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5권 제106장 군마천(群魔天)의 대폭풍(大暴風)
━━━━━━━━━━━━━━━━━━━━━━━━━━━━━━━━━━━
천지가 온통 짙은 먹빛 어둠에 묻힌 시월(十月) 그믐,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대폭풍의 회오리가 일고 있었으
니......!
군마천―!
바로 이 군마천에 가공할 대폭풍이 일어난 것이다.
혁련소천은 단 하룻밤 사이에 제갈천뇌에게 포섭당한 인물들을 모
조리 제거해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수족같은 수하들로 모두 변신시켰다.
아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단 하룻밤의 변화, 그것은 모두들 혁련소천을 백변귀천으로 믿은
방심에서 비롯되었는데.......
군마천―!
그믐의 어둠 속에 무서운 변신을 일으킨 것이다.
그 어둠의 한켠에는 일대 폭풍을 일으킨 대풍운아가 하얗게 웃고
있지 않은가!
혁련소천의 웃음은 눈이 부시도록 희었다.
― 후후......! 제갈천뇌...... 너는 이제...... 네가 지닌 모든 것을 잃게 되리라!
대폭풍의 서막(序幕), 이렇게 장(章)을 열었다.
군마천에 속한 서천목산의 한 봉우리를 이름하여 애기봉(崖祁峯)이라 했다.
지금 애기봉은 온통 황금빛 노을 속에 잠겨 있었다.
휘이이잉―!
스스스스......!
한 줄기 스산한 한풍이 불어와 낙엽을 한 움큼 떨구었다.
그때 바람(風)에 실려 왔는가?
애기봉 중턱에 돌연 한 인영이 나타났다.
허름한 마의를 걸친 반백의노인, 그는 아무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촌로였다.
그 노인의 옆구리엔 약초 담는 자루와 한 개의 호미가 차여져 있
었다.
일견키에 군마천에 속한 농노(農奴)인 듯 노인은 힘겹게 산을 올
랐다.
이윽고 봉우리 정상에 오른 노인은 발을 멈추며 한 차례 주위를
살폈다.
"......!"
그 순간 노인의 두 눈이 한 곳에 이르러 부릅뜨이며 세찬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그의 안색 역시 대변(大變)을 보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뜻밖에도 노인의 정면 한 그루 고목에 처참한 형상의 인물이 죽은
듯 기대어 있지 않은가!
아니, 자세히 보니 그 인물은 사지(四肢)가 비수에 의해 고목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심장에도 한 자루 비수가 자루까지 깊숙이 꽂혀 있었다.
인물은 죽은 지 얼마 안된 듯 뜨거운 선혈을 아직까지도 흘려내고
있었다.
그 처참지경에 노인은 부지중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네...... 넷째...... 수라마영(修羅魔影)......!"
끔찍한 형상의 시신이 바로 제갈천뇌의 일곱 형제들 중 한 명인
수라마영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를 알아본 이 노인은 또 누구란 말인가?
헌데 그때였다.
"흐흐흐......! 네놈이 바로 환사유풍이란 애송이냐?"
어디선가 한 소리 음침한 괴소가 터져 나왔다.
팟!
그 순간 돌연 한 인영이 흡사 환영처럼 마의노인 앞에 출현했다.
한쪽 손엔 금빛 쇠사슬을 든 흑의의 꼽추노인, 그는 다름 아닌 군
청위였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마의노인을 쏘아보며 재차 괴소했다.
"흐흐흐...... 환사유풍,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 그 역시 제갈천뇌의 형제들 중 한 명인 환사유풍이란 말인가?
노인의 안색이 미미하게 굳어지는 듯했다.
노인은 곧 영문 모를 표정을 지으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나...... 나으리, 그 무슨 말씀을......!"
군청위의 눈빛이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흐흐...... 애송이 놈! 감히 누구 앞이라고 시치미를 떼느냐?"
"나으리......."
노인은 울상이 되어 버렸다.
순간 군청위의 두 눈에 악독한 살광(殺光)이 번뜩 스쳤다.
"가소롭다! 끝까지 촌로(村老) 흉내를 내고 싶으면 지옥에나 가서
해라."
동시에 군청위의 한 손이 기쾌히 움직였다.
츄리리리릭―!
찰나 금빛 쇠사슬이 흡사 영사(靈蛇)처럼 마의노인을 휘감아 갔다.
'......!'
마의노인의 안색은 침중히 굳어 들었다.
급기야 그는 쇠사슬이 몸에 닿기 전 재빨리 신형을 움직여 피했다.
군청위는 그제야 금빛 사슬을 거두며 음침하게 조소했다.
"크흐흐...... 그래도 죽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
환사유풍은 어쩔 수 없는 듯 표정을 바꾸며 엄중히 일갈했다.
"너는 누구냐?"
"흐흐......! 진작에 그렇게 나올 것이지. 나는 너희 칠형제의 목
숨을 접수하러 온 지옥(地獄)의 사자(使者)이시다!"
