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권 제82장 (82/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4권 제82장 재생(再生)!그리고 새로운 인연(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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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웠다.

  주위는 그저 막막한 어둠과 깊은 적막 속에 빠져 있었다.

  어둠 속에 스며 있는 기분  나쁜 눅눅한 습기 사이로 물방울 떨어

  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고 있었다.

  또르륵......! 똑! 똑!

  태고(太古)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이곳...... 대체 이곳은

  어디인가?

  어둠 속에 한 인물이 내팽개쳐진 듯 쓰러져 있었다.

  그의 일신 형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전신은 완전히 핏덩이로 뒤덮여 가히 혈인(血人)이라 부르기에 충

  분했고, 몸 전체에는 굵은 모래알이 빈틈없이 박혀 참혹한 형상을

  더해주고 있었다.

  누구인가 그는......?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주저없이 흐르고 있었다.

  꿈...... 틀......!

  돌연 혈인이 벌레처럼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또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

  이윽고 혈인은 아주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눈가에 붙었던  모래알이 부스스 떨어지며  떠지는 그의 눈동자는

  공허할 정도로 흐릿해 보였다.

  허나 자세히 보면, 그 희미한  눈 깊은 곳에 서려있는 더할 수 없

  는 득의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먹구름을 헤치고 조심스레 햇살이  투영되듯 그의 두 동공은 너무

  도 강렬한 정광을 서서히 뿜어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입가에서 한 움큼의 모래알들이 흩어져 내렸다.

  핏덩이로 엉킨 입술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천만분지 일의 확률...... 허나 나는...... 성공했다......."

  꺼질 듯 미약한 음성은 확실히 기쁨에 차 있었다.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그 속에서 나는 이렇게

  재생한 것이다. 후후...... 그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이 침사

  속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을......."

  그는 만족한 듯 희미한 미소까지 띠며 중얼거렸다.

  "나...... 혁련소천...... 드디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아아...... 이  처참한 모습의 혈인이  바로 혁련소천이었단 말인

  가?

  진정 그는 다시 기사회생한 것일까?

  그는 눈까풀이 몹시 무거운 듯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이기이체현현도...... 그 초극의  대법으로 인해 침사 속에 나뉘

  어 떨어진 또 다른 나의 육신......."

  혁련소천은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엄청난 손상은 입었으나...... 결국은 살아남았다."

  다시 그는 눈을 떴다.

  그 순간 어둠을 가르고 뻗쳐 오르는 이글거리는 두 줄기 신광!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제갈천뇌......!"

  혁련소천은 더듬거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그의 얼굴은 이미 형편없이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허나 그는 웃었다.

  짓뭉개진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피에 젖은 입술, 그 입술 꼬리에

  흐릿한 미소가 번져오르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소천."

  그는 스스로를 위로하듯 말했다.

  "하루만 푹 자자. 그러면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다."

  "......."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기이체현현도를 다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뿐......."

  그는 곧 어둠 속에서 섬뜩하도록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뇌까렸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 혁련소천은...... 살아 있으니까."

  그가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혁련소천은 만족했다.

  기억하기로 지금껏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처럼 기쁨

  과 만족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는 눅눅한 습지에 가능한 편하게 몸을 뉘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다시 하루가 지났다.

  깊은 잠에서 깬 혁련소천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무작정 어둠 속을 걷기 시작했다.

  변한 것은 단지 하루가 지났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완전한 내공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범인들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칠흑의 어둠......? 그 따윈 그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했다.

  아무리 지독한 어둠이라 할지라도  그는 대낮보다 더 환히 꿰뚫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마음은 약간 조급했다.

  '출구(出口)를 찾아야 한다!'

  죽음의 미로(迷路)를  연상케 하는 험난한  통로가 계속되고 있었

  다.

  써늘하고 눅눅한 습기는 온몸의  살갗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왔

  다.

  얼마나 갔을까.

  문득 비틀거리던 혁련소천의 걸음이 뚝 멎었다.

