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7화 (7/277)

7====================

2. 엘프 사냥꾼.

유콘스는 숲에서 유난히 넓은 곳으로 걸어갔다. 거기에 엘프가 있기 때문이다. 작은 공터라 할 수 있는 곳이 나타났다. 나무가 하나 부러져 있는 곳이었다. 부러진 나무는 치웠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뭇가지 위, 나무 기둥 옆 엘프가 숨어있는 게 보인다. 활을 겨누고 있지만 단단한 비늘을 가지고 있는 리자드맨은 일반 화살 따윈 튕겨낼 뿐이다.

“먹이가 많군그래!”

앞에 있는 회색 머리 엘프에게 호기롭게 외쳤다. 그런데 엘프의 옆에는 어린 인간이 한명 있었다. 검은색 머리의 검은 눈을 가진 인간이다. 왜 거기에 있는지 유콘스로선 알 수 없다.

“뭐냐, 그건. 공물이냐?”

무표정한 회색 머리 엘프를 향해 물었다. 건장한 몸이지만 키가 2.2M가 넘고 근육이 가득한 유콘스와 비교하면 나뭇가지나 다름없는 빈약한 몸이다.

유콘스는 인간을 곁눈질하며 살폈다. 미약한 마나… 아니, 마력이 느껴진다. 너무 미약해서 마나로 착각할 뻔했다. 마력 때문에 마족이 떠올렸지만 어린 인간은 뿔이 없다.

“인간을 줄 테니 한 번 봐달라. 그 뜻이냐?”

외형적으로 엘프와 비슷한 인간을 먹어 본적 있다. 그리고 실망했다. 엘프가 최고급이라면 인간은 최하급이다. 맛은 전혀 없다. 씹을수록 얼굴을 구기게 되는 고기가 인간 고기다. 돼지고기 이하의 맛이라 준다고 해도 받을 생각은 없다.

유콘스는 등의 비스듬히 걸친 대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익숙한 감각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 온다. 등 뒤에서 리자드맨들이 각각 무장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너희들은 확실히 이곳에서 몰살한다. 그전에 한 가지 물어보지. 엘프 사냥꾼은 너희뿐인가?”

로크의 물음에 유콘스는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추가로 나타날 엘프 사냥꾼이 있는지 걱정하는 것이다. 유콘스는 입가를 비틀었다.

“없다! 너희들 정도는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대로 곧바로 대검을 뽑아든다. 아쉽게도 그에게 사냥감과 대화하는 취미는 없다. 거기에 뱃속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당장 저 부드러운 고기를 넣어달라고.

“얌전히 먹혀라!”

유콘스가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전방에서 화살 무더기가 날아온다. 유콘스는 능숙하게 대검을 내밀어 비늘이 적은 얼굴을 보호했다. 그의 뒤를 따르던 리자드맨들은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나무 뒤로 숨었다.

이곳은 숲 속이다. 엄폐할 나무는 많고 굳이 정면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리자드맨들은 빠른 판단을 내려 나무를 엄폐 삼아 달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당연하게도 활을 날리는 엘프들을 향해서다

“회를 쳐서 먹어주마!”

리자드맨들이 어느 정도 다가갔을 때 날아오던 화살이 멈추었다. 아이언 엘프들이 활을 땅에 버리고 검과 창을 꺼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언 엘프는 엘프답게 활을 잘 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검과 창을 잘 다룬다.

“정령 빙의(Spirit Enchant)!”

정령과 계약한 엘프들은 자신의 정령을 무기에 빙의 시킨다. 일시적으로 정령의 힘이 담긴 무기가 되는 것이다. 무기의 성능이 상승하고 속성이 부여된다. 마법무구가 되는 것이다.

50명 중의 20명 정도가 정령과 계약한 엘프들이다. 그들은 모두 무기에 빙의시키며 리자드맨들에게 달려들 준비를 한다. 리자드맨 또한 무구를 되잡는 순간이었다. 공터에서 유콘스의 목소리가 커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전원 모여라!”

행동은 빨랐다. 리자드맨 전원 동시에 유콘스를 향해 뛰어간 것이다.

유콘스에게 돌아온 리자드맨 들은 순간,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을 벌리고 말았다. 유콘스의 두 다리가 얼음에 감싸여 움직이지 못한 채로 아이언 엘프 둘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원 조심해라! 내가 파악하지 못한 마법사가 있다!”

유콘스가 대검을 휘두르며 로크와 누운의 검격을 받아쳐 냈다. 아무리 단단한 비늘이라지만 불의 정령이 빙의된 무기에 맞으면 상처를 입는다.

“빌어먹을!”

누운이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금 달려들었다. 맹공을 퍼붓지만 눈앞의 분홍 머리카락의 리자드맨은 손쉽게 막아낸다. 만약, 옆에 로크가 없었다면 죽는 것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누운처럼 분노하진 않았지만 로크 또한 표정이 밝지 못했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직트랩으로 발을 묶지 않았다면 밀리고 있는 건 자신들이었음을.

