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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엘프 사냥꾼.
“엘프 사냥꾼은 뭐야? 노예상인 같은 거?”
테드가 누운에게 물었다. 누운은 돌아보지 않고 달리면서 대답한다.
“노예상인이 더 나은 편일지도 모르지. 엘프 사냥꾼은 엘프를 먹는 리자드맨을 말한다.”
네메스에 노예제도가 없다. 정확하게는 있었다가 사라졌다. 이름 없는 신의 사도가 나타나면서 사라진 것이다. 또 엘프를 노예로 잡았다고 해서 편안하게 노예로 부릴 수 없다. 엘프 왕국 아우티리아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엘프 사냥꾼 리자드맨은 엘프를 별식으로 취급하는 놈들이다. 모든 리자드맨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통을 잇고 중시하는 리자드맨 중에서 늙지 않는 엘프를 별식 취급하는 리자드맨이 많다.
엘프 왕국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중립지대인 이곳에선 가끔씩 엘프 사냥꾼이 찾아온다.
회관에 도착한 누운은 관리자 영감에게 블랙보어를 맡기고 1층으로 들어갔다. 테드는 그를 따라 들어갈까 살짝 망설였지만, 결국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대장. 엘프 사냥꾼이 나타났다는 건 사실인가?”
1층의 가장 큰 방, 경비대장의 집무실로 들어간 누운이 문을 열자마자 내뱉은 말이었다. 다급함이 묻어 있는 말은 어서 대답하라고 재촉하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보고서를 확인하고 있던 로크는 누운의 모습을 힐끔 확인하고서 다시 보고서로 시선을 옮겼다.
“…순찰조가 무장한 리자드맨을 확인했다. 저쪽은 아직 우리를 눈치 채지 못한 듯하지만, 지나가는 모험가는 아니다. 아마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겠지.”
“감시는 붙여 뒀겠지?”
“실프를 붙여두었다. 마을과 떨어진 곳에서 숲을 이동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를 찾고 있겠지.”
실프는 바람의 하급정령이다. 전투적인 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바람 속에 몸을 숨길 수 있어 감시나 미행, 정보 수집에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경비대를 이끌고 가서 싸워야 하지 않나?!”
“적의 숫자는 열셋. 실프를 이용해 혹시 모를 추가병력을 탐색하고 있다. 적에 대
한 정보가 부족한 지금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로크! 엘프 사냥꾼 놈들을 그대로 둘 셈이냐?! 그러다 마을에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당연히 마을에 들어오게 둘 생각은 없다. 그리고 누운. 넌 조금만 흥분해도 주위가 보이지 않지. 머리를 식혀라.”
냉정한 로크의 말에 누운이 흥분을 뱉듯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로크를 경비 대장으로 추천한 것은 누운 자신이다. 로크가 촌장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니다. 자신에게는 없는 냉정한 사고력을 로크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이유가 없다.
쉽게 흥분하는 누운이었지만, 이유는 있었다. 과거, 10년도 전에 있었던 엘프 사냥꾼의 일이 떠올라 누운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아이언 엘프가 산채로 리자드맨에게 잡아먹힌 관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피가 역으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누운은 숨 쉬는 것에 신경을 집중했다. 숨을 마시며 차가운 공기로 몸을 식힌다. 숨을 내쉬며 열기를 밖으로 내보낸다.
“……대장.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13마리면 많은 건 아니지만 적은 것도 아니지. 경비대 전원을 모아서 적당한 장소에서 처리할 생각이다.”
로크의 말에 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 피해를 줄 순 없으니 결계 밖에서 싸워야 한다. 마을 결계를 이용한 방법도 있지만 그럴 경우 마을 주민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13명 정도면 함정으로 처리할 수 있지 않아?”
누운의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테드가 끼어들었다. 흥분해서 테드가 뒤에 있는지도 몰랐던 누운이 당황했지만 로크는 테드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마을 밖 숲에는 함정이 없다. 동물용 덫은 있지만 리자드맨에겐 통하지 않는다.”
로크의 말에 테드가 아차, 했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엘프는 숲을 사랑하는 종족. 숲을 파괴할 정도의 큰 함정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 웬만한 작은 함정으로 리자드맨이 죽을 리 없다.
“미궁에선 매년 수백, 수천이 넘는 모험가가 죽어 나가. 그중 절반 이상이 몬스터에게 당해서 죽는 게 아니라 미궁의 함정에 걸려서 죽어.”
“함정의 위험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
“부족하겠지.”
