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권 제92장 (92/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5권 제92장 사신(死神)의 미소(微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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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지운은 소름끼치는 전율 속에서 눈 앞에 있는 추악한 사내의 말

  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혁련소천은 무심한  눈길로 자신의 계획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아는가?

  모르고 겪는 고통보다  알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이  그 얼마나 큰

  것인가를.......

  "타인들이 너와 석원초의 죽음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으냐?"

  "......!"

  "후후...... 그건 간단하다.  그들은 네가 석원초를 죽이고, 석원

  초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 여력으로 너를 죽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

  육지운은 하얗다 못해 파리하게 질린 채 아예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느긋히 감상하며  혁련소천의 음성이 조용히

  이어졌다.

  "너도 알다시피...... 네 아비는 결코 자소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

  "그렇게 되면 그는 분명히 암중의 사사천 고수들의 도움을 요청하

  겠지. 사사천은 결국 도와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왜냐

  하면 도와  주지 않으면  육도평이 사사천의 비밀을  폭로할 테니

  까......."

  "......!"

  "그렇게 해서 새북사사천은 자연히 기어 나오게 된다. 또한, 그들

  은 자소천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혁련소천의 말은 거기에서 끝났다.

  따라서 그의 일 단계  조호이산지계는 완벽한 시작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도삼살지계(二挑三殺之計)에 의한  양패구상의 작전, 그것

  역시 추호의 빈틈도 없이 이루어질 것이고.......

  "......!"

  육지운은 넋 나간 사람처럼 혁련소천의 얼굴을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혁련소천의 손이 번쩍 쳐들렸다.

  번쩍!

  한 줄기 눈부신 은광이 현란한 빛을 뿜어냈다.

  그 순간 육지운은 갑작스런 추위가 엄습해 옴을 느꼈다.

  "아......!"

  곤혹의 탄성과 함께 돌연 그녀의 옷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고 곧

  이어 너무도  현란하고 늘씬한 동체가  적나라하게 혁련소천의 눈

  앞에 나타났다.

  성숙한 여인의  나신(裸身), 그것은 은밀한  불빛 아래서 요요(妖

  妖)로운 염기(艶氣)를 담뿍 머금고 있었다.

  "나...... 나를 범하려고......."

  육지운은 대경실색하며 말을 더듬었다.

  혁련소천은 싱긋 미소했다.

  "육지운, 나는 원래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허나......."

  파랗게 질린 육지운의 나신에 혁련소천의 음성이 칼날처럼 파고들

  었다.

  "너는 어차피 음모를 지니고 석원초에게 몸을 바치려 했던 것! 그

  정도가 너의 정조관이라면 나는  너를 범해도 결코 죄책감을 느끼

  지 않게 되리라!"

  혁련소천은 천천히 육지운을 향해 다가섰다.

  '아아...... 저 자는 도저히 나의 적수가...... 아니다.......'

  육지운은 내심 절망의 탄식을 터뜨렸다.

  허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던가?

  육지운의 눈에 악독한 살기가 감도는 순간,

  쐐― 액!

  돌연 그녀의 양 손가락이 쫙 펼쳐지며 날카로운 지풍이 뿜어져 나

  갔다.

  허나 그것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짓에 불과했다.

  "여인이 나체로 날뛰는 것도 보기 싫은 광경은 아니지......."

  혁련소천의 입에서 담담한 중얼거림이 흘러 나온 순간.

  "아......!"

  육지운은 허리부근이 뜨끔해지는 것을 느끼며 맥없이 허물어져 내

  렸다.

  순간 그녀는 입 속에서 힘껏 혀를 깨물었다.

  '추악한 저 자에게 당하느니 차라리.......'

  막 혀가 잘릴 무렵,  그녀는 목젖 부근이 또다시 뜨끔하게 찔리는

  것을 느꼈다.

  '아혈까지...... 아아!'

  육지운은 가슴 속으로 참담한 절망의 신음을 흘렸다.

  어느새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양 볼을 적셔갔다.

  혁련소천은 싸늘한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참됨을 겉모양으로만 판단하려는 어리석은 것

  들...... 허나, 너희들은 나 혁련소천이 있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

  았어야 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혁련소천은  육지운의 나신을 번쩍 안아 들

  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알몸은 불빛에 가득 어른거리는 침상 위로 가볍

  게 내던져졌다.

