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권 제87장 (87/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4권 제87장 산천쌍노(山天雙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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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괴영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계피학발(鷄皮鶴髮)의 노인이

  었다.

  그 중 한 노인은 남의를 걸친 전체적으로 인자한 분위기를 풍겨내

  고 있었다. 수중에 들려  있는 불진으로 보아 그가 도인임을 짐작

  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도인의 옆에  서 있는 노인은 산뜻한  백의(白衣) 차림에 옥검

  (玉劍) 한 자루를 등에 메고 있었다.

  일견하기엔 무척 평범한 얼굴이었으나  유난히 맑고 깨끗한 두 눈

  은 깊이를 측정키 어려운 신비를 가득 담고 있었다.

  그들은 결코  범상치 않은 기우(氣宇)와  풍도를 지닌 노인들이었

  다.

  '대단한 고수들이다!'

  대뜸 그렇게 직감하면서 혁련소천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느 방면의 고인들이시오?"

  "무량수불......."

  한 소리 노호와 더불어 남의도인이 입을 열었다.

  "시주, 우리가  누구라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네. 단지 중요한

  사실은...... 지금 시주가 제압하고  있는 그 소녀가 우리에게 필

  요하다는 것뿐이네."

  부드러운 어조이기는 하나 기실 그 뜻은 이러했다.

  ― 여러 군소리 늘어놓지 말고 그 소녀나 넘겨라.

  혁련소천은 은근히 배알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후후...... 듣자하니  이 소녀를  건네주지 않으면 무력행사라도

  불사하겠다는 말 같구료."

  백의도인이 껄껄 웃으며 나섰다.

  "허허허...... 그런 사태까지는 가지 않으리라고 보네."

  "매우 자신만만한 모양이구료."

  "지난 백육십 년간을 결코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

  혁련소천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백육십...... 그럼 이들의 나이는 그 이상이란 말이 아닌가?'

  그때 남의도인의 음성이 귓전을 울렸다.

  "빈도의 이름은 성곡(星谷), 흔히 비성자(飛星子)라고 부른다네."

  "......!"

  혁련소천의 눈에 희미한 경악이 솟아났다.

  "당신이 바로...... 천산쌍로(天山雙老) 중의 비성자란 말이오?"

  남의도인은 껄껄 웃었다.

  "허허...... 빈도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

  랐군."

  혁련소천은 백의도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렇다면...... 당신은 옥검현로(玉劍玄老)!"

  "맞네."

  "......!"

  혁련소천은 적이 놀랐다.

  정도(正道)의 살아 있는 전설!

  그들은 나이 백칠십여  세의 고령으로 백여 년  전부터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덧붙여 언급할 것은 옥산랑의  오빠인 옥승비의 사부가 바로 이들

  천산쌍로라는 점이었다.

  "시주, 그 소녀를 우리에게 넘겨줄 수 없겠나?"

  정중한 요구이긴 했으나 듣기에 따라서는 약간의 오만함이 내재되

  어 있는 듯한 음성이었다.

  허나 상대가 누구인가? 천하의 그 누구 앞에서도 기죽거나 겁먹을

  이유가 없는 혁련소천이었다.

  "이유는?"

  비성자는 습관처럼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새북사사천의 대장문인  철극륭이 저 소녀를 지극히 아낀다고 들었네."

  "그러니까...... 이 소녀를 인질로 새북사사천의 중원침공을 저지

  해 보겠다는 뜻이오?"

  비성자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시주께서 그것까지  간파하고 있으니 대화가 무척 순

  조롭게 진행되겠구먼......."

  혁련소천은 흐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착상은 좋았으나 아마 부질없는 일이 될 것이오."

  "음?"

  "생각해 보시오. 철극륭의 야망이  누이동생 하나 때문에 꺾일 것 같소?"

  순간 비성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듣고 보니 혁련소천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없잖아 들긴

  했지만, 그의 어투가 어쩐지 자신들을 비웃고 있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성자는 안색을 굳히고 침중하게 말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할 것인즉 시주는 그 소녀만 넘겨주면 되는 것이네."

  비성자의 사뭇 협박조의 말에 혁련소천은 고소를 지었다.

  "싫다면?"

  "음?"

  비성자의 눈이 커졌다.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 당금 무림에 자신들 천산쌍로의 요청을 일

  언지하에 거절할 수 있는  인물이 있으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

  던 것이다.

