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권 제91장 (91/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5권 제91장 음모(陰謀)를 지닌 여인(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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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여인의 규방이었다.

  은밀히 타오르는 쌍봉(雙峰) 촛대의  불빛 아래 침상에는 실로 미

  려(美麗)하기 짝이 없는 한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반듯한 이마와 가을 호수같이  서늘한 두 눈, 날카로운 이지가 깃

  든 오똑한 콧날과 붉은 꽃잎을 베어문 듯한 입술.......

  허나 눈매와 입술의 끝이 위로 살짝 치켜올라간 것으로 보아 여인

  의 성격이 앙칼짐을 능히 알 수 있었다.

  천봉선자 육지운, 바로 그녀였다.

  허나 이 순간, 신방으로  꾸며진 규방의 천장 위엔 뜻밖의 불청객

  이 숨을 죽인 채 숨어 있었으니.......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거미처럼 천장에 등을 붙이고 있는 녹색의

  복면을 쓴 녹의인영.

  순간 그 녹의인영의 입에서 음침한 음성이 나직하게 흘러 나왔다.

  "육소저, 그대의 임무가 막중함을 잊지 마시오."

  이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허나, 육지운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녹의인영의 말을 듣고

  있지 않은가!

  다시 녹의인영의 극히 신중한 음성이 말을 이었다.

  "석원초는 자소천의  인물이면서도 분명히  어느 신비세력과 손을

  잡고 있소."

  "......!"

  "육소저는 바로 그것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오."

  "염려마세요."

  대담한 육지운의 교성이 또르륵 굴러 나왔다.

  "믿겠소. 이번 일만 성공한다면 대장문인께서 크나큰 은혜를 베풀

  것이오."

  천봉선자 육지운은 순간 입가에 극히 야릇한 웃음을 머금었다.

  "일은 이미 시작된  것, 나에게 맡긴 이상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세요."

  "믿으리다."

  못을 박듯 짧게 한 마디를 남기며 돌연 녹의인영은 그대로 천장을

  뚫고 사라졌다.

  스스슷!

  녹의인영은 마치 유령처럼 지붕 위로 올라섰다.

  예리하게 번뜩이는 그의 시선이 사방의 어둠 속을 재빨리 살폈다.

  어둠 속에 묻힌 사위(四圍)는 아무런 동정조차 없었다.

  녹의인영은 됐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막 신형을 날리려

  는 자세를 취했다.

  헌데 언제 나타났는지 녹의인영의 눈  앞 삼 장 밖에 흑의의 꼽추

  노인이 우뚝 선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바로 군청위였다.

  "......!"

  녹의인영의 몸은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한 소리 당혹성이 흘러 나왔다.

  "너...... 너는......?"

  허나 그의 뒷말은 군청위의  싸늘무비한 괴소에 의해 무참히 잘려

  나가고 말았다.

  "흐흐흐......  애송이 놈이  감히  노부에게  너라는 말을  하다

  니...... 흐흐흐......."

  소름끼치는 전율을 담은 괴소였다.

  녹의인영은 신형을 부르르 떨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모...... 모두 보았느냐?"

  "물론이다. 새북사사천의 끄나풀 놈!"

  순간 녹의인영의 두 눈에서  시퍼런 광망이 불벼락처럼 쏟아져 나

  왔다.

  "그렇다면 살려둘 수......."

  없다!

  녹의인영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컥!"

  어느새 그의 목을 금빛 쇠사슬이 휘감은 것이다.

  대라금삭, 바로 그것이었다.

  '이......  이렇게  빠를   수가......  누가?  언제......  어떻

  게.......'

  녹의인영의 두 눈에 지독한 불신의 빛이 가득 떠올랐다.

  허나 그것뿐이었다.

  "헉!"

  한순간 대라금삭이 바싹 조여지더니 녹의인영은 비명 소리조차 없

  이 깨끗이 유명을 달리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풀어질 대라금삭이 아니었다.

  우― 드― 득!

  녹의인영의 목뼈가 그대로 으스러지며 축 늘어졌다.