환사유풍의 눈썹이 일순 꿈틀 요동을 보였다.
허나 그는 다시 침착하게 물었다.
"넷째는 네가 죽였느냐?"
넷째, 바로 수라마영을 일컬음이였다.
그러자 군청위는 고목에 걸린 시신을 흘낏 바라보더니 오히려 되물었다.
"저기 나무에 매달린 어린애 말이냐?"
"그렇다."
환사유풍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담담한 그의 눈빛 속에는 무엇으로도 형용키 어려운 엄청
난 분노와 살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헌데 대답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일었다.
"그는 내가 죽였다."
아아...... 천하에 이토록 무심한 음성도 있었던가?
홀연 한 인영이 마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장내에 나타났다.
나무(木)를 깎아 만든 목상(木像)처럼 무표정한 인물, 그는 다름 아닌 피요궁이었다.
환사유풍은 일순 흠칫했으나 이내 싸늘히 일갈을 내뱉았다.
"너는 또 누구냐?"
"피요궁, 그렇게만 알아라."
피요궁의 입술 사이로 재차 지독무심한 음성이 흘렀다.
그때 군청위가 살광을 번뜩이며 쇠사슬을 들어올렸다.
"흐흐......! 곧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많군. 입 닥치고 나의 대라금삭 맛이나 보아라!"
동시에 그는 서서히 환사유풍을 압박해 들었다.
"......!"
환사유풍의 안색이 급변을 일으켰다.
'심상치 않다......! 넷째가 당할 정도면 나 역시 온전치는 못할 것이다!'
그는 상황이 극히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감지했다.
'안 되겠다. 우선 이 자리를 피하고 보자!'
스슷!
돌연 환사유풍의 모습이 안개가 스러지듯 사라져 버렸다.
진정 귀신도 무색할 절륜신법이 아닌가!
찰나 피요궁이 무심한 일성을 터뜨렸다.
"노선배님, 놈이 환술(幻術)을 부립니다. 어서 우측을 차단하십시오."
군청위의 입가에 음침한 괴소가 떠올랐다.
"흐흐...... 아이야, 그것까지 일러주지 않아도 된다. 놈이 아무
리 도망쳐 봐야 독 안에 든 쥐새끼에 불과하니까."
그의 말이 끝나는 그 순간.
휘리리리리릭―!
대라금삭이 허공에 원을 그리며 무섭게 회오리쳤다.
곧이어 대라금삭은 오른쪽에 위치한 바위 중 하나를 향해 벼락같
이 쇄도했다.
꽝―!
광렬한 폭음과 바위가 박살나며 폭죽 터지듯 튀어올랐다.
"욱!"
돌연 한 소리 신음성과 함께 한 인영이 박살난 바위 속에서 튀어 나왔다.
그는 바로 조금 전 모습을 감추었던 환사유풍이었다.
군청위의 입가에 득의의 웃음이 짙게 피어올랐다.
"흐흐...... 그러면 그렇지, 네놈이 가면 어디로 가겠느냐?"
"......!"
환사유풍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그의 입가에 실낱같은 핏줄기마저 베어물렸다.
'어...... 어찌...... 내가 바위 속에 은신해 있는 것을...... 눈치챘단 말인가?'
그때 피요궁이 그의 심중을 읽기라도 한 듯 낮게 웃었다.
"후후...... 환문(幻門)의 무공이라면...... 나도 조금은 알고 있지."
"......!"
"환사유풍, 너는 오늘 절대로 우리의 손을 벗어나지 못한다."
환사유풍, 그는 일순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좀전의 상황을 보더라도 피요궁의 말은 거짓이 아님이 확실하지 않은가!
'대...... 대체 이 놈들은 누구이길래......?'
이번엔 군청위가 입을 열었다.
"흐흐...... 환사유풍, 네놈은 오늘 왜 죽어야 하는지 몹시 궁금할 것이다."
그 말에 환사유풍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소."
"흐흐...... 네놈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한 사람 있기 때문이지."
"......?"
"바로...... 네놈들의 음모로 죽을 뻔했던 혁련소천이다."
순간 환사유풍의 안색은 재차 크게 변했다.
"그...... 그럴 리가......!"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 그는...... 분명...... 죽었는데......."
군청위의 입가에 진한 살소(殺笑)가 피어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흐흐...... 그건 네 생각이고...... 이제 알 것 다 알았으니 죽
어도 여한이 없겠지. 가랏―!"
츄르르르―!
츄릭―!
대라금삭이 무서운 파공음을 터뜨리며 환사유풍을 향해 빛살같이
쏘아졌다.
그것은 태산이라도 가루를 낼 듯한 가공무비할 기세였다.
"......!"
환사유풍은 아예 사색(死色)이 되어 버렸다.
