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5권 제109장 폭풍전야(暴風前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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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중원―!
구천십지만마전!
사도의 영원한 불멸혼을 기약하며 세운 이 공전절후의 대군단!
허나...... 일 년(一年),
단 일 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곳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군마천주 영호풍.
구천과 십지의 주인들 중 가장 크게 부각된 존재였다.
대부분 아니, 거의 모두가 그를 지지했다.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제구대 제일신마의 보좌가 바로 그의 것이라는 사실을.......
단 일 년, 일 년 만에 군마천주 영호풍, 즉 혁련소천은 만마전을 완전히 정리한 것이다.
그는 사해의 제왕 천붕군도와 손을 잡고 황궁과도 결탁했다.
그가 구축한 힘의 세력은 가히 철옹성을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이때를 기해 만마전 밖에서는 무서운 변화가 일어났다.
하토살군 융사가 그의 잔여세력을 이끌고 새북사사천의 대장문 철
극륭과 결탁을 맺은 것이다.
헌데 철극륭은 다시 만마전에 대해 이를 갈고 있는 중원의 비밀세
력 잠마혈문의 문주 사도염을 포섭했다.
거미줄 얽히듯 복잡한 그들의 동맹세력은 가히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들의 목적......?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만마전을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허나 아직 결정적인 대접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서서히......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시기는...... 천천히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 유난히 짙은, 허공을 스치는 검은 바람이
매우 서늘하게 느껴지는 그런 밤이었다.
어둠 밖으로 은은히 따뜻한 불길을 흘려내는 이곳은 바로 혁련소
천의 처소였다.
"히히...... 히......!"
"호호...... 호......!"
연신 부드럽고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우아한 실내 가득 울려 퍼
지고 있었다.
혁련소천은 세 명의 미녀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들은 바로 종정향, 적용희산, 옥산랑이었다.
휘황한 불빛 아래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그들...... 그리고 방의 한쪽 구석에는 군청위가 한
명의 아기를 안은 채 연신 껄껄 웃고 있었다.
이제 갓 보송한 솜털을 벗은 듯한 육 개월 정도 된 아기였다.
헌데 마치 그림 속의 선동(仙童)인 양 그린 듯이 아름다운 아기의
모습은 바로 혁련소천 그대로가 아닌가?
적용희산은 담소를 나누면서도 가끔씩 포근한 애정 어린 시선을
아기에게 보내고 있었다.
아기는 바로 그녀가 육 개월 전에 분만한 혁련소천의 맏상제, 첫 아들이었던 것이다.
과거 백변귀천이 혁련소천으로 변장했을 당시 그는 의식적으로 여
인들과의 관계를 피해 왔다.
여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정사 속에서의 그 미묘한 감각, 백변귀
천은 그것을 두려워해서 그녀들과의 관계를 피했던 것이다.
그 후 적용사문등이 참변을 당한 이후, 그녀들은 모두 백변귀천에
의해 뇌옥에 감금되었다.
그리고 혁련소천이 다시 나타났을 때 그녀들은 구출되었던 것이다.
혁련소천은 적용사문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 세상에 단 하나뿐인 혈육, 누이동생 적용희산을 부탁드리오.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시오.
아직도 그의 귓전에 생생히 들려오는 것 같은 적용사문의 그 음성.......
혁련소천은 자신의 생(生)이 다하는 날까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리라고 다짐했다.
헌데 뜻밖에도 희대의 대거마인 군청위가 그녀를 양녀로 삼았으
니....... 혈혈단신의 외로웠던 적용희산은 비로소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또한 그와 적용희산 사이에서 태어난 옥동자, 그것은 군청위의 평
생 가장 즐거운 낙이 되었다.
"허허허...... 소천, 이 놈 좀 보게! 이 놈이 노부의 수염을 잡아 당기는군."
"하핫...... 노형님도......."
