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9화 (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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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언 우드.

테드가 불편하든 말든 식사는 시작되었다. 이미 준비되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 곧바로 주방에서 음식이 나왔다. 테드는 최대한 공주와 떨어진 자리, 로크의 옆에 앉으며 조용히 눈치를 살폈다.

공주의 에멜라드 빛 눈과 테드의 검은 눈동자가 마주쳤다. 공주는 눈을 곱게 접으며 부드럽게 웃었지만 테드는 입가를 경련시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음식은 평소와 달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주방장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풍성한 양과 함께 이 식당에서 한 번도 본적 없는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다.

테드는 미디움으로 구워진 큼지막한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소스와 육즙이 환상의 콤비가 되어 입안을 순식간에 정복한다. 스테이크를 충분히 즐기고서 옆에 있는 감자튀김을 향해 포크를 뻗었다.

평소의 음식도 맛있었지만 오늘의 음식은 차원이 달랐다. 테드는 정신줄을 놓고 그야말로 굶주린 개처럼 음식을 탐하기 시작했다.

“…어이. 정신 차려라.”

“뭐야. 먹을 땐 개도 안 건드…….”

로크가 팔꿈치로 툭 치며 건드렸다. 테드가 인상을 팍 쓰며 로크를 바라보다가 주위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꽂혀있는 걸 깨달았다.

평소와 달리 정말 맛있는 음식에 그만 열중해버리고 말았다.

“어…. 그. 평소랑 달리 요리가 정말 맛있어서…. 하하. 저도 모르게 열중해버렸네요.”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마음씨 고운 공주님께선 웃으며 말했지만 주위에 있는 호위들은 그렇지 않았다. 테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

테드는 변명하기도 뭐해서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예의를 가르쳐주지 않은 내 잘못이다.”

옆에서 로크가 작게 말했다. 테드는 보이지 않는 식탁 아래서 로크의 다리를 걷어찼다.

“테드 크루시안. 그대는 대단한 마법사라고 들었어요.”

식사가 끝나고 식기를 치우자마자 루키나 공주가 테드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대단한 마법사는 아닙니다. 마력도 미약해 제대로 된 마법 하나 사용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겸손이 과하시군요.”

루키나가 웃는다. 그녀를 본지는 몇 시간 되지 않았지만, 항상 웃는 얼굴이라 오히려 더욱 부담스럽다. 차라리 로크처럼 항상 무표정인 게 상대하기 편하다고 테드가 생각했다.

“들었어요. 그대 덕분에 엘프 사냥꾼에게서 마을을 지킬 수 있었다고.”

“과찬입니다. 운이 좋아 적들이 매직트랩의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죠.”

“그 매직트랩을 준비한 게 그대죠. 거기에 마을의 결계 또한 고쳤다고 들었어요.”

테드는 흘끔 로크를 바라봤다. 이것저것 전부다 일러바친 게 틀림없다.

“마을의 결계는 왕국 내에서도 제법 유명했던 마법사가 설치한 결계에요. 평범한 마법사가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결계가 아니에요.”

옳은 말이다. 마력과 상관없는 지식이 관련된 일이었기에 쉽게 고칠 수 있었다. 다른 마법사였다면 재료를 구한다 하더라도 결계를 고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저는 테드 크루시안, 그대를 왕국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건 스카우트다. 일국의 공주가 직접 하는 스카우트. 대우는 확실하다. 휘황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테드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만, 저에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아우티리아는 인간국에 전혀 꿇리지 않아요. 대우 또한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어요.”

아우티리아는 살기 좋은 나라다. 신분차별도 거의 없으며 물가도 안정되어 있다. 네메스 대륙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안전한 국가다.

“제안은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제가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막는 일이다. 설명해 납득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도 없다.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그렇다 해도 그대의 실력과 재능은 인정하고 있어요. 그 일이 끝난 뒤라도 괜찮으니 부디 아우티리아로 와주세요.”

“예. 기회가 된다면 꼭 들리겠습니다.”

