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권 제85장 (85/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4권 제85장 불타는 하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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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두두두......!

  한 대의 거대한 흑색마차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기마대가 산로를

  질풍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어림잡아 일백여 기(騎).

  달려가는 기마대의 기세는 가히 산악이라도 무너뜨릴 듯 위세당당

  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 순간 자욱이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사이로 금빛 깃발 하나가 희

  끗희끗 내비쳤다.

  <군마천위(君魔天威) 만웅앙복(萬雄仰伏).>

  물어볼 것도 없이 이들은 다름 아닌 군마천의 고수들이었다.

  헌데 이 무슨 일인가?

  뜻밖에도 기마대의 선두를  질풍처럼 달리는 인물, 그는 다름아닌

  혁련소천이 아닌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것은 누가 보아도 분명히 혁련소천의 모습

  이었다.

  도대체 혈왕문  속에서 무참하게 망가진  얼굴의 혁련소천이 어찌

  이런 곳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리라.

  혁련소천의 좌우에는 백신제종  사도광과 적용사문이 어깨를 나란

  히 한 채 달리고 있었다.

  두두두둑......!

  그들이 달리고 있는 곳은 파랍산 기슭의 한 산로였다.

  어디를 무슨 일로 가고 있는가?

  기마대가 산로를 벗어나 계곡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융사...... 그  자는 이미 자소천주 빙허잠과  관계를 맺고 있었

  다. 그럼에도 나를 초청했던 이유는 혈해와 하토궁의 고수들을 이

  용해서 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입을 열어 중얼거린 사람은 다름 아닌 혁련소천이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온 음성에는 짙은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다! 하토궁의 씨를  말리고 융사의 목을 벤 뒤 빙허

  잠에게 다음 책임을 물으리라......!"

  그의 말 속에서 암울한 피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혁련소천은 문득 좌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문,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적용사문은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더니 이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

  었다.

  "속하의 생각으로는...... 이번  일이 타초경사(打草驚蛇)인 듯합

  니다.

  "음?"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이지요."

  혁련소천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서?"

  "하토궁은 세외의 거목(巨木)...... 만약 완벽히 그들을 궤멸시키

  지 못한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커다란 해를 끼칠지도 모릅니다."

  "해를?"

  "더구나 만에 하나라도 융사를 죽이지 못할 경우...... 그의 무서

  운 보복조치가 예상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안팎으로 적을 맞

  이해야......."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혁련소천은 적용사문에게서 눈길을

  거두며 차갑게 냉소했다.

  "그런 것은 알 바 없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것은 놈이 먼저 나를

  건드렸다는 사실이고...... 그래서 그 대가로 나는 놈을 멸망시키

  려는 것이다."

  일순 적용사문의 눈빛이 짧게 흔들렸다.

  '변했다. 무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천주는 몇 달 사이에 확

  실히 변했다!'

  그는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영호풍...... 내가 아는 영호천주는 야심 많은 효웅이되 남의 말

  을 경청할 줄 아는 형자였다. 허나...... 지금의 천주는 그때와는

  달라졌다. 아니, 달라진 것이 아니라 어쩌면.......'

  문득 뇌리를 엄습해 오는  무서운 예감에 적용사문은 가볍게 몸서

  리를 쳤다.

  허나 그는 애써 그런 생각을 떨쳐 버렸다.

  '그래...... 희산......  그 아이를 위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적용희산...... 생명보다 귀중한 누이동생.

  영호풍의 사랑을 얻었노라며 좋아하던 그녀의 모습이 환상처럼 그

  의 눈 앞에 떠오르고 있었다.

  계곡을 벗어나자 기마대의 앞으로 광할한 분지가 드러났다.

  거대한 흑색마차는 바로 그 분지의 입구에서 행진을 멈추었다.

  사도광은 혁련소천의 얼굴로 눈길을 던졌다.

  "하토궁입니다, 천주!"

  "음!"

  혁련소천은 전방에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

  다.

