계약은 완료되었습니다]

“잠…….”

말을 잇기도 전에 마법진에서 강대한 바람과 빛이 뿜어져 나왔다. 너무나도 강렬한 빛이라 테드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몇 초간의 짧은 시간이 흐른 뒤, 테드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빛은 사라져 있는 대신에 자욱한 연기가 주변에 피어올라 있다.

‘…누가 있다!’

흐릿한 실루엣이 보인다. 자욱한 연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연기는 빠르게 허공중에 스며들어 사라지기 시작한다. 연기로 어지러워진 시야 속에 보인 것은 한 명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허리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정돈된 은색 머리칼은 밤하늘의 은하수를 닮아있다. 약간 치켜 올라간 눈매와 붉은 눈동자는 섬뜩한 날카로움을 품고 있다. 그 아래의 진주같이 하얀 피부와 오뚝하게 솟은 코, 분홍빛의 말랑해 보이는 입술은 여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블랙 앤 화이트의 메이드복을 입고 있다. 팔과 다리는 시원스럽게 뻗어 있으며, 풍만한 가슴은 옷으로 감싸여 있음에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으며, 잘록한 허리는 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허벅지를 가리는 치마 밑에는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는 검정색 가터벨트와 스타킹을 하고 있다. 앙증맞은 발은 굽이 낮은 구두에 감싸여 있다.

멍한 표정의 테드를 향해, 그녀는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려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인님. 사이나 루키페르입니다.”

============================ 작품 후기 ============================

테드의 마력량이 많아졌습니다. 하녀를 얻었습니다.

리그자리오님 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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