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권 제84장 (84/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4권 제84장 천마묵장 피의 폭풍은 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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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사...... 끝도 없는 죽음의 모래펄.......

  그곳은 지금 깊은 강물같은 침묵 속에 잠자고 있었다.

  파...... 앗......!

  우우우...... 우...... 웅......!

  돌연 고요하던 침사가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번―  쩍―!

  다음 순간, 소용돌이 속에서 한 줄기 흑구름같은 묵광이 폭출되며

  아홉 마리 묵룡의 형상이 허공에 나타나지 않는가!

  동시에 그 속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한 줄기의 인영!

  그는 바로 혁련소천이었다.

  "으핫핫...... 핫핫......! 드디어 나 혁련소천이 다시 세상에 나

  왔다!"

  그는 요란한 광소를 터뜨리며 유연하게 몸을 날려 땅에 내려섰다.

  그 순간 침사의 소용돌이와 환상같던 목룡의 형상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혁련소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빛은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천뇌...... 기다려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만약 제갈천뇌가 이 자리에 있어 그 음성을 들었다면 심장이 오그

  라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 만큼 혁련소천은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느리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헌데 대여섯 걸음을 옮겼을까?

  "멈춰라!"

  돌연 어디선가 음침하기 짝이 없는 일갈이 울렸다.

  스스...... 스......!

  동시에 다섯 명의 자의인(紫衣人)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

  혁련소천은 우뚝 멈춰섰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얼굴만은 지극히 무표정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순간 사방에서 진저리쳐지는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헉......!"

  "지...... 지독히 추악한 놈이군!"

  "재수 없다!"

  그 순간 혁련소천의 얼굴에  쓴 고소가 아주 흐릿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자신의 용모가 아무리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해도 설마 이들이 학

  을 띠며 놀랄 만큼  흉측하게 변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이다.

  이때 한 명의 자의인이 사악한 기운을 풍기며 물었다.

  "네놈은 제왕성 놈이냐?"

  혁련소천은 흠칫했다.

  '제왕성......?'

  "흐흐흐...... 말을 안 하는 것을 보니 맞나 보군."

  옆의 비쩍 마른 자의인이 뾰족한 턱을 쳐들며 귀찮다는 듯이 내뱉

  았다.

  "죽여 버려!"

  만약 그들이 혁련소천의 정체를  알았다면 그와 만나게 된 자신들

  의 운명을 저주하며 스스로 자결의 길을 택했을 것이다.

  혁련소천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사...... 사삭......!

  자의인들은 그를 에워싸고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번뜩이는 짤막한 비도(飛刀)가  한 자루씩 쥐어져

  있었다.

  서서히...... 팽팽한 살기의  막이 담벼락처럼 혁련소천을 에워싸

  고 짓쳐들기 시작했다.

  보통의 고수들이 아니였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발  밑의 참사가 소용돌이치듯 뽀얀 먼지를

  일으켰다.

  번― 쩍!

  순간 자의인들의 허리어림에서  일제히 싸늘무비한 백광이 빛살처

  럼 솟구쳤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빠르고 완벽한 공세였다.

  헌데 이때, 혁련소천은 전혀  무방비 상태인 채로 그들을 향해 느

  릿느릿 물었다.

  "너희들은 자소천의 사람들이냐?"

  "엉......?"

  자의인들은 눈을 부릅떴다.

  '이거 혹시 맹탕 아냐......?'

  "괜히 힘만 낭비하나 보네......."

  하지만 그들은 최대한으로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렇다. 우라질......!"

  누군가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는 순간, 그들은 이미 주저없이 혁련

  소천을 향해 신랄한 공세를 전개시키고 있었다.

  "......!"

  그 순간 피에 엉거붙은 혁련소천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함과 동시

  에 그의 입가에 비릿한 냉소가 스쳤다.

  "빙허잠은 정말 용감한 수하를 두었군."

  그 말이 떨어지자 구레나룻의  거대한 몸집을 지닌 자의인이 우레

  같은 노갈을 터뜨리며 그에게 덮쳐 들었다.

  "감히 천주 존명을 함부로...... 으악―!"

  우레같던 음성에 비해서 그의 비명은 너무나 초라했다.

  뒤어어 네 줄기 비명이 불협화음을 이루며 계속 뒤따랐다.

  "크악―!"

  "큭―!"

  "아― 욱!"

  말이라는 건 아예 필요도 없이 비명과 시체는 너무나 사이좋게 어

  우러져 바닥에 거꾸로 처박혔다.

  그들은 상대인 혁련소천이 언제, 어떻게 손을 썼는지 보지도 못했

  다.

