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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엘프 사냥꾼.
1시에 맞춰 회관의 앞으로 나온 테드는 누운을 포함한 아이언 엘프 3명이 기다리는 것을 발견했다. 누운은 검을 착용하고 있는데 다른 2명은 활과 검을 동시에 착용하고 있으며 등에는 가방을 메고 있다. 본 적 있는 얼굴의 엘프들이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엘프의 경우 어지간한 경우는 제외하곤 대부분이 미남미녀라 오히려 이름을 기억하기 어렵다.
“딱 맞춰 왔군. 보통은 5분 정도 일찍 오는 게 정상이다만.”
“늦지 않았잖아. 그럼 된 거지.”
테드가 누운의 옆에 있는 엘프들을 살폈다. 누운을 포함한 그들은 인간인 테드가 함께 사냥 하는 것에 불만 같은 건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무장이 없군.”
테드의 행색을 살펴보며 누운이 말했다. 테드는 엘프에게 지급 받은 검은색 면바지와 하얀 긴 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반면 엘프의 경우 가죽옷 위에 나무로 만든 경갑과 심장을 보호하는 브레스트 아머를 입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갑옷도 없고. 나는 마법사니까. 무장은 그다지 필요 없어.”
“…사냥이니 괜찮겠지.”
던전이었다면 강제로라도 무장시켰겠지만 던전 공략이 아닌 사냥일 뿐이다. 직접 앞에서 싸울 마법사가 아니니 확실히 무장은 필요 없다.
“그럼 저녁 전에는 돌아와야 하니 출발한다.”
누운이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작은 파티의 대장은 틀림없이 누운이다.
마을을 지나 숲으로 들어간다. 바빠지는 것은 테드였다. 엘프는 숲에서 능력치가 상승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발걸음도 당연히 빠르다. 테드가 어른의 몸이었다면 무리 없이 따라갔겠지만 어린아이의 몸이다. 보폭이 좁다. 다행인 점은 누운이 그걸 배려하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테드가 힘든 건 사실이었다. 능력치 보정이 있기에 보통의 인간 어린아이보다 뛰어난 능력치지만 숲 속에서 엘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마법사 좀 배려해라! 이 엘프 놈들아!”
테드가 헉헉거리며 소리 질렀다. 앞서가던 누운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테드가 안쓰러울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마르스. 이 녀석한테 물 좀 나눠줘라.”
“우린 천천히 걸었다고 생각한다만…. 마법사라 그런가. 체력이 없군.”
마르스라 불린 엘프가 한 번 투덜거리면서도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테드에게 내밀었다. 사양하지 않고 나무로 만든 물통을 받아든 테드는 입구를 열고 꿀꺽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하아. 이제야 살 것 같네!”
“그럼 다시 움직이지.”
“조금만 쉬다 가지.”
“사냥감이 근처에 있는 것 같으니 여기서부터 천천히 걸어 간다.”
누운의 지시하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숨을 내쉰 테드가 엘프들의 뒤를 따라갔다.
“테드, 마을의 결계는 언제쯤 수리가 가능하지?”
숲을 걷는 와중 누운이 작은 목소리로 물어 왔다. 테드는 로크와의 거래에 따라 마을의 결계를 고쳐주기로 했다.
테드는 엘프 마을의 결계를 떠올렸다. 마을 회관 지하에 그러져 있는 거대한 마법진이 결계의 정체다. 마법진의 크기나 결계의 효과를 보자면 제법 뛰어난 마법사가 설치한 결계가 틀림없다.
“결계라면 당장에라도 고칠 수 있어. 다만 재료가 없어서 안했을 뿐이야. 로크가 재료를 구하는 중이지.”
일반적인 은으로 만든 마법진이 아니라 거대개미(Giant Ant)의 더듬이를 갈아 수은과 섞은 물체로 만든 마법진이라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재료만 있다면 결계 수리는 1시간 내로 끝낼 수 있다.
“수리할 수 있다니 다행이군.”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는데.”
“…마법에 대해선 나보다 네가 더 잘 안다고 생각된다만?”
“마법이라기 보단 마법사에 대한거야.”
마을의 결계를 보고 떠오른 의문이다. 중요한 게 아니라 잊고 있었는데 방금 전의 대화로 생각났다.
“마을의 결계랑 감옥의 결계의 수준이 다르던데. 같은 마법사가 설치한 건 아니지?”
어른과 어린아이의 수준이다. 마을을 지키고 있는 결계와 감옥의 결계. 감옥의 결계가 단순하다면 마을의 결계는 복잡하고 세분화되어 있다.
