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권 제78장 (78/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4권 제78장 그 자의 이름은 제갈천뇌(諸葛天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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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의 혼(魂)이 깃든 저주의 생명체인가?

  혈마등은 아무리 끊고 베어도 도무지 줄어들 줄을 몰랐다.

  아니,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자르기가 무섭게 다시 곱절의 길이

  로 쑥쑥 늘어나 거미줄처럼 전신을 휘감아 오니 실로 미치고 환장

  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빌어먹을......!'

  칼날처럼 세워진 혁련소천의 손은 사방에서 줄기차게 휘감아 오는

  혈마등을 썩은 새끼줄처럼 뚝뚝 베어냈다.

  그러나 베면 벨수록 혈마등은 신이  난 듯 그 길이와 숫자를 더해

  가고 있었다.

  뿐이랴?

  주위의 수많은  유황천은 언제라도 한  걸음만 헛딛으면 뼛골까지

  녹여 주겠다는 듯 부글거리고 있었으니 혁련소천은 마치 진퇴양난

  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이쯤되면 설혹 대라신선이라 할지라도 기 죽고 맥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헌데 이상하게도 혁련소천은 조금도 지칠 줄을 몰랐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단전으로부터 알 수 없는 힘이 용

  솟음쳐 오르는 것이었다.

  '대체 이 무슨 괴현상인가?'

  혁련소천도 언뜻 그런 의혹을 느꼈으나 지금은 깊게 생각해 볼 여

  유가 없었다.

  쉴새없이 자신의  몸을 휘감아 오는  혈마등을 끊어내기에도 바쁜

  판국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다간 끝이 없겠다!'

  혁련소천은 또 한 줄기를 수도로 내리치며 빠르게 염두를 굴렸다.

  '무모하게 이러느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허나 아무리 훑고 또 훑어봐도 도무지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

  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혈마등은 마치  숲처럼 마구 뒤엉켜 있어 몸 하나

  비집고 나갈 만한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황천 속으로 뛰어들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러는 도중 한 평 남짓한 넓이의 딛고 선 땅을 보는 순간 혁련소

  천의 입가에 언뜻 회심의 미소 한 줄기가 번져 나왔다.

  '그래...... 바로 그거다!'

  그는 문득 품 속에서 작은 옥병 하나를 꺼냈다.

  이것의 이름은 마화신무액(魔火神霧液)이라 지었습니다.

  이것을 한 방울만 땅에 뿌리면 아주 넓고 빠르게 지면에 확산되어

  공기중에 퍼져 오릅니다. 그 후...... 정확하게 일각 후엔 스스로

  불이 붙습니다.

  위력은 지상 십 장 이내의 물체를 모조리 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고맙소, 장손중박!'

  혁련소천은 대뜸 병 마개를 뽑았다.

  "귀신같은 놈들! 어디 혼 좀 나봐라!"

  그는 병을 사방에 휘둘렀다.

  화아아아......!

  순식간에 휘뿌연 우윳빛 액체가 공기 중에 뿌려졌다.

  "하하핫...... 일각 후라고 했겠다?"

  혁련소천은 득의의 광소를 터뜨리며 쌍수를 기쾌하게 번뜩였다.

  파파팟! 팟! 팟!

  끊어져 나간 줄기들은 유황천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그러기를 얼마간......  문득 혁련소천은 기이한  냄새 한 줄기가

  콧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일각인가?'

  그는 싱긋이 웃었다.

  '사후(邪侯) 금자생, 노야의 무공 중에는 낙성지행술(落星地行術)

  이란 것이 있었지.......'

  스― 윽!

  돌연 혁련소천의 몸이 스며들 듯 땅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와 동

  시에 마화신무액이 드디어 그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비록 땅 속이라고는 하나 주위에 수도 없이 고여 있는 유황천에서

  전해오는 열기와 머리 위 지면으로부터 내려오는 화기(火氣)에 살

  이 탈 지경이었다.

  '살인마벽의 강기( 氣)로 전신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통구

  이가 되고 말겠구나!'

  혁련소천이 그런 말을 할  정도라면 화기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림잡아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혁련소천의 몸은 다시 지

  상으로 솟구쳐 나왔다.

  "오우!"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혁련소천의 입에서 한 마디 탄성이 터져 나

  왔다.

  언제 어디에 무엇이 있었더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조리 재 뿐

  이지 않는가!

  '과연이다!'

  장손중박의 외호가 독수화응(毒手火應)이었던가?

  그 외호가 가히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혁련소천은 느긋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암굴 하나가 시야 속으로 들어왔을 때 문득 그는 날카로운

  신광을 번뜩였다.

  '오천살관...... 대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두고 보겠다!'