  다음 순간 어느 한 곳에 머문 그의 두 눈이 기이하게 번뜩이는 것

  이었다.

  오오...... 그것은 빛!

  캄캄한 어둠 속에 한 줄기 희미한 빛이 흘러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일순 그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다.

  '혹시......?'

  그는 즉시 빛을 향해 신형을 날려갔다.

  빛은 점점 밝아졌다. 하지만 통로는 더욱 좁아졌다.

  깊고 우묵한 동굴 끝에 한  명의 노인이 좌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

  었다.

  극히 청수한 용모였으나  첫눈에도 이국적(異國的)인 인상이 역력

  했다.

  구불구불하게 흘러내린 머리는 부드러운 갈색이었으며, 윤기 잃은

  피부는 석회를 발라 놓은 듯 하얗다.

  눈썹 밑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두 눈은...... 초점 잃은 벽안(碧

  眼)이었다.

  혁련소천은 한동안  기이한 눈빛으로 이  이국적인 노인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 지독한 침사 속을 뚫고 들어와 죽은 이 노인은 누구일까?"

  문득 그는 노인의  무릎 위에 놓여져 있는  물건을 발견하고 번뜩

  눈을 빛냈다.

  그것은 양가죽에 곱게 쌓여 있는  긴 물건과 한 권의 낡은 책자였

  다.

  '......?'

  혁련소천은 호기심을 느끼며 천천히 노인에게로 다가가 낡은 책자

  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책자를 펼쳐 본 순간, 그는 그만 흠칫 놀라고 말

  았다.

  "이럴 수가......?"

  책자의 첫장에 휘갈겨진 글씨는 범문(梵文)이었다.

  <노부...... 오성군자(五星君子) 옥사륵이 적는다.......>

  혁련소천은 크게 경악했다.

  "이 노인이  바로 천축 최고의 기재인  오성군자 옥사륵이란 말인

  가?"

  오성군자 옥사륵!

  천이백 년 전 천축이 탄생시킨 천축사상 최고의 기인!

  그는 오성마검(五星魔劍)이라는 불세출의  검식을 창안하여 그 이

  름을 떨쳤었다.

  혁련소천은 계속 글을 읽어갔다.

  <노부는...... 천축 합밀국(合密國)에서  왕자로 태어났으나 일찍

  이 무공에 뜻을 두었다.

  그 중 특히 검(劍)에 관심을 가졌다.>

  "......."

  <― 노부는 당시 천축제일 기인이었던 현오겁불(玄奧劫佛)을 찾아

  그 분의 무예를 전수받았다.

  사부께서 돌아가신 후, 노부는  사부의 뜻을 기려 그 분의 무공을

  여기 남기니.......

  이름하여 천겁현오밀경(天劫玄奧密經), 그것을  나의 친구 서하국

  (西霞國) 국왕 마륵에게 선물했다.>

  혁련소천의 눈이 깊숙이 번뜩였다.

  '천겁현오밀경! 그것이 옥사륵이 만든 것이란 말인가?'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닌가?

  <노부는 그 후 아사국(我斯國)에 은거하면서 검에 대한 연구를 계

  속했다.

  참으로 길고 지루한 고통의 세월이었다.

  나이 백 세에 이르러 노부는 마침내 삼 초(三招)의 검법을 창안해

  내었다.

  노부는 이를 오성삼검(五星三劍)이라 명명하였고, 나의 제자 가초

  (可草)에게 오성삼검이  적힌 비급을 주어  그 이름을 천섬검환경

  (天閃劍幻經)이라 부르게 하였다.>

  혁련소천은 내심 중얼거렸다.

  '천섬검환경...... 우문창이 지니고  있던 그 비급도 옥사륵이 만

  든 것이란 말인가?'

  진정 믿기 힘든 기우였다.

  <― 노부의 나이 이백 세 천하를 둘러봐도 적수가 없었다.

  헌데, 어느 날 노부는 한 가지 소문을 들었다.

