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권 제88장 (88/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4권 제88장 신비(神秘)의 광소(狂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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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소하의 절벽 중앙,  천만 길 칼로 내려친  듯 깎아지른 단애(斷

  崖)의 중간 부분에 극히 은밀한 동굴이 자리잡고 있었다.

  휙!

  그때 가벼운 파공성과 함께 한 명의 인물이 그곳에 나타났다.

  혁련소천이었다.

  그는 잠시 예리한 눈빛으로 동굴 속을 주의깊게 응시했다.

  허나 그가 찾는 피리 소리는 이미 들리지 않고 있었다.

  '분명히...... 이 동굴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대체...... 그 피

  리 소리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의 얼굴은 이 순간 풀 수 없는 의혹으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천하의 천산쌍로가 단지 피리 소리 하나만 듣고도 혼비백산해 달

  아났다!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일단 품었던 의혹을 풀지 않고 그냥 넘어갈 혁련소천이 아니었다.

  '좋아, 알아보자!'

  휙!

  그때 막 동굴 속으로  진입하려는 혁련소천 앞에 철진진이 가볍게

  내려섰다.

  순간 혁련소천의 눈썹이 저절로 찌푸러졌다.

  "끈질긴 계집아이로군!"

  "계집아이? 나는 아이가  아니에요. 어엿한 요조숙녀에게 무슨 말

  씀이에요?"

  철진진은 샐쭉 입을 내밀며 따지듯 말했다.

  혁련소천은 아연 어이가 없었다.

  "대체 너의 나이가 몇 살이냐?"

  "또 그러시네? 너, 너 하지  말아요. 내 나이는 무려 십오 세, 이

  미 결혼할 나이라구요."

  "......!"

  혁련소천은 할 말을 잊고 말았다.

  '하기야...... 대막은 조혼 풍습이 있으니.......'

  이어 혁련소천은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기어코 나를 따른다면...... 어떤 위험이 닥쳐도 책임질 수

  없다."

  철진진은 그 말에 활짝 웃었다.

  "그럼 허락하시는 거죠?"

  혁련소천은 아무런 대답없이 동굴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피......."

  철진진은 뽀로통하게 입을 내밀며 곧장 그의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동굴 안은 몹시 어두웠다.

  그러나 혁련소천은 동굴 속을 거침없이 진입해 들어갔다.

  철진진은 그의 뒤를 바싹 따라가며 계속해서 조잘거렸다.

  "나는 원래 중원에서 젊은 고수 중의 제일인자가 군마천주 영호풍

  인 줄 알았어요."

  "......!"

  "헌데, 당신은 그보다 훨씬 더 강한 것 같아요."

  잠시 침묵하던 혁련소천은 돌연  무슨 생각에선지 불쑥 입을 열었다.

  "영호풍을 아는가?"

  "알아요. 그는 굉장한  미남자예요. 또한 오만하기가 이를데 없어

  요. 하기야 그럴 만한 실력이 있는 인물이니까요."

  철진진은 영호풍에 대해 세밀한 분석이라도 해놓았다는 듯 자신있

  게 떠들어댔다.

  "원래...... 저는 오빠의 명에  의해 소사 사형과 함께 그의 뒤를

  쫓고 있었어요."

  "흠......!"

  혁련소천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이 소녀, 내가 사사천  고수를 죽였는데도 이토록 친근하게 대하

  는 이유는  무엇인가? 천진해서? 아니면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인가.......'

  혁련소천은 일말의  가벼운 의혹을 느끼며  계속해서 신형을 옮겼다.

  동굴 속은 실로 복잡할 정도로 구불거렸다.

  문득 혁련소천의 뇌리에 섬뜩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정도의 길이라면 거의  사오백 장의 거리에 이른다. 헌데, 이

  먼 거리에서 피리 소리를 전성시킨다......?'

  '또한 동굴 속은 복잡한  굴곡을 이루고 있어 결코 음(音)이 전달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순간 혁련소천의 표정이 경직되듯 굳어졌다.

  '혹시...... 이것이 천리회성음(千里廻聲音)......?'

  생각과 동시에 그의 두 눈에 커다란 놀람의 빛이 솟구쳤다.

  '사사무 노야의 말에 의하면, 천리회성음으로 음을 전달하려면 최

  소한 오 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물경 오 갑자―!

  '더욱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고 피리 소리라면 더욱 어렵다.

  또한, 이 동굴의 복잡한 통로는 결코 쉽게 음을 흘려내지 않는다.

  헌데......?'

  부정과 긍정이 뒤섞이는 의혹이  마치 뿌연 안개같이 그의 뇌리를

  뒤덮었다.

  천리회성음(千里廻聲音)―!

  이것은 전음의 극치인 천리전음술과는 아예 그 본질이나 류(類)를

  달리한다.

  천리전음은 내공이 초극강 경지에  이른 인물이 자신의 내공을 이

  용해서 음성을 전달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칠현금이나 비파, 피리 등의 악기에 내공을 주입하여 똑같

  은 음향으로 십 리(十里)까지 보내는 것은 무림사상 그 유례가 없

  었다.

