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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제71장 (71/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4권 제71장 사혼(邪魂) - 그 죽음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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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점홍과 겨우 한두 마디 나누었을 시간에 벌어진 이 엄청난 사태

  에 사혼 낙궁의 두 눈은 있는 대로 부릅떠졌다.

  "저...... 저럴 수가......?"

  그 평생 지금처럼 놀라본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하하하하......."

  그때 우렁찬 광소와 더불어  혁련소천의 신형이 낙궁의 면전에 뚝

  떨어져 내렸다.

  "낙궁, 이젠 네 차례다."

  "......!"

  낙궁의 안색이 한 차례 크게 변화했다.

  "......!"

  허나 그는 곧 안색을 가다듬고는 음침한 눈빛을 쏟아냈다.

  "흐흐...... 대단하구나. 그 정도면 빙허잠이나 나의 예상보다 최

  소한 세 배는 강한 편이다."

  혁련소천은 희미하게 미소했다.

  "감히 자신의 역량도  모르면서 나 영호풍을 건드리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흐흐흐...... 구태여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구도수

  의 죽음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으니까......."

  "마침 잘됐군."

  혁련소천은 조소 한 줄기를 떠올리며 느릿하게 걸음을 떼놓았다.

  "천주."

  이때 일점홍이 혁련소천의 앞을 선뜻 막아섰다.

  혁련소천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냐?"

  "저 자는...... 내가 맡겠소."

  "음?"

  일점홍은 무감동한 어조로 말했다.

  "천주! 낙궁은 나의 사형이오. 그리고...... 내 일생에 있어 최대의 원수이기도 하오."

  "......."

  "과거...... 어머님은 육체를 미끼로 저 자와 몇 번의 관계를 맺기도 했소."

  "......!"

  "아마 십 년 전이었을 것이오. 당시 어머님은 나를 혈해로 보내

  그곳의 특수한 살수 훈련을 배우게 했소."

  "음......."

  일점홍은 낙궁을 힐끗  돌아본 뒤 암울한 어조로  계속 말을 이었다.

  "돌아가신 선사와 인연을 맺은 것도 그때고...... 저 자로부터 씻

  을 수 없는 저주스런 치욕을 당한 것도 바로 그때였소."

  "......!"

  "저 놈이 선사를 죽이고 혈해의 주인이 되던 그 날...... 나는 환

  락천으로 돌아오며 맹세했소. 언젠가는 내 손으로  저 놈의 썩은

  아가리 속에 검을 쑤셔 박겠다고......."

  문득 일점홍의 두 눈 어둑한 곳에서 새파란 섬광이 불길처럼 피어 올랐다.

  혁련소천은 잠시 그의 두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더니 이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맡기겠다. 허나...... 조심해라."

  "고맙소."

  일점홍은 희미하게 웃는 둥 마는 둥하더니 낙궁을 향해 천천히 돌

  아섰다.

  이미 그의 얼굴은 한 겹  빙막(氷膜)이 깔린 듯 차갑게 굳어 있었다.

  "낙궁...... 검을 뽑아라."

  섬뜩하리 만큼  무감동한 일점홍의 음성에  낙궁은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흐흐흐...... 화가  난 너의  모습은 옛날보다  훨씬 매력적이구나."

  "......!"

  "흐흐흐...... 당시 너의 피부는 여인보다 부드러웠고...... 너의

  손길은 비단결보다 곱고 섬세했었지."

  "너......."

  일점홍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지며 몸까지 부르르 떨없다.

  (일점홍, 심기를 흐트러 놓으려는 놈의 수작이다. 조심.......)

  귓속을 파고드는 혁련소천의 전음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슈욱!

  일점홍의 신형이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속도로 퉁겨져 나갔다.

  "낙궁! 죽인다!"

  번― 쩍!

  어느새 뽑아 들었던가?

  짧은 비수가 흰 빛줄기를 내뿜으며 환상처럼 허공을 갈랐다.

  순간 낙궁의 얼굴에 비릿한 괴소가 떠올랐다.

  "쾌 중 쾌(快中快) 혈검무흔인가? 흐흐흐...... 허나 아무리 빨라

  도 내 눈은 벗어날 수는 없지......!"

  그러는 사이 이미 일점홍의 비수는 지척지간에서 낙궁의 목덜미를

  향해 찔러오고 있었다.

  찰나간, 낙궁은 번개같이 검을 뽑아 일점홍의 비수를 후려쳤다.

  카앙―!

  새파란 불꽃이 일며  일점홍의 비수가 옆으로 퉁겨  나가는 그 순

  간, 낙궁의 왼손은 일점홍의 왼쪽 손목을 벼락같이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거의 동시에 오른손에  쥐어 있던 검으로 일점홍의 가슴

  을 사정없이 찔러갔다.

  진정 지독하게 빠른 순간에 이루어진 공수(攻守)의 변화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후훗...... 너는 졌다!"

  괴소가 흘러 나오고  일점홍의 몸이 괴이하게 흔들리는가 했더니,

  돌연 일점홍이 입고 있었던  옷이 그대로 풀어지며 낙궁의 시야를

  차단하는 것이 아닌가!

  "음......?"

  낙궁이 흠칫하며 놀라는  순간, 갈고리처럼 오므려진 일점홍의 오

  른손이 옷자락을 꿰뚫고 날벼락같이 낙궁의 얼굴을 찍어 갔다.

  차단된 시야에서 찰나간에 벌어진 이 엄청난 반격!

  "헉!"

