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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권 제107장 (107/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5권 제107장 무너지는 제갈천뇌(諸葛天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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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黃山)―

  서천(西天)에 붉게  물든 노을빛을  바라보며 한 백미노인(白眉老

  人)이 정상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깊은 상념에 잠긴 듯  백미노인은 천년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제갈천뇌였다.

  '오늘이 바로 십일월 보름...... 우리 칠 인(七人)이 모이는 날이다!'

  쌔애앵......!

  쌔앵!

  서늘한 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휘날리며 무심히 스쳐갔다.

  '헌데...... 약속한 세 시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다니......!'

  제갈천뇌의 얼굴에 문득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더욱이  ...... 환락천, 제갈

  천, 봉황곡에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제갈천뇌는 생전 이처럼 불안해 본 적이 없었다.

  '분명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짤랑...... 짤랑.......

  제갈천뇌는 한순간 품 속의 동전을 꺼내 흔들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은 여느 때보다 극히 신중했다.

  이윽고 그는 동전을 흔들던 오른손을 쫙 펼쳤다.

  순간 그의 전신이 격렬한 경련을 일으켰다.

  "이럴 수가......! 이건 죽음의 폐쇄......?"

  손바닥의 동전들을 보는 제갈천뇌의 눈빛은 완전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나갈 길이 한 군데도 없는 사(死)의 괘(卦)다!"

  제갈천뇌의 안색은 서서히 창백하게 탈색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두두두두―!

  산 밑에서 좁은 비탈길을 따라  한 대의 마차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마차는 완전히 시커먼 흑색(黑色)으로 칠해져 있었다.

  보는 이를 절로 섬뜩하게 하는 괴괴한 분위기의 마차......!

  두두두―!

  눈 깜짝할 사이에 마차는 제갈천뇌의 앞까지 당도했다.

  마차를 끄는 여섯 필의 흑마(黑馬)는 입에 피거품을 물고 있었다.

  끄그긍―!

  날카로운 차륜(車輪) 소리를 내며 마차가 정지한 순간.

  쿠웅......!

  쿵......!

  여섯 필의 흑마는 차례로 땅 위에 고꾸라졌다.

  "......!"

  실로 창졸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제갈천뇌는 등줄기에 섬뜩한 한기가 스치는 것을 느꼈다.

  그의 두 눈은 무섭게 신광을 발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나에게  이  마차를   보낸  것이  분명하다......!'

  제갈천뇌는 이미 마차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스윽!

  그는 천천히 무거운 걸음으로 마차 문을 향해 다가갔다.

  끼― 이익!

  마차 문은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헉......!"

  제갈천뇌는 마차 안을 본 순간 그만 경악성을 토하고 말았다.

  마차 안에는 여섯  개의 시커먼 관(棺)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한 장의  시뻘건 혈지(血紙)가 여섯 개의  관 앞에 놓여져 있었다.

  "이, 이건......!"

  혈지의 내용은 명료했다.

  <십일월 보름 황산의 약속을 지켜야 하나 이미 죽은 몸, 혼(魂) 없는 육신만 왔소.>

  "으......!"

  제갈천뇌는 창백한 신음성을 흘려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가운데의 관 뚜껑을 열었다.

  끼이익―!

  뚜껑이 열리자 비릿한 피냄새와 함께 허리가 두 쪽으로 동강난 시

  신(屍身)이 나타났다.

  "환사유통......!"

  제갈천뇌의 입에서 헛바람 새는 듯한 일성이 흘러 나왔다.

  그는 곧 미친 듯이 다음 관들을 차례로 열기 시작했다.

  "수...... 라마영......!"

  "한단지마...... 자네도......!"

  제갈천뇌의 음성은 거의 울부짖는 듯한 괴성으로 변해 갔다.

  모두 죽었다. 아니, 살해당한 것이다.

  여섯 명의 수족같은 그들은 쓸모없는 시신(屍身)이 되어 제갈천뇌

  앞에 나타났다.

