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권 제83장 (83/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4권 제83장 일의 확률(確率) 속의 반전(反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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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혁련소천은 오성군자 옥사륵의 유채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젖어

  있었다.

  '오성군자 옥사륵...... 천축의  모든 영광을 한몸에 받고 전설처

  럼 사라졌던 이 희대의 거인.......'

  '누가 짐작이나  했었으랴...... 그가 이  어둡고 쓸쓸한 오지(奧

  地)에서 홀로 고독하게 죽어갔을 줄을.......'

  혁련소천은 좁은 동굴 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었다.

  그의 눈가에는 어느덧 엷은 그늘이 깔리고 있었다.

  '이 사람도 한때 살아서는 온갖 영광을 한몸에 누렸겠지!'

  창백한 그의 입가에 늦가을 바람같은 쓸쓸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허나...... 명예(名譽)...... 부(富)......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죽으면......!'

  문득 우수에 잠긴 듯 어두웠던 그의 눈이 번쩍 빛났다.

  동시에 그는 황망히 고개를 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소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네가 이뤄야 할 목표

  를 눈 앞에 두고 무슨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 있는 것이냐......?'

  그는 자책하며 천천히 손에 들린 비급을 넘겨 보았다.

  <검(劍).

  검의 원리는 수없이 많다.

  허나 노부는 감히 단언한다.

  진정한 검의 원리는 열두 가지를 넘지 못한다고.......

  쾌검(快劍)이든, 변검(變劍)이든 마찬가지다.

  검이 빠르다  하여 상대를 꺾는 것도  아니요, 변화무쌍하다 해서

  반드시 상대를 이기는 것도 아니다.>

  "흠......."

  혁련소천은 감탄의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의 검도지상론 역시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허나, 가장 보편성이 있다고 여기기에 한 마디 적는다.>

  그의 검론(劍論)은 계속 전개되었다.

  헌데 그 내용은 뜻밖에도 너무나 단순했다.

  보통의 무림인들이  본다면 분통을 터뜨리며  집어 던질 지경으로

  평범하고도 단순했다.

  허나 혁련소천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그 평범한 이론  속에 심오한 이치가 숨겨져 있으며, 그것이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진리와 비견될  만큼 엄청나다는 것을 발견

  해낸 것이다.

  혁련소천은 북이 울리듯 가슴이 격동됨을 느꼈다.

  '실로 대단하다! 용노야의 검도와 비견해도 한 수 위다!'

  문득 비급을 넘겨가던 그의 손이 뚝 멎었다.

  동시에 그의 눈이 크게 빛났다.

  <천위오성마검제오변식(天威五星魔劍諸五變式)!>

  제 일초(一招).

  유성백리탄(流星百里彈)!

  제 이초(二招).

  비성도은하(飛星渡銀河)!

  제 삼초(三招).

  성영제종밀(星影制宗密)!

  "......!"

  혁련소천의 깊은 두 눈이 경악과 불신의 빛으로 물들었다.

  '이...... 이것은 내가 과거에 익힌 천섬검환경보다 훨씬 지고(至

  高)한 오의(奧義)를 담고 있다.......'

  그 아래, 오성군자 옥사륵의 글이 적혀 있었다.

  <노부가 창안하여  수제자 가초에게 전해 준  오성마검은 모두 삼

  식으로 되어 있었다. 허나 혈왕 나백의 무공에 큰 충격을 받은 노

  부는 지옥같은 이 침사 밑에서 다시 연구를 계속했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거부이자,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십 년...... 마침내 노부는 검(劍)의 모든 이치를 이 초식(二招

  式)에 담는 데 성공했다.

  노부는 이것을 이렇게 명명한다.

  천위오성마검절대쌍식(天威五星魔劍絶代雙式)!

  노부는 감히 단언한다.

  천하만검(天下萬劍)의 원리가 모두 여기에 깃들었노라고......!

  이것은 어검지공의 일맥이나 그  위력은 노부조차도 감히 다 짐작

  할 수 없다. 후세의 어느 시대에도 이 초식을 받아낼 자가 있으리

  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대...... 누구인지 모르나  이것을 함부로 연성하여 주화입마를

  자초하지 말라. 또한 스스로의 능력에 일 푼이라도 부족함을 느낀

  다면 물러서라.

  노부의 이 유학이 차라리 어둠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 채 영원히

  사라질지언정, 한낱  미약한 인간 욕망의 제물이  됨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명심하라.

   옥사륵 유필(遺筆).>

  혁련소천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먹물처럼 번져갔다.

  그는 옥사륵의 유체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역시...... 당신은 과거의 명성만큼이나 광오했구료."

  그는 곧 다음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천위오성마검절대쌍식이 적혀 있었다.

  제 일식(第一式).

  검극성호(劍極成昊)!

  ― 검의 극치는 곧 하늘을 이룸이라!

  검의 섬광(閃光)이 하늘조차 벤다. 어찌 한낱 인간이 이것을 피하

  랴......!

  그 아래.

  회색도포의 한 중년인이 검을 들어 하늘을 겨누고 있는 그림이 있

  었다.

