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권 제59장 (59/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3권 제59장 불타는 소림사(少林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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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동이 뿌옇게 움터오르는 이른 새벽.

  <소림사(少林寺).>

  어슴푸레한 미명(微明)을 받으며  그 웅대한 경관(景觀)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혜정선사은 혜자  항렬의 네 번째에  올라 있는 고승(高僧)으로서

  불심(佛心)과 수양이 깊기로 유명한 지객당의 주지였다.

  그는 지금 노안을 들어 뿌옇게 밝아오는 동편 하늘을 응시하고 있

  었다.

  지금 그가 앉아 있는 곳은 소림사의 산문(山門) 앞이었으며, 그의

  뒤에는 이십여  명의 승인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선(坐禪)을

  행하고 있었다.

  고요한 숭산의 새벽, 산중을  타고 흐르는 공기는 더없이 맑고 신

  선했다.

  허나 그 자리에 모인 승인들의 표정에는 어쩐지 무겁고 침울한 기

  운이 감돌고 있었다.

  동천(東天)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혜정선사의 입술이 떼어지며 묵

  직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법운(法雲)."

  "네."

  바로 좌측에 앉아 있는 젊고 준수한 승인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구나."

  "네?"

  "심장이  빨리 뛰고  있다.  호흡 또한  세  배는  거칠어지고 있

  고......."

  "......!"

  승인. 법운의 눈빛이 일순 짧은 파랑을 일으켰다.

  허나 다음 순간 법운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낮게 탄식했다.

  "사백, 제자의 수양이 아직 깊지 못한 탓인 듯합니다."

  그 말에 혜정선사는 나직하게 불호를 읊었다.

  "아미타불...... 무릇 인간의 본능이란 그 어떤 것으로도 막기 힘

  든 것...... 더욱이  그것이 생명과 관계 있을  때엔 더욱 그러한

  법이다. 구태여 억제하려 하지 말라."

  "아미타불......."

  그러나 하늘을 응시하는 혜정선사의  눈에는 음울한 한 줄기 빛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대의(大義)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아무 죄도 없는

  너희들을 희생시켜야 하다니.......'

  그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불존이시여, 자비를.......'

  바로 그때 법운의 급박한 대경성이 터져 나왔다.

  "사...... 사백! 저...... 저곳을......."

  "......?"

  혜정선사는 다시 눈을 떴다.

  순간 혜정선사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경악의 빛이 솟구쳤다.

  소실봉 아래로 길게 이어진 능선이 지금 그의 눈 앞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여명을 마주하여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기나긴 그 능선이

  통째로 움직이고 있었다.

  혜정선사의 얼굴에 물결치듯 경련이 일어났다.

  그는 분명히 보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능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천의 기마대(騎馬隊)!

  바로 그 기마대가  동서로 이어진 능선을 가득  메운 채 물결처럼

  밀려오는 것이었다.

  두두두두......!

  들린다. 그것은  처음에 매우 미약한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눈 몇

  번 깜박거리는 사이에 우레와 같은 굉음으로 들려왔다.

  두두두두두두!

  우두두두......!

  그것은 바로 죽음을 몰고 오는 악마의 음성이었다.

  "왔구나...... 구천십지만마전......."

  혜정선사의 입술 사이로 신음에 가까운 음성이 새어 나왔다.

  바로 그 순간,

  쉬아― 아― 앙!

  돌연 귀청을 찢을 듯한 무서운 파공성이 허공에서 일었다.

  "으― 악!"

  갑자기 법운의 신형이 허공으로  펄쩍 퉁겨오르더니 십여 장 밖으

  로 날아가 곤두박질쳤다.

  운무처럼 자욱이 뿜어오르는 피(血).......

  어느새 법운의 왼쪽 가슴에는  어른의 팔뚝만한 굵기의 거대한 화

  살이 깊숙이 꽂혀져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법운의 죽음을 본 혜정선사의 안색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대력천궁...... 악마의 궁사, 당우가 왔구나......!"

  "으― 악!"

  "크― 악!"

  "컥!"

  참담한 비명이  무더기로 터지는가 했더니  순식간에 이십여 명의

  승인들이 모조리 목을 움켜쥐며 나동그라졌다.

  찰나간의 광경에 혜정선사의 눈이 튀어 나올 듯 불거졌다.

  "후후후...... 그대가 혜정이라는 돌중인가?"

  그 순간 음산한 괴소와 함께 무척 준수한 모습의 청년이 환영처럼

  나타났다.

  "시주는......?"

  "천검미랑 환철령이라 하지."

  혜정선사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천검미랑...... 그렇다면 저 제자들은 그대가......?"

  천검미랑은 차갑게 웃었다.

  "후후후...... 놀라는 모습을  보니 나 천검미랑의 천검비술(千劍

  飛術)도 꽤 쓸만한 모양이군."

  "아...... 미타불......!"

  혜정선사의 불호가 흘러 나오는 순간, 천검미랑의 양 손이 번개같

  이 번뜩였다.

  "가거라!"