짧은 대화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후식이 나왔다. 그윽한 향기의 홍차와 어울리는 쿠키다. 테드는 홍차를 한 모금 맛보며 쿠키를 집어 들었다.

“그대는 제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루키나 공주가 물어 왔다. 테드는 고개를 저었다. 식사를 함께 한 지금도 그녀가 어째서 이 작은 마을에 온것인지 모른다. 알 수 없다.

“아니요. 모릅니다.”

루키나는 예상했다는 듯이 테이블 위로 하나의 종이를 꺼내어 올렸다. A4정도 하얀 종이였다. 종이에는 유일하게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계약서.

“앞으로 나눌 대화는 기밀이에요. 당연한 말이지만 제가 이곳에 왔다는 것 또한 기밀이지요. 하지만 저는 뛰어난 마법사인 당신의 소견을 듣고 싶어요. 그러니 그대에게 계약서를 강요할 수밖에 없죠.”

테드는 그녀가 내미는 계약서를 바라보았다.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은 계약서지만 테드

는 이 계약서를 알고 있다. 5,000골드라는 엄청난 가격의 계약서이자, 이 세계에서

가장 신뢰 높은 계약서. ≪맹약(盟約)≫.

테드는 계약서를 잡았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난다.

≪맹약

오늘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 ≫

아주 간단한 내용이다. 그러나 확실하다. 글로 남기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가 정신

계 마법을 걸어도 알 수 없게 된다.

이 네메스 대륙의 시스템이 직접 관여하기 때문이다.

“맹약한다.”

테드가 말하자 반투명한 창이 그대로 계약서에 스며들 듯이 사라진다. 계약서는 하얀빛을 내뿜더니 이윽고 빛이 되어 산화한다.

맹약은 이루어졌다. 만약, 테드가 맹약을 어긴다면 시스템의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망설임 없이 계약하시는군요.”

“오늘 하루에 대한 일만 발설하지 않으면 될 간단한 일이니까요.”

테드가 고개를 으쓱였다. 오늘 있었던 일을 누군가에게 발설하지 않으면 된다. 정말 쉽고 간단한 내용이다.

“그럼 설명하겠어요. 저는 마을에 있는 아이언 우드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보고를 받았기에 상태를 보기 위해 왔어요. 그리고 상태를 치유하기 위해 왔지요.”

“…아이언 우드?”

테드는 자신의 코트를 힐끔 바라봤다. 아이언 우드의 일부가 들어간 코트라고 했다. 아마도 그녀가 말하는 아이언 우드와 같은 것이리라.

아이언 우드라 불리는 것은 반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이언 우드는 세계수의 여섯 자식 중 하나에요. 최근 상태가 좋지 않다는 보고를

듣고 제가 찾아온 거에요.”

“전 마법사입니다만….”

테드는 마법사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무에 대해서도 모른다. 마법과 관련된 일이라면 몰라도 식물의 상태를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알고 있어요. 다만 아이언 우드는 평범한 나무가 아니에요. 혹시 모를 일이니 저는 그대의 소견을 듣고 싶어요.”

“제가 도움이 될 진 알 수 없지만… 알겠습니다.”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고, 지금 갈까요?”

⁂ ⁂ ⁂

테드가 알고 있는 루키나 알 아우티리아 공주는 10년 후 미래에 여왕이 된다. 본래라

면 제 1공주가 여왕이 될 것이지만 1공주는 습격을 받아 죽게 된다. 2공주는 실종이 되고 3공주는 왕권을 포기한다.

4공주인 그녀가 여왕이 되어 아우티리아를 다스리게 된다. 성왕으로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다른 일설로는 그녀가 자매를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빙성이 없고 증거가 없는 이야기라 국민들에겐 경멸을 받은 이야기다.

이상이 테드가 알고 있는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겉모습은 상냥한 공주님이지만, 정치의 기본은 표리부동이기에 쉽게 믿을 수도 없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촌장의 집이었다. 테드의 경우 한 번 마도구를 수리하기 위해 촌장의 집에 와본 적이 있다. 촌장의 집은 보통의 집보다 조금 큰 것을 제외하곤 특별할 것은 없는 나무집이다.