  "아아......!"

  제갈천뇌는 목구멍에서 쓴물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전율했다.

  그는 절망적으로 울부짖었다.

  "누가...... 누가 이들을 죽였느냐......?"

  그것은 황산 전체가 떠나갈 듯한 울부짖음이었다.

  "누가―!"

  허나 아무도 대답을 주지 않았다.

  심장을 조이는 듯한 한없는 적막만이 제갈천뇌를 무겁게 내리누를 뿐이었다.

  제갈천뇌는 공포를 느꼈다.

  '천하에 이런 능력을 지닌 자는 오직 한 명뿐이다......!'

  누구를 떠올렸는지 제갈천뇌의 두 눈은 순간 불신(不信)으로 가득 물들었다.

  '허나 그는 분명 죽었다......!'

  그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분명히...... 나에 의해 죽었다! 그렇다면 누구란 말인가......?'

  제갈천뇌는 두개골이 부서지는 듯 몹시 쑤시는 것을 느꼈다.

  이제껏 생전 그의 머리는 이러한 수난을 당해보지 못했다.

  "대체...... 누구란 말이냐......?"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음울하게 가라앉은  노랫소리가 은은히 들려오지 않는가….

  한 많은  이 세상...... 무엇하러  태어났는가...... 저주스런 이

  태생 하루 빨리 죽고 싶소.

  하늘에는 혈우(血雨)요,  땅에는 혈하(血河)로다. 빌어먹을......

  보이는 건 모두 암흑이요, 다가오는 것은 공포뿐이니.......

  한심한 세상, 어찌 죽고 싶지 않겠는가?

  노랫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휘우우웅......!

  한 줄기 바람이 장내를 스치고 지나갔을 때 제갈천뇌 앞에는 어느

  새 한 명의 흑의괴인(黑衣怪人)이 나타나 있었다.

  흑의괴인은 꼽추였다.

  백발이 성성한 채  세상의 온갖 번뇌를 홀로  짊어진 듯한 꼽추괴인......!

  그렇다.

  그는 바로 군청위였다.

  군청위는 한 개의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제갈천뇌의 옆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으허허...... 오늘 노래 되는군."

  그러더니 그는 문득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창노한 일성이 불쑥 흘러 나왔다.

  "자네의 이름이 혹시...... 제갈천뇌가 아닌가?"

  "......!"

  제갈천뇌는 형형한 시선으로 군청위의 꼽추 등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되물었다.

  "당신은 누군가......?"

  "으흐...... 으허허...... 노부는 심부름꾼이지."

  이윽고 군청위는 제갈천뇌를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전해 달라고 해서 말일세."

  휙―!

  군청위는 대뜸 상자를 제갈천뇌에게 던졌다.

  '......!'

  제갈천뇌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묵직하다.

  '이게 뭐냐......?'

  제갈천뇌는 군청위에 대한 인상만큼이나 상자가 좋지 않게 보였다.

  잠시 주저하던 그는 이윽고 상자를 열어 보았다.

  "......!"

  순간 그의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상자 안에는 한 개의 머리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두 눈을  부릅뜬 사순의 뱀처럼 냉막한  인상의 얼굴....... 눈을

  감지 못한 상자 안의 머리는 핏발 선 눈빛으로 제갈천뇌를 주시하

  고 있었다.

  "세, 셋째 아우!"

  제갈천뇌는 얼굴을 참혹하게 일그러뜨렸다.

  그 모습에 군청위는 빙그레 소리없이 웃으며 말했다.

  "봉황곡의 군사(軍師), 금시조의 목 윗부분이야....... 그냥 버릴

  까 하다가 자네에게 필요하다고 해서 전하네."

  스으윽......!

  군청위는 말을 마치자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제갈천뇌의 두 눈에 순간 가공할 살광이 폭사되었다.

  "멈춰라!"

  "......."

