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8화 (8/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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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언 우드.

3. 아이언 우드.

엘프 사냥꾼의 일로부터 6개월이 흘렀다. 그 후로 엘프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고, 간간히 몬스터의 습격이 몇 번 있었을 뿐이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테드의 경우엔 2개월 전에서야 엘프 마을 제누의 결계를 완전히 수리했다. 수리하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재료를 구하는 것에 많이 걸려 늦어 버린 것이다. 재료를 구하기 위해 사용한 돈은 마을 내에 비상용으로 비축되어 있던 돈의 절반 이상이 없어질 정도였다.

아침 일찍 일어난 테드는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부를 고용해 집을 치우게 하지만 언제나 3일이 지나면 개판이 되어있었다. 집 먼지가 쌓이고, 물건이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것은 기본이었다. 설거지도 하지 않아 산처럼 쌓여 있다.

“슬슬 떠날 때인가.”

처음엔 마도구를 수리하고, 다음엔 옮길 수 없는 마도구가 있어 직접 고객의 집으로 가 점검하고 수리했다. 그 다음에는 일거리가 떨어져 직접 마도구를 만들어 팔거나 엘프와 함께 사냥으로 돈을 벌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쁘지 않은 생활이었다. 마법을 수련하기에도 좋았고, 먹고 사는 것에 별다른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마을에 있을 순 없다.

테드에겐 전쟁을 막는다는 목적이 있다. 다르게는 예정된 미래를 막는다는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강해질 필요가 있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도 수련을 한다면 언젠간 강해질 것이다. 하나 그래선 늦다. 테드는 빠르게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테드는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온갖 음식 재료들이 있고 음료수를 비롯한 간식거리도 있다. 그리고 이 음식 재료의 경우 2주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 된장을 샀지만 된장찌개를 끓이는 법을 몰라 그대로 방치되었다.

된장 하나만 그렇다면 상관없겠지만 대부분의 음식, 그 쉽다는 카레까지도 재료는 구해놨으나 어떻게 요리하는지 모른다. 어떻게든 요리한다 해도 완성품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었다.

테드는 냉장고의 문을 닫고 그대로 허공에 손을 뻗었다. 하얀색 작은 마법진이 테드의 손 앞에 나타났다. 테드는 망설임 없이 마법진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하나의 물건을 찾는다.

마력 능력치 20이 되면서 만든 아공간이다. 마도사급도 만들기 힘들다는 아공간이지만 대마도사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테드에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너무 낮은 마력 때문에 아공간이 그렇게 넓지 못하다는 점이다. 공간의 양을 따지자면 냉장고보다 약간 넓은 정도다.

마법진에서 손을 빼자 테드의 손은 빵을 하나 쥐고 있었다. 사흘 전에 산 빵이지만 아공간의 시간 정지의 특성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빵이다.

테드는 빵을 한입 베어 물며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커튼을 젖히고 습관적으로 밖을 바라본다.

“뭔가 소란스러운데.”

마을 주민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이 바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부산스럽다. 그것도 모두가 밖으로 나와 마을을 청소하고 있다.

“…마을 청소날인가?”

마을 사람들 전부가 참여하는 정기적인 청소일을 떠올렸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마을 청소일이었다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고 다른 엘프에게 들어본 적도 없다.

떠오르는 의문에 휩싸여 있을 때, 마침 경비대가 지나갔다.

“……무장도 전부 착용 하고 각 잡으며 걷고 있다고?”

마을 밖이라면 모를까 여기는 마을 안이다. 아무리 군기 잡힌 경비대라도 결계가 지키고 있는 마을에선 풀어지기 마련이다. 테드의 경우 마을 안에서 완전무장을 하며 다리를 맞춰 걷는 경비대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적이라도 쳐들어오는 거야 뭐야.”

마을 주민은 청소를 하고 경비대는 완전 무장상태로 움직이고 있다. 이 마을에 있는 반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손에든 빵을 한입에 털어 넣고서 대충 세면을 하고 옷장에서 파란색 면 옷을 꺼내 갈아입는다. 10분도 걸리지 않아 나갈 준비를 끝낸 테드가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을 밖으로 나오는 순간 활기를 느꼈다. 노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즐겁다는 듯이 웃으면서 하고 있다. 감탄보다는 의문이 배가 되어 쌓여가는 느낌이다.

