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권 제72장 (72/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4권 제72장 혈왕(血王)의 문(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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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강의 절대자(絶對者) 융사의 거처는 화려함의 극치를 다해 꾸며

  져 있었다.

  융사는 반질반질하게 닦인 거울을  앞에 두고 진지하게 자신의 눈

  썹을 다듬고 있었다.

  그것은 오랜 습관 중의 하나였다.

  "......."

  금빛 눈썹!

  그것은 실로 융사의 기도에 한층 신비함을 더해 주는 것이었다.

  "음......."

  융사는 검날 끝이 쭉 뻗은 눈썹을 매만지다가 거울 속에 투시되는

  네 인물을 힐끗 보았다.

  네 인물은 돌로 깎아 놓은  석상처럼 융사의 뒤편에 일렬로 서 있

  었다.

  모두 불혹(不惑)을 넘긴 듯한 중년인들이었는데 특이한 건 한결같

  이 맹인이라는 것이다.

  검은 눈동자가  없어 희멀건 백태가  번질거리는 모습은 어둠보다

  끈끈하고 악마보다 음습한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그때 융사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어찌 되었느냐?"

  그러자 맨 우측에 시립한  수뇌인 듯한 인물이 무감동한 음성으로 답변했다.

  "혈해의 낙궁을 포함한 모든 자들이 전멸했습니다."

  "의외로군."

  융사는 간단하게 말하고는 다시 눈썹을 매만졌다.

  잘 다듬어진 금빛 찬란한 눈썹을 잠시 바라보던 융사는 이윽고 적

  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느긋하게 돌아섰다.

  "영호풍...... 그의 무공이 그렇게 강했던가?"

  대답을 했던 중년인이 되물었다.

  "궁주, 어떻게 하실 셈입니까?"

  융사는 네 중년인을 훑어보았다.

  그러는 동안 그의 안면에는  희미하면서도 묘한 음모가 숨겨진 듯

  한 웃음까지 번져갔다.

  "나, 융사는 어리석은 것을 하지 않는다."

  "무슨......?"

  "군마천과 자소천의 싸움에  우리 하토궁이 공연히 개입할 필요가 없다."

  융사는 음침한 표정으로 가늘게 눈을 떴다.

  네 중년인의 안면에는 한 가닥 의혹이 스쳐갔다.

  "그러시다면......?"

  "기다리는 것이다."

  융사는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는지 경쾌하게 말했다.

  수뇌 중년인의 얼굴에 근심이 스쳐갔다.

  "궁주...... 빙허잠과의 약속은......."

  융사는 거울 속의 자신을 돌다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지킨다! 그 시기가 문제지만...... 후후후......."

  "으음......."

  네 중년인들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심상통(心心相通)인가?

  그 순간 돌연 융사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새북사사천...... 놈들이 감히 하토의 영역인 희안봉까지 들어오다니......."

  백태가 유광처럼 번질거리는 네  중년인의 눈에서 번뜩 살기가 스

  쳤다.

  "어떻게 할까요?"

  융사는 가볍게 코끝을 매만졌다.

  "기다린다."

  "허면......."

  "저희들끼리 싸우도록 방관한다......  허나! 최후의 승자가 자소

  천이 아니라면...... 너희들이 나가서 제거하라!"

  "알겠습니다."

  융사는 다시금 눈썹을 손질하려는지 거울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가라!"

  "존― 명!"

  네 명의 중년맹인들은 한 줄기 연기처럼 소리없이 꺼져 버렸다.

  "......!"

  불현듯 손을 올리던 융사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이상하군......."

  무엇이 이상하단 말인가?

  융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철극륭...... 하토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왜 고수들을 희안봉으로 보냈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음......."

  융사! 그는 모르고 있었다.

  혈왕문(血王門)...... 혈왕문의 비밀을.......

  여기까지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파랍산 희안봉에서 이제 곧 자소천, 군마천, 그리고 새북사사천과

  하토궁이 충돌할 거라는 자명한 사실을.......

  희안봉.

  쉬잉― 쉬이이이잉―!

  천 년을 쉬임없이 신강의  삭풍이 몰아치고 하늘은 짙은 잿빛으로

  죽어 있었다.

  한바탕 폭우라도 쏟아지려는 걸까?

  스슷......!

  지극히 경미한 인기척과 함께 두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혁련소천과 일점홍이었다.

  일점홍은 주위의 경치를 둘러보더니 요염하리 만큼 아름다운 얼굴

  에 언뜻 의혹을 지어 보였다.

  "천주, 대체 희안봉으로 온 이유가 무엇이오?"