  허나 군청위는 멈추기는커녕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제갈천뇌는 분노했다.

  순간 그는 우수를 무섭게 내뻗었다.

  우우우우― 웅!

  창백한 회색 장류(掌流)가 노도와  같은 기세로 군청위의 등에 격

  중했다.

  퍼...... 엉!

  바위라도 산산이 가루로 변할 일장―!

  허나 군청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흐흐흐......!"

  그는 그저 살짝 어깨를  움츠리며 나직한 괴소를 흘려냈을 뿐이었다.

  스윽!

  그는 그제야 몸을 돌렸다.

  "꼬마 놈......! 머리는 제법인가 보다는 무공은 형편없구나."

  "흑......!"

  제갈천뇌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는 도저히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천하에 이런 괴인(怪人)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 대체 당신은......!"

  "네놈을 죽이고  싶다만 대신 죽일 사람이  있으니 잠시 유보하겠다."

  "......."

  "흐흐흐...... 너는 좀더 늦게 죽어야 해......."

  어느새 군청위는 등을 돌린 채 저만큼 멀어져 가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가 너의 몸을 서서히 엄습하리라."

  스으으―!

  아 ― 극고(極高)의 신법(身法)!

  그 순간 이미 군청위의  모습은 제갈천뇌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제갈천뇌는 모멸감으로 이를 뿌드득 갈았다.

  "대체 누구냐......? 누가 나를 이토록 우롱할 수 있단 말인가......?"

  피를 토하는 듯한 일성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순간 제갈천뇌의 얼굴은 오히려 소름끼치도록 침착하게 변했다.

  "나, 제갈천뇌가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수는 없다! 나에게는 아직 제왕성이 있다!"

  슉―!

  제갈천뇌는 곧장 산 밑으로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가서 마지막 정비를 하리라!"

  한 맺힌 다짐이었다.

  순식간에 그의 신형은 황산에서 사라져 갔다.

  허나.......

  천붕군도의 벽해전(碧海殿)―.

  여기는 벽안천매 궁독의 거처였다.

  "......."

  궁독은 등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면사 위로는 그의 두 눈이 은은한 벽광을 흘려내고 있었다.

  "오늘로서 모든 계획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득의로운 어조.......

  "오늘만 지나면....... 천붕군도는 나, 궁독의 것이다!"

  그때였다.

  휙!

  한 명의 마의복면인이 연기처럼 그의 앞에 나타나 부복했다.

  음침한 백안(白眼)의 인물, 그는 바로 시마(屍魔)였다.

  그는 한쪽 팔이 없었다.

  과거 철면사군자 중 막내 흑의마립의 싸움에서 잘렸기 때문이다.

  "주군께 아룁니다."

  "어떻게 되었느냐?"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마는 두 눈을 괴기롭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조호이산지계......! 철면삼군자는 이미 천붕군도를 떠났습니다.

  현재 이곳에 남은  인물들 중 희천세의 세력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고했다."

  궁독은 두 눈에 의미심장한 빛을 띤 채 냉막하게 말을 이었다.

  "거사(巨事)는 오늘 밤이다! 조금도 차질은 없겠지......?"

  "믿어주십시오, 주군!"

  "음......!"

  궁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마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파앗......!

  시마는 유령처럼 실내에서 사라졌다.

  궁독은 몸을 등의자에 더욱 편하게 기대었다.

  "흐흐...... 지금쯤이면 대형(大兄)과 삼제(三帝)도 모든 일을 완

  성했을 것이다. 천하는 곧 우리 삼형제의 손에 들어오리라!"

  궁독은 생전 이 순간처럼 마음이 흡족한 적은 없었다.

  그의 입에서는 곧 앙천대소가 터져 나왔다.

  "와핫핫핫핫......!"

  시마는 신형을 날려 어느 죽림(竹林) 속을 뚫고 있었다.

  "......."

  슈― 욱!

  곧 그의 앞에는 하나의 은밀한 동굴이 나타났다.