이어지려는 로크의 말을 끊으며 테드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로크의 정면에서 그 갈색 눈동자에 시선을 맞춘다.
“나는 너희들이 도와주고 재료만 제공해 준다면 1시간 이내에 13마리의 리자드맨을 몰살시킬 수 있는 함정을 준비할 수 있어.”
“……숲이 파괴되지 않는 함정이라면 도와주지.”
“아니, 숲은 파괴돼. 내가 설치할 함정은 상당한 파괴력을 가진 매직트랩이니까. 로크, 너는 선택해야 해.”
매직트랩은 구덩이를 만드는 정도의 함정이 아니다. 발동하는 순간 폭발하고, 전격이 몰아치며, 주변을 태우는 함정이다. 숲의 파괴는 있을 수밖에 없다.
“첫째, 마을 입구에 함정을 설치하고 유인한다. 숲을 파괴하지 않아도 되지만 마을에 피해가 갈 수 있는 방법이지. 둘째, 숲의 일부를 약간 파괴하고 함정으로 적들을 몰살시킨다.”
“…….”
인간은 이해하지 못할 고민이다. 인간은 망설임 없이 숲을 파괴할 테니까.
“셋째. 함정을 포기하고 엘프 경비대만으로 숲 속에서 리자드맨과 싸운다. 과연 가장 많은 피해를 받는 것은 몇 번일까?”
거창하게 말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엘프는 숲을 사랑한다. 하지만 동시에 숲을 사용할 줄도 안다.
“두 번째로 하지. 필요한 물건이 뭐지?”
나무로 만든 집에서 주거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숲을 사랑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동족을 사랑하는 것을.
엘프가 숲을 버릴 수 있음을, 테드는 알고 있었다.
“우선은 그들의 정보와 은이 대량 필요해.”
⁂ ⁂ ⁂
엘프 사냥꾼은 엘프를 잡아먹는 리자드맨을 가리킨다. 엘프의 입장에선 굉장히 불쾌한 단어지만 리자드맨은 오히려 명예로운 칭호로써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리자드맨이 엘프 사냥꾼은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 리자드맨 전체를 통틀어 보자면 오히려 전통을 경멸하는 리자드맨 쪽이 많다. 엘프를 먹는 것은 전통의 일부지만, 야만적인 전통이며 리자드맨의 수치라는 것이 일반론이다. 그러나 전통을 추구하는 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특히나 조금이라도 엘프 고기를 맛본 리자드맨들은 그 황홀한 맛에 중독되어 광신수준에 이른다.
병든 리자드맨이 엘프 고기를 먹고 병을 나았다는 이야기는 리자드맨 사이에서 제법 유명한 이야기다. 덕분에 맛뿐만이 아니라 몸에도 좋다고 알려졌다.
유콘스는 리자드맨 중에서도 특별하다. 이제는 멸망해 몰락한 리자드맨의 왕국, ‘쿠크타스’의 왕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왕족의 상징인 밝은 분홍색의 머리카락과 검붉은 도마뱀 꼬리는 그의 자랑이다.
“유콘스님! 정찰조가 아이언 엘프 놈을 발견했습니다!”
그를 향해 한 명의 리자드맨이 다가왔다. 가슴을 보호하는 브레스트 플레이트를 걸친 녀석이다. 건틀릿을 착용하지 않은 양팔에는 갑옷만큼 단단한 리자드맨의 비늘이 있다. 아니, 양팔뿐만이 아니라 피부 전체에 비늘이 있다. 형상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은 꼬리와 비늘이 없다.
“그런가. 그럼 준비해라. 엘프를 사냥할 시간이다!!”
유콘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굶주려있다. 어렸을 적부터 가끔씩 먹어온 엘프 고기를 최근엔 부쩍 구하기도 어려워졌고 암시장에서 구하려 해도 가격이 상승했다.
엘프 사냥꾼으로서 소수로 행동하는 모험가 엘프를 잡아먹지만 그것도 요즘엔 시원찮다. 그때 마침, 이 숲 근처에 엘프의 마을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지금 엘프를 발견했으니 엘프를 고문해 마을을 알아내면 엘프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유콘스는 입안에 대량으로 분비되는 침을 삼키며 주변을 살폈다. 흩어져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리자드맨들이 각각 무기를 꼬나 쥐고 모여든다. 활을 든 리자드맨은 없고 창이 대부분이다. 유콘스는 자신의 등에 비스듬히 매인 대검을 만지며 그들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자신을 제외한 총 12명의 리자드맨이다.