  순간 그의 신형은 암굴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지고 있었다.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입가에 흐르는 것은 보기에도 섬뜩한 진홍빛 핏줄기, 옷은 걸레처

  럼 갈기갈기 찢어져 나풀대는 것이 극히 낭패한 모습이었다.

  "천주...... 제발...... 제발 무사하시오......."

  비틀거리면서 불쑥 내뱉은 한  마디...... 그는 다름 아닌 일점홍

  이었다.

  "음모...... 무서운 음모...... 반드시 천주에게 알려야 한다."

  걷다 말고 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자칫하면...... 천주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헝클어진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한 줄기 새파란 안광이 뻗쳐 나왔다.

  "제갈천뇌...... 놈의 이름은 분명히 제갈천뇌라 했다!"

  그는 수중의 잔옥불마괴를 굳게 움켜쥐었다.

  "그 자...... 분명히 천주의 수하 중 한 명일진데......."

  ― 일점홍, 나의  수하 중에는 천우신기 제갈천뇌라는 현자(賢者)

  가 있다.

  ― 만약 그가 나의 적이라면...... 나는 매사를 처리함에 있어 백

  배의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천주...... 절대 죽으면 안 돼요. 나...... 일점홍이 가고 있소. 그때까지만이라도 제발......."

  일점홍은 휘청거리는 몸을 애써  가누며 끈질기게 통로 깊숙한 곳으로 진입해 갔다.

  이때 극히 미세한 음향이 돌연 일점홍의 머리 위에서 일어났다.

  스스스스―!

  그의 상처가 아무리 엄중하다고 하나 천재살수로서의 감각마저 무

  디어지지는 않았다.

  "죽일 놈들!"

  냉갈과 더불어 순식간에 단옥혈마비가 현란무쌍하게 번뜩였다.

  버― 번― 쩍!

  "으아악!"

  "컥!"

  "크악―!"

  찰나간 비명과 함께 세 인영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제(帝).>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죽어  있는 그들의 앞가슴에는 한결같이 그

  런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제왕성...... 이들은  천가주가 말한  제왕성의 수하들이 분명한

  듯한데......."

  일점홍의 얼굴이 순간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제왕성은 이미 제갈천뇌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이어 막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굉장히 빠른 쾌검이군."

  "......!"

  일점홍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등 뒤에서 불쑥  흘러 나온 음성은 빙굴에서  흘러 나오듯 차갑고

  무심한 것이었다.

  '무서운 고수다!'

  일점홍은 문득 가슴이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살수의 감각은 동물보다 날카롭고 예민한 것!

  그는 이미 음성을 통해 상대의  능력을 어느 정도 측정해 내고 있

  었던 것이다.

  "......."

  일점홍은 빠른 순간 냉정을 되찾고 이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눈 앞의 인물은 서른대여섯 정도나 되었을까?

  허름한 마의를 걸쳤는데 그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운은 전율스러울

  만큼 무정한 것이었다.

  또한 왼쪽 뺨에 난 한 줄기 검흔은 그의 인상을 더욱 냉혹한 것으

  로 특징지우고 있었다.

  '......!'

  일점홍은 그를 보는 순간 마치 예리하게 날이 선 칼 한 자루를 보

  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마의인의 입술이 떼어지고 예의  무심냉막한 음성이 새어 나온 건

  바로 그때였다.

  "그대가 일점홍인가?"

  일점홍은 괴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찾아왔다. 그대는?"

  "냉유성, 검천(劍天)에서 왔다.

  뜻밖에도 그는 바로 검천오형제 중의 첫째인 냉유성이었다.

  '들은 적이 있다! 절대쾌검(絶對快劍)을 구사한다고.......'

  놀란 것은 내심일 뿐이었고  일점홍은 아무런 표정 변화없이 질문

  을 계속했다.

  "나를 찾아온 이유는?"

  "죽이려고......."

  "이유는?"

  "모른다."

  "몰라?"

  "검주령의 주인...... 대영주께서  명령했다. 너 일점홍과 군마천

  주로 변신한 가짜 영호풍을 죽이라고......."

  순간 일점홍의 검미가 와락 찌푸러졌다.

  "무슨 소리인가? 군마천주가 가짜라니......!"

  냉유성은 시종 똑같은 억양의 음성으로 말했다.

  "검주령의 명령에는 의혹이 통하지  않는다. 시키면 해야 할 뿐이다."

  "바보같은...... 너희들은 지금  착각하고 있구나! 검주령은 영호

  천주가 군마천을 떠나기 전 제갈천뇌에게 잠시 보관시킨 것뿐이거늘......."

  "아무튼 우리는 검주령의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

  "지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도, 해줄 수도 없다. 단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번― 쩍!

