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권 제57장 (57/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3권 제57장 존궁(尊宮)과 사망전(邪亡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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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궁(尊弓).>

  더 이상 위대할 수 없고, 더 이상 높아질 수 없는 이 무림 최고의

  인간, 구천십지제일신마 단우비가 거처하는 바로 그곳!

  여기는 존궁의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한 칸의 거대무비한 석실

  이었다.

  뜻밖에도 그 거대한 석실의  바닥엔 중원천하가 모조리 있지 않는

  가!

  삼산오악(三山五嶽)과 구주팔황(九州八荒)이 이  한 곳에 모두 집

  결되어 있었다.

  태산의 그 당당한 웅자와 장강의 도도한 흐름이.......

  놀랍게도 중원의 모든 지형이 단  한 치의 틈도 없이 바닥에 새겨

  져 있는 것이었다.

  뿐인가?

  사면의 벽엔 당금 무림에 존재하는 모든 문파가 새겨져 있었다.

  또한 각파의 장문지존을 필두로 절정급고수에서 최하급 인물에 이

  르기까지 모조리 그곳에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일단  무림에 적을 둔 인물이라면  그 누구도 예외없이

  새겨져 있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사망전(死亡殿).>

  이른바 죽음의  마전(魔殿)으로 불리우는  존궁내 최고의 비역(秘域)!

  전 무림에서 일어나는 그  어떠한 일이라도 모두 이곳에서 처리된다.

  사망전의 석벽에서 지워지는 문파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멸문의 길

  을 걷고 만다.

  사망전의 석벽에 새겨지는  문파는 비로소 무림의 일문(一門)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사망전이 생겨난 이래 그 벽에 새겨졌다가 지워진 문파의 수는 이

  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중원천하가 새겨진  바닥을 중심에 두고  지금 이십 인(二十人)의

  인물이 둥그렇게 좌정해 있었다.

  이들이 누구인가?

  우선, 중앙 태사의에 늠연히 앉아 있는 인물을 보라!

  말 그대로 하늘같은  인간, 그는 바로 구천십지제일신마인 단우비

  가 아닌가?

  구천마제(九天魔帝),

  십지마황(十地魔皇),

  이른바 구천과 십지, 열아홉 개 단체의 주인들이 모조리 모여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대회합(大會合)이 아닐 수 없었다.

  천하를 떨쳐울리는 이 시대 최고거두(最高巨頭)들이 모였으니, 이

  는 실로 지난 이백 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단우비는 이 순간 움직임 없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장중하고도 질식할 듯한 기운이  열기처럼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

  었다.

  잠시 좌중을 둘러보던 단우비는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림이 본 구천십지만마전에 반기를 들었다."

  서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팔백 년 동안 만마전은 그 자체의 위엄을 과시해 본전에 대

  항하는 문파의  구족을 멸하고 조상십대의  묘까지 파헤치는 것을

  만마전 두 번째의 율법에 두었다."

  순식간에 진저리쳐지도록 살벌한  기운이 실내 구석구석에서 피어

  올랐다.

  단우비의 음성이 조용하게 이어졌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본전 소속의 십사 인(十四人)과 악양지부의

  단주 이하 팔백 명이 소림사에 의해 몰살당했다."

  순간, 십구 인(十九人)의 눈썹이 거의 동시에 꿈틀 용트림을 일으

  켰다.

  그와 동시에 도무지 형용조차 할 수 없는 무지막대한 기운이 각자

  의 전신에서 불길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위세였다.

  이때 단우비의 끝맺는 말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이제 본좌의 결정이 있기 전에 그대들의 의견을 듣겠다.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입술이 무겁게 닫혔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핏빛 혈포를 걸친 광폭한 인상의 노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존경하는 만마전 제일신마께  혈궁천주 도엽이 한 말씀 드리겠습

  니다."

  단우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라, 도엽!"

  "감사합니다."

  도엽은 단우비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여 보인 뒤 곧이어 좌중을

  쓸어보며 웅혼한 외침을 터뜨렸다.

  "무도한 소림의 잡승들이 구천십지만마전에 대항했으니 이는 전례

  로 보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오."

  "......!"

  "......!"

  십팔 인의 시선이 모두 도엽에게 쏠렸다.

  도엽은 불벼락같은 안광을 쏟아내며 거듭 외쳤다.

  "차제에 소림을 이 땅에서  없애야 하며 그에 관계된 문파나 인물

  들은 깡그리 죽여야 하오."