“대장! 그 다리는?!”

“마법에 당했다! 마법사의 짓인지, 아티펙트의 짓인지 알 수 없다만 주의해라!”

유콘스가 이를 으득 갈았다. 눈앞의 엘프를 향해 덤벼드는 순간 마법이 발동되어 다리가 얼어붙었다. 힘을 주어 떼어내려 하지만 얼마나 단단한지 다리 힘만으론 뗄 수가 없다. 대검으로 내려쳐 얼음을 박살내기엔 두 명의 엘프가 틈을 내주지 않는다.

리자드맨들이 빠르게 유콘스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 숫자가 숫자인지라 로크와 누운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 땀이 흥건하다.

로크는 경비대에서 가장 강한 2명이면 유콘스를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발을 묶는 게 고작이다. 그것도 매직트랩의 힘이 없었다면 제대로 버티지도 못했다.

만에 하나 테드가 마을에 없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 테드.”

“……생각보다 더 강한데.”

13명으로 50명에게 덤벼올 때부터 생각했었다.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지 않고선 보통은 수가 배 이상 차이 나면 싸우지 않는다.

테드는 소수의 병력으로 적들을 유인해 함정에 빠뜨리는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로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냉정한 모습과 달리 로크는 다정했다. 적의 몰살보다는 아군

의 안전을 택했다.

테드는 리자드맨이 도망갈 줄 알았지만 의외로 일이 잘 풀러 함정이 있는 곳으로 몰려 왔다.

“스스로 모여들 줄은 몰랐어. 운이 좋은데.”

매직트랩의 단점이라 한다면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함정으

로 적을 끌고 오는 것이다. 지금 엘프 사냥꾼 13명이 모두 함정에 모였다.

“네놈들! 마법사는 어디에 있지?!”

거대한 대검으로 자신의 다리를 붙잡은 얼음을 깨부숴 탈출한 유콘스가 버럭 외쳤다.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않으며 앞으로 나선다. 땅에 발을 딛을 때마다 그 기백에 지면이 떨리는 느낌이다.

그에 테드 또한 로크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섰다. 전투는 이미 끝났다.

“내가 마법사야.”

“…어린 인간, 네놈이…?”

유콘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마력을 가지곤 있지만 미약하고 겉보기엔 10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마족도 아닌 인간이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마법사일 리가 없다. 그러나 유콘스는 이 세상의 상식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알고 있다.

“엘프보다 네놈이 더 위험한 것 같구나!!”

마법사는 단 하나의 마법으로 전투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자들이다. 전투에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게 통설이며 기본이다. 유콘스가 테드를 향해 달려들자 그 뒤의 리자드맨들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든다.

쩌엉.

공간을 울리는 커다란 굉음과 함께 거대한 푸른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일어난 광경은 유콘스로선 원하지도 않고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숲이 얼어붙었다. 정확하게는 유콘스와 리자드맨이 있는 장소만 완벽하게 얼어붙었다. 비늘에 서리가 끼였고 머리카락은 딱딱해졌다. 유콘스가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얼어붙어 떨어진다.

풀이 얼었고 나무가 얼었다. 풀은 딱딱하게 변한 것도 모자라 날카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주위에는 연푸른색의 안개가 감싸듯이 허공을 떠돌고 있다.

유콘스는 자신의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몸이 굳어져 움직이는 것에 고통이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고개만을 돌려 자신의 부하를 바라봤을 때, 유콘스의 눈이 찢어질 듯이 크게 떠졌다.

모두 얼어 죽어 있었다.

“……!”

리자드맨은 추위에 약하다. 겨울은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지만 방심하면 얼어 죽는 리자드맨이 나타날 정도다. 종적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리자드맨의 약점이 된다. 추운 환경, 빙속성의 공격. 모두가 리자드맨의 약점이다.

“…마법사!! 네놈 짓이냐!!”

유콘스가 분노해 소리 질렀다. 육체가 꿀렁이며 변화를 일으킨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테드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한 마법이야.”

정확하게는 매직트랩이다. 2개의 매직트랩을 약간의 마력으로 발동시켰고, 그 결과가 이렇다.

공간 자체에 온도를 내려 순식간에 얼어붙게 하는 《프로스트》와 미세한 차가운 입자를 만들어 퍼뜨리는 《프로스트 더스트》다. 본래 3개를 준비했지만 1개는 유콘스의 발을 묶기 위해 사용했다.

“용서… 하지 않겠다.”

유콘스가 씹어 뱉듯이 중얼거린다. 분노가 담긴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테드는 여유로웠다. 유콘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테드는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을 예상했다.