  낙궁은 대경실색하며 황급히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일점홍의 손은 낙궁의 얼굴 위를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

  갔다.

  그때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츄릿―!

  거의 투명하다시피한  얇디얇은 연검(軟劍)이  느닷없이 일점홍의

  팔뚝 밑에서 쏘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헉!"

  낙궁은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연검과 자신의 입과는 그야말로 지척지간! 피할 생각이나 할 겨를

  이 있었다면 거짓말이다.

  연검은 사정없이 낙궁의 벌어진 입 속에 쑤셔 박혔다.

  "컥......!"

  낙궁의 눈이 튀어 나올 듯 확 불거졌다.

  일점홍의 손목을  움켜쥐었던 손이 맥없이  풀어진 것은 당연지사

  고, 바람결같은  일점홍의 괴소가 낙궁의 귓속에  스며든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

  "후후후...... 너는 당했다."

  "으...... 으......."

  짧은 단삼차림의 일점홍은 낙궁의 입 속에 길다란 장검을 쑤셔 넣

  은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

  "너는  나의 분노를  일으킴으로써 나의  마음을  분산시켰지. 허

  나...... 나는 역으로 분노하는 척 함으로서 네 마음에 득의를 심었다."

  "우우......."

  낙궁은 눈만 찢어지게 부릅뜰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입 속에 검이 쑤셔 박혀 있는데 어찌 말을 토해낼

  수 있겠는가.

  "또 한 가지...... 너는  내가 항상 비수만 사용한다고 알고 있었

  을 뿐...... 내  팔뚝에 연검이 감겨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

  "나는 허(虛)  속에서 실(實)이 있었기에 승리한  것이고 너는 실

  속에 허가 있었기에 패한 것이다."

  "......!"

  "물론 다시 싸운다면 서로의 승부를 장담할 수 없겠지. 너는 최고

  의 살수(殺手)이고 네가 알고 있는 나는 천재살수이니까......."

  문득 일점홍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져 나왔다.

  "허나...... 낙궁, 너는 알  것이다. 살수에게 두 번의 기회란 주어질 수 없는 것임을......."

  "우...... 우......."

  낙궁의 눈에 순간 분노와 절망의 빛이 복잡하게 교차되었다.

  "십 년의 원한이다. 잘가라...... 낙궁!"

  일점홍의 손이 사정없이 뻗쳐  나갔고 순식간에 장검의 끝이 낙궁

  의 뒷덜미로 쑥 빠져 나왔다.

  "카― 악!"

  ― 언젠가 내 검을 네 목구멍 속에 쑤셔 박으리라!

  허공에 말없이 울리는 원한 맺힌 일점홍의 음성과 함께 낙궁은 처

  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맹세를 지킨 셈이군."

  일점홍은 검을 뽑으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

  낙궁은 무슨 말인가를 하기 위해 몇 차례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끝

  내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썩은 고목처럼 차디찬 바닥에 나동그

  라졌다.

  이것이 이 시대 최고의 살수, 사혼 낙궁의 최후였다.

  일점홍은 연검을 다시 팔뚝에  감으며 무심한 눈길로 낙궁의 시체

  를 내려다 보았다.

  어느새 혁련소천이 그의 등 뒤로 다가와 있었다.

  그는 주워든 옷을 일점홍의 어깨에 덮어주며 조용히 말했다.

  "훌륭했다, 일점홍."

  일점홍은 그를 돌아보며 씁쓸한 고소를 떠올렸다.

  "운이 좋았소. 만약 다시 싸운다면...... 십 중 구는 낙궁의 승리가 될 것이오."

  혁련소천은 싱긋 웃었다.

  "허나...... 네가 낙궁보다 최소한 열 배는 강해질 것이다."

  "......."

  일점홍은 묵묵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낙궁의 살수능력은 구천과 십지의 주인들조차 두려워할 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허나...... 그런 그를 죽인 일점홍!

  과연 운이 좋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이때 문득 혁련소천의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미사! 미사가 없어졌다!"

  "......!"

  일점홍은 흠칫 정신을 차리고 급히 사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미사의 모습은 주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가 벌써 깨어났을 리는 없는데......."

  혁련소천이 중얼거리자 일점홍의 얼굴에 언뜻 의혹이 솟았다.

  "그럼?"

  "납치당했다."

  "납치?  말도 안  되오. 어느  누가  우리 둘의  이목을  속일 만큼......."

  혁련소천이 그의 말을 끊었다.

  "천하에 이런 능력을 가진 자는 단 두 명뿐이다."

  "두 명?"

  "한 명은 내가 아는 사람이다. 환사유풍이라고......."

  "환사유풍?"

  "그는 나의 친구다."

  "다른 한 명은?"

  "새북사사천 서열  육 위(六位)의  고술 무영잠비(武影潛飛) 천자

  흠...... 그 자의 능력은 결코 환사유풍에 못지않다고 들었다."

  "무영잠비 천자흠?"

  일점홍의 고개가 약간 갸우뚱했다.

  "새북사사천의 그가 왜 이곳에......?"

  돌연 혁련소천의 안색이 무겁게 굳어졌다.

  '혈왕문! 새북사사천이 이곳에 나타나야 할 이유는 오직 그것뿐이다!'

  그는 일점홍의 어깨를 툭 쳤다.

  "일점홍, 가자!"

  "가다니? 어디로......?"

  그러나 그 순간 혁련소천의 신형은 이미 허공 까마득한 곳으로 쏘아가고 있었다.

  일점홍은 더 이상 눈만 멀뚱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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