  그들이 본 것은 다만 그의 추악한 얼굴에 떠올랐던 비릿한 냉소뿐

  이었다.

  나무토막처럼 나동그라진  그들의 심장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슬며시 스며 나오고 있었다.

  실로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혁련소천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손엔 네 자 가량의 괴이한 냉기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몸체 전체가 검은 윤이 나며 투명한 비늘같은 것으로 덮여

  있어 섬뜩한 느낌조차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채찍이라기엔 너무 짧고, 검치고는 좀 두꺼운 이상한 무기였다.

  돌연 비쩍 마른 자의인의 꺼져가던 눈이 확 불거졌다.

  "그...... 그것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는 저승길조차 잃어버린 것 같았다.

  "저...... 전설의 고금백대병기 중...... 서열 일 위(一位)의...... 천마묵장(天魔墨杖)......!"

  그는 끝내 불신의 빛을 지우지 못한 채 고개를 꺾었다.

  파파파― 팍―!

  순간 쓰러진 시체들의 가슴이 서서히 파열되면서 핏줄기가 무섭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혁련소천은 지그시 발밑을 적셔오는 핏물을 응시했다.

  시선이 다시  자신의 손에 쥐어진 괴병기로  향해졌을 즈음, 그의

  입가엔 창백한 미소가 을씨년스럽게 번져오르고 있었다.

  "나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다. 묵룡성주...... 그것이 바로 천마

  묵장이었을 줄은......."

  나직한 웃음이 허공을 타고 흐르듯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굳은 표정에 막혀 사라져 갔다.

  "......."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바로  물이 고여 있는 하나의 조그만 웅덩

  이였다.

  그 웅덩이...... 그것은 바로 일점홍이 빠진 그곳이었다.

  허나 지금 혁련소천의  시선은 웅덩이가 아닌 바로  그 옆을 향해

  굳어져 있었다.

  "저...... 저것은......."

  혁련소천의 눈빛과 함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웅덩이 옆에 한 송이의 붉은 꽃이 피어 있지 않은가!

  일순 혁련소천의 얼굴 근육은 한꺼번에 춤을 추듯 꿈틀거렸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끔찍하고 참담해 보였다.

  그러더니 돌연 그는 몸서리쳐지게 부르짖었다.

  "단...... 장...... 화......!"

  그것은 바로 일점홍이 늘상 머리에 달고 다니던 꽃이었던 것이다.

  "일점...... 홍......."

  불끈 주먹을 쥔 그의 몸이 눈에 띄게 경련을 일으켰다.

  엄청난 분노의 격랑이 한꺼번에 그의 몸을 덮쳐 왔다.

  "우우...... 천...... 뇌―!"

  그는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무섭게 포효했다.

  그 순간 견딜 수 없는  분노가 그의 가슴을 활화산처럼 태우고 있

  었다.

  문득 장작불처럼  타오르던 그의 시선이  웅덩이 한가운데에서 딱

  멎었다.

  수면 위로 잠길 듯 위태롭게 떠올라 있는 한 얼굴을 그는 방금 본

  것이다.

  그 얼굴은 지독히도 끔찍했다.

  형체조차도 거의 알아볼 수 없는데다 무수한 상처자국이 거미줄처

  럼 얽혀 있어 그야말로 참담했던 것이다.

  "......."

  혁련소천의 눈가 근육이 부들부들 떨림을 일으켰다.

  그는 피가 흐를 정도로 세차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소천...... 살아  있다는 그 자체......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소천......!'

  자신을 향한 부르짖음은 차라리 처절하기조차 했다.

  "이들을 네가 죽였느냐?"

  삼 인(三人)은 어두컴컴한 음영을 등지고 유령처럼 혁련소천 앞에

  나타났다.

  혁련소천은 그들의 복장을 보고 내심 중얼거렸다.

  '하토궁 놈들이군!'

  그는 어둡게 일그러진 얼굴로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순간 삼 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허공에서 부딪쳤다.

  잠시 후, 가운데의 노릇한 쥐털수염의 인물이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혁련소천은 웃었다.

  "후후후......."

  몸서리쳐지도록 사나워지는 분노의 웃음이었다.

  그는 무심히 한 걸음 내딛으며 스산하게 내뱉았다.

  "천하에  감히  나를  놈이라고  호칭하는  작자가  남아  있었다니......."

  슥―!

  그의 우수가 허공을 비껴 상대의 머리 위로 작렬했다.

  퍼어― 억―!

  "크아― 악―!"

  "끄헉―!"

  둔탁한 음향이 동굴 속에 울리며 동시에 처참한 비명을 동반했다.