테드는 집 밖을 나서며 천천히 마을회관으로 이동했다. 마도구 수리 일을 끝내서 출근할 필요는 없지만 점심과 저녁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가는 곳이다.

이동하는 중 보인 광경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아이언 엘프들이 마을 도로를 청소하거나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집의 벽까지 꼼꼼하게 청소하고 있다. 어린아이까지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바람의 정령이나 땅의 정령을 이용해 청소하기까지 한다.

먼지 하나 남기지 않겠다는 집착까지 느껴졌기에 테드는 엘프가 조금 무서워졌다.

“…영감님은 평소와 같은데…….”

마을 회관에 도착한 테드는 어색하게 웃었다. 관리역을 맡은 영감님은 언제나처럼 마을 회관을 청소하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보는 광경이니 특별할 것은 없다. 다만 경비대원들의 행동이 달랐다. 경비대원들은 벽에 달라붙어 걸레로 닦거나 지붕 위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뭐야! 오늘! 대청소의 날? 그런 거야?!”

자신만 빼고 마을 전체가 청소를 하고 있다.

개미와 베짱이의 베짱이가 된 기분이다.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

“자네! 꼴이 그게 뭔가?!!”

마을회관 관리자 영감, 쿠르가 테드를 발견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그의 큰소리에 찔끔한 테드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에게서 알 수 없는 기백이 느껴졌다.

“꼴이라니……, 평소와 같은 옷인데….”

“그게 문제네! 오늘 같은 중요한 날에 평소와 같다는 게 말이 되는가?!”

흥분한 그의 모습에 테드가 눈을 끔뻑였다. 항상 차분하던 그가 왜 이렇게 화가 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젯밤 방송을 듣지 못했나?!”

“어젠 피곤해서… 일찍 잤어요.”

어제 저녁 무렵에 아공간을 약간이지만 늘렸었다. 마력을 전부다 쓴 뒤라 급격하게 피곤해져 그대로 잠들었던 게 기억난다.

“하아.”

쿠르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잘못을 따지자면 굳이 밤에 방송을 해 마을에 알린 촌장의 책임이 컸다.

“우선 따라오게, 내가 설명해주겠네.”

쿠르는 청소도구를 구석에 놔두고 마을 회관의 안으로 들어갔다. 곧장 1층의 관리자 방을 열어 들어간다. 그 뒤를 테드 또한 들어갔다.

관리자 방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창고나 다름없는 곳이다. 마을 회관에서 사용하는 생필품, 경비대의 물건 등 여러 가지가 쌓여있다.

“오늘 정오 무렵에 제 4공주님, 루키나 알 아우티리아님께서 오시네. 그 때문에 마을 주민 전부가 청소를 하고 있지.”

“……전 그냥 집에서 나오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뭐 얻을 먹을 게 있다고 이런 중립지대에 있는 작은 엘프 마을에 찾아오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평소라면 나 또한 그걸 추천했을 걸세. 하지만 왕녀님께서 자네를 만나보고 싶다고

로크가 말하더군.”

“…공주님께서 절 어떻게 아시는 거죠?”

당연한 말이지만 눈에 띄는 짓은 하지 않았다. 환생한 뒤 1년도 지나지 않았다. 명성도 명예도 없다. 공주가 어떻게 자신을 안다 말인가.

“로크가 자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더군. 우리 마을의 경우엔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네. 아마도 그때 자네가 알려졌겠지.”

쿠르는 방의 구석에 있는 옷장으로 다가갔다. 물품이 워낙 많이 있기에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그는 익숙하게 옷장의 앞으로 다가갔다.

“자네의 복식은 공주님을 알현하는데 걸맞지 않네. 그렇다고 갈아입을 옷도 없지 않은가?”

테드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을 바라봤다. 평범한 옷이지만 확실히 공주를 알현하는 것에는 알맞지 않은 옷으로 보인다.

집에 있는 옷 또한 마찬가지다. 테드의 옷은 지급받은 것뿐이다. 멋진 옷은 좋아하지만 굳이 찾아서 입을 정도는 아니다. 편한 옷이면 대체로 아무거나 입는 테드였다.

“자네에게 옷 하나 주겠네. 그걸 입고 공주님을 만나게.”

쿠르는 옷장을 열어 회색의 코트를 꺼낸다. 겉면에 광택이 도는 멋스러운 예복용 코트였다. 쿠르는 코트를 들고 테드에게 다가갔다.