  그런 그녀 앞에서  혁련소천은 바쁜 일도 없다는  듯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천은산장의 대전(大殿)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회는 흥청거리며 한

  창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대전의 중앙엔 천은장주 육도평이 희색만면한 표정으로 연신 술잔

  을 기울이고 있었다.

  육순의 나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장한 체구에 얼굴을 뒤

  덮은 검은 구레나룻, 가히 당당한 풍모였다.

  육도평은 간간이  술잔을 기울이며 연신  사위를 음산한 눈빛으로

  훑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는  자소천의 서열 팔 위(八位)인 무정살검(無情殺

  劒) 위천상(衛天常)이 수하들을 이끌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석원초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온 자소천의 대표인물이었

  다.

  어둠은 소리없이 자꾸자꾸 깊어가는데 연회는 그칠 줄 모른 채 흥

  겨운 분위기를 점차 더하고 있었다.

  "허허...... 노부는 육십 평생 오늘처럼 기쁜 적이 없소이다."

  육도평은 연신 호탕한 너털웃음을 흘렸다.

  "천하의 자소천과 사돈을 맺게 되니 진정 노부 일생일대의 광영이

  외다."

  면전에 대놓고  칭찬하는 말은 원래부터 쑥스럽기  짝이 없는 법,

  허나 무정살검 위천상은 파리한 안색에 돋아난 세 가닥 수염을 쓰

  다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모두  육장주의 인덕이  후하기 때문이 아니겠소이

  까? 또한 영애이신  육소저의 미모와 재치가 출중하니...... 오히

  려 석공자가 행운을 얻으셨는가 하오."

  "허허...... 그 무슨 겸손의 말씀을......."

  오가는 말은 대충 그런 것들이었다.

  헌데 그때였다.

  쾅!

  굳게 닫혀 있던 대전 문이 요란한 굉음과 함께 활짝 열렸다.

  휘이이잉―!

  싸늘한 밤바람이 거칠게 불어와  대전의 수백 개 촛불을 뒤흔들었

  다.

  그리고 곧 다시 밝아진 실내에서 그들은 피투성이가 된 한 인물이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검붉은 선혈과 허옇게 드러난 갈비뼈가 흉측스러울 정도로 드러난

  인물, 뜻밖에도 그는 바로 옥면수라 석원초가 아닌가!

  "......!"

  흥겹던 연회장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 순간 제일 먼저 무정살검 위천상이 벌떡 일어섰다.

  "석공자!"

  그는 경악 어린 대갈을 터뜨리며 급히 몸을 날려 석원초를 부축했

  다.

  석원초의 생명은 이미 기름이  다한 등잔불과 같이 가물거리고 있

  었다.

  문득, 석원초는 꺼져 가는 잿빛 동공으로 무섭게 육도평을 노려보

  았다.

  "배...... 신......."

  "석공자, 무슨 말씀이시오?"

  위천상은 헛수고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명문혈에 장심을 대고

  진기를 주입시켰다.

  "으윽! 육지운...... 새북사사천의...... 끄나풀...... 나는 당했다......."

  그 순간 석원초의 목이 힘없이 꺾어져 버렸다.

  "으음...... 이럴 수가......?"

  석원초의 죽음을 대한 위천상의  음푹 꺼진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무섭게 쏟아져 나왔다.

  "육장주! 이 일을 해명하라!"

  위천상의 좌수는 이미 허리춤의 무정검을 잡고 있었다.

  육도평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안색이 눈에 띄게 급변했다.

  "노...... 노부는 잘......."

  허나 무정살검은 그의 말을 끊으며 무섭게 이를 갈았다.

  "그래......? 이제 보니 음모였구나!"

  그의 무정검이 쾌속한 속도로 뽑혔다.

  "모두 천은산장을 궤멸시켜라!"

  동시에 위천상의 대갈이 장내를 쩌렁 울렸다.

  차창― 창!

  요란하게 뽑혀지는 병기 소리와 함께.

  "죽일 놈들! 받아랏!"

  휙! 번― 쩍!

  자소천 인물들은 신형을 날려 천은산장의 인물들을 쳐나가기 시작

  했다.

  산해진미의 연회장이 순식간에 박살나고, 축하식장은 졸지에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한 폭의 도살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크― 악!"

