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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엘프 사냥꾼.
2. 엘프 사냥꾼.
그 후로 2주가 지났다. 테드의 아이언 엘프 마을 제누의 생활은 순탄했다. 엘프 마을에서 유일하게 인간인 그였지만 적응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약간의 문제라고 한다면 아이언 엘프가 인간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증오까지는 아니지만 에서 만나면 무시할 정도다.
그러나 계속 보다 보면 정이 들기 마련이다. 특히나 마을 내의 마도구를 수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 테드는 수리를 바라는 아이언 엘프와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고 조금씩이지만 아이언 엘프들과 가깝게 되는 것이다.
테드의 일상은 간단하다. 아이언 엘프에게 받은 작은 오두막집의 침대에서 아침 8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잠버릇이 나빠 이부자리는 항상 엉망이다. 귀찮다는 이유로 정리하지 않고 있다.
8시에 일어나면 화장실에서 간단한 세면을 마치고 냉장고를 열어 음식을 꺼내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다.
판타지 세계 주제에 화장실이니 냉장고니 하며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세계의 경우 수없이 많은 차원에서 환생한 인물들이 있다. 지구 출신도 있으며,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의 행성 출신의 환생자도 있다. 그 수만 몇만이 넘는데 냉장고 하나가 대수이랴. 또 냉장고지만 과학이 아닌 마법의 산물이다. 냉장고를 가동시키는 에너지가 전기가 아닌 마나석이다.
아침을 해결하고 나면 밖으로 나간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 경비대장인 로크와의 거래로 인해 마도구를 수리하는 일을 해야 한다. 테드는 조금 걸어 마을 중심부로 다가간다.
마을 촌장의 집, 바로 옆이 마을회관이 테드의 일터이다. 마을 회관의 앞에는 산더미 같은 물건들이 놓여 있다. 대부분이 낡은 마도구로 수리가 불가능한 쓰레기들이지만, 알뜰한 아이언 엘프들은 고물상에게 팔기 위해 회관 앞에 모아두고 있다.
“자네 왔나. 언제 봐도 어린아이답지 않은 귀찮은 표정을 하고 있군.”
“어린애도 아니고 귀찮으니까요.”
마을 회관의 관리자 역을 맡은 엘프가 말을 걸어왔다. 20대로 보이지만 사실은 70살 먹은 할아버지이다. 엘프의 경우 수명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늙지를 않는다. 그러나 귀를 보면 어느 정도 나이를 구분할 수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끝 부분이 뭉툭해지고 나이가 젊을수록 귀의 끝 부분이 뾰족하다. 엘프들은 잘 구분하는 모양이지만 다른 종족이 보기엔 구분하기 어렵다.
“아마 오늘부터 한가할 걸세.”
“그래야죠. 수리한 마도구만 몇 갠데.”
마도구의 경우 대부분이 마법진 내구도 문제다. 녹인 은으로 작은 마법진을 다시 그려야 하기에 은근히 중노동인 일이다. 마법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마력이 부족해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
마법진이 아니라 도구 그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은 테드로선 수리가 불가능하다. 부품을 교체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없는 부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생산에 대한 재능이 있지만 굳이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자넨 의외로 성실하군. 나는 처음에 자네가 얼마안가 마을 밖으로 도망갈 줄 알았지.”
“정당한 거래니까 말이죠.”
테드는 마도구를 고쳐주면서 적지만 수리비를 받고 있다. 고작 30쿠퍼 정도의 밥 한 끼 값이지만 수리하는 마도구가 많다 보니 빠르게 돈이 쌓인다.
작지만 집과 옷, 음식을 받고 있다. 거기에 마을에 돌아온 감정사에게 신분증도 얻었다. 나쁘지 않은 대우다.
수련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스킬의 숙련도가 아주 조금씩이지만 올라가고 있다. 『고결한 눈(Noble Eye)』의 경우엔 마도구를 보는 것만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바로 알 수 있고, 『마법의 대가(The Grand Archimage)』는 마법진을 고치거나 새로 그릴 때마다 숙련도가 상승한다.
“그런데 자네는 볼 때마다 어색하군. 사도라곤 하지만 외형과 분위기가 일치되지 않아.”
“영감님도 제 눈엔 동네 형으로 보이는데요?”
“자네답지 않은 아부로군.”
하하 웃는 그를 바라보며, 테드는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1층의 가장 구석에 있는 방, 그곳이 현재 그의 일터다.