  그의 음성은 더욱 높아졌다.

  "또한 조사동에 있는 소림 역대조사들의 묘를 모조리 파헤치고 달

  마의 유체까지 갈아 버려야 마땅하오."

  이 엄청난 최후의 선언!

  도엽의 시선이 일순 단우비에게 향해졌다.

  "지엄하신 제일신마시여! 이 기회에 전 무림으로 하여금 만마전의

  위엄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야 옳은 줄로 아뢰오."

  이때 서리가 앉은 듯한 백발을  휘날리며 또 한 명이 벌떡 일어섰

  다.

  "봉황곡주(鳳凰谷主) 백전충(白典沖)이 제일신마께 아뢰오."

  이 사람이 바로 십지 중 봉황성지의 주인 백전충이었다.

  단우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말하라."

  백전충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마땅히  만마전의 율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허나...... 소림이 정도의 중추세력임을 감안할 때 그것을 완

  전히 멸망시킨다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생각

  합니다."

  "음......."

  "자칫하면 만마전에 생각치도 못했던 피해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때 도엽이 바로 앞의 탁자를 거세게 내리쳤다.

  "백곡주! 당신은 지금 소림을 옹호하려는 것이오?"

  백전충은 순간 허연 백미를 꿈틀 치켜떴다.

  그러나 그는 곧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게 아니오. 단지 소림을 제명시키되 불필요한 살상은 피하자는

  것이오."

  "닥치시오! 도위궁...... 나의 후계자인  손자 녀석이 혜광 그 늙

  은 중놈의 손에 쓰러졌소."

  도엽의 눈에 붉은 홍광이 번갯불같이 스쳤다.

  "소림을 깡그리 없애지 않는  한 나의 노기는 영원히 가라앉지 않

  을 것이오."

  그때 자소천주 빙허잠이 서서히 일어섰다.

  "빙허잠, 제일신마께 아뢰오."

  "말하라."

  "생각해 보건대 소림은  마땅히 멸망되어야 하며 산문(山門) 자체

  를 완전 소각시킴이 옳은 줄 아뢰오."

  소림- 대소림사!

  그것은 이 순간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과도 다를 바 없었다.

  "신마루주 황보강, 제일신마께 아뢰오."

  "말하라."

  활보강은 투명하리 만큼 맑은 눈으로 단우비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부당하외다. 소림은 당연히 멸망해야 하나 산문까지 태운

  다는 것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좌중에서 다시 한 명의 적의노인(赤衣老人)이 일어섰다.

  "군마천주 감천곡이 아뢰오."

  "말하라."

  단우비의 음성은 시종 담담했다.

  감천곡은 문득 황보강을 쳐다보며 말했다.

  "본인 역시 신마루주와 동감입니다. 소림산문의 소실은 곧 정도무

  림의 마지막 자존심조차 부수는  것으로써 그 파급은 실로 막대하

  리라 생각합니다."

  뒤를 이어 신태비범한 갈포의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사천주 만후천리(萬侯天里)가 아뢰오."

  "음......."

  "솔직히 말씀드려서  요즘의 만마전은  너무 온건한 일로(一路)를

  걸어왔습니다."

  순간, 십팔 인과 단우비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만후천리는 깎아 세운 듯한 자세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기에 새북사사천이나 천붕군도의  놈들까지 본전을 기웃거리

  고 있습니다."

  "......!"

  모두의 고개가 약간씩 끄덕인 듯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소림을  효시로 하여  일벌백계의 도

  (道)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예 소실봉이

  아닌 숭산  전체까지 모조리  없애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

  다."

  아예 한 술 더 뜨는 말이 아닌가!

  봉황곡주 백전충이 말했다.

  "만후천주, 이번 일을 그렇게 처리하고 나면 그 후환을 어떻게 감

  당할 셈이오?"

  만후천리의 입가에 싸늘한 냉소가 흘렀다.

  "백곡주, 당신같은 온건파 때문에 만마전의 위세가 예전같지 않은

  것이오."

  "뭣이? 만후천주, 당신이 감히 봉황성지를 모욕할 셈이오?"

  백전충의 하얗게 센 눈썹이 꿈틀 곤두섰다.

  순간 폐부를 도려낼 듯한 가공할 살기가 두 사람의 전신에서 불길

  처럼 치솟았다.

  "......!"

  "......!"

