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권 제103장 (103/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5권 제103장 대혈전(大血戰)의 서막(序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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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血)!

  피의 대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해(年) 팔월 초닷새, 서천목의 구천십지만마전의 그 웅장한 문

  이 활짝 열렸다.

  두두두두두......!

  그리고 일진의 기마대가 돌풍과 같이 만마전을 빠져 나왔다.

  단 일백 기(騎)의 기마대!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빙허잠, 만후천리, 황보강 삼인(三人), 그들의 주살(誅殺)을 위한

  것이었다.

  선두에 선 일곱 명의 인물.

  군마천주 영호풍!

  천금병마 담대우리!

  백검무회마 적천룡!

  천룡제신마 악군초!

  봉황곡주 백전충!

  혈궁천주 귀검사랑!

  제검천주 독고황!

  이른바 구천십지의 주인 중 대거 일곱 명이 한꺼번에 만마전을 나

  온 것이었다.

  그 뒤를 따르는 구십삼 인(九十三人)의 초정예 고수들.

  그들은 달리고 있었다.

  피의 대폭풍을 가슴에 가득 안은 채.......

  휘― 이― 이― 잉―!

  휘이이잉!

  바람이 불고 있다.

  통곡하는 원귀의 귀곡성과 같이 음산한 바람이 뒤덮고 있었다.

  누런 모래바람  대지를 휩쓰는 이곳은  황하(黃河) 근처의 천황산

  (天荒山)이었다.

  그곳은 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황사(黃砂)가 모여 이루어진 거대

  한 구릉지대였다.

  그 구릉지대가 높낮이를 이루며  수백수천 개가 모여 이루어진 것

  이 천황산이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황색의  파도가  넘실대는 것  같은  구릉지

  대.......

  천황산의 한 구릉지대 위에 삼 인(三人)이 우뚝 서 있었다.

  삼 인(三人)!

  그들은 바로 빙허잠과 만후천리, 황보강이었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득한 구릉지대를  응시하며 거산(巨山)의 위용을  지닌 채 우뚝

  서 있는 그들.......

  문득 만후천리의 시선이 빙허잠을 향했다.

  "빙천주, 중원은 넓고도 광활하오. 구태여 이런 곳을 택한 이유가

  무엇이오?"

  그의 말 속에는 은은한 의혹이 깃들어 있었다.

  이 순간 빙허잠의 표정은 얼음이 한 겹 덮인 것같이 싸늘했다.

  "이곳은...... 백십 년 전에  내가 태어난 곳이오. 나의 아버님이

  이곳에서 어린아이였던 나를 안고 하늘을 우러르며 맹세하셨소."

  빙허잠, 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

  구천십지제일신마의 보좌를 노리고 장장 일백여 년 동안을 고심참

  담해 왔던 일대효웅 빙허잠의 두 눈에 일순 아련한 회상의 그늘이

  서렸다.

  "아버님의 맹세! 그것은 바로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

  으로 만들겠다고 하신 것이오."

  "......."

  "......."

  어느새 빙허잠의  얼굴은 하늘을 우러르고 있었고,  그 말을 듣는

  만후천리와 황보강의 안색은 굳어져 있었다.

  빙허잠의 음성은 느릿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확실한 의지를 담은

  채 담담하게 흘러 나왔다.

  "이

  이곳...... 천황산!  일천이백 구릉은 바로  나의 생명이오. 또한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하오."

  "......."

  "......."

  "이곳에 있으면......  나의 전신은 대지를  짓누르고, 저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힘이  전신  혈맥에서  마구  요동을 치오!  비

  록...... 나의  목적은 실패로  돌아갔으나, 후후후...... 이곳은

  바로 나의 고향인 것이오."

  빙허잠은 하늘을 향한 그 자세로 그렇게 서 있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빙허잠의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만후형, 황보형. 나는 이 황사 속에 나 자신을 묻고 싶소."

  순간 만후천리와 황보강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비형! 목숨을 포기하려는 것이오?"

  만후천리의 급한 음성이었다.

  빙허잠은 그의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후후...... 그것은 포기가 아니오.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오."