  그때서야 군청위는  대라금삭을 회수하며 싸늘한  한 마디를 야공

  (夜空) 속에 실려 보냈다.

  "피의 대제전!  그 첫번째  제물이 되었음을 영광으로  알고 죽어

  라!"

  스르륵......!

  썩은 고목나무 넘어가듯 녹의인영의  시체가 지붕 위에 길게 넘어

  졌다.

  군청위는 수중의  대라금삭을 만지작거리며 문득  한 차례 기광을

  흘렸다.

  "후후...... 이제 소형제 차례인가? 재미가 한창이겠군."

  슷......!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어둠 그 자체로 화하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허나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나직이 허공을 맴도는 군청위의 말 한

  마디가 있었으니.......

  "흐흐흐...... 오랜만에 피냄새를 맡겠군."

  피냄새, 그 가공할 한  마디의 여운이 오랫동안 허공에 머물러 있

  었다.

  규방 안의 육지운은 여전히 다소곳한 자세로 침상 위에 앉아 있었

  다.

  스륵......!

  그때 문이 열리고 한 명의 인물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단순한 초야의 신부가 아닌 음모를 지닌 여인인 육지운은 순간 살

  포시 볼을 붉히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육중한 남자의 발소리가 어느새  그녀의 바로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육소저......."

  그리고 한 사나이의 음성이 그녀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이...... 이건 석원초의 음성이.......'

  의아함을 느낀 육지운의 머리가 발딱 위로 올려졌다.

  "어맛!"

  순간 그녀의 입에서 뾰족한 경악성이 흘러 나왔다.

  천하에서 둘도 찾아보기 어려운 추악한 얼굴이 지금 그녀의 눈 앞

  에 있던 것이다.

  육지운의 안색이 순식간에 핏기를 잃었다.

  허나 음모를 지닌 여인답게 그녀는 확실히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발딱 신형을 곧추세우며 앙칼진 교갈을 터뜨렸다.

  "어떤 놈이냐?"

  혁련소천은 나직한 괴소를 흘리며 말했다.

  "후후...... 나는 석원초를 대신해서 너를 즐겁게 해주려고 온 사

  람이다."

  "뭣이? 그렇다면 석공자는 이미......."

  "제법 눈치가 있군. 그렇다. 그는 지금쯤 저승에서 한참 염라부의

  입구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석원초가 죽었다고......?"

  "후후후...... 왜  믿어지지 않나? 그  자가 죽었으니 사사천에서

  맡긴 임무가 실패할까봐 두려워하는가?"

  "......!"

  육지운은 핏기 한 점 없는 창백한 얼굴로 혁련소천을 바라보았다.

  혁련소천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들고 있었다.

  "철극륭은 얼마 전 호목천군 사위릉을 시켜 사사천의 고수와 함께

  옥문관을 넘었다."

  "......!"

  "묻겠다. 사사천 고수들이 있는 위치가 어디냐?"

  육지운은 혁련소천의 말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렸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녀는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허나 그녀는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난 것이다.

  혁련소천은 담담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부인하는 솜씨가  서툴군. 육지운,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너는 절대로 나의 눈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

  그러나 육지운의 눈빛은 여전히 완강했다.

  그녀의 완강한 눈빛을 찍듯이  내려다 보며 혁련소천은 조용한 음

  성을 흘렸다.

  "네가 부인해도 좋다. 허나  지금부터 너와 나는 재미있는 놀이를

  시작한다."

  "......?"

  "궁금할 것은 없다. 아주 단순한 것이니까......."

  "단순한 것이라면......."

  혁련소천은 눈빛을 야릇하게 빛냈다.

  "너를 가질  생각이다. 그런 다음 너를  죽이겠다. 연후...... 네

  옆에 석원초의 시체를 갖다 놓고 약간의 손을 본 후 다음 일을 진

  행할 생각이다."

  "......!"

  ― 너를 갖겠다. 그런 다음...... 너를 죽이겠다!

  육지운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 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절망!

  그 순간 그녀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죽음(死)이 자신에게 다가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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