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5권 제110장 돌아오지 않는 형광(滎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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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륜고원(巴倫古原)은 만리장성(萬里長城) 밖에 위치한 대고원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고원은 온통 바위와 흙으로만 뒤덮여 있을 뿐 그
어디에도 풀 한 포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석양(夕陽)이 내리고 있었다.
유달리 섬뜩한 기운을 뿜어내는 핏빛 석양이다.
파륜고원은 흡사 핏물에 젖은 듯 시뻘건 광채 속에 잠겨 있었다.
헌데 이 파륜고원 끝에서부터 돌연 엄청난 광경이 벌어지려 하고
있지 않은가.
대고원이 하늘(天)과 맞닿고 동서(東西)로 연결된 끝과 끝, 지금
시야로 보이는 모든 곳은 바위와 흙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꽉 메
워 오고 있었다.
인마(人馬), 그렇다.
파륜고원은 온통 수많은 인마들로 발 딛을 틈도 없이 메워지고 있었다.
무수한 인마들은 뿌연 먼지구름을 피워올리며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일만(一萬)......?
십만(十萬)......?
아아! 그 수(數)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저 보이는 건 온통 사람, 사람일 뿐이다.
대체 어디서 이토록 엄청난 숫자의 인물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인가?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은 파륜고원을 가로질러 오고 있는가?
두두두두두두......!
무수한 인마가 움직이는 소리는 흡사 천둥 소리와도 같았다.
인마의 선두엔 백설처럼 흰 설총마에 올라탄 절세미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바로 혁련소천― 그가 아닌가!
그의 곁에는 군청위가 바짝 따르고 있었다.
이미 짐작했듯이, 파륜고원을 가득 메운 채 달려오는 인물들은 바
로 구천십지만마전의 고수들이었던 것이다.
구천(九天)과 십지(十地)― 그 모든 주인들이 한꺼번에 출동했다.
또한 그들이 거느린 고수들 중 최정예만을 뽑아 함께 출정했으니.......
총인원 십팔만(十八萬) 명, 실로 상상도 못할 대군(大軍)이 아닌가!
그들의 목표는 바로 새북사사천이었다.
두두두두두......!
콰콰콰콰―!
십팔만 대군은 거침없이 석양을 밟으며 내달리고 있었다.
사상 유례없는 장엄무비한 대출정(大出征), 바로 그것이었다.
새북사사천은 오늘 엄청난 운명(運命)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파멸의 조짐이 보이는 엄청난 운명을.......
"뭣이?"
한소리 대경성이 대전을 쩌렁 울렸다.
태사의를 박차고 일어선 사사천의 대장문 철극륭의 얼굴은 크나큰
경악에 물들어 있었다. 그의 입술이 몹시 떨리며 적이 불신(不信)
어린 음성이 흘러 나왔다.
"구천과 십지의 모든 세력을 합친 수십만 대군(大軍)이......?"
그러자 그 옆에 시립한 하토살군 융사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소이다...... 그토록 무지막지하게 밀려오는 엄청
난 대군은 노부 역시 난생 처음이오."
"으음......!"
철극륭은 침음성을 흘리며 다시 무너지듯 태사의에 자리했다.
"설마...... 만마전의 전 세력을 총동원할 줄이야......."
"완전...... 인해전술(人海戰術)이오."
융사의 말에 철극륭은 더욱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현...... 우리편의 숫자는 기껏해야 삼만(三萬) 정도인데......."
"철대장군, 어찌하면 좋겠소?"
"......."
철극륭은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이 없었다.
허나 그는 곧 입술을 깨물며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싸워야지! 싸우는 것 이외에 무슨 도리가 있겠소?"
"......!"
하토살군 융사의 표정 역시 침중히 굳어 있었다.
그때였다.
"대장문!"
한 소리 다급성과 함께 한 인영이 대전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금마혈번 소사, 바로 그였다.
그는 철극륭 앞에 이르자 숨이 넘어갈 듯 급급히 입을 열었다.
"대장문! 빨리 밖으로 나와 보십시오."
"무슨 일이냐?"
"마...... 만마전 놈들이 벌써 도착했습니다."
철극륭의 안색은 지극히 엄숙하게 변했다.
이어 그는 곧 신형을 일으켜 대전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하토살군 융사와 금마혈번 소사가 따랐다.
높은 성루(城樓) 위, 지금 막 철극륭이 올랐다.
그는 성 밖을 바라보자마자 부지중 짧은 신음을 토하고 말았다.
"으......!"
아아...... 보라!
지금은 어둠이 천하를 지배한 밤(野)이었다.
헌데 이 순간, 사사천궁을 중심으로 한 사방이 횃불로 대낮처럼
밝혀져 있지 않은가!
수십만 개는 됨직한 횃불이 서서히 사사천궁을 포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가히 횃불의 바다(海), 그것이었다.
그 아래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고수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철극륭의 얼굴은 그야말로 절망에 얼룩지고 말았다.
"이...... 이토록 빨리 올 줄이야......."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치 못한 그로서는 실로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바로 이때였다.
그그그그― 긍―!
엄청난 천지 진동음이 밤공기를 뒤흔들었다.
꽝! 꽈꽈― 꽈르릉―!
다음 순간 천번지복의 폭음, 그리고 사사천궁의 한쪽이 통째로 박
살나 버렸다.
찰나 하토살군 융사의 안색이 대변하며 소리쳤다.
"자모연환구중포! 하토궁을 박살낸 공포의 무기다!"
자모연환구중포!
그 위력을 신물나게 실감한 그가 아닌가!
급기야 철극륭이 안색은 창백하게 탈색되고 말았다.
"당했다! 철저하게......!"
나직이 중얼거리던 그는 돌연 발악하듯 대갈일성했다.
"막아라! 사사천궁의 제자들이여......! 모두들 당황하지 말고 놈들을 막아라!"
허나 철극륭의 외침은 진정 부질없는 것에 불과했다.
이미 사사천궁은 그 일각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그그그― 긍―!
꽝― 꽈르르르릉......!
자모연환구중포, 이 가공할 무기가 무섭게 불을 뿜기 시작했다.
천지를 무너뜨릴 듯 솟구치는 대폭발음, 그 속에 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비명...... 비명 소리.......
사사천궁 안으로 십팔만에 달하는 구천십지만마전의 고수들이 물
밀 듯이 밀어닥쳤다.
"크― 아― 악!"
"아― 흑!"
"모...... 모두들 대항하라! 아― 악!"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불길에 타 죽고 병기에 맞아 죽고...... 사사천궁은 차츰 무너져 갔다.
충천하는 화염 속에 한 인물이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망연히 서 있었다.
그는 사사천궁의 주지자인 철극륭이었다.
그의 시선에 차츰 멸(滅)해 가는 사사천궁의 모습이 그득히 담겼다.
"만마전...... 모든 힘을 합친...... 위력이 이토록 무서울 줄이야......."
넋 빠진 중얼거림이 철극륭의 입술 사이에서는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
구천십지만마전의 힘(力)!
그것은 이 하늘 아래 둘도 없을 천하최강의 힘이 아니겠는가!
사사천궁!
오늘이 사사천궁 최후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