  금세 신렬한 핏물이 동굴 벽에 쫙 튀었다.

  쿠...... 웅! 쿵......!

  두 인물이  창졸지간에 두개골이 박살난  끔찍한 모습으로 쓰러져

  갔다.

  "허...... 헉......."

  혼자 살아남은 한 명의 인물은 눈이 귀뿌리까지 찢어졌다.

  '세......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무공을  지닌  자가  있었다니.......'

  그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청히 혁련소천을 바라보았다.

  '구...... 궁주보다...... 강하다!'

  그 순간 혁련소천이 새파란  안광을 뿜어내며 느리게 손을 휘둘렀

  다.

  "너도 가야지."

  지옥악귀의 숨결처럼 공포스러운 음성!

  그때야 비로소 혼자 남은  하토궁 인물은 머리가 터지도록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공포를 느낄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신형을 틀며 수증의 것

  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허나 그것은 너무도 불필요한 동작에 불과했다.

  천마묵장, 그것은 번뜩이는가 싶은 순간 이미 상대의 것을 수수깡

  처럼 부숴 버리고 탐스런 머리통을 격타하고 있었던 것이다.

  퍼어...... 억!

  비명조차도 없었다..

  또 하나의 시체가 핏물에 뒤엉켜 동굴을 더럽히며 쓰러졌다.

  "잔인한 놈―!"

  바로 그때, 어디선가 차가운  교성이 울림과 동시에 한 줄기 인영

  이 번개처럼 쏘아들었다.

  그것은 실로 빛살같은 빠름이었다.

  써늘한 한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어 혁련소천의 사혈로 집중되었

  다.

  순간 혁련소천의 눈이 어둡게 번뜩였다.

  '귀찮은 일이 많군!'

  휘― 잉!

  천마묵장이 허공에 호선을 그리며 빠르게 회오리쳐 나갔다.

  실로 눈 깜박할 순간, 급박한 상황은 일시에 정지되었다.

  혁련소천의 천마묵장은  바로 상대의 목에  겨누어져 있었던 것이

  다.

  가공할 기세로 덮쳐  들던 상대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몹시 질린

  듯 창백해져 있었다.

  "......!"

  그러나 지금 오히려 혁련소천의 깊숙한 두 눈이 미미한 파동을 일

  으키고 있지 않은가!

  그의 눈 앞에 있는 상대는 바로 행방불명된 미사였던 것이다.

  하토살군 융사의 손녀인 바로 그녀, 여전히 얼굴을 면사로 가렸으

  나 옷은 여기저기 떨어져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경악감에서 깨어난 미사는 조금씩 몸을 떨기 시작했다.

  혁련소천의 흉악한 얼굴이 다시 그녀를 공포감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혁련소천은 고소를 지으며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융사의 손녀...... 네 이름은 미사였지."

  그러나 공포에 온몸이 빳빳이 굳어  있는 미사는 미처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문득 혁련소천은 그녀의 목에서 천마묵장을 떼어내며 억양없는 음성으로 내뱉았다.

  "가거라."

  그러자 미사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나를......."

  "살려주냐는 말이냐......?"

  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요."

  혁련소천은 무뚝뚝하게 내뱉았다.

  "그것은 내 마음이다."

  "당신...... 의 마음......?"

  그녀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헌데 이때였다.

  "흐흐...... 계집년! 당돌하게 도망치더니 겨우 여기냐?"

  음침하기 짝이 없는 노갈이 동굴 저쪽에서 울렸다.

  스슥―!

  곧이어 두 개의 인영이 길게  그림자를 끌 듯 땅 밑에서 연기처럼 솟아올랐다.

  그 중 한  명은 등에 거대한 팔형도(八形刀)를  메고 있었고 살찐

  자줏빛 얼굴에 시커먼  눈썹, 데굴데굴 구르는 눈알을 포악스럽게

  빛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두툼한 입술에는  기름기가 번들거려 보는 이로 하

  여금 역겨움조차 불러일으켰다.

  다른 한 명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비쩍 마른 중년인이었다.

  파르스름한 낯빛에 독사처럼 번뜩이는  가늘게 찢어진 두 눈은 한

  번 마주 대하면 누구라도 열흘은 공포에 떨어야할 정도였다.

  그들을 발견한 미사는 흠칫 떨며 두려운 신음을 내뱉았다.

  "천자흠...... 번쾌......!"

  "......!"

  혁련소천의 눈이 일순 번뜩였다.

  '저들이 바로 새북사사천의 사십사 인 중 무형잠비 천자흠과 팔황

  개세력(八荒蓋勢力) 번쾌인가?'