  "......!"

  "허나...... 이미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없소. 단지 한 가지만을

  바랄 뿐이오......!"

  "......!"

  "나의 후예!  살아남은 나의 후예들이  훗날...... 먼 훗날이라도

  좋소. 다만, 이 빙허잠이  위대한 인간이었다는 것만 기억해 주면

  되는 것이오."

  빙허잠은 문득 고개를 돌려 만후천리와 황보강을 직시했다.

  "그러기에 나는 시시하게 죽고 싶지는 않소."

  "......."

  "이 황사의 구릉  속에서...... 끝까지 전신을 산화시켜 빙허잠의

  무서움을 보여줄 것이오."

  빙허잠의 두 손이 굳게 쥐어졌다.

  이때였다.

  휙!

  가벼운 파공음과 함께  얼굴빛이 검은 중년인 한  명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신마루의 제일모사로 손꼽히는 바로 위군이었다.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위군의 어조는 급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허나 빙허잠의 표정에는 일체의 변화도 없었다.

  "위군, 황사 속에 모든 것을 배치했느냐?"

  "예! 신마루와 생사천, 자소천의 삼천 명이 모두 완벽하게 자리잡

  았습니다."

  "수고했다."

  빙허잠의 음성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그때 위군의 얼굴 가득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빙천주께......."

  "나는 이제 더 이상 천주가 아니다."

  "속하가 실경했습니다. 허나, 빙어께 꼭 드릴 말씀이......."

  "말하라!"

  위군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허나 그는 곧 굳은 결심의 빛을 띠며 입을 열었다.

  "면밀히 조사해 본 결과...... 이곳은 전략상 극히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옮기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순간 빙허잠의 얼굴에 뜻 모를 미소가 번져 나갔다.

  "위군!"

  "예......."

  "모사란...... 싸움에 승산이 있을 때만 소용 있는 법이다."

  "......!"

  위군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 위로 빙허잠의 음성이 담담히 이어졌다.

  "승산이 있는 싸움은...... 오직 인간의 투혼으로만 결정된다."

  빙허잠의 말이 끝나는 순간.

  "크― 윽!"

  돌연 위군의 입에서 피분수가 솟구쳐 나왔다.

  어느새 그의 심장에 소도(小刀)  하나가 깊숙이 박혀있는 것이 아

  닌가.

  위군은 불신의 표정으로 두  눈을 찢어지게 부릅뜨며 빙허잠을 쳐

  다보았다.

  "왜...... 왜 나를......?"

  빙허잠은 극히 무감정한 눈길로 위군을 바라보았다.

  "너는 모사...... 이제 모든 계획을 다 세웠으니, 더 이상 필요없

  다."

  "으...... 으......."

  "한 명이라도 적을  더 죽이고자 함에 있어  너는 방해가 될 뿐이

  다."

  "어찌...... 그럴 수가......?"

  "결코 너를 미워했거나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하얗게 눈을 까뒤집는 위군을 향해 빙허잠은 마지막 한 마디를 던

  졌다.

  "잘 가거라."

  위군은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며  이미 죽음으로 물든 잿빛 동공을

  만후천리와 황보강에게 향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을까?

  부르륵......!

  허나 위군의 목에서 가래 끓는  듯한 기성이 흘러 나오고 이어 그

  의 얼굴은 처참하게 모래 더미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때였다.

  "빙형, 왔소이다!"

  만후천리의 경직된  음성과 함께 남쪽  멀리 그릉에서 황사먼지가

  구름처럼 자욱이 솟구쳐 올랐다.

  빙허잠은 회심의 미소를 싸늘하게 흘렸다.

  "후후후...... 그것이 이 천황산의 특징이오. 움직이면 반드시 알

  수 있지......."

  이때 황보강이 은근히 노기 띤 어조로 입을 열었다.

  "빙형,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소?"

  빙허잠은 천천히 그를 돌아보았다.

  "황보형, 나와  다투기 이전에...... 당신은  이 싸움에서 살아날

  확률이 얼마인지 생각해 보았소?"

  "......!"