  혈왕(血王) 나백,  백 년 전 모습을  감추었던 공포의 거두(巨頭)

  나백이 다시 중원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무공은 초극강에  이르렀으며 그 위력은 하늘과 땅을

  뒤엎을 지경이라 하였다.

  노부는 호승지심이 일어 즉시 중원으로 발을 내딛었다.

  허나 혈왕 나백은 이미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고 없었다.

  실망에 사로잡혔던 노부는 어느 날 우연히 혈왕소를 얻게 되었다.

  오오...... 혈왕소!

  그것은 놀랍게도  나백이 자신의 무공이  비장(秘藏)된 곳을 알려

  놓은 것이었다.

  노부는 고심끝에 혈왕소의 비밀을 풀었다.

  드디어 나백이 사라진  곳, 즉 혈왕(血王)의 문(門)이 신강(新疆)

  에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노부는 혈왕소를 대막에 있는 친구 대막신궁의 궁주인 철도웅에게

  맡기고 즉시 신강으로 떠났다.>

  '허......!'

  혁련소천은 어이가 없었다.

  '그랬었군. 대막신궁이라면 새북사사천의 전신...... 철도웅은 바

  로 철극륭의 선조였다.......'

  머리 속에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의문들이 비로소 하나씩 풀어지

  고 있었다.

  이것은 진정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새북사사천이 혈왕소를  갖고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옥사륵

  때문이었구나!'

  글은 계속되고 있었다.

  <― 노부는 드디어 파랍산에서 혈왕의 문을 찾아냈다.

  그리고 관문을 뚫기 시작했다.

  혈왕제일비(血王第一秘)의 마애혈불은  노부가 귀식대법으로 호흡

  을 중단하여 일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계속 통과했다.

  오천살관(五天殺關)도 뚫고...... 끝내는 혈경(血經)을 얻고야 말

  았다.

  허나...... 혈왕 나백은 이미 죽은 몸.......

  노부는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수천 리를 달려 죽음의 관무을 뚫고 들어왔건만.......

  노부는 탄식하며 그가 남긴  혈경을 무심히 읽어가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결코 노부의 아래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한 수 위였다.

  이에 노부는 큰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하늘(天) 밖에 또 하늘이 있었더라......!

  이윽고 노부는 이곳을 떠나려 했다.

  그때 돌연 자색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천려일실이라던가?

  노부는 그것이 자하천무인줄 모르고 가볍게 넘기다가 극심한 내상

  과 함께 침사 속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끝내...... 출구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아아...... 하늘이 내 뼈를 이 어둠 속에 묻어두려 하는구나!

  이십 년 쯤...... 흘렀으리라.

  나, 오성군자 옥사륵...... 이것을 천의로 알고 여기에 내 혼(魂)

  을 묻노라!>

  절정의 비감(悲感)이 배어 있는 글귀였다.

  또한 천하를 웅패하고자 했던  한 거웅(巨雄)이 하늘의 뜻에 순응

  하는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리고 책자엔 깨알같은 글귀 한 마디가 덧붙여져 있었다.

  <― 여기에 노부의 비급, 오성검경을 남긴다.

  여기에는 노부가 평생을  깨달은 검(劍)의 뜻과, 오성마검을 개조

  하여 완벽한 검법으로 완성해 놓았다.

  단언컨대, 혈왕 나백이 다시  살아난다 해도 결코 나의 이 검법을

  꺾지 못하리라.

  후인이여......

  만약 그대에게 인연이 있다면  먼 훗날이라도 여기에 적힌 검법으

  로써   나백의 무공과 비견해 주기 바란다.

  그리하여 승리한다면 노부는 더 이상 한이 없다.

  웃으며...... 하늘의 뜻에 감사하리라.

  마지막으로 노부의 오성신병(五星神兵)을  남기니 거두어 주기 바

  란다.>

  길고 긴 서찰, 천축의  일대기재 오성군자의 글은 이렇게 끝을 맺

  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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