  시마는 곧장 동굴 안으로 빨려들 듯 날아 들어갔다.

  동굴의 음침한 한가운데는 세 인물이 석탁(石卓)을 중심으로 앉아

  있었다.

  시마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서며 음산한 어조를 흘렸다.

  "삼괴, 모든 준비는 끝났겠지......?"

  "......."

  "......."

  허나 아무도 시마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시마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음......?'

  시마는 눈썹을 지푸리며 그 중  한 명의 어깨를 깡마른 손으로 두

  드렸다.

  "갑자기 귀머거리가 되었느냐?"

  털썩......!

  쿠웅......!

  순간 삼괴의 몸이 차례로 쓰러지는 게 아닌가?

  "헉......!"

  시마는 경악성을 터뜨렸다.

  삼괴의 몸은 모두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짓뭉개

  져 있었다.

  즉사였다.

  "누, 누가......!"

  시마는 황급히 사위를 살폈다.

  그때였다.

  동굴의 어두컴컴한 안쪽에서 세 그림자가 서서히 나타났다.

  "우리다."

  억양 없는 음성,  그들은 마치 철을 부어  만든 듯한 얼굴을 지닌

  삼 인(三人)이었다.

  "처...... 철면삼군자!"

  시마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는 전신을 부르르 경련하며 불신 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당신들이...... 어떻게 이곳에......?"

  "흐흐흐...... 네놈은 조호이산지계로  우리를 천붕군도에서 내보

  내려 했으나...... 네녀석이 오히려 우리에게 당한 것이지."

  "시마...... 우리는 이미 궁독의 음모를 다 알고 있었다."

  실로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시마는 전신을 부르르 경련하며 뒤로 흠칫 물러섰다.

  철면삼군자는 느릿느릿 시마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넷째가...... 네놈 손에 죽었다고 들었다."

  엄청난 살기(殺氣)!

  '으...... 허점!  너무도 큰 허점이 생겼다.  주군께 알려야만 한다!'

  시마는 돌연 두 눈에 흉광을 폭사하며 노도같은 일장을 내뻗었다.

  허나 그것은 허초에 불과했다.

  시마는 곧 번개같이 몸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섬전(閃電)!

  그의 몸놀림은 빛살 같았다.

  하지만 그의 상대는 철면삼군자였다.

  슥!

  스슥!

  그들은 이미 예측이나  한 듯이 시마의 앞을  더욱 빠르게 차단해

  버렸다.

  추류― 륭!

  번― 쩍!

  무서운 합공(合攻)이 절망에 싸인 시마의 몸을 강타했다.

  '끄으윽......! 이렇게 허무하게......!'

  시마는 전신 혈도가 완전히 제압당해 썩은 고목처럼 나뒹굴었다.

  털...... 썩!

  철면삼군자는 순간 일제히 냉혹한 괴소를 흘려냈다.

  "흐흐흐...... 이런 놈이 어떻게 넷째를 죽였는지 모르겠군."

  "시마, 철면삼군자의 노여움을 한눈에 보여주마!"

  스― 윽!

  섬뜩한 파공성이 울리고 곧 시마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울

  렸다.

  "끼아악!"

  그의 외팔마저 어깻죽지에서 완전히  잘려 나가 땅바닥에 피를 뿌

  리며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철면삼군자는 마치 도살장의  소(牛)를 분시하듯 시마의 두 다리,

  허리부위를 차례로 잘라냈다.

  "우아아악!"

  비릿한 피냄새와 함께 생(生)의 종말을 고하는 처절무비의 절규가

  사위를 뒤흔들었다.

  시마는 몸이 정확히 다섯 조각으로 잘리는 액겁 속에서 숨을 거두

  었다.

  오체분시.

  "흐흐...... 이제 남은 것은 궁독, 그 놈이다!"

  슈― 욱!

  슉―!

  철면삼군자의 신형은 섬광처럼 장내에서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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