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3권 제67장 중원(中原)의 영웅 - 신강(新疆)의 마왕(魔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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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新疆).
사막과 접경에 있으며, 호수(湖水)와 거친 지세의 산(山)이 많은
곳이었다.
가을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고, 산(山)은 불꽃이 일렁이듯 타오르
고 있었다.
파랍산(巴拉山).
신강의 지붕이라고 불리우는 이곳, 만추에 젖은 파랍산은 마치 불
타는 듯한 장엄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문득 능선을 끼고 꺾어지는 산로(山路)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혁련소천과 일점홍이었다.
일점홍의 긴장된 표정과는 달리 혁련소천은 마치 유람이라도 나온
여유로운 풍류객 같았다.
"좋아...... 신강에도 이렇듯 뛰어난 절경이 있었다니 미처 몰랐
군."
유유자적한 혁련소천의 태도에 일점홍은 가볍게 눈살을 지푸리며
말했다.
"천주...... 이곳은 하토의 영역이오!"
경고인가?
허나 혁련소천은 못 들은 척 딴전을 피웠다.
"일점홍, 군마천에 있다가 이렇듯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접하니 살
아 있는 즐거움을 느끼지 않느냐?"
"도대체 천주의 속셈은......."
불현듯, 일점홍의 표정이 차갑게 굳으며 예리한 눈빛을 번뜩였다.
"천주, 잠깐만......."
혁련소천은 일점홍에게 시선을 주었다.
일점홍의 입술이 빠르게 움직였다.
"십 리 근방에 상당히 많은 고수들이 잠복해 있소, 천주!"
"어떻게 알았나?"
혁련소천은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나는 과거 어느 한 사람에게 특수한 살수(殺手) 훈련을 받은 적
이 있소."
"그래서?"
"살수의 특징 중에 하나가...... 주위의 경관과 동물의 움직임,
새 울음 등으로 상대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오."
"그거 재미있군."
일점홍의 얼굴에 은은한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천주!"
"......?"
"그들...... 어쩌면 하토의 놈들인지도 모르는 일이오."
일순 혁련소천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다면 더욱 잘된 일이군. 길잡이가 생긴 셈이니."
일점홍은 혁련소천의 여유에 어이가 없었다.
"천주! 하토의 인물은 믿을 수가 없는 존재요."
"쯧쯧...... 천하의 일점홍이 갑자기 말이 많아졌군. 나는 나 자
신 밖에는 아무 것도 안 믿는다. 어떤 경우에는 나 자신조차 안
믿지."
혁련소천은 시선을 거두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일점홍은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두두두두― 두두두―!
돌연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두 필의 말이 바람처럼 달려와
두 사람의 면전에서 멈추어 섰다.
마상의 두 인물들은 사뿐히 지면으로 내려 절도있게 부복했다.
"구천십지만마전의 가장 강한 하늘, 군마천의 영호천주가 어느 분
이신지요?"
혁련소천이 서슴없이 말했다.
"내가 영호풍이다!"
순간 두 인물은 코가 땅에 처박히도록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하토궁의 제자들, 영호천주님께 인사 드립니다."
"무슨 일이냐?"
"궁주님께서 친히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융사 궁주가 직접?"
"그렇습니다."
혁련소천은 적이 의외란 표정이었다.
이때 두 인물은 벌떡 일어서며 혁련소천에게 길을 터주었다.
"저희들이 안내하겠습니다."
혁련소천이 무어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우측의 인물이 길게 휘파
람을 불었다.
휘익―!
순간 소로길 양편 숲 속에서 수없이 많은 그림자들이 영활하게 움
직이기 시작했다.
의아함을 느낄 여유도 없이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놀랍
게도 최고급 천축산 양탄자가 새롭게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옥황상제라도 감격할 만한 화려한 소로가 만들어졌다.
더불어 패옥들이 부딪치는 상쾌한 음향과 함께 십여 명의 여인들
이 좌우 숲 속에서 나타났다.
'이것 봐라......?'
팔등신의 늘씬한 몸매에 이국적(異國的)인 아름다움을 갖춘 미모
의 여인들은 화려한 유리궁등으로 귀인(貴人)을 환영하며 길 양편
으로 갈라섰다.
"영호천주님, 저희들을 따라오세요."
혁련소천은 일점홍을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나친 환대로군."
일점홍 역시 의외인지 멋쩍은 미소를 입가에 담았다.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그러겠지요."
"후훗...... 융사가 계집이라면 가치가 있겠다만......."
혁련소천은 말꼬리를 흐렸다.
"무슨 소리요?"
"계집이라면 내가 즐겁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지."
유리궁등을 든 여인들은 혁련소천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못들은
척했다.
일점홍은 그만 실소를 터뜨렸다.
"천주도...... 참......."
"왜? 아무튼 모시러 왔으니 가는 게 도리겠지."
혁련소천은 먼저 천축산 최고급 양탄자가 깔린 길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는 실로 기괴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었다.
모든 것이 금빛 일색!