  번― 쩍―!

  아무런 소리도 없이 십여 개의 단검이 유성처럼 허공을 찢었다.

  "웃......!"

  혜정선사는 다급성을 삼키며  황급히 장포자락을 어지럽게 휘돌렸

  다.

  파파파팟!

  그의 장포자락에 부딪힌 십여  개의 단검은 모조리 되퉁겨 날아갔

  다.

  허나 다음 순간.

  팍!

  소리와 함께 혜정선사의 전신이  급살 맞은 사람처럼 부르르 떨렸

  다.

  어느새 법운의 가슴에 박힌 것과  똑같은 화살 한 대가 그의 복부

  를 꿰뚫어 버린 것이었다.

  혜정선사의 눈알이 믿을 수 없다는  경악의 빛을 띤 채 핑그르 돌

  아갔다.

  "부..... 불존...... 이시...... 여......!"

  단지 그것 뿐, 그의 몸은 이내 썩은 나무토막처럼 지면 위로 나둥

  그라졌다.

  "과연 대력천궁이군."

  천검미랑 환철령은 히죽 웃으며 한 자루 단검을 꺼내 들더니 이어

  번쩍 허공으로 솟구쳤다.

  "소림이여!  내일의   일출(日出)을  기대하지   마라,  으하하하

  하......."

  꽈꽈꽝!

  바로 그때  시뻘건 불기둥과 함께  소림사의 산문이 산산조각으로

  박살났다.

  두두두둑.......

  곧이어 부서져 내린 산문을 뚫고 세 필의 말이 등장했다.

  혈궁천주 도엽과 생사천주 만후천리!

  또 한 필의 말에는 바로 혁련소천이 타고 있었다.

  도엽은 산문을 통과하자마자 양  손을 치켜들며 광폭한 외침을 터

  뜨렸다.

  "죽여라! 소림의 잡승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죽여라!"

  쿠콰콰쾅!

  와르르르...... 쿠쿠쿠쿵.......

  거대한 굉음과 함께 소림사  사방의 벽이 허물어지더니 수천 명의

  고수들이 노도처럼 들이닥쳤다.

  혈궁천과 생사천, 군마천의 고수들이었다.

  때를 같이 해서 소림의  승인들도 사방 팔방에서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싸움은 시작되었다.

  석양(夕陽), 타는 듯한  황혼이 서천(西天)을 온통 핏빛으로 물들

  이는 그 시각.......

  싸움은 그때까지도 계속되었다.

  피(血)! 피(血)......!

  엄청난 피가 격랑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주검

  들이 곳곳마다 가득히 메워졌다.

  지옥도 이런 지옥이 또 어디 있으랴?

  소림을 일컬어 불문(佛門)의 성지(聖地)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가공할 혈전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이곳은 말 그대로 인간

  도살장(人間屠殺場)이었다.

  소림사, 그것은 거대한 폭류(瀑流) 위에 떠도는 한 조각 가랑잎에

  불과했다.

  허나, 소림의 승려들은 단 한 명도 굴하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그들이 아닌가!

  최후의 일 인(一人)까지 그들은 처절히 싸우고 또 싸웠다.

  그러나 해일처럼 노도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삼 천(三天)의 고수들

  앞에서 소림은 처절하게 무너져 갔다.

  혈궁천주 도엽은 혈포를 휘날리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핫......! 소림의 잡승들을  한 명도 살려두지 마라! 모조

  리 죽여라! 갈기갈기 찢어 죽여라!"

  마지막 핏줄을 잃은 한 인간의  처절한 분노가 구 만리 장천 아득

  한 끝까지 이런 식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

  잔혹한 유린!

  그의 손길 아래 소검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치솟는 화광(火光)!

  생의 종지부를 알리는 처절한 절규(絶叫)!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참혹한 죽음의 향연이었다.

  생사천주 만후천리는 아예 한쪽에 서 있었다.

  왜냐고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가담할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그는 다만 느긋하게  팔짱을 낀 채 냉혹한  눈길로 죽음의 현장을

  지켜볼 뿐이었다.

  어쩌다 재수없는 소림의 고승들이 불나비처럼 그에게 덤벼 들었다

  가는 단 일거수에 영혼을 서방정토에 보내곤 했다.

  혁련소천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오늘에서야 절실히 느꼈다.

  구천십지만마전의 거대하고도 엄청난 힘의 실체를......!

  소림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정파의 태산으로서의 위치를 고수한  그들은 역시 그 이름에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구천십지만마전의 힘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힘은 그 토록 강대했으니까.......

  '구천십지만마전......! 제왕성(帝王城)의  힘(力)으로 너와 겨루

  어 보리라!'

  제왕성―!

  '단우비여...... 내 그대와 자웅을 겨루어 보리라!'

  어느새 무서운 투혼(鬪魂)이  혁련소천의 전신 구석구석에서 불타

  오르고 있었다.

  그는 지옥같은 혈전장을 또렷이 응시하며 거듭 중얼거렸다.

  '십 년(十年)! 앞으로 십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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