“로크에게 듣지 못했나. 마을의 결계는 200년 전, 엘프 왕국에서 온 대마법사가 설치했다고 들었다. 지하 감옥에 있는 결계는… 50년 전의 우리 마을의 마법사가 만들었다. 그 마법사는 30년 전에 처형되어 지금은 없다.”
“처형… 되었다고?”
엘프는 천성적으로 마력과 맞지 않기 때문에 마법사가 귀하다. 어지간한 죄라면 벌금형으로 끝날 정도로 혜택을 받는다.
“사령술에 손을 댔다고 하더군.”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사령술사. 다르게 네크로맨서라고 불리는 그들은 엘프 왕국 ‘아우티리아’의 공공의 적이다. 아우티리아에선 이유를 불문하고 사령술을 익힌 마법사는 무조건 사형이다. 법으로 되어 있다.
아이언 엘프 마을 제누가 국가가 간섭할 수 없는 중립지대에 있다고 해도 그들이 엘프인 이상 아우티리아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아우티리아를 적으로 돌리지 않으려면 사령술사를 처형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잠시. 찾았다.”
누운이 멈추며 몸을 움츠리자 주위에 있던 엘프들과 테드 또한 그를 따라 자연스레 몸을 움츠렸다.
누운의 눈에는 조금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검은색 멧돼지가 보였다. 멧돼지는 나무에 기대에 쉬고 있었는데 그 덩치가 누운보다 컸다.
“블랙 보어다. 운이 좋군.”
고기의 맛이 좋고 가죽도 방한이 잘 되어 인기가 있는 멧돼지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사냥이 조금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의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블랙 보어를 확인한 테드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저거 장난 아니게 맛있는 거잖아.”
특히나 뒷다리는 진짜 장난 아니다. 뒷다리의 가격만 해도 20실버가 넘는다. 입에 넣는 순간 천국의 일부를 맛볼 수 있다는 소리가 나돌 정도다.
“이왕이면 온전하게 시체를 얻고 싶다. 바람 계열의 마법이면 괜찮겠군.”
“어지간한 바람 마법으론 상처도 주지 못하겠는데.”
크기로 보아 성체의 블랙보어다. 바람 속성의 마법은 속도는 빠르지만 위력이 약하다. 현재의 마력으로 발동한 바람계열 마법으로 블랙보어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블랙보어는 눈앞에 적이 있다면 도망가지 않으니, 내가 정면으로 나서도록 하지. 너희들은 나를 엄호해라.”
일반적인 멧돼지였다면 이미 화살로 그 운명을 달했을 것이다. 블랙보어는 성질이 사납지만 적이 안 보이면 도망가는 습성이 있기에 멀리서 화살을 쏘면 십중팔구 도망간다.
검을 빼들고 블랙 보어를 향해 달려 나가는 노운을 보며 테드가 한 숨을 내쉬었다. 이래서야 사냥이 아니라 전투같지 않은가.
“마법의 준비엔 어느 정도 걸리지?”
테드의 옆에서 엘프가 블랙보어에게 활을 겨누며 물었다. 아무리 엘프라도 일반 화살로는 저 두꺼운 가죽을 뚫고 치명상을 입힐 수 없다. 고작해야 경직이 전부다.
“마법 발동까진 오래 걸리지 않아. 3초 정도. 문제는 블랙보어가 피할 수 있다는 것과 마력이 없어서 한번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지.”
테드가 블랙보어를 바라봤다. 노운의 기습으로 옆구리에 얕은 검상을 입었지만 기운이 넘치는지 이리저리 움직이며 달려들고 있다. 거대한 송곳니가 위협적이다. 한 번 물리면 그대로 끝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놈의 발을 묶지.”
옆의 엘프 둘이 활을 쏘면서 블랙보어를 향해 달려 나간다. 아이언 엘프는 접근전이 특기라더니, 궁수까지 접근해서 싸우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달려 나가는 그들을 보며 테드는 여유롭게 블랙보어를 향해 걸어갔다.
테드는 저녁까지 마을 회관에서 일한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회관에서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마력을 수련한다. 몸 내부로 마나를 끌어들여 마력으로 바꾼다. 그릇의 한계가 있어 대부분의 마력은 허공으로 날아가지만 극소수의 마력은 그릇을 확장시켜준다.
지난 2주간 꾸준히 수련한 결과 마력 능력치가 2 상승했다. 빠르게 성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테드의 마력 능력치가 기본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능력치는 높을수록 올리기 힘들다.
“잘하고 있잖아.”
누운과 엘프들은 블랙보어의 공격을 요리조리 잘 피하고 있다. 숲이 방해가 되어야 하는데 엘프이기 때문인지 오히려 블랙보어가 숲의 방해를 받고 있다. 더군다나 공격방식이 너무 단조롭다. 공격방식이 직선으로 들이박는 것이 전부다. 속도와 힘이 엄청나 한번 박히면 끝이지만 민첩성 하면 또 엘프 아닌가. 상대가 나빴다.