방문의 손잡이를 잡으며 테드가 고개를 돌렸다.
“아, 영감님. 오늘 점심은 뭐죠?”
“닭고기네. 냉동된 게 좀 많이 남아 있다고 들었네.”
이 세계의 엘프는 육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육식만 고집하는 엘프가 있을 정도다.
“튀김이면 좋겠는데.”
테드가 방문을 열었다. 문의 경첩이 끼익 거리며 비명을 내지르지만 무시하고 들어가 문을 닫는다.
테드가 방 오른쪽에 있는 마도구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크고 작은 마도구들이 질서정연하게 있는 것을 보면 감탄보다 한숨이 나온다. 수리해야 할 마도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왼쪽을 쳐다봤다. 수리한 물건을 놓는 곳인데 더없이 깨끗하다.
테드는 중간의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엔 책상 하나와 의자하나가 놓여있다. 그의 자리다. 의자에 등을 기대며 앉은 테드는 뒤쪽의 창문 밖을 바라봤다.
엘프는 나무속에서 집을 짓고 살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인간처럼 건축한 집에서 산다. 나무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이 나무집이지만 건축기술이 발달한 건지 엘프만의 방법이 있는 것인지 벽돌집만큼 단단하다.
때마침 창문 밖에 테드와 비슷한 체격의 어린 엘프 들이 지나갔다. 이 엘프마을에는 작지만 학교가 존재한다. 여기서 마을을 보고 있으면 엘프나 인간이나 별 차이 없다고 생각된다.
“졸려.”
따뜻한 기온과 햇살은 테드에게 졸음을 선사했다. 테드는 팔로 눈을 가렸다. 잔다고 해도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낮잠은 오후에 하기로 정해놓았다.
테드가 팔을 내렸다. 반짝이는 햇살에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반짝였지.”
두 번째로 네메스에 살아갈 때였다. 전장터에서 구르며 적을 죽이고 가끔씩 도시에 가서 휴식을 취할 때 그녀를 만났다.
식당에서 일하는 그녀는 전쟁으로 인해 가라앉은 도시 속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 모습에 테드는 무심코 그녀의 팔을 잡고서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그녀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녀의 대답만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저는 이번이 두 번째 삶이에요. 처음엔 힘들었죠.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가족이 생겼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죠. 순간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깨달았죠. 아, 이 세상도 살만하구나.’
테드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마력이 담긴 것도 아니면서 잊혀 지지가 않는다.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세상 같지 않던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으로 보인 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 왔고 깨달았다. 나는 정말 보잘것없구나.
“…….”
테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대마도사라고 불렸던 주제에 아무것도 모른다.
“뭐, 언젠간 알게 되겠지.”
고장난 마도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사색을 끊어 내는데 일만 한 게 없다. 처음으로 일이 있는 것에 감사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 ⁂ ⁂
테드는 점심을 마을회관에서 해결한다. 엘프 마을에도 음식점이 있지만 거기엔 돈이 들고 마을회관과 제법 거리가 있다. 회관의 2층에 올라온 테드는 식당에 먼저와 있는 엘프들을 발견했다. 그들 또한 테드를 발견했는지 몇 명이 손을 흔들어 인사해주었다.
“테드! 오늘은 좀 늦었군! 평소엔 시간이 되자마자 오더니.”
테드가 힐끔 식당 벽에 걸린 동그란 시계를 바라봤다. 12시를 살짝 넘기고 있었다.
식당 안에 있는 이들은 마을의 경비대원이다. 대략 50명 정도 있는데 점심과 저녁을 같이 하다 보니 어느새 친해졌다.
“화장실 갔다 왔거든. 너희들 손은 씻었냐?”
배식대에서 음식이 놓인 식판을 가져가며 물었다. 엘프들 중 몇몇이 멋쩍은 웃음을 짓는 게 테드의 눈에 보였다. 테드는 방금 말한 엘프의 옆자리에 앉았다. 손을 씻지 않은 엘프 중 하나였는데 이마에 가는 흉터가 있었다. 이름은 ‘누운’으로 특이한 이름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바닥을 구른 것도 아니니 손 정도 안 씻어도 상관없다. 또 엘프가 결벽증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엄청난 편견이다.”
오늘 점심 메뉴.
우유 한 컵, 빵 하나, 치킨 수프, 풀 쪼가리. 끝.
“영감님은 틈만 나면 청소하던데?”