  천생의 어마어마한 괴력(怪力)을  타고났다는 천형마도의 달인 번

  쾌!

  그리고 경공과 은둔술이 환사 유풍과 맞먹는다는 천자흠!

  누가 이 지옥마왕과도 같은 이름을 모르겠는가?

  이때 번쾌는  번들거리는 입술을 꿈틀거리며  냉막한 괴소를 흘렸

  다.

  "크크...... 계집이라고  곱게 대해  줬더니 살인을  하고 도주를 해......?"

  "......."

  "네년을 발가벗겨 잘근잘근 살을 도려내야겠다."

  서서히 다가드는 번쾌의 기세는 실로 험악했다.

  그때 천자흠이 음산한 어조로 번쾌의 말을 거들었다.

  "살만 추린 뒤에 뼈다귀는 융사에게 보내도록 하지."

  "흐흐...... 물론!"

  스― 릉―!

  번쾌는 곧 팔영마도를 뽑으며 괴기로운 웃음을 지었다.

  투박한 그의 손에 의해 느리게 뽑혀져 나오는 도!

  그것은 예리하게  번뜩이는 칼날이  여덟 개로 된  무시무시한 도

  (刀)였다.

  수천 근 묵강철이라 해도 두부처럼 저며내고 말 것 같았다.

  미사의 안색은 보기 가엾을 정도로 파리하게 질려갔다.

  슥! 슥!

  번쾌는 팔형마도를 자신의 손바닥에 이리저리 갖다대며 서서히 그

  녀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칼날이 부딪쳐 일어나는 음향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

  다.

  "잠깐!"

  이때 보다 못한 혁련소천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번쾌와 천자흠이 움찔하며 혁련소천을 쳐다봤다.

  그들은 비로소 혁련소천을 발견했으나 그의 흉측한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네놈은 누구냐?"

  혁련소천은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억양 없는 음성으로 담담

  히 말했다.

  "연약한 여인에게 살수를 쓰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

  일순 번쾌와 천자흠이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흐흐...... 추악한 놈이  미녀를 보더니 정의지심이 발동한 모양

  이군."

  "허나...... 네놈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혁련소천의 뭉개진 입가에 괴이한 웃음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그는 혼잣말처럼 내뱉았다.

  "새북사사천의 무리들을 겁낼 내가 아니다."

  순간 번쾌와 천자흠은 흠칫하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응......?"

  "우리가 누군지 아는군."

  혁련소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들은 온통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동시에 물었다.

  "우리가 누군지 알면서도 참견을 하겠단 말이냐......?"

  혁련소천은 귀찮다는 듯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부리부리한 눈과  독사눈이 허공에 부딪치며  번뜩 살기를 내뿜었

  다.

  "ㅋ......!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단 말

  야......."

  찰나 두 개의 신형은 거의 동시에 혁련소천을 향해 쏘아들었다.

  기막히게 빠른 동작이었다.

  위이이이― 잉―!

  번쾌의 팔형마도는 가공할 도막을 형성하며 혁련소천의 몸을 압박

  해 갔다.

  가히 귀신도 뚫지 못할 무서운 형세였다.

  이때 천자흠의 시선은 문득 혁련소천의 오른손에 있는 천마묵장에

  닿았다.

  순간 그의 눈은 찢어지도록 부릅떠졌다.

  "저...... 저것은......."

  그는 황급히 신형을 회전시키며 번쾌를 향해 소리쳤다.

  "번쾌―! 위험하다! 상대의 무기는......."

  허나, 때는 이미 늦었다.

  "크하하― 핫핫― 핫―!"

  허공에서 혁련소천의 광소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우우우― 우― 웅― 웅―!

  천마묵장은 검은 회오리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번쾌의 몸을 휘감아

  버렸다.

  파파파― 팟―!

  이미 팔형마도는  가루가 되어 날아가고  번쾌의 오른손이 거기에

  휘말려 들었다.

  촤아― 악―!

  "끄아― 악―!"

  번쾌의 처참무비한 비명성이 동굴 속에 울렸다.

  그의 팔뚝이 천마묵장에 의해  처참하게 뜯겨져 나가고 있는 것이

  다.

  계속되는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허공 가득 번쾌의 살점과 핏덩

  이가 붉은 눈덩이처럼 뿌려졌다.

  "으윽...... 크악―!"

  천자흠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멈― 춰―!"

  그는 다급한  노갈을 내지르며 번개같이  혁련소천을 향해 신형을

  날려 공격했다.

  허나 그의  무서운 공력으로도 천마묵장의  회오리 곁으로는 감히

  접근할 수 없었다.

  혁련소천은 연신  요란한 광소를 터뜨리며  허공을 빙글빙글 돌았

  다.