  옥검현로의 얼굴에 은은한 노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분명히 싫다고 했느냐?"

  "그렇게 말했소."

  옥검현로는 어이가 없었다.

  "허허...... 이런 일이......  설마하니 너는 우리가 누군지 모르

  고 있는지 않을 테지?"

  "어찌 모를 리가 있겠소. 천하의 천산쌍로를......."

  "그러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혁련소천은 피식 웃었다.

  "그럼 당신들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으시오?"

  옥검현로는 버럭 분성을 토해냈다.

  "네가 누군지 노부는 알 바 아니다!"

  "마찬가지외다. 당신들이 천산쌍로이건  만산쌍로이건 나 또한 알

  바 아니외다."

  옥검현로의 허연 눈썹이 크게 꿈틀했다.

  "말을 함부로 하는 애송이로군."

  "원래 좀 그렇소."

  "감히...... 우리를 마불 용해후 정도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혁련소천은 냉소했다.

  "나는 원래부터 정도의 무리들을 경시해 왔소. 스스로 정통이라고

  자부하면서 쓸데없는 아집만 있어  모든 것을 퇴로시키는 그런 무

  리를 말이오."

  "......!"

  "당신들도 마찬가지요. 스스로 강하다고 자부심만 가득할 뿐 실상

  천하를 위해 해 놓은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소?"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렇게 신랄하고

  예리할 수가 없었다.

  급기야 옥검현로는 참고 참았던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건방진 놈!"

  슈우욱!

  그는 혁련소천의 면상을 향해 냅다 일장을 후려쳤다.

  "후후...... 화가 나셨나 보군."

  혁련소천은 여유있게 웃으며 일 장을 마주 내뻗었다.

  팡―!

  흡사 가죽공이 터지는 듯한 음향이 일며 두 손바닥이 찰싹 달라붙

  었다.

  순간 옥검현로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리석은 놈! 감히 노부와 내공을 겨루려.......'

  허나 그의 웃음은 떠오른 때보다 훨씬 빠르게 사라졌고 돌연 안색

  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욱!'

  한 소리 묵직한 신음성이 옥검현로의 가슴 속에서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신형은 휘청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이럴  리가...... 나의 내공은 최소한  삼 갑자가 넘는 것이거늘.......'

  태산처럼 믿고 있었던 자신의 내공, 허나 그토록 자신했던 내공의

  벽을 허물어뜨리고 노도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이 힘은 대체 무엇

  이란 말인가?

  온통 경악과 불신의 빛이  일렁이는 옥검현로의 시선 속으로 너무

  도 태연하게 우뚝 서 있는  혁련소천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로 쏘

  아져 들어왔다.

  '도...... 도대체 저 놈은 누구란 말인가?'

  내심 부르짖는 그 순간에 옥검현로는 연거푸 두 걸음을 더 밀려나고 있었다.

  비성자는 그런 광경에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다.

  '세...... 세상에 옥검현로가 밀리다니.......'

  그때 한 소리 담담한 웃음이 혁련소천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후후후...... 아직도 자부심이 남아 있소?"

  "......!"

  옥검현로의 안색은 그 순간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려 버렸다.

  '내공을 끌어올린 상태에서 말을 하다니.......'

  자신이라면 수십 번 죽었다 깨어나도 펼칠 수 없는 경지의 것이기에 그만큼 충격은 컸다.

  혁련소천은 연신 밀려나기에 바쁜 옥검현로를 응시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혈왕문을 나온 이후 나의 내공이 엄청난 증진을 보았구나......!'

  만약 혈왕문 이전의  혁련소천이었다면, 내공만으로 볼 때 이렇듯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상대는 살아 있는  전설로까지 불리우는 천산쌍로 중의 한

  명이 아닌가?

  한편, 비성자는 그 순간 나름대로의 심한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어떡할 것이냐?'

  점점 밀려나고 있는 옥검현로를  바라보자니 애가 타서 미칠 지경

  이었고, 이름 석 자도  알지 못하는 무명지배를 상대로 합공을 한

  다는 것은 체면이 왕창 구겨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옥검현로의 얼굴을 보는 순간

  비성자는 결국 후자를 택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다!'

  순간 그는 쌍장을 번쩍 쳐들었다.

  "위험해요!"

  그때 비성자의 동태를 주의깊게 주시하던 철진진의 입에서 다급한

  부르짖음이 터져 나왔다.