집으로 들어온 촌장은 거실 한켠에 있는 소파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소파의 밑에는 먼지하나 없는 바닥이 들어왔다. 얼핏 보면 평범한 마룻바닥이지만 자세히 보면 네모난 이음새가 보인다.

“이쪽입니다.”

촌장이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지하실로 통하는 문을 들어올렸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촌장이 앞장서며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그리 길지 않았고 끝에 철문을 열고 하나의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넓은 공간이었다. 어떠한 장식도, 마광등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지만 은은한 빛이 공터안을 밝히고 있었다.

공터의 중앙, 나뭇잎 하나 없는 회색의 나무가 은은한 빛을 발산하며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3M 정도로 일반 나무와 비교하면 오히려 작은 편이다. 앙상히 마른 나뭇가지는 겨울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신기한 점은 그 몸체가 전부 회색이라는 점이다.

나무보다는 돌을 조각해 만든 석상같은 느낌이다.

“……불쌍하게도, 기운이 없군요.”

테드의 옆에서 루키나가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테드는 아이언 우드를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기운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엘프들만이 느낄 수 있는 건가?’

아이언 우드를 지긋이 바라봤다. 회색 나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 점?’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자. 몸체 중간에 검은색 점이 보였다. 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색의 몸체에 나있는 검은색 점은 무언가 어색했다. 어울리지 않는다. 누군가가 점을 찍어 놓은 듯한 이질감이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루키나는 품에서 하나의 잎을 꺼내 든다. 손바닥만 한 초록색의 나뭇잎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세계수의 기운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특별한 나뭇잎이다. 루키나는 나뭇잎을 들고 아이언 우드의 곁으로 다가갔다.

정중한 표정과 우아한 걸음걸이는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부디 이것으로 치유되었으면…….”

나뭇잎을 아이언 우드의 앞으로 내민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뭇잎이 황금색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루키나는 천천히 세계수의 잎을 아이언 우드의 회색 몸체에 가져다 대었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테드가 주시하고 있던 검은색 점이 돌연 크기를 늘리더니 황금색의 세계수 잎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반탄력으로 루키나의 몸이 뒤로 날아간다.

“꺄아앗?!!”

호위대가 재빠르게 루키나를 받아들었지만, 그녀는 제법 놀랐는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아이언 우드를 바라봤다. 그녀는 어째서 자신이 튕겨 나갔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

었다.

“저주네요.”

테드가 루키나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아이언 우드의 몸 대부분이 검게 변해 있었지만, 루키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당연히 그녀의 시야에는 아이언 우드의 정상적인 모습이 보인다.

“…저주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저주를 걸었네요.”

테드의 눈에는 확실하게 보인다. 아이언 우드를 둘러싼 검은 어둠이 형상을 취하는 것을.

“도대체 누가 아이언 우드에…!”

“엘프. 아마도 이 마을에서 사령술때문에 처형된 아이언 엘프겠지요.”

검은 어둠이 취향 형상은 귀갈 길쭉한 엘프의 모습이다. 비명을 내지르듯이 절규한 표정으로 아이언 우드에 붙어 있다.

“아니, 저주라기 보단 악령이 되어 달라붙은 게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사령술 중에선 자신을 악령으로 바꾸는 마법이 있다. 일종의 저주에 가깝다. 자신에게 저주를 걸어 대상에게 달라붙어 저주를 공유하는 것.

처형되기 직전에 자신에게 저주를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에는 저주가 없다. 악령의 힘이 저주를 넘어선 것이다.

악령, 그 자체가 저주가 되어 아이언 우드를 좀먹고 있다.

“…그 자식이 악령이 되었다고?”

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촌장은 30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사령술에 손을 뻗은 마법사를 직접 처형했고, 그는 옆에서 그걸 지켜보았다.

“그만큼 이 마을에 대한 원한이 강했던 거죠.”

“…….”

촌장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빨갛게 달아오른 뺨과 있는 대로 찌푸려진 미간을 보면 심정을 유추할 수 있다.

============================ 작품 후기 ============================

연참을 하고 싶지만 제 실력으론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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