"어쿠! 이 놈이 할아비 수염을 다 뽑는구나."
과연 꼬무락거리는 작은 손이 군청위의 하얀 수염을 잡고 흔들거리지 않는가?
군청위는 짐짓 오만상을 찡그리며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호호호......!"
세 여인은 그의 익살스러운 모습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구! 웃지만 말고 좀 말려라. 희산아, 애구구......."
연신 숨넘어가는 소리를 흘리는 군청위, 적용희산은 얼른 아기의
손에서 흰 수염을 뽑아냈다.
순간 군청위의 눈이 세모꼴로 변하며 적용희산을 바라보았다.
"네가 이 늙은 아비의 수염이 다 뽑힐 때가지 웃고만 있었겠다?
흐흐흐...... 이 놈도 네 남편 닮아 훗날 힘깨나 쓰겠는 걸?"
"어머? 의부님!"
적용희산의 얼굴이 화사하게 홍조를 띠었다.
"허허...... 왜? 내가 틀린 말을 했느냐?"
"하하핫......!"
"호호호호......!"
화기단란한 박장대소가 실내를 가득 메웠다.
이때 옥산랑이 다정한 음성으로 속삭이듯 나직이 입을 열었다.
"당신...... 진정으로 사사천과 싸울 작정이세요?"
혁련소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음을 머금었다.
"그건 숙명이오."
"하지만...... 그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는데...... 구태여 이쪽에
서 먼저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순간 혁련소천의 검미가 슬쩍 찌푸러졌다.
이어 얼마간 굳은 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산랑, 나는 아내가 남편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소."
옥산랑은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소천, 죄송해요......."
나직이 내쉬는 한숨과 함께 흘러 나오는 음성에 혁련소천은 그녀
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다.
"미안하오. 내 말이 좀 과한 듯싶소. 이해하구려......."
불현듯 실내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때 군청위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소천, 산랑은 자네를 걱정해서 그런 것일세. 허허허...... 자네
는 역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일세."
이 순간 문 밖에서 돌연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영호천주, 좀 실례해도 되겠소이까?"
혁련소천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이 깊은 밤에 내실을 찾아오다니.......'
옥산랑은 조용히 방문을 향해 다가갔다.
"누구신지요?"
"빈도...... 천학풍이외다."
창노한 음성의 주인은 바로 천학풍이었다.
혁련소천은 순간 문득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들어오시지요."
그의 음성이 떨어짐과 동시에 계피학발의 천학풍이 조용히 실내로 들어섰다.
천학풍의 예지는 하늘과 통했다고 하지 않는가?
제일신마인 단우비조차도 가장 중시하는 인물 중의 일 인(一人).
이 순간 천학풍은 고고한 혜지가 가득 담긴 눈으로 혁련소천을 잔잔히 응시했다.
혁련소천은 천학풍을 바라보며 무언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이어 그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시오?"
천학풍은 그의 물음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영호천주와 한 가지 상의할 일이 있어서 왔소이다."
"무슨 일이오?"
순간 천학풍의 두 눈이 혁련소천을 지그시 정시했다.
"천주께서 조만간 대막으로 떠난다고 들었소."
"그건 사실이외다."
"빈도는 바로 그것 때문에 왔소이다. 천주께서는 그 사실을 철회해 주실 수 없소이까?"
혁련소천의 눈에 미미한 경동의 빛이 일었다.
허나 곧이어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천학풍에게 물었다.
"노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알고 있소만......?"
"그렇소이다. 빈도의 소견이오만...... 천하 혈겁의 근원인 혈랑
성(血狼星)의 기운이 차츰 쇠퇴해지고 있소이다."
"......!"
"그것은 천주께서 움직이지 않아도 조만간 모든 혈겁이 종식됨을
알리는 것이외다. 허나 이제 천주께서 대막으로 가려 하신다면......."
"......?"
"그것은 오히려 혈랑성의 기운이 성해질 우려가 있소이다."