  순간 광활한 분지의 저쪽에  신기루처럼 솟아 있는 하나의 거대한

  궁(宮)이 그의 동공을 가득 메워 왔다.

  하토궁!

  문제의 바로 그곳이었다.

  혁련소천은 야릇한 눈빛을 쏟아내며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준비하라."

  사도광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존명!"

  다음 순간 그는 허리를 펴며 양 손을 번쩍 쳐들었다.

  순간 마상의 수하들은 일제히 말 등을 떠나 마차를 중심으로 기러

  기 형태로 늘어섰다.

  스스스슷!

  스스스......!

  "......."

  혁련소천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바로 했다.

  순간 그의 두 눈에 야릇한 광채가 솟구쳤다.

  저 멀리 하토궁으로부터 수십 줄기 인영이 쏘아 나오는 것을 보았

  기 때문이다.

  쏘아 오는 신법들은 놀랍도록 빨랐고 혁련소천이 두어 번 눈을 깜

  박이는 동안 그들은  이미 전면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 내려서고

  있었다.

  이어 그들 중 시뻘건 적발(赤髮)에 포악한 인상의 노인 하나가 성

  큼 앞으로 나섰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외까?"

  내가진력이 실린 웅혼한 음성이었다.

  헉련소천은 빙그레 웃었다.

  "하토궁의 서열 사 위(四位) 적발천마(赤髮天魔) 극소질이군."

  순간 노인. 적발천마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당신은......?"

  "후후후...... 보고도  모르다니...... 그  정도의 눈이라면 이미

  달고다닐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뭣이......?"

  적발천마의 얼굴에 살기가 솟아났다.

  허나 다음 순간 그의 안색이  돌연 흙빛으로 바뀌면서 두 눈이 있

  는 대로 휩떠졌다.

  혁련소천의 등 뒤쪽으로 보이는  하나의 깃발이 그의 시선 속으로

  급격히 쏘아져 들어왔던 것이다.

  "군마천!"

  "후후후...... 이제야 알아보는군."

  "당신이...... 군마천주 영호풍이오?"

  혁련소천은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

  올렸다.

  "나를 알아봤으면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도 알고 있겠지?"

  적발천마는 당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 겠소."

  "알고 싶은가?"

  "그렇소."

  "후후...... 별거 아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저

  하토궁을 하늘 아래서 없애 버리기 위함이다."

  "뭣이?"

  적발천마의 안색이 홱 급변했다.

  허나 그는 곧 안색을 가다듬고 음침한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감히  군마천 정도의  힘으로 새외무림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하토궁을 무너뜨리겠다고......?"

  혁련소천은 히죽 웃였다.

  "장담하마. 하토궁은 절대 군마천을 막지 못한다."

  "미친 소리!"

  "확인이 필요한 모양이군."

  혁련소천은 마차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의 옆문이 덜컹 열렸다.

  순간 마차 밖으로 처참하게  짓뭉개진 얼굴 하나가 덜렁 내밀어지

  는 것이 아닌가.

  "하명을 기다립니다, 천주!"

  그는 다름 아닌 장손중박이었다.

  마차 속이었으나 여전히  사륜거에 앉은 모습이었고, 사륜거 뒤에

  는 언제나 그랬듯이 온유상이 조용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혁련소천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모연환구중포의 위력을 보고자 하오."

  "알겠습니다."

  장손중박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마차의 안쪽을 향해 짤

  막하게 외쳤다.

  "흑풍거(黑風車)를 열어라!"

  스르르릉......!

  순간 마차의 뚜껑이 미끄러지듯 뒤로 밀려나더니 곧이어 괴물처럼

  서서히 솟아오르는 시꺼멓고 거대한 쇳덩이 하나가 보였다.

  자모연환구중포!

  드디어 그것이 가공할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저...... 저게 뭐냐?"

  하토궁 무사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두 눈을 찢어지게 부릅떴

  다.