  일점홍이 본  것은 냉유성의 오른손이  왼쪽 옆구리로 옮겨갔다는

  것뿐이건만, 어느샌가 창백한  빗줄기가 공간을 가르며 자신의 목

  덜미를 향해 찔러오고 있었다.

  쾌(快)!

  그것은 혁련소천마저 감탄시킨  천하제일의 쾌검― 초형일섬(超形

  一閃)이었다.

  '낙궁보다 빠르다!'

  일점홍은 이렇게  빠른 검법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비록 불편한 몸이었으나...... 본능이었으리라!

  번쩍!

  일점홍의  손에서 쾌  중  쾌 혈검무흔의  검식이  불을  뿜은 것

  은......!

  카캉!

  오금을 저리게 하는 금속성이 일며 새파란 불꽃이 튀겼다.

  그리고 불꽃이 채 사라지기도 전 한 소리 묵직한 신음이 일점홍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음......."

  검(劍)!

  냉유성의 검이 그의 목젖에 이미 닿아 있는 것이었다.

  '몸만 성했어도.......'

  일점홍은 탄식같은 한 마디를 흘려내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졌다."

  "당연한 결과이지."

  "죽여라."

  냉유성은 무심한 눈길로 잠시 일점홍을 응시하더니 문득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듣던 대로...... 무척 아름다운 놈이군."

  순간 일점홍의 눈썹이 크게 꿈틀했다.

  "냉유성, 나를 욕보일 셈인가?"

  "......."

  냉유성의 눈빛이 순간 착각인 듯싶게 미세한 흔들림을 보였다.

  다음 순간, 냉유성은 검자루를 쥔 손에 불끈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일점홍."

  "......."

  "네 말이  사실이고 내가 거짓을 따르고  있다 해도...... 검천은

  오직 검주령에만 따를 뿐이다."

  "......!"

  일점홍은 흠칫 눈을 떴다.

  숨길 수 없는 번뇌의 빛이  냉유성의 두 눈 깊숙한 곳에서 촛불처

  럼 일렁이고 있었다.

  "그대는......."

  일점홍은 무슨 말인가를 하기 위해 입을 벌렸으나 냉유성이 그 말을 끊었다.

  "네 뒤를 봐라."

  "......?"

  일점홍은 힐끗 고개를 돌렸다.

  등 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 하나

  가 시선 속으로 쏘아져 들어왔다.

  "그 웅덩이는 파랍산 깊숙한 곳에 흐르는 소로하고 통한다."

  "......!"

  일점홍은 적이 놀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냉유성은 조용히 말했다.

  "이 동굴  속에는 나보다 더 뛰어난  고수들이 무수히 득실거리고 있다."

  "......!"

  "너의 그 몸으로는 절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일점홍은 눈썹을 모았다.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스스로 저 웅덩이에 뛰어들어 자결하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검끝을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

  일점홍은 주춤 물러섰다.

  목젖 부근이 바늘 끝으로 찔린  듯 따끔하고 한 방울 피가 흘러내

  렸으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냉유성......."

  "......."

  "왜...... 나를 살려주는 것이냐?"

  냉유성은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나는 너를 살려주려는 것이 아니다."

  "아니라고?"

  "그렇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저 웅덩이에  뛰어들어 자결하라고......."

  "......!"

  일점홍은 신선한 충격이 가슴에 와닿는 것을 느꼈다.

  그래...... 어쩌면 천주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사내...... 눈 앞의 이런 사내가 있는 한......!

  조금씩 뒷걸음질치던 일점홍의 왼쪽  발이 막 웅덩이의 물 속으로 잠겼을 때였다.

  (일점홍, 혹 천주를 만나게  되면 전해다오. 나, 냉유성...... 몸

  은 검주령을 따르나...... 마음만은 천주에게 있다고.......)

  그것은 짙은 감정이 담긴 전음이었다.

  일점홍은 활짝 웃으며 마주 전음을 보냈다.

  (꼭 전하겠다, 냉유성!)

  다음 순간.

  첨― 벙!

  새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일점홍의 모습이  물 속으로 사라져갔다.

  물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그는 냉유성의  얼굴에 한 줄기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냉유성이 몸을  움직인 것은 웅덩이의  수면이 처음처럼 잔잔하게

  가라앉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천주...... 당신과의 인연이  이것으로 끝나지 않기만 바랄 뿐이오!'

  두 눈 가득 고뇌 어린  빛을 파도처럼 쏟아내며 그는 천천히 걸음

  을 떼놓았다.

  '부탁이오. 제발...... 이 동굴  속에서만은 내 앞에 나타나지 말

  아주오. 검주령은...... 나를  당신과 싸우라고 시키고 있기 때문이오!'

  두 사람이 있던 그 자리에 죽음같은 정적이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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