  황사 바람을 휘몰며 지축을  요란하게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촌각

  을 다투며 다가오고 있었다.

  빙허잠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바라

  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이상하다......."

  황보강이 급히 입을 열었다.

  "무엇이 이상하오?"

  말을 하면서 그는 빙허잠의 시선을 따라 급히 주위를 훑어보았다.

  "아......!"

  천황산 일천이백 구릉에 자욱하게 퍼지는 뭉게구름같은 엄청난 황

  사를 보는 만후천리의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이럴 수가? 그들의 숫자는 이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면?"

  "말(馬)! 저것은 빈 말들이다!"

  빙허잠의 급한 음성이었다.

  과연 그랬다.

  뿌연 황사를 이끌며 미친  듯이 질주해 오는 수백수천의 말들, 그

  말 등에는 사람이 한 명도 타고 있지 않았다.

  그때였다.

  쏴― 아― 앙―!

  돌연 거대한 화살이 황사를  꿰뚫고 선풍을 일으키며 질주하는 한

  마리의 말잔등에 쑤셔박혔다.

  히히힝―!

  말은 진저리를 치며 미친 듯이 요동을 쳤다.

  "저건 마력천궁 당우의 화살이다."

  황보강이 놀람의 외침을 터뜨렸다.

  순간 빙허잠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당했다!"

  "무슨 소리요?"

  옆에 서 있던 만후천리가 급히 물었다.

  "으음! 이 냄새는 장손세가의 마화신무액이오!"

  만후천리의 눈에 경악의 빛이 솟구쳤다.

  "그렇다면?"

  "그렇소! 화살 속에 마화신무액이......!"

  빙허잠의 얼굴에 절망의 그늘이 짙게 어렸다.

  동시에 만후천리와 황보강의 안색이 밀납같이 하얗게 변했다.

  허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두두두두두둑......

  일천이백 구릉을 누런 황사로 몰아넣은 수천 필의 말이 미친 듯이

  그들 가까이에까지 질주해 오고 있지 않은가!

  "말을! 말을 접근치 못하게 하라!"

  빙허잠은 목청이 터져라 대갈성을 터뜨렸다.

  허나 마력천궁의 화살에 적중된  말에서 순간 무서운 폭음이 일었

  다.

  콰― 앙!

  그것이 시작이었다.

  콰콰콰쾅― 꽈르르르릉―!

  수천 필의 말에 매달려 있던 마화신무액의 연쇄적인 폭발, 그것은

  너무도 엄청나 마치 우레소리처럼 끝없는 진동을 일으켰다.

  "크― 아― 악!"

  "카악―!"

  그리고 황사 속에서 터져 나오는 죽음의 절규!

  아아......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모래바람 속의 아수라규환지

  옥이었다.

  콰콰콰콰쾅―!

  "아― 악!"

  "크― 으― 악!"

  살아 있는 인간의 심령을  갈가리 잡아뜯고, 그 처절한 단말마 속

  에서 갈가리 찢긴 시신이  먼지처럼 누런 모래바람 속으로 치솟아

  올랐다.

  어느 것이 말(馬)이고 또 어느  것이 사람인지 이미 그 형체를 알

  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피의 대폭풍!

  그 엄청난 시산혈해의 서막이 이렇게 오르고 있었다.

  빙허잠은 다가오는 수백 필의 말에 둘러싸인 채 하늘을 향해 탄식

  을 불어냈다.

  "끝이다. 황사......! 황사가 나를 죽이는구나!"

  절규 섞인 탄식 속에서 그는 두 눈을 굳게 감았다.

  콰― 콰― 쾅!

  그리고 그는 지축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폭음 속에 싸여 버렸다.

  황사 속에 숨어 있던 삼  천의 고수들은 미처 손 한 번 쓸 사이도

  없이 이렇게 속절없이 죽어간 것이다.

  마치 한 무더기의 개미떼처럼.......

  천황산 남쪽의 구릉지대에 참혹한  수천 구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

  는 곳을 내려다 보며 백 명의 기마대가 우뚝 서 있었다.