  백전충과 만후천리의 시선, 그것은 실로 불꽃 튀기는 기세와 기세

  의 대결이었다.

  그들의 시선을 차단한 것은 단우비의 조용한 음성이었다.

  "조용히 하라!"

  물 흐르듯 고요한 음성이었으나 그 음성을 듣는 두 당사자들은 고

  막이 터져 나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전신을 가늘게 떨며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질식할 듯한 침묵이 실내를 뒤덮었다.

  그때 혈궁천주 도엽이 두 눈을 이글거리며 벌떡 일어섰다.

  실내의 인물들이 모두 그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순간, 도엽은 등

  뒤에 핏빛 방천화극을 뽑아 거세게 탁자 위에 내리꽂았다.

  꽝!

  방천화극은 순식간에  석탁(石卓)을 뚫고 자루까지  콱 박혀 버렸

  다.

  "나 도엽! 감히 제일신마께서 계신 자리에서 말하겠소."

  실내는 그의 음성에 진저리를 쳤다.

  "나...... 도엽! 나는 나의 의지를 끝까지 밀고 나가겠소. 이것은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하오."

  바람도 없건만 그의 핏빛 장포가 무섭게 부풀어올랐다.

  "하늘도 나를 말리지  못할 것이오. 들어보시오! 구천지하에서 나

  의 손자가 통곡하고 있소."

  불타는 그의 시선이 좌중을 핥듯이 쓸어지났다.

  "처참하게 죽어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나의  손자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지난 밤 동안 꿈 속에서 울부짖고 있었소."

  핏물이라도 뚝뚝 떨어뜨릴 듯한  음성이 문득 낮게 깔리면서 이어

  졌다.

  "맹세하노니 내 길을 막는 자! 혈궁천의 이름과 전부를 걸고 상대

  해 주리다!"

  터질 듯이 부풀어오른 핏빛 장포, 그 전신에서 쏟아지는 가공무비

  한 살기!

  "누가...... 어느 누가 내 앞을 막을 것이오?"

  "......!"

  "......!"

  죽음보다 더 짙고 깊은 침묵이 온 실내에 납덩이처럼 내려앉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도엽은 단우비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

  였다.

  "사(邪)와 마(魔)의 영원힌  제황(帝皇)이신 만마전의 제일신마시

  여! 도엽의 말은 이것으로  끝났음을 아룁니다. 결정을 내려 주십

  시오."

  가슴 섬뜩할 정도로 그의 음성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단우비는 고요한 자세로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티끌만큼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에서 어떤 생각 따위를

  읽어내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단우비는 도엽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윽고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중원천하가 새겨진 사망전의  중앙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놓았다.

  구천마제와 십지마황은 일제히  긴장된 표정으로 단우비를 응시했

  다.

  이윽고 단우비는 지형의 어느 한 부분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그 부분 위에  오른발을 지그시 올려놓으며 독백처럼 중얼거

  렸다.

  "이곳이 하남성(河南省)......."

  그의 발이 앞으로 약간 이동했다.

  "이곳이 숭산......."

  그러면서 그의 손이 품 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것, 그것은 한 치 정도의 길이에 새까만 윤기가

  감도는 검은 화살이었다.

  동시에 단우비의 오른발이 지그시 아래로 눌러졌다.

  "명하노니......."

  부스스스......!

  발 밑의 숭산이 순식간에 가루로 화해 스러져 내렸다.

  "소림의 전 제자를 죽이고...... 산문을 소각하라!"

  단우비의 시선이 천천히 십구 인의 얼굴을 훑어갔다.

  "장경각을 불사르고 조사동을 무너뜨려라!"

  무서운 결정이 내려지고 있었다.

  "만마전 율법으로  거듭 명하노니......  소림을 영원히 무림에서

  제명하라!"

  끝내 명(命)은 떨어졌다.

  단우비의 시선이 문득 도엽의 얼굴에 못박혔다.

  그는 수중의 검은 화살을 치켜들며 조용하게 말했다.

  "만마령(萬魔令)으로 명한다. 혈궁천의  도엽은 전 고수를 대동하

  여 소림을 궤멸시키도록 하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팍!

  화살이 꽂힌 벽면.

  <소림사(少林寺).>

  거기에는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순간 구천십지의 십구 인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제일신마의 뜻에 따르오!"

  지상명령이 하달되었다.

  아아...... 소림이여!

  아는가?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의  저주가  그대들 머리  위에  떨어졌음을.......

  여기는 바로 사망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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