  "정도의 자부심을 무너뜨리는군!"

  순간 혁련소천은 차갑게 냉소하며 내공을 불끈 끌어올렸다.

  "욱!"

  그러자 옥검현로는 한 모금  선혈을 울컥 토하며 용수철처럼 퉁겨

  나갔다.

  찰나간 혁련소천은 비성자를 향해 그대로 쌍장을 내뻗었다.

  꽈꽝!

  경력과 경력이 정통으로  맞닥뜨리는 순간, 비성자는 손바닥과 가

  슴이 찢어지는 듯한 극통을 느끼며 세 걸음이나 밀려 나갔다.

  "으... 으윽!"

  "이럴 수가......."

  천산쌍로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허나 다음 순간 그들은 놀람이  아닌 또 다른 생각을 떠올리며 똑

  같이 몸을 떨었다.

  '만약...... 이 소문이 강호에 알려진다면.......'

  비성자와 옥검현로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짧은 순간, 그들의 눈에 야릇한 광채가 섬광처럼 스쳐갔다.

  ― 살인멸구!

  교환되는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천산쌍로의 귓전에 혁련소천의 웃음소리가 칼끝처럼 파고

  들었다.

  "후후후...... 정도의 명숙치고는  얼굴이 두꺼운 편이군. 명예를

  위해 살심을 품다니......."

  비성자와 옥검현로의 눈이 아연 휘둥그래졌다.

  '귀신같은 놈이다!'

  '저 놈...... 무공뿐만 아니라 심계조차 추측할 수 없으니.......'

  비성자는 질린 듯한 눈으로 혁련소천의 전신을 새슴스레 훑어보았다.

  "너...... 도대체 어떤 인물이냐?"

  "후후후...... 그저 이렇게 생긴 인물일 뿐이오."

  혁련소천은 미소를 흘리며 천천히 죽립을 들어올렸다.

  천상쌍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씩 물러났다.

  죽립 아래로 드러난 혁련소천의  얼굴이 그야말로 꿈에서 볼까 두

  려울 정도로 추악했기 때문이다.

  혁련소천은 문득 차갑게 냉소했다.

  "천하는 아직까지 나를 모른다.  허나...... 천하는 곧 나의 존재

  를 공포라는 이름으로 듣게 될 것이다."

  공포! 그 단 한 마디가 담고 있는 엄청난 의미를 깨닫기엔 천산쌍

  로가 너무도 아는 게 없었다.

  옥검현로는 입가에 흐르는 선혈을  닦으며 천천히 등 뒤의 검자루를 잡아갔다.

  "아마 그대에게는 그 이름을  떨칠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스르릉......!

  눈부시도록 새하얀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량수불......."

  비성자가 한 소리  도호와 더불어 불진을 꺼낸  것도 바로 그때였다.

  이로써 천산쌍로의 뜻이 확고하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혁련소천은 외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느긋이 조소를 흘렸다.

  "후후...... 합공이라...... 괜찮은 생각들을 하셨군."

  천산쌍로는 아무런 대꾸없이 각자의 병기를 굳게 거머쥐었다.

  이미 얼굴에 철판은 깔려진 것이고, 상대의 실력이 자신들보다 위

  라고 느낀 바에야 최고의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었다.

  순식간에 핏물같은 살기가 터질 듯 크게 부풀어올랐다.

  그때였다.

  삘릴리...... 삘리......!

  돌연 넋을 뽑아갈 듯한  지독하게 음사(陰邪)한 피리 소리가 허공

  중에서 느닷없이 울려 퍼지는 게 아닌가?

  순간 천산쌍로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이...... 이 소리는......."

  "초혼마령곡(招魂魔靈曲)! 죽음의 피리 소리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로의 시선을 찾았다.

  "서...... 설마......."

  "그...... 그럴 리가...... 그는 이미......."

  '음?'

  혁련소천은 미간을 좁혔다.

  천산쌍로의 다리가 마치 사시나무처럼 후들후들 떨리는 것을 보았

  기 때문이다.

  그것은 극도의 공포를 가눌 수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

  그때 옥검현로의 다급한 부르짖음이 터져 나왔다.

  "성곡! 가자!"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그의  신형은 이미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

  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비성자 역시 뒤도 안 돌아보고 신형을 뽑아 올렸다.

  마치 상갓집 개처럼 정도(正道)의  살아 있는 전설이 허겁지겁 사

  라진 것이다.