  혁련소천은 신비하게 웃었다.

  "궁금한가?"

  "솔직히 그렇소."

  혁련소천은 가볍게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천이백 년 전, 혈왕  나백은 혈왕문을 정리하여 수하 십대신군와

  함께 이곳 희안봉으로 들어왔다."

  "......!"

  일점홍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 천주 그렇다면!"

  혁련소천은 확신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설의 혈왕문...... 혈왕 나백의 혈경이 이 희안봉 어디엔가 분

  명히 비장되어 있다는 말이지."

  "아......!"

  일점홍은 가볍게 충격을 받은 기색이었다.

  혈경―!

  혈왕 나백의 진전이 이곳에 있다니.......

  문득 혁련소천의 동공 깊숙이에서 한 줄기 이채가 스쳐갔다.

  "이 비밀을 아는  자...... 천하에서 나와 새북사사천의 대장문인 철극륭뿐이다."

  "음......!"

  일점홍은 묘한 신음성을 흘렸다.

  "그럼 혈경이 비장된 곳은 희안봉의 어느 곳입니까?"

  혁련소천은 실낱같은 미소를 흘렸다.

  "일점홍...... 융사가 자소천의 빙허잠과 손을 잡고 나를 초청,

  혈해를 이용해 나를 제거하려 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곳까지 왔는지 아느냐?"

  일점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소."

  "나는...... 목숨을 걸고 혈왕의 혈경을 취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다."

  일점홍은 감탄과 놀라움을 함께 느꼈다.

  '진정...... 무서운 분이시다!'

  혁련소천은 일점홍의 어깨를 툭 쳤다.

  "따라와라! 일점홍!"

  "아...... 알았소."

  이내 두 사람은 새털처럼 가벼운 동작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하늘은 여전히 짙은 잿빛이었다.

  희안봉 중턱은 기암괴석이 난립하고  한 켠에는 깎아진 듯한 천인

  의 절벽이 있었다.

  일순 두 줄기 인영이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곧장 천야만야한

  절벽 아래로 쏘아지는 것이었다.

  놀랄 사이도 없이 두 인영은 멋들어지게 열여덟 번 신형을 회전시

  키며 절벽 중간의 돌출된 부분에 사뿐히 내려섰다.

  혁련소천과 일점홍이었다.

  혁련소천은 주위를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혈왕오비(血王五秘)...... 혈왕문을 열기  위해서는 혈왕문에 관

  한 다섯 가지 비밀을 풀어야 한다."

  "......?"

  일점홍은 궁금한 기색이었다.

  "혈왕오비는 무엇이고 우리가  이렇게 곡예라도 하듯이 절벽 중간

  에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오?"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른다."

  일점홍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이었다.

  "천주는......."

  무어라고 말을 잇기도 전에 혁련소천이 불쑥 말했다.

  "이곳이 천인애이고, 그 첫번째 비밀인 마애혈불이 천인애에 있다는 것밖에는......."

  일점홍은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혈왕은 무척이나 비밀을 좋아하는 사람같군요."

  혁련소천은 일점홍을 돌아보았다.

  "어째서?"

  "그렇지 않소? 귀찮게 다섯 가지 비밀이나 만들어 놓았으니......."

  그제야 혁련소천은 말뜻을 알아듣고 빙긋이 웃었다.

  "후훗...... 나도 동감이다. 허나 치사해도 참아야지......."

  일점홍은 양미간을 살짝 모았다.

  "혈왕 나백의 무공이 그토록 대단한 것이오?"

  당연한 의문이었다.

  천하의 혁련소천이 목숨을 걸 정도로 유혹을 느끼고 있으니.......

  혁련소천은 미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글쎄...... 내 추측으로는  누구라도 그것을 얻으면 천상천하 유

  아독존을 부르짖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순 일점홍의 눈에 강렬한 호기심이 타올랐다.

  "구천십지만마전...... 단우비 전주도 능가할 수 있소?"

  "장담할 수는 없다...... 부딪쳐 보기 전에는!"

  일점홍은 역력히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대단하오?"

  혁련소천은 싱긋 웃어보였다.

  "결코 아래는 아닐 것이다."

  일점홍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표정은 가볍게 찌푸러졌다.

  "천인애의 마애혈불...... 그렇다면  이 절벽 어딘가엔 있어야 하

  는 것이 아니오?"

  혁련소천의 눈길도 절벽을 이미 살피고 있었다.

  "그렇다."

  "제기랄...... 섬시신청의 묘리를 깨우치지는 못했지만 이 일점홍

  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백 장을 뚫어보는데 마애혈불은커녕 그 그

  림자도 안 보이는 것 같소."