일신에 헐렁하게 금포를 걸치고, 얼굴마저 금빛면사로 가려져 나
이는커녕 성별도 분간할 수 없었다.
허나 그는 바로 새북사사천과 쌍벽을 이루는 새외이대세력인 하토
궁의 마왕 융사였다.
혁련소천과 일점홍은 융사와 일 장의 거리를 유지한 채 서 있었
다.
일순 융사의 입술을 비집고 칼칼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영호천주, 어서 오시오. 천주의 서신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이
융사가 기다렸소."
하토의 마왕(魔王) 융사!
중원의 효웅 혁련소천!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돌연 혁련소천은 일점홍을 바라보면서 괴이쩍게 히죽 웃어
보이는 게 아닌가.
"일점홍......."
"......?"
"역시 내 추측이 맞았다."
"무슨......?"
"융사는 계집이다."
"뭐요?"
그 순간 융사의 금색면사가 미미하게 진동했다.
"영호천주!"
혁련소천은 융사를 돌아보며 능글맞은 웃음을 떠올렸다.
"후후...... 당신이 융사라면 나는 이 길로 중원으로 돌아갈 것이
오."
순간이었다.
돌연 금색면사가 나풀거리더니 교소성이 울리는 것이 아닌가?
"호호호...... 과연 중원의 일대효웅답군요."
그것은 그가 계집(?)임을 시인하는 말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내가 여인인지 어떻게 눈치챘나요?"
혁련소천은 묘한 시선으로 융사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직감이오."
"직감이라......?"
융사는 가볍게 몸을 움츠리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혁련소천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여자를 많이 다루게 되면 다 알게 되는 법이오."
"듣던 대로 대단한 여성편력을 지니셨군요."
융사의 교성은 듣는 사람을 미혹시켰다.
"대단한 것은 못되오."
"호호호...... 저는 당신에게 호감을 느꼈어요."
혁련소천은 빙그레 웃었다.
"나 역시......."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소녀는 미사(美沙)...... 바로 당신이 만
나시려 하는 융사, 그 분의 외손녀예요."
순간적으로 혁련소천의 눈빛이 빛났다.
"융사의 외손녀......."
혁련소천은 힐끗 일점홍을 일별하면서 물었다.
"그렇다면 융사 궁주는......?"
그때였다.
"으핫핫핫......."
한 소리 벼락치는 듯한 앙천대소가 주위의 초목을 마구 뒤흔들었
다.
쐐아― 아아앙!
한 덩이의 금빛 구름이 바람에 날리는 듯한 절묘한 경공술로 혁련
소천의 앞에 나타나는 인물이 있었다.
대략 고희를 넘어 보이는 나이에 약간 마른 듯한 체격, 눈썹은 길
게 뻗쳤으며 두 눈엔 은은한 금광이 감돌고 있었다.
금포노인은 나타나자마자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노부가 바로 융사요. 진심으로 영호천주의 하토 방문을 환영하
오."
혁련소천은 그저 싱긋이 웃을 뿐이었다.
"이번엔 진짜같군."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마주 예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소생은 영호풍, 말학후진이나 이미 소문을 들어 아실 테니 더 이
상의 소개는 생략하겠소이다."
묘한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융사의 눈썹이 가볍게 움직였다.
"궁주의 환대에 감사드리오."
혁련소천이 치하를 하자 융사는 호탕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핫핫핫...... 머나먼 중원에서 귀하신 분이 오셨는데 어찌 이런
길에서 머물게 할 수 있겠소? 노부가 직접 모시겠소."
이어 그는 주위의 인물들에게 명을 내렸다.
"무엇을 하는 것이냐?"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혁련소천을 안내했던 여인들이 부산
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하핫...... 잠시만 기다리시오."
융사는 나직한 웃음을 흘리며 혁련소천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십여 명의 여인들이 더 이상 호화로울 수 없는 거대한
가마를 메고 그들 앞에 나타났다.
융사는 혁련소천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천주, 안으로 드시오."
"그럼......."
혁련소천은 의젓하게 가마 위로 올랐다.
일점홍 역시 혁련소천의 뒤를 따라 가마 위로 오르자 융사는 가볍
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 분은......?"
혁련소천의 일행이기에 하대를 않는 것인가?
헌데 혁련소천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남자가 가는 곳에 계집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소?"
"......?"
"애첩이니, 상관 없소이다."
"애첩......?"
융사의 기이한 표정에 혁련소천은 히죽 웃으며 일점홍을 바라보았다.
"내 말이 틀렸냐?"
일점홍은 쓰디쓴 고소를 떠올리며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애첩이라...... 흐흐...... 괜찮은 말이군!'
이상한 일이었다.
혁련소천의 그 한 마디가 이렇듯 야릇한 감흥으로 가슴에 와닿는 것은.......
가마에 오른 두 사람은 느긋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허나 그들은 보지 못했다.
융사가 짧은 순간을 빌려 야릇한 광채 한 줄기를 흘려 보내는 것
을.......
무슨 뜻인가!
어떤 의미를 담은 눈빛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