  혁련소천은 크게 의혹을 느꼈다.

  '천산쌍로가  한낱  피리  소리  하나  때문에  저렇듯  도망치다니.......'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혼마령곡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천하에 모르는 것이 없다는 혁련소천에게도 그 말만큼은 생소했던

  것이다.

  '뭔가 심상치 않구나......!'

  혁련소천의 뇌리에 기이한 예감이 스쳐갔다.

  문득 생각난 듯 그는 철진진을 향해 힐끗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혁련소천은 물끄러미 그녀를 응시하더니 이어 천천히 손을 밖으로

  내저었다.

  철진진은 순간 어리둥절한 빛을 보였다.

  "그게 무슨 뜻이죠?"

  혁련소천은 무뚝뚝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가라는 뜻이다."

  "가라구요? 나를...... 인질로 잡지 않을 건가요?"

  "그런 건 필요없다."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혁련소천은 성큼성큼 걸음을 떼놓기 시작했다.

  순간 철진진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봐요. 어디로 가는 거죠?"

  "피리의 주인을 찾으러 간다."

  "위...... 위험해요!"

  혁련소천은 걸음을 멈추었다.

  "피리 소리의 주인을 아는가?"

  "몰...... 몰라요."

  "그럼 어떻게 위험한 줄 아나?"

  "피...... 천산쌍로도 도망간 걸 보면 모르나요?"

  그녀는 다 안다는 듯 가슴을 쑥 내밀었다.

  혁련소천은 피식 고소하며 말했다.

  "나는 천산쌍로가 아니다!"

  이어 그는 다시 걸음을 떼놓았다.

  철진진은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갈등  어린 눈빛은 어느새 하나로 응결되고 있었다.

  뜻밖에도 그녀는 돌연 혁련소천의 뒤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혁련소천의 걸음이 우뚝 멈추어졌다.

  이어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무심히 물었다.

  "어디를 가는 것이냐?"

  "당신을 따라가려고요."

  당돌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대답이 거침없이 흘러 나왔다.

  "무슨 이유로 나를 따라오는가?"

  "그냥...... 이에요."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알아요. 하지만 그건 제 마음 아닌가요?"

  독수리 가면 속의 눈빛은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혁련소천은 무심히 한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다시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상한 여자로군......."

  그러거나 말거나 철진진은 열심히 혁련소천의 뒤를 따라붙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는 어느새 음울하고 애조 띤 선율로 바

  뀌어 있었다.

  '으음...... 한(恨)이 너무도 짙게 배어 있군.......'

  피리 소리를 듣는 혁련소천의 얼굴에 옅은 흔들림이 일었다.

  문득 그는 또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따라오는 철진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계속 따라올 작정인가?"

  "그래요."

  "나는 불편하다."

  "저는 괜찮아요......!"

  순전히 억지가 아닌가?

  혁련소천은 문득 죽립 사이로 싸늘한 한광을 쏘아냈다.

  "나는 새북사사천의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가요?"

  사라락!

  돌연 철진진의 겨드랑이에서 금빛  날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

  렸다.

  "이러면 됐나요?"

  동시에 그녀는 얼굴에 쓰고 있던 독수리 가면을 주저없이 벗어 들

  었다.

  순간 드러난 그 얼굴은 실로 기이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신선

  한 미모였다.

  가을 하늘같이 서늘한 두 눈엔 기이한 광채가 서글서글 어려 있었

  고, 부끄러움 없이 빤히 응시하는 얼굴엔 중원의 여인들과는 대조

  적인 이국적인 미(美)가 듬뿍 담겨져 있었다.

  나이는 기껏해야 십오륙 세나 되었을까?

  "후후...... 어린아이였군."

  혁련소천은 가벼운 실소를 흘렸다.

  순간 철진진의 두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어린아이라구요?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아이 취급하지 말아

  요."

  혁련소천은 씁쓸한 고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그는 가볍게 몸을 날려 절벽 아래로 떨

  어져 내렸다.

  "어머? 같이 가요......!"

  철진진은 뾰족한 기성을 울리며  혁련소천의 뒤를 따라 날씬한 교

  구를 날렸다.

  방년 십오 세의 그녀!

  별로 잘생기지도(?) 못한  혁련소천을 무슨 까닭으로 끈질기게 따

  라붙으려 하는가?

  그것은 정녕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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