  혁련소천을 위시한 일백 인은 아직도 피워오르는 누런 모래바람을

  내려다 보며 구천십지제일신마를 거역한 자의 최후를 물끄러미 지

  켜보고 있었다.

  이때였다.

  돌연 구릉의 아래쪽에서 한  인영이 불쑥 솟구쳐 오르더니 그대로

  혁련소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뢰오!"

  "어찌 되었느냐?"

  "황보강과 만후천리의 시신은 찾았습니다만......."

  "빙허잠은......?"

  "그의 시신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때 봉황곡주 백전충이 씁쓸한 고소를 흘렸다.

  "조각난 이 많은 시체 속에서 어찌 그의 시체를 찾을 수 있겠소?"

  "그렇소. 그건 불가능한  일이외다. 분명히 화약 속에서 갈기갈기

  찢겨 죽었을 것이오."

  제검천주 독고황의 말이었다.

  순간 혁련소천의 입가에 뜻  모를 기이한 미소가 은은히 피어올랐다.

  "글쎄 과연 그럴는지......."

  혁련소천은 묘한 의미가 풍기는  말을 흘리며 다시 시체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후후...... 빙허잠, 만후천리와  황보강까지 희생시킨 너의 금선

  탈각지계는 대단히 훌륭했다!'

  무슨 말인가?

  '허나, 그것은 타인에게는  통해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네가

  완벽하다면 나 역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

  문득 싸늘한 냉소가 그의 얼굴에 물안개처럼 피어올랐다.

  '후후...... 노형님, 부탁하오!'

  만마전을 빠져 나온 백 인, 그들 중 분명 군청위는 없었다.

  "모두 돌아갑시다."

  순간 혁련소천의 손이 번쩍 쳐들렸다.

  그때 귀검사랑이 슬며시 그에게 다가왔다.

  "영호천주!"

  "......?"

  "나의 생각이오만...... 빙허잠은 죽지 않은 것 같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귀검사랑이 묘하게 씨익 웃었다.

  "그건...... 나보다 영호천주가 더 잘 알지 않소?"

  "흠......."

  혁련소천은 담담한 눈길로 귀검사랑을  보며 뜻 모를 침음성을 흘렸다.

  '어쩌면......!'

  어쩌면......! 그것은 과연 무슨 뜻인가?

  천황산의 구릉을 벗어난 한 이름 없는 야산(野山)인 이곳 역시 천

  황산의 황사바람이 자욱이 불고 있었다.

  그 속에서 홀연 한 인영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구멍이 숭숭 뚫린 장포엔  희미한 핏방울이 검붉게 말라붙어 있었

  다.

  그는 바로 빙허잠이었다.

  빙허잠은 야산의 중턱을 딛고  선 채 물끄러미 천황산을 바라보았다.

  시꺼먼 열기를 뿜어내는 천황산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 한이 응어

  리진 채 일렁이고 있었다.

  문득 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기억하리라! 이 참담한 패배를......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돌

  려주겠다. 이 뼈아픈 복수를......!"

  한이 골수에 맺힌 저주 어린 말이 방금 끝났을 때였다.

  "너의 말은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문득 그의 등 뒤 일  장도 안 되는 곳에서 창노한 음성 하나가 들려왔다.

  "......!"

  빙허잠은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가까이 오도록 몰랐다니.......'

  그는 번개같은 속도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눈 앞의 흐릿한  황사 속에 우뚝 서 있는 한 흑의 꼽

  추노인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군청위였다.

  혁련소천이 내심 중얼거렸던 부탁한다는 뜻이 바로 이것이었던가?

  빙허잠은 내심의 경악을 억제하며 차갑게 말했다.

  "너는 누구냐?"

  순간 군청위의 하얀 눈썹이 스르륵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

  "너라니? 이런 발칙한 놈! 네놈이 바로 빙허잠이란 애송이냐?"

  "애송이?"

  "크흐흐...... 그렇다. 헌데, 네 놈은 아까 저 천황산의 황사구릉

  이 네 무덤이라고 했겠다?"

  "......!"

  "그런데 쥐새끼처럼  혼자만 몰래  빠져 나오다니...... 아무래도

  노부가 너 대신 저 속에 묻어줘야겠나 보다."