누운은 블랙보어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덤벼올 때마다 검을 휘둘러 검상을 입히지만 치명상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블랙보어가 팔팔하게 덤벼오지 않은가.
“그렇게 내 마법이 보고 싶은 건가.”
테드의 고결한 눈에는 누운이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은 게 보였다. 그는 테드의 마법을 원하고 있었다.
‘마법을 원한다면 보여주지.’
블랙보어가 눈치 채지 못할 거리에서 테드가 손바닥을 뻗었다. 몸 안의 마력이 들끓는다. 뻗은 손바닥 앞에 녹색의 마법진이 나타난다. 테드의 몸보다 약간 작은 마법진은 천천히 빛을 내며 회전하고 있다.
블랙보어는 아직까지 팔팔하게 뛰어다니고 있지만 문제는 없다. ‘고결한 눈’은 블랙보어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행동 예측까지 가능하게 만든다.
“『블래스트(Blast)』”
강대한 바람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와 그대로 숲을 가로질러 블랙보어에 적중한다. 옆구리를 그대로 직격당한 블랙보어는 그 거대한 몸이 날아가 나무에 강하게 부딪혔다.
뿌지직, 나무의 기둥이 부러지며 옆으로 떨어진다. 블랙보어는 죽은 것인지 기절한 건지 모르겠지만 혀를 내밀고 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다.
“…윽!”
테드가 몸을 비틀거렸다. 몸 안의 마력을 모조리 사용한 대가였다. 어지러움을 느끼며 누운을 바라본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테드와 블랙보어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는 모습이 우습다.
“겨우 블래스트 한 번에 이렇게 될 줄이야.”
마력이야 적어서 그렇다 치지만 위력도 생각보다 약했다. 수련의 절실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마을의 결계를 수리한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다. 엄청난 마법이군.”
“아직 한참 부족해.”
누운의 칭찬에 테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마법사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칭찬이다. 일반 마법사가 보았다면 비웃을 수준이다.
“웬만하면 나무는 부수지 말았으면 했다만. 뭐, 이 경우엔 어쩔 수 없군.”
부러진 나무를 지긋이 바라보던 누운이 시원하게 시선을 블랙보어에게로 돌렸다.
블랙보어에게 다가간 누운은 칼을 들어 그대로 머리를 잘랐다. 깔끔하게 잘려나가는 머리를 보면 그가 상당한 실력을 갖춘 검사임을 알 수 있다.
테드는 그가 블랙보어 정도는 혼자서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음을 확신했다.
“내장을 여기서 빼내고 바로 돌아간다. 블랙보어 하나면 오늘 사냥은 끝났다. 욕심 부릴 필요는 없지.”
블랙보어의 배를 가르는 누운을 테드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테드의 경험 중 동물 사냥 경험은 적다. 또 사냥 후의 도축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새삼스럽지만 자신이 하지 못하는 도축을 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한 기분이 든다.
내장을 빼는 것이기에 누운의 일은 빠르게 끝났다. 누운은 그대로 블랙보어를 어깨에 짊어졌다. 자신보다 커다란 블랙보어를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리는 누운을 보며 테드가 살짝 감탄했다.
“《완벽한 육체(Perfect Body)》라는 스킬이 있다. 훈련을 하는 도중 생겨난 스킬인데 육체 능력을 상승시켜 주지.”
네메스의 지성을 가진 종족은 자신이 가진 스킬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플레이어처럼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한다. 때문에 숙련 랭크는 알 수 없다.
“사냥감은 확실히 4등분해야 하는 거, 알지?”
“걱정 마라. 아이언 엘프는 공평하다.”
“특히, 뒷다리! 그건 진짜 확인한다!”
⁂ ⁂ ⁂
돌아온 테드 일행을 반긴 것은 축하를 건네는 아이언 엘프가 아닌 무겁게 가라앉은 마을의 분위기였다. 평소에 이루던 활기가 사라져 있다. 마을의 결계 또한 최대한으로 발동되어 있어 마을 내의 경비대가 아니었다면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무슨 일이지?”
누운이 엘프 경비대에게 물었다. 엘프 경비대 중 한 명이 굳은 표정으로 누운의 앞으로 다가왔다.
“엘프 사냥꾼이 나타났습니다.”
“…….”
그 말에 전염된 듯 누운의 얼굴 또한 굳어졌다. 테드만이 유일하게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을을 살피고 있었다.
“누운씨. 대장님이 회관으로 오라십니다.”
“알았다.”
누운이 곧장 블랙보어를 든 채로 회관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의 옆에 있던 테드 또한 얼결에 함께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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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