“이걸 받게. 마을을 떠나는 자네에게 내가 주는 선물일세.”

코트를 받아든 테드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코트는 감사합니다만, 제가 떠나려는 건 어떻게 알고서요?”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걸 누군가에게 말한 기억은 없다.

“늙은이의 감이라네.”

“…….”

쿠르가 웃으며 대답했다. 테드는 할 말을 잃었다.

“세면실에서 몸도 제대로 씻고 그걸로 갈아입게나.”

쿠르는 그 말과 함께 방을 나섰다. 테드는 그가 밖으로 나가자 코트를 유심히 바라봤다. 스킬 《고결한 눈(Noble Eye)》의 효과가 발동되어 코트를 감정한다.

≪ 그레이 코트.

아이언 우드의 일부가 들어간 코트입니다. 방한의 효과가 뛰어나며 일반 강철보다 내구성이 높습니다. 도검공격의 면역을 가집니다. ≫

코트를 바라보던 테드가 씩 웃었다. 아이언 우드가 뭔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의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듯 했다.

⁂ ⁂ ⁂

쿠르의 말대로 정오 무렵에 마을에 한 무리가 다가왔다. 평소의 느슨한 태도와 달리 철벽같이 서 있는 경비대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들은 총 5명이었으며 모두 검정색 로브를 쓰고 있었다. 그들 중 가운데에 있던 작은 체구의 한 명이 경비대의 앞으로 다가왔다. 로브를 벗어 얼굴을 드러낸 모습에 경비대는 마음속으로 탄성을 흘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색의 단발머리가 햇살에 반사해 반짝거리고 에매랄드 색의 눈동자는 생물의 것이라기 보단 보석에 가까웠다. 피부는 새하얗지만 창백하기보단 눈부신 활기를 띠고 있다. 겉모습으로 보이는 그녀의 나이는 아직 15살이지만 분위기가 어른보다 차분하다. 그녀가 성장한다면 필시 엄청난 미인이 될 것이다.

“아우티리아의 제 4공주. 루키나 알 아우티리아라 합니다. 어마마마의 밀명을 받아 제누에 오게 되었어요.”

촌장과 경비대장인 로크가 앞으로 나섰다.

“루키나 공주님을 뵙습니다!”

촌장이 외치고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로크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꿇기 시작했고 그곳에 있던 경비대 전원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무릎을 꿇는다. 누운의 옆에 있던 테드는 갑작스런 행동에 눈치를 살피며 조금 느릿하게 무릎을 꿇었다.

“여러분 일어나세요.”

단호함이 깃든 목소리에 촌장이 먼저 일어나고 경비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테드는 일어나면서 왜 저 공주가 이곳에 왔는지 생각해봤다.

중립지대는 위험하다. 군대가 정식으로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한 곳이 중립지대이다. 비록 마을과 엘프 왕국 아우티리아의 거리가 가깝다곤 하지만 굳이 공주를 보낼 필요가 있는가?

자신이 모르는 정치적 행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정치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는 테드였다. 나름 머리를 굴러보지만 답은 도출되지 않는다. 테드는 그냥 생

각하기를 포기했다.

“공주님.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중식을 준비해두었습니다.”

“확실히 조금 시장하군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촌장과 공주가 앞서 마을 회관으로 가는 것을 바라보며 테드는 공주를 호위하듯 붙어 있는 4명을 바라봤다. 로브를 벗은 그들은 당연하게도 모두 엘프였다. 여자 2명에 남자 2명의 엘프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다.

테드는 그들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봤다.

하이랜더. 아우티리아 여왕의 인정을 받은 실력자들. 그들이 공주를 호위한다면 수가 적은 것도 이해가 간다.

공주와 하는 점심 식사는 마을회관의 식당에서였다. 평소 경비대가 사용하는 식당인 만큼 테드는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곳은 아예 다른 식당으로 변화되어 있었다. 벽지에서부터 테이블 세팅까지 세세한 것들까지 전부 바뀌어 커다란 고급 식당이 되어 있었다.

식당의 입구에서 경비대가 들어가지 않기에 테드 또한 누운의 옆에서 멀뚱히 서 있었다. 테드를 부른 것은 경비대장인 로크였다.

“테드. 너는 함께 식사를 한다.”

“어? 나는 또 왜?”

“공주님의 지명이다.”

테드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엘프 파트가 끝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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