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권 제105장 (105/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5권 제105장 아무리 많아도 좋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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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자금성 화영각(花英閣).

  드넓은 실내의 창가에는 결  고운 하얀 비단갑사가 드리워져 비쳐

  드는 햇살을 은은히 투영시키고 있었다.

  그 앞에 놓인 몇 점의  담홍빛 보석 장식은 햇살에 반사되어 찬란

  한 휘광으로 실내 전체를 물들여 놓았다.

  아름다운 내실이었다.

  실내에는 지금 세  사람이 자단목 원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혁련소천과 옥산랑, 그리고 또 한 명의 소녀였다.

  소녀는 약 십팔구 세 가량 되었을까?

  머리 위에 살짝 올려쓴  앙증맞고 귀여운 화관, 그리고 섬세한 교

  구에 걸쳐입은 자의궁장의는 화려한 분위기를 풍기며 그녀의 아름

  다운 미태를 한껏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특히 맑고도 서글서글한 두 눈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

  그녀는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까아만 눈을 반짝이며 깊은 생각에

  젖어 있었다.

  바로...... 자하공주가 아닌가!

  그녀는 놀랄 만큼 변해 있었다.

  앳된 소녀의 모습에서 이젠 완연한 성숙미를 풍기는 것이었다.

  문득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꽃잎같은 입술을 열었다.

  "음...... 그러니까, 옥언니 말씀은 아바마마께 그것을 잘 말씀드려 달라는 거군요."

  옥산랑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자하공주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워요."

  "......!"

  "......!"

  "아바마마께서 비록 제 청을 모두 들어주시긴 하지만, 그건...... 좀......."

  자하공주는 묘하게 말의 여운을 끌며 혁련소천을 바라보았다.

  옥산랑은 마음이 급해져서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쉬운 일이라면 이렇게 공주에게 부탁하지도 않았을 거야."

  "흥! 옥언니야 저 분 때문에 부탁을 하고 있는 거지. 그게 어디 옥언니 일인가요......?"

  왠지 자하공주는 새침해져 있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옥산랑은 얼굴이 노을빛으로  붉어지면서 힐끗 혁련소천을 바라보았다.

  혁련소천은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공주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오. 때

  문에 이렇게 공주를 찾아온 것이오."

  그가 입을 열자 자하공주는 왠지 더더욱 새침해졌다.

  그녀는 살래살래 머리를 흔들며 종알거렸다.

  "힘들어요."

  혁련소천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옥산랑의 전음이 그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당신은 바보예요.)

  혁련소천은 어리둥절해져서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바보......!)

  옥산랑은 왠지 화가 난 듯한 음성이었다.

  혁련소천은 곤혹을 금할 수 없었다.

  '이거야 원.......'

  헌데 문득 느껴지는  바가 있어 돌연 그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공주께서 이번 일을  도와준다면 공주가 원하는 것을 한 가지 들어주겠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자하공주의 눈은 수백 개의 별들이 일시에 빛나듯 반짝였다.

  "정...... 말인가요?"

  "그렇소."

  "어떤...... 부탁이든?"

  혁련소천은 옥산랑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의식적으로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혁련소천은 고소를 머금으며 자하공주을 향해 말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소."

  순간 자하공주의 작은 얼굴  가득히 햇살같은 기쁨과 미소가 번져 올랐다.

  그녀는 하얀 두 손을 모아쥐며 밝은 음성으로 소리치듯 말했다.

  "좋아요! 반드시 해보겠어요!"

  "고맙소."

  헌데 문득 자하공주는 눈에 이채를 띠며 혁련소천을 향해 말했다.

  "헌데...... 조금 전 약속하신 것은 절대 잊지 않으시겠죠?"

  혁련소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하겠소."

  "후...... 훗......."

  자하공주의 두 볼에 귀여운 볼우물이 파였다.

  기쁨과 야릇한  기대감이 갸름한 그녀의  얼굴을 온통 상기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믿어요. 소연은...... 풍오빠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어요."

  '풍...... 오빠......?'

  순간 혁련소천과 옥산랑의 눈이 허공에서 만났다.

  그들의 크게 떠진 눈은 부르짖고 있었다.

  '아버님 말씀을 이제야 알겠군. 결국...... 미남계였다니......!'

  '어려...... 워! 갈수록 태산이야......!'

  옥산랑의 심기는 결코 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②

  자금성은 온통 난리가 났다.

  자하공주가 돌연 식음을 전폐한 채 누워 버린 것이다.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았고, 몸이 아픈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황제의 걱정은 태산같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공주가 식음을 끊다니.......

  헌데 까닭을 물어도 공주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황제는 깊은 시름에 싸였다.

  공주가 뭔가 고민 중이라는  것, 그것이 황제를 더욱 고민에 빠지

  게 했으며 몹시도 마음아프게 했다.

  드디어 사흘째 되는 날, 자하공주는 시름시름 앓던 끝에 황제에게 하소연을 했다.

  "아바마마께서 제 정인을 죽이시려 하기 때문이에요."

  황제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두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수염을 잡아당겨 보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께도 유분수지. 공주가 어느새 사랑을 하였으며,

  그녀의 정인을 황제인 자신이 죽이려 한다는 소리는 또 뭐란 말인가?

  황제는 놀란 가슴을 쓸며 이렇게 물었다.

  "소연, 그게 무슨 소리냐?"

  자하공주는 두 눈에 슬픔을 가득 담고 말했다.

  "아바마마께서 구천십지만마전을 궤멸시키려 하시지 않사옵니까?

  제가 사랑하는 분은 바로 군마천주입니다. 하온데...... 아바마마

  때문에 그 분이 해를 입을 듯하오니...... 소녀는 더 살고 싶지 않사옵니다. 흑흑......."