  무림사 이래 음(音)의  황제(皇帝)라고 공인되던 천음상인(天音上

  人)조차도 불과 오 리 정도의 거리에 그치고 만 것이 최고의 기록

  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깨어지지 않는 그만의 신화였

  다.

  그러나 천음상인이라  한들 이토록 꾸불꾸불한  동굴 속이라면 오

  리는커녕 일 리도 불가능할 것이다.

  단  하나  가능한  것이   있다면  바로  전설  속의  천리회성음

  뿐......!

  그러나 이제껏 그런  경지를 이룬 인물은 무림사를  통틀어 단 한

  명도 없었다.

  '으음...... 대체 이 신비한 인물은 누구인가?'

  의혹을 품으며 혁련소천은 점점 더 동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이때였다.

  "크하하핫핫핫......!"

  돌연 벽력음이 터져 나오듯 엄청난 광소가 동굴 속을 마구 뒤흔들

  었다.

  폐부에서 쥐어짜듯 처절하게 들려오는  광소에 동굴 안은 마치 지

  진을 만난 듯 웅웅거리며 미미한 흔들림까지 일었다.

  우― 우― 웅―!

  '으음......!'

  혁련소천은 광소에 의해 고막이 찢어질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한 충격 속에서도 그는 지극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

  었다.

  '무...... 서운  내력이다! 상상조차 안 되는  내공의 힘! 천하에

  이렇듯 가공할 내공을 가진 자가 있었다니.......'

  "아......!"

  이때 혁련소천의 옆에 바싹 붙어 있던 철진진이 미약한 신음 소리

  를 흘렸다.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안색은 이미 핏기를  잃고 있었고, 가냘픈

  신형 역시 술에 취한 듯 몹시 비틀거리고 있었다.

  '결국 속썩이는군!'

  혁련소천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가

  볍게 안아 들었다.

  동시에 그는  거대한 무형의 호신강기를  방출하며 주위를 엄밀히

  에워쌌다.

  "으...... 음......!"

  곧이어 철진진은 다시 정신을  차렸는지 한숨 소리같은 신음을 입

  밖으로 흘려냈다.

  "......?"

  순간 그녀는 자신이  혁련소천의 품에 안긴 것을  알고는 두 볼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런데 그녀는 멀쩡한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혁련소천의 품을 벗어

  나기는커녕 오히려 살그머니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혁련소천은 미처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점점 더 커지는 광란의 웃음소리......

  혁련소천은 계속해서 앞으로 진입해 들어가며 자신이 펼친 호신강

  기조차 흔들리게 하는 광소성에 놀라워했다.

  '가공하다. 가히 살인적인  광소...... 누군가? 그 천하에 단우비

  조차 능가하는 내공의 소유자가 있었단 말인가?'

  짙은 의혹이 계속해서 그의 뇌리를 맴돌았다.

  "대체 이 사람이 누굴까요? 저의 아버지보다 내공이 강한 것 같아요."

  "......!"

  철진진의 말을  못들은 척 혁련소천은  아무런 대꾸없이 계속해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흥! 무뚝뚝하긴......!'

  철진진은 내심 토라진 코웃음을 날렸다.

  얼마나 지나 왔을까?

  문득 동굴은 더 이상의 통로 없이 뚝 끊어져 있었다.

  '음......?'

  동굴의 끝이 끊어진 그곳은 실로 천야만야한 낭떠러지가 전개되어

  있었다.

  혁련소천은 우뚝 선 채 예리한 시선으로 맞은편 절벽을 주시했다.

  '절벽의 간격은 약 백여 장,  그 건너편으로 또 하나의 동굴이 보

  인다!'

  혁련소천은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어떡하나...  이곳에서   돌아갈까?  아니면   계속  나갈  것인

  가......?'

  침중한 기색이 그의 얼굴에 짙게 깔렸다.

  '모험을 할 필요가 있는가?  만약...... 이 웃음의 소유자와 부딪

  치게 된다면...... 나로서도 승부를 장담할 수는 없다!'

  혁련소천의 내심에 파문과 같은 갈등이 잠시 머물렀다.

  허나, 그가 누구인가?

  '돌아가기에는...... 여기까지 온 나 자신이 너무 아깝다!'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이어 그는 철진진을 돌아보며 담담히 말했다.

  "너는 여기서 돌아가라!"

  "네?"

  철진진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막 입을 열어 항변을 하려고 했

  다.

  허나 그 순간, 혁련소천은  이미 하나의 빛줄기가 되어 절벽을 날

  아가고 있었다.

  휘― 익!

  순간 철진진의 얼굴에 매끄러운 미소 한 줄기가 떠올랐다.

  "흥! 내가 당신을 놓칠 줄 알고......?"

  그녀는 돌연 양 팔을 쫙 펼쳤다.

  사라락......!