  "헉......!"

  육도평은 내심 이를 빠드득 갈았다.

  '빌어먹을! 끄...... 끝장이다! 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흉폭한 안광이 그의 두 눈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이 놈들을 싹 죽여 입을 봉할 수밖에.......'

  살인멸구―!

  육도평은 자신의 수하들을 향해 대성일갈을 터뜨렸다.

  "자소천의 놈들은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휘리리릭―!

  그때 무정살검이 신형을 뽑아 허공에서 어지럽게 선회하며 육도평

  의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음흉한 놈! 역시 네놈은 새북사사천의 간세(奸細)였구나!"

  파파팟―!

  그의 검이 무서운 속도로 육도평의 심장을 쑤셔갔다.

  "닥쳐랏! 네놈들이 무슨 헛수작을 부린 것이 틀림없다!"

  허나 육도평 역시 쾌속하게 검을 뽑아 재빨리 무정검을 막아냈다.

  차― 창!

  이때 돌연 이변이 일었다.

  위천상의 무정검이 육도형의 검과  맞닥뜨리는 순간 돌연 뚝 부러

  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헛! 이럴 수가......."

  위천상은 경악의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 순간 육도평의 장검이 눈부시게 빛을 뿜었다.

  "크흐흐...... 뒈져라―!"

  위천상은 급히 신형을 틀어 장검을 피했다.

  헌데 돌연 등 뒤  연마혈(軟麻穴)이 뜨끔해지며 몸이 뻣뻣하게 굳

  는 것이 아닌가!

  '크윽! 이...... 이게.......'

  위천상은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육도평의 장검이 그의 심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푸― 욱!

  "크― 악!"

  무정살검으로 악명을 떨친 위천상의 최후를 알리는 절규였다.

  "네...... 네놈이......."

  솟구치는 피분수를 부여잡은 채 육도평을 노려보며 위천상은 경악

  의 신음성을 흘렸다.

  그때 그의 귓속에 싸늘무비한 전음성이 흘러들었다.

  (귀찮은 놈! 죽을려면 빨리 죽어라!)

  순간 그는 정수리 부분이 불로 지진 듯 화끈해짐을 느꼈다.

  '크...... 윽! 어떤...... 놈이 암중에.......'

  위천상은 그것을 최후의 느낌으로  남긴 채 털썩 바닥으로 쓰러졌

  다.

  육도평은 음흉한 괴소를  흘리며 장검에 묻은 피를  홱 떨쳐 버렸

  다.

  '무정살검의 무공이 이 정도밖에 안 되다니!'

  문득 그의 뇌리에 일말의 의혹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는 순간에 수뇌를 잃은  자소천의 고수들은 점차 하나둘씩 쓰

  러져 갔다.

  문득 육도평의 시선이 장내를 메운 축하객들에게로 머물렀다.

  '저것들도 싹 쓸어 버려야.......'

  철혈무정의 강호상에서는 한끼 얻어먹기 위해 모여든 일반 강호의

  무림인들은 어리둥절 대전의  한쪽에서 디룩거리며 경악의 눈망울

  만 굴리고 있었다.

  허나 육도평의 결정이 내려지자, 더 이상 이유도 없었다.

  다만 그들은 죽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 순간 대전 위의 대들보 위에서 태연히 죽음의 도살장을 내려다

  보고 있던 백발의 꼽추노인  군청위는 연신 괴소를 흘리며 장난하

  듯 손가락을 퉁겨냈다.

  그때마다 예외없이 한 명의 자소천 고수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크흐흐흐...... 미친 놈들! 석원초의 시신은 보지도 않고 싸우는

  군."

  비릿한 조소가 섞인 싸늘한 냉소였다.

  그의 냉소처럼 마땅히 대전바닥에  쓰러져 있어야 할 석원초의 시

  신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하기야 있을 리도 없지만.......

  군청위는 쌓여져 가는 시신들을 굽어보며 잔잔한 괴소를 흘려내었

  다.

  "흐흐흐...... 쓰레기같은 것들!  죽이고 또 죽여라! 그래야 소형

  제의 계획이 한결 수월해질 테니까......."

  흐뭇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떠올리는 군청위의

  미소.

  그것은...... 초대받지 않은 사신(死神)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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