  "오...... 음! 군마천주......."

  황제는 태산이 붕괴되어 내리는 듯한 신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혁련소천은 황명(皇命)으로 자금성에 입궁하였다.

  존엄의 표본이던 건륭제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그는 눈 앞의 인물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황제의 앞에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단아한 자세로  앉아 있는 그

  사람은 바로 혁련소천이었다.

  이윽고 건륭제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대가 바로 천위대장군 영호대인의 아들 영호풍인가?"

  "그렇습니다."

  혁련소천의 대답은 명료하고 짧았다.

  그의 태도는 정중했으나 일신에  흐르는 기도는 시종 담담하고 기품이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누구라도 한 번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

  건륭제는 잠시 위엄 서린 용안으로 그를 직시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질책하듯 냉엄한 음성을 혁련소천에게 토해내는 것이었다.

  "그대는 무엄하게도 짐의 심기를 흐트러 놓았다."

  '......!'

  혁련소천의 깊은 눈이 가볍게 흔들림을 보였다.

  허나 그는 여전히 태연하게 황제의 말에 반문했다.

  "무슨 말씀이옵니까?"

  건륭제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끊듯 위엄있게 내뱉았다.

  "짐이 사랑하는 공주에게 병을 얻게 한 죄......."

  "그...... 그것은......."

  "......."

  건륭제는 지그시 혁련소천을 노려보았다.

  복잡한 감정의 빛이 두 용안 속에서 물결치듯 일어나고 있었다.

  "그대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노라."

  건륭제의 음성은 한결 누그러져 울려 나왔다.

  "......."

  "그대는 자랑스러운 대명문가의 후손이다. 헌데...... 어찌 한낱 무림에 뜻을 두었는가?"

  혁련소천은 소리없이 미소를 지었다.

  "인간이 열망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것은 각기 다릅니

  다. 헌데...... 그 중 신의 가장 큰 소망은 바로 무림제패입니다."

  "으...... 음......."

  건륭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는 횃불같은 신광을 발하며 단 한 마디로 물었다.

  "그대는...... 제일신마의 보좌를 노리는 것인가?"

  혁련소천은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

  건륭제의 눈가 근육이 한 차례 꿈틀했다.

  잠시 후 그의 고개가 느리게 끄덕여졌다.

  "그랬었군...... 때문에 그대는 공주를  이용하여 황명의 철회를

  유도하려 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

  혁련소천은 정명한 눈으로 건륭제를 직시하며 침묵했다.

  이 순간의 침묵은 그가 보일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었다.

  건륭제의 깊숙한 눈에 은은히 노여움이 고여 오르고 있었다.

  "짐의 평소 성격대로라면......  능히 그대를 참형에 처했을 것이다."

  "......."

  "허나...... 공주를 보아 그대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혁련소천은 담담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만마전의 횡포는 날로 심해  지독한 민폐를 끼치고 있다. 그대는

  장군부의 후예다. 그대가  모든 것을 평정하고 제일신마가 된다면

  짐은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

  "......!"

  혁련소천의 담담하던 눈에 한 차례 파문이 일었다.

  깊은 격동이 가슴 깊숙이 용솟음쳐 올랐기 때문이다.

  건륭제는 문득 냉엄히 안색을 굳히며 말을 덧붙였다.

  "허나...... 만일 실패한다면, 짐은...... 만마전을 쓸어 버릴 것이다!"

  너무도 확신에 찬 힘찬 미소가 혁련소천의 얼굴에 보기 좋게 피어

  오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나 건륭제의 안색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또 한 가지......."

  "......."

  "새외의 사사천과  하토의 세력들을 일 년  안에 만리장성 밖으로 추방하라."

  건륭제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혁련소천을 직시하며 물었다.

  "할 수 있는가?"

  혁련소천의 대답은 너무나 빠르고 간단했다.

  "예."

  "정말인가?"

  "해내겠습니다."

  그 순간 건륭제의 용안에는  비로소 부드러운 미소가 느리게 물결치듯 피어올랐다.

  "그대는 짐보다 뛰어나다."

  혁련소천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씀이시온지......."

  "장군부와 신비각을 동시에 쥐고, 게다가 짐의 목덜미를 잡고 있

  는 공주의 마음까지 움직였으니...... 그대가 하늘인들 바꾸어 놓지 못하겠는가?"

  혁련소천은 얼굴을 붉히면서 가볍게 포권하였다.

  "황송하옵니다."

  이때 문득 건륭제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대가 공주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공주의 한 가지 조건은 짐이 대신 말하겠다."

  "......."

  혁련소천은 약간 긴장됨을 느꼈다.

  이윽고 건륭제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으며  확고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는 제일신마의 즉위에  오르는 즉시...... 공주와 혼인한다. 알겠는가?"

  순간 혁련소천은 흠칫하고 말았다.

  '호...... 혼인이라니......!'

  "그...... 그것은......."

  일순 건륭제의 얼굴에 미소가 가시며 냉엄한 기운이 되살아났다.

  "어명을 거역할 작정인가?"

  "신이...... 어찌......."

  건륭제의 눈가에 은은한 미소가 어렸다.

  "승낙인가?"

  혁련소천은 진땀을 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어명을 따르겠습니다."

  '누가 말했던가? 다다익선...... 이라고!'

  "으하핫...... 핫핫......!"

  순간 건륭제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실내 가득히 울려 퍼졌다.

  "그대의 일이 하루 빨리 성취되기를 바라노라! 핫핫......!"

  다다익선...... 많을수록 좋다.

  결국 혁련소천은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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