  극히 경미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겨드랑이에서 한 쌍의 금빛 날개

  가 화려하게 쏟아져 나왔다.

  "흥! 이 정도쯤이야 문제없지!"

  휘익―!

  철진진은 그 날씬한 교구를 뽑아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파라락!

  금빛 날개가 허공에서 마구 펄럭였다.

  그리고 철진진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절벽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처럼 혁련소천은 가볍게 건너편 절벽의 동굴

  입구에 떨어져 내렸다.

  이때 예의 미친 듯한 광소가 돌연 뚝 멎었다.

  그러자 죽음보다 더 깊은 정적이 동굴 안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혁련소천은 서슴없이 동굴 속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 동굴 역시 통로가 어지럽게 구부러져 있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혁련소천은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동시에 그의 눈썹이 슬쩍 찌푸러졌다.

  날카롭게 전방을 주시하는 그의  시선 앞에 급격히 좌측으로 꼬부

  라진 통로가 자리잡고 있었다.

  '으음...... 이 동굴을 돌면...... 사람이 있다!'

  혁련소천은 전신을 팽팽히 긴장시켰다.

  '느껴진다. 그는...... 내공을 모두 끌어올린 채...... 내가 나타

  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 느낌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확실한 것이었다.

  인간이 익힐 수  있는 내공의 최고 극한에  도달한 자들끼리만 알

  수 있는 그 느낌!

  혁련소천은 우뚝 선 채 잠시 머리 속을 정리했다.

  '알면서도...... 가야 하는가?'

  '어쩌면...... 그는  이제껏 상대한  그 누구보다  강할지도 모른

  다......!'

  허나 가장 강하다고 느낀 순간, 혁련소천의 입가에 미미한 경련이

  일었다.

  "결코...... 지상에서 가장 강한 고수가 둘 있을 수는 없지!"

  혁련소천은 서슴없이  좌측의 구부러진 통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

  다.

  "크핫핫핫핫―!"

  그 순간 예의 그 엄청난  광소가 다시 폭풍처럼 동굴 속에 휘몰아

  쳤다.

  "우... 우...... 웅!"

  동시에 공기의 진동조차 없는  무서운 무형의 경력이 가공할 위세

  로 쏟아져 나왔다.

  '상대는 동굴의  붕괴를 우려......  장력을 극유(極柔)의 상태로

  전환시키고 있다!'

  혁련소천은 생각이 끝나는 순간 이미 강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역시 극유한 성질의 잠력이었다.

  쿠...... 쿠...... 쿠......

  찰나 동굴 속의 공기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진저리쳤

  다.

  극유한 힘과 극유한 힘의 대결!

  '으음......'

  혁련소천은 내심 가벼운 신음을 흘리며 주춤 뒤로 두 걸음 물러섰

  다.

  다음 순간  혁련소천은 이어지는 상대의  공세에 대비하며 예리한

  시선으로 전면을 주시했다.

  "......!"

  어둠 속으로 그는 분명 하나의 물체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놀란 신음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수세미처럼 뒤엉킨  부스스한 흑발을 치렁하게 땅에  끌린 채, 석

  자도 넘는 손톱을 가슴 앞에  날카롭게 세운 한 명의 괴노인이 어

  둠 속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조차 구별할  수 없는 덥수룩한  수염과 시퍼런 귀광(鬼光)을

  뿜어내는 두 눈, 무엇보다 잔뜩 웅크린 괴인의 등 뒤가 불쑥 솟아

  있는 모습은 혁련소천에게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동안 괴노인과  혁련소천의 시선이 허공에서  서로 뒤엉켜 있었

  다.

  "크핫핫핫...... 천양(天陽)!  이 어린 놈! 드디어  내 옆에 다시

  나타났구나! 크핫핫핫핫―!"

  괴노인은 가공할 살기를 내포한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천양......? 저 괴인은 나를  천양이라는 인물로 알고 있단 말인

  가?'

  순간적인 의혹이 혁련소천의 뇌리를 스쳤다.

  그 순간 혁련소천의 두 눈에 문득 한 줄기 기광이 스쳤다.

  뜻밖에도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광소를 터뜨리는 괴노인의 사지

  가 눈부신 금광을  뿜어내는 황금족쇄로 꽉 조여  있는 것이 아닌

  가.

  뒤쪽의 동굴 벽에  깊숙이 박혀 있는 황금족쇄는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노인의 전신을 압박하고 있었다.

  천형(天刑)의 죄인이 이보다 더 할까.

  이때 괴노인은 무서운 분노와 원한이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혁련소

  천을 쏘아보았다.

  "크핫핫......! 천양, 잘왔다.  이 잔인한 놈! 크흐흐...... 네몸

  을 갈가리 찢어 그 피로 목을 적시리라."

  저주로 가득 찬 그 괴성은  그의 처절한 통한이 그대로 피부로 느

  껴지는 음산한 음성이었다.

  이 신비한 절지 속에  감금되어 있는 수인(囚人)...... 대체 그는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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