  헌데 눈의 착각이었을까?

  혁련소천은 정중(靜中)의 그 형세가 순간적으로 하늘을 찌르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

  순식간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이 그의 전신을 치달았다.

  그는 눈을 빛내며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것이야말로...... 쾌(快)의 극치다!"

  그림 아래에는 제 일식에 대한 구결이 나와 있었다.

  '이것은 전 삼식과는 비견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문득 그는 전율끝에 오는 허탈감을 느끼며 가볍게 탄식했다.

  "인간의 한계...... 과연 그 끝은 어디란 말인가?"

  그는 머리를 흔들며 경외에 찬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천하에서 이보다  더 빠른 검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초형일섬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혁련소천을 이토록 감탄케 하는 제 일식!

  그것은 과연......?

  제 이식(第二式).

  만검진천(萬劍震天)!

  ― 일검(一劍)의 변화는  만검(萬劍)으로 통하니, 이는 곧 변(變)

  의 극치다.

  만검의 움직임은 천공을 덮으니  아무리 움직여도 사방 일천 방위

  가 모조리 막히는 도다.

  혁련소천은 그 아래 적혀 있는 깨알같은 구결을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놀랍게도 그의 얼굴엔 구슬같은 식은땀이 맺히고 있었다.

  '만검진천...... 이것은 검극성호와는  전혀 다른 특색을 갖고 있

  다! 검극성호가 쾌라면 이것은...... 변(變)......!'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허나 믿을 수 없다. 아무리 다변(多變)의 검식이라 해도 어찌 단

  숨에 만검(萬劍)을 전개할 수 있단 말인가?'

  문득 그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두 눈은 온통 곤혹과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구결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천하에서 혁련소천이 이해할 수 없는 구결이 있었다니...... 그것

  은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이 논리가 실제 형상으로 나타난다면......."

  그는 식은땀에 흠뻑 젖은  얼굴을 흔들더니 천천히 침묵하는 옥사

  륵의 유체를 바라보았다.

  "옥사륵...... 고금을  통틀어 당신보다  강한 검의 달인(達人)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오."

  길게 여운 실린 중얼거림이 뒤따랐다.

  "앞으로도 영원히......."

  혁련소천은 한동안 넋잃은 듯 허공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마지막 장,  거기에는 오성군자 옥사륵의 한(恨)  서린 글이 남아

  있었다.

  <― 노부가 이곳에 들어온 지 이십 년이 지났다.

  생명의 힘이...... 점차 소멸되어 감을 느낀다.

  불노불사(不老不死)의 신체인  나 옥사륵,  허나 인간의 한계에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구나.......>

  "그렇소,  그  누가  대자연의   섭리를  거역할  수  있단  말이

  오......?"

  혁련소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이미 이곳에 들어온 그대, 출구를 바라지 마라.

  오직 그대가 떨어진 침사만이 입구요, 출구이다.

  이곳 침사의 모래는 인극신사(引極神砂)이다.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강력한 흡착력을 지닌  특이한 모래인 것이다.>

  혁련소천은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 결국 나도 여기에 뼈를 묻어야 한단 말인가?'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옥사륵의 다음 글귀에서 그의 눈은 돌연 번쩍 떠졌다.

  <― 허나 나가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묵룡성주(墨龍聖珠)!

  대천산(大天山) 천옥상인(天玉上人)의 신물인 묵룡성주가 있어 그

  것으로 아홉 마리의 묵룡을  영출시킬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벗어

  날 수 있다.

  허나 묵륭성주를 얻기란 하늘의 뜻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

  오직, 천명(天命)을 따를 수밖에 없도다.......>

  "묵룡성주......!"

  혁련소천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의 손은 어느새 품 속에서 한 개의 구슬을 꺼내고 있었다.

  그것은 아홉 마리 묵룡들이 뒤엉켜 은은한 흑광을 발하는 검은 구

  슬이었다.

  육 년  전, 그것은 바로 새북사사천에  쫓기던 건천삼존이 그에게

  준 물건이었다.

  혁련소천은 묵룡성주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설마...... 이것이......?"

  실로 묘한 기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즉시 묵룡성주에 내공을 주입했다.

  다음 순간.

  오오......! 환상인가?

  번― 쩍!

  묵룡성주에서 짙은  흑광이 폭출되며 아홉  마리 묵룡의 형상들이

  돌연 허공에 영출되지 않는가?

  꿈틀...... 꿈틀......!

  아홉 마리의 묵룡들이 흑구름 속을 힘차게 노니는 듯한 그 형상은

  혁련소천을 가슴 벅찬 감동 속으로 몰아넣었다.

  "천만분지 일의 확률......."

  혁련소천은 숨죽이며 가늘게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드디어...... 마침내 나의 승리로 끝났다!"

  다음 순간, 그는 어깨를 흔들며 동굴이 떠나가도록 앙천광소를 터

  뜨리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하핫―!"

  동굴은 우레같은 광소에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이 순간 혁련소천은 느꼈다.

  운명이 자신을 향해 갈채를 보내는 것을......!

  신(神)이여......

  참으로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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