“그 영감님이 유난히 마을회관을 좋아하는 거다.”
테드는 누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영감님은 유난히 회관을 아꼈다. 오죽했으면 첫날에 조심해서 방을 사용하라고 주의를 받을 정도일까. 영감님의 회관 관리자 역은 천직이었다.
숟가락으로 치킨 수프를 떠서 먹는다. 닭튀김이 아닌 건 아쉽지만 닭이 들어간 수프는 담백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테드, 환생하기전의 세계는 어땠지? 들어보니 사도들은 제각각 다른 세계에서 환생을 했다더군.”
“지구란 세계의 평범한 학생이었어.”
대학생이었다. 입학 후 한 달을 못 채우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불쌍한 학생.
“어째 사도들은 죄다 지구라 말하더군. 학생이라… 과연 학생이라면 그 마법에 대한 실력도 이해가 간다.”
학교에서 마법을 가르쳐 주는 평행세계도 있는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테드는 마법이 없는 평범한 지구 출신이다.
“내가 좀 많이 우수한 학생이었지.”
테드가 콧대를 높이며 빵을 집어 한입 물었다. 우수하긴 개뿔. 턱걸이로 겨우겨우 대학에 붙었다.
“아, 쌀밥 먹고 싶다.”
테드가 빵을 우물우물 씹어 삼키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빵은 맛없지 않다. 부드럽고 달다. 오히려 맛있는 편이다. 그러나 빵만을 먹고 있자니 밥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그렇게 먹고 싶나? 이번에 도시에 가니 구해줄 수 있다만.”
“진짜?! 그럼 구해주라! 지금까지 번 돈 전부 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이 세계엔 쌀은 물론이고 된장, 카레까지 존재한다는 것을.
“아니! 쌀만이 아니라 된장이랑 카레도 구해와!”
“워워. 진정해라. 테드. 대량으로 구하려면 회관에서 정식으로 주문해라.”
마을은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경비대와 마을 사람 몇 명을 데리고 도시로 이동한다. 숲 속에서 생필품은 한정될 수밖에 없고 마도구의 에너지원이 되는 마나석을 구입하기 위해서도 나가야 한다.
“고추장도 사야 하고, 초콜릿도 먹고 싶고… 제길! 뼈 빠지게 일해야 하잖아!”
엘프 마을을 떠날 때를 대비해 돈을 모아둘 생각이었지만 지금 당장이 급하니 어쩔 수 없다. 사용하는 수밖에.
“3일 뒤에 출발하니 늦지 않게 주문해라.”
“……누운 돈 좀 빌려주라.”
“거절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온 대답에 미간을 와락 찌푸린 테드가 신경질적으로 수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예정된 낮잠을 취소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테드. 오후는 한가하나?”
“아니, 엄청나게 바빠. 수리해야 할 마도구가 쌓여있다고.”
테드가 컵에 담긴 우유를 마신 뒤 대답했다. 우유의 경우 냉장고가 아닌 다른 마도구로 처리하기 때문에 굉장히 신선하다.
“오후에 비번이라 사냥을 나갈 생각이다. 너에게 사냥을 제안할 생각이었다만, 바쁘다면 어쩔 수 없지.”
테드가 고개를 돌려 누운을 바라봤다. 최근 2주간 방에 박혀 마도구만 수리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반복 노동은 정신을 지치게 한다.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사실 나 엄청나게 한가해. 마법사가 사냥하는 법 모르지?”
노골적으로 실실 웃는 테드를 보며 누운이 피식 웃었다.
“1시에 출발할 예정이다. 출입준비는 내가 해놓지. 사냥 준비만 해오면 된다.”
“사냥물의 수익은 정당하게 나누는 거다.”
“당연한 말이다.”
테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이 좋으면 한탕 제대로 벌 수 있는 게 사냥이다. 운이 나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지만 그때는 산책을 한 기분으로 돌아와 마도구를 수리하면 된다.
누운은 빠르게 일어나는 테드의 식판을 바라봤다. 싱싱한 야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편식이 심하군.”
“드레싱 없는 샐러드는 먹지 않는 주의라서.”
누운이 고개를 으쓱였다. 치킨 수프에 들어간 야채는 잘도 먹으니 못 먹는 것은 아니다. 누운이 생각하기에 테드는 그냥 맛없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다.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서 이런 부분에선 어린아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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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약속이 있어 오늘 미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