  "핫핫핫― 핫―!"

  이번엔 천마묵장이 번쾌의 허리를 감아 버렸다.

  순간 소름끼치는 음향과 함께  그의 옆구리 살이 가죽처럼 찢겨져

  나갔다.

  "끄아아아― 아아― 아― 악―!"

  내장과 심지어 심장까지 토해내는  듯한 처참한 고통의 비명이 오

  랫동안 동굴 안을 메아리쳐 나갔다.

  주르륵...... 쏟아져 나와 꾸물거리는 핏빛 내장들......! 그것은

  정녕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악......!'

  미사는 그만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삼키며 눈을  질끈 감고 말았

  다.

  천자흠은 흙빛의 얼굴을 분노로 일그러뜨리며 거구를 부들부들 떨

  었다.

  "찢어 죽일...... 놈―!"

  쐐애애― 액―!

  그는 가공할 경공으로 무서운 회오리를 일으키며 혁련소천에게 쏘

  아갔다.

  빛살을 백으로 쪼갠 듯한  빠름! 그것은 그 어떤 상대라도 도저히

  대적의 자세를 갖추지 못할 정도로 빠른 신법이었다.

  찰나지간, 혁련소천은 허공 중에 신형을 한 바퀴 선회하며 섬뜩한

  냉소를 머금었다.

  "후후...... 네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이번엔  상대를 잘못 만났다!"

  다음 순간 그의 왼손이 소매  속에서 미끄러져 나오며 한 줄기 투

  명한 백광(白光)을 폭출시켰다.

  "검― 극― 성― 호―!"

  아...... 드디어 세상에 펼쳐지는가?

  번― 쩍―!

  오오...... 세상에 저토록 빠른 것이 있었든가?

  시야를 스치는 빛줄기는 허공에  한 점으로 나타나는가 싶은 순간

  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미처 그것이 무엇인지 느끼기도  전에 천자흠의 머리는 이미 허공

  을 날고 있었다.

  선렬한 피보라와 함께 허공에 흩어지는 미완성의 경악성!

  "오성마...... 검......."

  바로...... 그것이었다.

  "......."

  미사는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억하기로 천하에 이토록 무섭고  잔인한 고수가 있다는 말을 그

  녀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 인간이 아니야.......'

  그녀는 자욱한 피비린내 속에서 마냥 넋만 잃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혁련소천이 천마묵장의 피를 닦으며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퍼뜩 정신이 든 미사는 겁에 질린 채 뒷걸음질치며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무...... 무슨......."

  허나 혁련소천은 아무 말없이 그녀를 덥썩 안았다.

  미사는 화들짝 놀라며 발버둥쳤다.

  "놔...... 놔요!"

  그러나 혁련소천은 여전히 껴안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둡고, 뜨겁고...... 그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응어리

  들이 뭉쳐져 있는 듯한 그  눈빛은 어쩐지 그녀를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미사는 움찔했다.

  "버둥대지 마라. 너를 밖에까지 데려다 주려는 것뿐이니까."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한 마디! 허나 그 음성에 깃들어 있는 위엄

  은 대단한 것이었다.

  미사는 이 흉측하게 생긴  사내 앞에서 자신이 먼지처럼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혁련소천은 그녀를 안은 채 동굴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품 속에서 미사의 눈은 반짝였다.

  '이상해...... 왠지  모르게 이 사람은 그리  낯설지 않는 느낌이

  야! 음성도...... 약간 어두워진 듯한 저 눈도...... 어쩐지 낯이 익어.......'

  휘이― 잉―!

  동굴 밖에는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고 있었다.

  잿빛구름이 깔린 하늘은 어슴푸레함으로 온통 세상을 감싸고 있었

  다.

  휘리― 릭―!

  혁련소천은 미사를 안은 채로 절벽 위에 가볍게 내려섰다.

  "자, 여기서부터는 네 마음대로 가거라."

  미사를 내려놓자마자 그의 신형은 바람같이 돌려졌다.

  미사는 약간 멈칫거리며 그를 불렀다.

  "이...... 이봐요!"

  그러나 지독히도 못생긴 낯선 사내에게선 끝내 대답이 없었다.

  그의 신형은 어느새 까마득히 외로운 점(點)처럼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섬전을 방불케 할 가공할 경공술이었다.

  "인간이...... 아니야......."

  미사는 똑같은 말을 되뇌이며 멍하니 서서 멀어져 가는 사내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휘이이― 웅―!

  휘우― 웅―!

  바람은 숲을 흔들고......  옷자락을 날리고...... 그녀의 마음조차도 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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