  혁련소천의 표정은 진지했다.

  "천이백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일점홍!"

  "......?"

  "풍우(風雨)에 마모될 가능성이 짙다."

  일점홍은 시큰둥한 기색으로 말했다.

  "완전히 마모됐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오?"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일점홍은 어이가 없는지 실소를 흘렸다.

  "이건...... 완전히 바다 속에 빠진 바늘을 찾는 격이군......."

  일점홍은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

  순간 일점홍의 두 눈에서  유성과도 같은 섬광이 예리하게 번뜩였

  다.

  "이...... 이것은!"

  혁련소천은 일점홍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냐?"

  일점홍은 흥분된 어조로 중얼거렸다.

  "천주...... 이곳을 보시오."

  "......?"

  혁련소천은 의아한 기색으로 일점홍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

  그 순간 혁련소천은 나직이 감탄성을 터뜨렸다.

  뜻밖에도 혁련소천과 일점홍이 내려선  바로 아래 사람 크기의 마

  애불이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희미했지만 분명 마애혈불이었다.

  혁련소천의 안면에 잔잔한 물결처럼 회심의 미소가 스쳐갔다.

  "후후...... 이런 걸 등하불명이라 하던가?"

  그 순간 돌연 일점홍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이상하지 않소...... 혈불이라면 붉은 빛일 텐데......."

  혁련소천은 신비한 미소를 머금었다.

  "만들면 되지 않느냐?"

  일점홍은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만들다니......?"

  혁련소천은 품 속에서 핏빛 피리― 즉 혈왕소를 꺼냈었다.

  "이렇게 하면 마애불이 마애혈불이 되나?"

  중얼거리며 그는 혈왕소를 마애불의 이마로 가져갔다.

  구슬이 박혀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마애불의 이마에는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혈왕소는 그 속으로 쑥 들어갔다.

  "거참......!"

  일점홍은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번― 쩍―!

  그 순간 마애혈불의 두 눈에서 동공을 파열시킬 듯한 혈광이 몸서

  리치게 폭출되는 것이 아닌가?

  "어엇......!"

  "오......!"

  두 사람은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이어 혁련소천의 입술이 열리면서 짤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금강항마지력!"

  외침과 동시에 그의 두 손가락은 마애혈불의 눈을 찌르고 있었다.

  쿠르르릉―!

  돌연 기광이 작동하는 굉량한  음향과 함께 마애혈불이 절벽 안으

  로 쑤욱 밀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일점홍은 적이 감탄한 기색이었다.

  "이...... 이럴 수가!"

  이내 그것은 하나의 동굴을 형성하고 있었다.

  혁련소천은 어깨를 툭 쳤다.

  "기관 처음 보나......? 어서 들어가자."

  "아...... 알겠소."

  일점홍은 엉거주춤해 하며 대답했다.

  이내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 듯이 사라졌다.

  대략 일 다경쯤 지났을 때였다.

  쏴아아아―!

  까마득한 허공에서 곤두박질치듯이 금빛 물체가 두 사람이 사라진

  절벽을 향해 쏘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신비스런 거대한 금빛 독수리의 형상이었다.

  불가사의한 속도로  쏘아지던 금빛 독수리는  돌연 떨어지지 않게

  동굴 입구에서 사뿐히 날개를 접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것은 독수리가 아닌 인간이었다.

  전신에 금빛 비늘을 뒤집어쓰고  양 겨드랑이에는 날개를 단 폭포

  수처럼 흘러내리는 금발에 머리에는  독수리 가면을 쓴 분명한 인

  간.

  가슴의 융기가 볼록한 것이나 허리가 수양버들처럼 휘어진 것으로

  보아 여인이 분명했다.

  이 기괴하면서도 신비한 마력을  풍기는 여인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문득 혁련소천과  일점홍이 사라진 동굴로  시선을 주면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호호...... 소사 사형의 말대로군."

  소사― 새북사사천의 금마혈번 소사를 말함인가?

  "혁련소천...... 그대는 분명 혈왕의 문을 연다."

  그녀의 눈빛이 칼끝처럼 예리하게 번뜩인다.

  "허나...... 그대의 뒤에는 항상 내가 있지."

  하면 이 여인도 혈경을 노린단 말인가?

  "혈경은 새북사사천의 것......  나의 아버님이시자, 대막의 영원

  한 신(神)이신  철극륭 그 분의  것...... 그 누구도  취할 수 없다."

  그녀는 단언하듯 중얼거렸다.

  쏴― 아― 앙―!

  그리고 그녀는 날아올 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녀...... 그녀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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