'가공할 위력...... 도...... 도저히 피할 재간이...... 없
다......! 허나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그는 이내 모든 공력을 발끝에 모아 혼신을 다해 땅을 박찼다.
휙―!
그러나 그가 어찌 군청위의 공세를 피할 수 있겠는가!
피한다는 그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으니.......
"끄― 아― 악!"
환사유풍은 허공으로 채 오르기도 전에 처절무쌍한 비명성을 터뜨렸다.
군청위의 대라금삭이 그의 허리를 통째로 휘감아 버린 것이다.
쿵― 쿵―!
곧장 둔중한 음향이 잇달아 일었다.
그리고 어느새 환사유풍의 몸은 두 동강이 난 채 지면에 나뒹굴고
말았다.
촤아아아......!
뒤늦게 두 개의 동체(胴體)에서 시뻘건 피보라가 솟구쳤다.
단 일 초(一招), 군청위가 단 일 초에 연출해 낸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 광경에 피요궁은 내심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으음...... 진정 무시무시한 솜씨다. 저토록 완벽한 무공이 존재
한다니...... 그 자체부터가 모순인지도 모르겠군!'
나무토막 같기만 하던 피요궁의 표정에 은은한 경탄이 떠올랐다.
그것은 군청위의 무공경지가 그만큼 가공지경에 이르렀다는 뜻이리라.
이때 군청위는 대라금삭을 거두며 나직하게 웃고 있었다.
"흐흐...... 이것으로 일곱 놈 중에 남은 놈은 이제 제갈천뇌뿐인가?"
오오...... 그 말,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제갈천뇌의 여섯 형제들
을 모조리 격살했단 말인가?
군청위는 대라금삭을 소중히 쓰다듬으며 계속 중얼거렸다.
"제갈천뇌...... 놈은 머리가 좋다고 들었는데...... 대갈통을 부
숴서 골빛이 무슨 색인지 확인해 봐야겠다."
그러자 피요궁이 씨익 삭막한 미소를 머금었다.
"노선배님, 그는...... 소주께서 처리하실 것입니다."
"흐음......!"
군청위는 아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소형제가 놈을 처리한다면 이 노마는 구경이나 하는 수밖에......!"
"지금쯤...... 아마 제갈천뇌가 수중에 넣었던 모든 조직은 모두
소주에게로 넘어갔을 것입니다."
피요궁은 무심한 음성을 계속 이었다.
"이것으로...... 제갈천뇌...... 놈은 완벽한 외톨이가 된 셈이고......."
군청위는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흐...... 놈이 소형제에게 대항하는 것부터가 벌써 죽을려고
환장을 한 거지."
피요궁은 또다시 씨익 괴상한(?) 웃음을 머금었다.
"노선배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자 군청위가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쯧...... 그게 웃음이라는 거냐? 나무가 웃어도 최소한 그보다는 낫겠다."
그러했다.
피요궁에겐 웃는다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던 것이다.
피요궁은 군청위의 핀잔에 머쓱해지고 말았다.
"원래......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걸 어떡합니까? 노선배님이 이해
를 하셔야지요."
순간 군청위는 흔쾌한 대소를 터뜨렸다.
"으핫하하하......! 좋다, 좋아. 노부가 이해하지."
헌데 문득 그는 두 눈을 부릅뜨며 피요궁을 쏘아보았다.
"그건 그렇고...... 네놈은 혹 소형제에게 딴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피요궁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노선배님,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
군청위는 그를 잠시 노려보더니 이내 다시 웃었다.
"크흐흐...... 그냥 한 번 해본 소리다."
"......!"
"허나...... 앞으로 그 누구라도 소형제를 거스르는 놈이 있다면......."
군청위는 수중의 대라금삭을 으스러져라 꽉 움켜쥐었다.
"이 대라금삭으로 어떤 놈이건 간에 모조리 오장육부를 끊어 버리
고 말겠다. 크핫핫핫......!"
우렁찬 앙천광소.......
허나 피요궁은 알 수 있었다.
그 광소에 실린 숨길 수 없는 정(情)의 기운을.......
그것은 군청위의 혁련소천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또한 연령과 세대차이를 초월한 극진한 정이기도 했다.
'군노선배...... 이 분 한 명으로 소주는 천하무적이다!'
피요궁은 내심 감탄 어린 중얼거림을 내뱉았다.
그때 군청위가 웃음을 그치고 그를 재촉했다.
"자, 우리도 가자."
"네, 노선배님."
휙―!
휙―!
두 사람은 기쾌히 신형을 날려 순식간에 석양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애기봉 정상, 그곳엔 이제 처참한 두 구의 시신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흡사 생(生)을 다한 낙엽이 볼품없이 나뒹굴 듯이.......
제갈천뇌의 여섯 형제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바로 군청위와 피요궁에 의해서였다.
이로서 제갈천뇌는 완전 고립된 상태가 되었으니.......
과연, 최후의 승자(勝者)는 누가 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