  끼끼끼......!

  그 순간  쇳소리와 함께 자모연환구중포의  포신이 적발천마 등을

  향해 옮겨졌다.

  "......!"

  "......!"

  하토궁 무사들은 순간 전신에 소름이 쫘악 끼침을 느꼈다.

  그들은 자모연환구중포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거대한  포신의 구멍이 자신들에게로  향해지는 순간 까닭

  모를 공포가 엄습해 왔던 것이다.

  한 소리 짤막한 외침이 장손중박의  입 밖으로 터진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자포(子砲) 발사!"

  쿠쿠쿠쿠쿠......!

  순간 포신 옆  아홉 개의 구멍― 자포가  일제히 불기둥을 쏘아냈

  다.

  "헉!"

  "아니......."

  하토궁 무사들은 심장이 구멍 밖으로 솟구쳐 나올 듯 크게 경악했

  다.

  그러나 그 놀람은 그들이 이승에서 나타낼 수 있는 감정의 마지막

  표현이었다.

  쿠콰콰쾅!

  꽈꽈― 꽝!

  그것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엄청난 모습이었다.

  수십 명의 육신이 걸레처럼 갈기갈기 찢겨 나가니 한 소리 비명이

  라도 들릴 법하건만...... 아무도 듣지 못한 것은 고막을 찢을 듯

  한 폭음이 비명 소리를 모조리 삼켜 버린 때문이리라.

  눈 앞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자욱이 피워올랐던 흙먼지가 가라

  앉으면서 서서히 충격적인 광경이 드러났다.

  "아!"

  "오오......."

  돌연 놀람에 찬 경악성이 군마천 고수들의 입에서 절로 터져 나왔

  다.

  지옥(地獄)의 풍경인들 어찌 이보다 참혹하랴!

  인편(人片) 전시장...... 수십 평 목숨이 몰살되면서 만들어낸 치

  떨리는 살벌한 광경이었다.

  "으하하하...... 과연 엄청난 위력이다!"

  그때 혁련소천의 입에서 득의충만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허나 광소는 이내 멎었고, 혁련소천은 식지로 전방을 가리키며 웅

  후한 외침을 토해냈다.

  "포신을 하토궁으로!"

  끼끼끼......!

  자모연환구중포의 포신이 전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포와 자포를 동시에 발사하라!"

  포신이 전방 정중앙을 향해 우뚝 정지했다.

  "하토궁을 완전히 궤멸시키도록 하라!"

  마지막 외침이 끝나는 순간,

  쿠쿵!

  드디어...... 자모연환구중포의 모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하토궁을 한 눈에 굽어보는 한  절벽 위에 돌연 한 인영이 연기처

  럼 솟구쳐 올랐다.

  피를 덮어쓴  듯 처참한 모습에 추악한  얼굴, 그는 혁련소천이었

  다.

  그는 올라서자마자 급히 하토궁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순간 그는 거대한 쇠망치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

  다.

  "오오! 저럴 수가......."

  시선이 멎는 곳에는 당연히 하토궁의 모습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하늘을 집어삼킬 듯 치솟고 있는 화광(火光) 외에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혁련소천은 급히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한 줄기 기이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와 그의  후각을 자극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 냄새...... 화약냄새가 분명하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또 하나의 영감이 그의 뇌리를 때렸다.

  '자모연환구중포! 그렇다면...... 군마천이 하토궁을......!'

  문득 그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장손중박은 절대 내  명령 없이 자모연환구중포를 사용할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때 제갈천뇌의 말이 혁련소천의 뇌리에 떠올랐다.

  ― 후후후......  백변귀천은 당신의 역할을  매우 훌륭히 해내고 있소.

  "제갈천뇌......!"

  혁련소천은 어금니를 짓깨물며 신음처럼 뇌까렸다.

  "꼭......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가......."

  또 하나의 불길이 혁련소천의 두 눈 깊숙한 곳에서 무섭게 타오르

  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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