“드디어 엘프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유콘스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모두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 표정이 밝았다. 몇몇은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느라 바쁘다.
“크크. 어린 엘프가 그렇게 몸에 좋다고 들었습니다! 군침이 돋는군요!”
“엘프를 가축으로 삼아 영원히 먹는 건 어떻습니까!?”
“멍청이! 나약한 엘프는 금방 자살해버리고 말아서 가축으로 사용할 수 없다! 거기다 가축은 이상하게 맛이 없지! 야생의 엘프가 최고야!”
“유콘스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 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으로, 입으로 유콘스를 향해 재촉한다. 얼른 식사를 하러가자. 파티를 즐기자고. 그 뜻이 전해져 온다. 유쾌한 기분이 든 유콘스가 입을 비틀어 웃었다.
“때마침 저녁이 가까워졌다! 오늘 저녁은 엘프 파티다! 으하하하하!”
살살 녹는 엘프 고기를 생각하며 유콘스가 숲이 떠나가라 웃었다. 그는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실프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취할 필요가 없었다.
유콘스는 그만큼 자신 있었다. 엘프는 음식일 뿐이다. 엘프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나라를 잃은 선조가 멍청하게 보일 지경이다. 고작 음식 따위에게 지다니. 리자드맨의 수치다.
“먀누. 파티 장소로 안내해라.”
“저만 따라 오십쇼!!”
정찰역을 맡은 리자드맨이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숲으로 걸어갔다. 유콘스는 그의 목소리와 힘 있는 걸음걸이에 들떠있는 것을 단번에 알았다. 남 말할 처지는 아니다. 자신 또한 앞으로 맛볼 고기에 들떠있으니까.
30분 정도 걸었을 때 유콘스는 엘프의 기척을 느꼈다. 엘프 사냥꾼 중에서 마나를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아는 유콘스만이 느낀 것이다.
“전원 정지.”
유콘스의 말에 리자드맨 전원이 멈춘다. 훈련이 잘되어 있는 군대를 연상시키지만 군대가 아니다. 군대는 시스템의 허락이 없으면 중립지대인 이곳에 들어서지 못한다.
유콘스는 눈을 감았다. 마나를 사용해 강제로 기척을 넓힌다. 근처에 바람의 정령이 느껴지지만 무시한다.
“수는 대략 50명 정도인가. 매복이군.”
유콘스는 생각했다. 매복이라 하기엔 너무 알기 쉽다. 이건 매복이라기보다는 전면전에 가깝다. 유콘스는 간단하게 생각했다. 마을의 위치를 가르쳐 주기 싫은 것이겠지.
50이라는 숫자에 긴장하는 리자드맨들을 보며 유콘스가 씩 웃었다.
“자신 없나? 여기서 물러나고 싶나?”
13대 50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전략이 있다면 모르지만, 현재 13명 중에서 전략에 능통한 자는 없다.
“아닙니다!”
“고작 음식 따위에게 쫄 이유가 없죠!”
“놈들은 결국 사냥감일 뿐입니다!”
그러나 리자드맨들은 패기를 담아 대답한다. 그들은 유콘스와 함께 ‘큐리즈’ 부족의 용맹한 전사들이다. 엘프를 사냥해왔고, 현상금이 걸려 모험가에게 쫓기면서 무수히 많은 전투를 경험해왔다. 상대가 조금 많다고 물러난다면 전사라는 칭호가 아깝다.
“놈들은 결국 오합지졸 집단일 뿐이다. 안전한 마을 내에서 살아온 겁쟁이들이다. 50명이 모여? 그래 봤자 군대도 아닌 일개 마을의 자경단이겠지. 여기엔 아우티리아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하이랜더도 없다.”
유콘스는 엘프는 약해빠진 종족이라 생각하지만, 하이랜더만은 예외로 생각하고 있다. 어렸을 적 한번 본 하이랜더는 지금 붙는다 해도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나를 믿고 따라와라. 파티를 열어주지.”
“다른 놈이라면 몰라도 유콘스님은 믿을 수 있습니다.”
7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해왔다. 그 기간 동안 쌓아온 신뢰는 단단하게 굳어 이어졌다.
유콘스는 전사들의 눈을 보며 등을 돌렸다. 앞에 함정이 있다 해도 정면에서 부숴버린다는 절대적인 자신감을 등으로 표현했다.
12명의 리자드맨은 그의 강인한 등을 보며 걷는다.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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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