천학풍의 말이 끝났다.
잠시 방안에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
얼마 후, 혁련소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노도께서 천리(天理)를 통달하셨다는 말씀은 많이 들었소."
"......!"
"허나 소생이 천학노도께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오직 한 마디 뿐이오."
"......!"
"그 누구도...... 소생의 결심을 막을 수는 없소이다."
순간 천학풍의 시선과 혁련소천의 눈빛이 허공에서 서로 얽혔다.
'으음......!'
천학풍은 내심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그는 보았던 것이다.
물처럼 고요히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혁련소천의 눈빛을......!
천학풍의 얼굴에 왠지 쓸쓸한 그늘이 짙게 덮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탄식을 터뜨렸다.
"그것은 제일신마의 보좌 때문이오이까?"
"아니오. 그것이 이유의 전부가 될 수는 없소이다."
"으음......! 알겠소.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일 테니......."
"......!"
"무량수불......!"
돌연 천학풍이 혁련소천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
"영호천주! 한 가지만 부탁을 드리겠소이다."
말을 하는 천학풍의 미간에 깊은 고뇌의 빛이 짙게 감돌았다.
"말씀해 보시오."
"할 수만 있다면...... 적혈자와 추풍소요자에게만은...... 부디
손속에 약간의 인정을 주시기 바라오."
혁련소천이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그곳에 있소이까?"
"그렇소이다."
"음......!"
혁련소천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담담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말씀은 알겠소. 허나, 그것은 그들의 행동에 달린 것이오."
"......!"
"또한 내가 그곳에서 꼭 이긴다는 보장도 없지 않소."
"천주......."
천학풍이 급히 입을 열었으나 그의 뒷말은 군청위에 의해 무참히 잘려 나갔다.
"애송이 말코야! 밤늦게 찾아와서 무슨 엉뚱한 말이냐? 어서 꺼지
지 않으면 목을 확 분질러 버리겠다!"
순간 천학풍의 깊이 모를 눈빛이 천천히 군청위에게로 향해졌다.
동시에 그는 고개를 가만히 두어 번 젓더니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노선배께서 스스로 혈심(血心)을 누르지 않는다면...... 언젠가
는 반드시 큰 화가 미칠 것입니다."
"뭣이? 아니, 이 놈이 감히 악담을 해?"
군청위는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때 혁련소천이 조용히 손을 들어 군청위를 제지시켰다.
"노형님, 그만두십시오."
이어 그는 천학풍을 돌아보며 당당히 입을 열었다.
"노도의 말씀 필히 기억하겠소이다."
순간 천학풍의 노안에 쓸쓸한 고소가 가득 어렸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량수불...... 야밤에 실례가 많았소이다."
그는 혁련소천을 향해 조용히 예를 보내며 문 밖으로 사라져 갔다.
그 순간 혁련소천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노도인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에잇! 재수 없는 말코 놈!"
그때 군청위가 투덜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아이, 아버님! 참으세요.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적용희산은 분노의 콧김을 씩씩거리는 군청위의 팔을 가만히 붙잡아 자리에 앉혔다.
"화가 안 나? 아, 그 말코 놈이 나보고......."
군청위는 여전히 성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듯 욕설을 퍼부었다.
헌데 그의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 느닷없이 강보에서 뽀오얀 작
은 손이 튀어 나와 그의 흰 수염을 휘어 감았다.
"빠...... 아......."
"어이쿠! 이 놈이 또 할아비 수염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군청위는 얼굴 가득 화색을 지으며 크게 껄껄거렸다.
"그래, 그래! 허허...... 이 놈도 제 어미 편만 드는군......."
"아이? 아버님!"
적용희산의 얼굴이 또다시 발갛게 물들었다.
"하하핫......!"
"호호호호......!"
실내엔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대출정(大出征)을 앞둔 이 밤은...... 웃음이 감도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