프로스트는 제대로 먹힌 모양이지만 몸 안의 마나를 활용할 줄 알고 마나가 제법 쌓인 유콘스는 프로스트 더스트의 효과가 거의 없다.

꿀렁이던 유콘스의 몸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체격이 커지고 비늘이 단단해진다.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이 자라고 꼬리의 비늘은 위협적일 정도로 날카롭게 변화한다.

가장 큰 변화는 인간이었던 얼굴이 파충류의 얼굴로 변했다는 것이다. 주둥이가 튀어나왔으며 악어의 주둥이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난다. 눈의 홍채가 황금색으로 변하며 파충류의 동공처럼 세로로 갈라진다.

《완전한 진화(Evolution Complete)》

감정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없게 되지만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리자드맨 전사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익힌 스킬이다. 테드는 이 스킬을 알고 있었다.

“죽여주마!! 지금 당장, 죽여주마!!”

리자드맨의 이상적인 전사의 모습으로 변한 유콘스가 테드에게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밝은 은빛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 힘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보여줄게.”

매직트랩의 경우 마법진이 나타나기도 전에 곧 바로 발동한다. 그러나 테드는 한순간에 매직트랩의 일부를 마법으로 고쳐 숨겨둔 마법진이 허공에 나타나게 했다. 이것으로 발동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땅에 묻은 마법진 3개는 엘프의 도움을 받아 땅에 숨겼다. 얼음과 관련된 매직트랩이다.

1개는 부러진 나무속에 숨긴 중력계 매직 트랩이지만 사용할 일은 없을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 1개는 하늘에 숨겼었다.

하얀 은색으로 빛나는 마법진이 허공에서 나타난 순간, 유콘스는 저도 모르게 전의를 상실했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다. 그러나 이길 방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적을 향해 달려든다? 그 전에 마법이 발동되어 죽을 뿐이다.

“비전 마법. 『궁니르(Gungnir)』”

은의 마법진이 빛을 내기 시작한다. 마법진의 아래 은빛이 모여든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로크를 비롯한 엘프들은 시선을 빼앗겼다.

그곳에서 유콘스만이 마법진이 아닌 테드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유콘스의 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전투 후의 승리자는 감정을 느낀다. 유콘스 자신의 경우엔 희열이었다. 전투는 자신의 강함의 증명이었다. 전투를 하며 보아온 누군가에겐 슬픔이었다. 또 누군가는 자부심이었으며, 누군가는 정의였다. 많은 전사를 보았고 많은 승리자를 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테드의 눈은 처음 보는 종류였다.

아무런 감흥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것이 당연한 일인 마냥, 차분하고 고요하다. 승리의 흥분감도 없으며, 살해의 죄책감도 없다.

저 눈은 마치, 지나가는 개미를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인 듯한 느낌이지 않은가.

“……괴물이군.”

온몸을 내달리는 소름을 떨쳐내듯 유콘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은빛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유콘스를 비롯한 13명의 리자드맨은 그대로 사라졌다. 육체 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산화했다. 그것은 그 주변에 있던 흙, 나무, 풀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진 듯한 작은 크레이터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

로크는 크레이터를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숲이 날아가서 슬프다는 느낌은 없다. 다만, 신경이 쓰였다. 유콘스의 마지막에 작게 중얼거린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건 고대… 마법인가?”

고대 마법. 약 2~3천 년 전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마법이다. 로크도 실제로 본적이 없다. 그러나 전설로 들어 알고는 있다.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마법이라고.

“설마.”

“…….”

테드가 웃으며 부정했지만 로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을 믿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믿기 어려웠다. 전문적인 감시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고대 마법이 아니라 할지라도 테드가 가진 실력은 위험하다. 자칫하면 마을 자체가 날아갈 수 있다.

로크가 테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한 매직트랩이라면, 숲을 파괴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지 않았나?”

로크가 테드에게 물었다. 얼어붙은 시점에서 단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그 정도라면 숲을 파괴하지 않고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숨겨둔 매직트랩은 중력마법이야. 대장 리자드맨은 고작 그 정도로 죽지 않아. 내가 보기엔 하이랜더급이니까.”

“…하이랜더급… 인가. 확실히.”

로크와 누운. 마을 최고 실력자들이 동시에 덤비고서도 처리하지 못했다. 하이랜더급의 실력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엘프 사냥꾼에게 마을이 유린당할 뻔했다.

“……마을을 지켜줘서 고맙다.”

아이언 엘프의 입장에선 테드가 마을에 있었던 것이 최고의 행운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마을의 운명은 최악으로 치달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감사할 필요는 없어. 나도 집을 잃으면 곤란했을 테니까.”

확실히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고맙다고 경계를 풀 수는 없다. 그게 경비대장이란 자리의 책임이었다.

로크는 오늘따라 유난히 입이 썼다.

============================ 작품 후기 ============================

테드는 마법적 지식으론 세계 정상급입니다. 마력이 조루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