  '으...... 대체 이 늙은 귀신같은 놈은......?'

  빙허잠은 내심 군청위의 무형중  내뻗는 가공할 살기에 깊은 신음을 삼켰다.

  "크흐흐...... 애송아. 네놈의 목은  내가 가져갈 테니 몸만 묻어줘도 유감은 없으렷다?"

  군청위가 성큼 한 발을 내딛었다.

  "미친 놈! 나 빙허잠을 뭘로 보는 거냐!"

  순간 빙허잠의 노갈과 함께  그의 쌍수가 기이한 장영(掌影)을 뿌

  려내며 가공할 위세로 뻗어 나갔다.

  허나 군청위는 파리 쫓는  듯 가벼운 손놀림으로 대처했을 뿐이었다.

  꽈앙―!

  그 순간  폭음이 주위를 무섭게 뒤흔들고,  돌연 빙허잠은 끊어질

  듯한 어깨의 통증과 함께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삽시간에 그의 두 눈 속에는 공포와 경악이 혼합된 시선이 떠올랐다.

  '으으...... 천하에 단우비 외에 이토록 무서운 내공을 지닌 자가 있었다니......!'

  "흐흐흐! 아가야, 이제 다 놀았느냐?"

  군청위의 입에서 싸늘한 조소가 흘러 나왔다.

  "너...... 너는...... 누구냐?"

  이미 평정을 잃은 빙허잠이 다급한 음성을 터뜨렸다.

  "나? 그건 죽은  다음에 저승에 가서 네  아비인 빙후정에게 물어 보아라."

  마치 인자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타이르듯  조용히 말을 흘리는 군청위였다.

  "쳐죽일 놈!"

  빙허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신형을 휙! 날렸다.

  빙허잠, 자소천의 천주이며 구천십지제일신마의 보좌를 노렸던 그

  인 만큼 그의 무공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휙! 휙! 휙!

  황사바람 속을 가르며  무섭게 펼쳐지는 장(掌), 지(指), 수도(手刀)!

  순식간에 백여 초가 지나갔다.

  허나 군청위는 슬쩍슬쩍 몸을  놀려 그의 공세를 간일발의 차이로

  피할 뿐 마치 유람 나온 선비처럼 한가한 자세가 아닌가?

  '허......  제법이구나! 제  아비인 빙후정은  비교도  안 되겠는데......?'

  문득 군청위의 마음 속에 빙허잠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천십지 중에서 소형제를 제외하면 가장 센 놈이겠군......!'

  허나 그는 곧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까운 녀석이로고...... 허나,  소형제의 부탁이니 살려줄 수는 없다."

  말이 끝나는 순간 군청위의 두 눈에서 감히 마주받지 못할 살광이

  무섭게 폭사되어 나왔다.

  번― 쩍!

  동시에 한 줄기 금빛 섬광이 빙허잠의 시선을 차단했다.

  "허? 그...... 그것은 대라금삭......?"

  순간 빙허잠의 입에서 대경실색한 음성이 튀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애 중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한 마디가

  되고 말았다.

  미처 말도 끝맺지 못한 채 빙허잠은 자신의 목이 선뜻하다고 느끼

  며 처절한 비명을 터뜨렸다.

  "크― 악!"

  툭......!

  어느새 빙허잠의 목은 그의 몸을 떠나 바닥의 황사 속을 나뒹굴었

  다.

  굴러 떨어진 그의 목 위의  두 눈은 지독한 불신으로 잔뜩 부릅떠

  져 있었다.

  군청위는 빙허잠의 목을 집어 들며 나직이 탄식을 흘렸다.

  "쯧! 이 녀석은  죽어서도 자신이 당한 것을  믿지 못하는 모양이군......."

  그리고는 그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구천십지만마전은 역시  위대한 곳이로다.  빙허잠같은 아이들이

  수십 명이나 있으니......."

  그의 끝 말, 그것은 이미 자욱한 황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다.

  부는 바람은 싯누런 모래바람...... 대야망의 혼을 잠재우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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