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3권 제54장 물(水)과 어떤 죽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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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火)!
불꽃이 타오른다.
남(男)과 여(女)!
아아......!
그것은 진정 뜨겁고 화려무쌍한 불꽃의 축제였다.
천요비자 희랑.
색(色)에 능통했다는 희대의 우물(尤物).......
혁련소천.
인간관계에 대한 십관(十關)의 도전 중 색관을 거쳤다는 자칭 고
금제일의 색인(色人).......
그 두 명이 부딪친 것이다.
제대로 임자를 만난 셈인가?
두 나신(裸身)은 뱀처럼 뒤엉킨 채 미친 듯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아......."
"으음...... 음......."
마치 수천 리 길을 단숨에 달려온 듯 두 남녀의 신음성은 부딪히
는 육체만큼이나 뜨겁고 격렬했다.
혁련소천은 거역하기 어려운 막중한 힘(力)을 싣고 무섭게 휘몰아쳤다.
"아아...... 으음......."
희랑의 입에서는 연신 가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헌데, 이럴 수도 있는 것인가?
뜻밖에도 입으로는 쉴새없이 희열에 찬 신음을 터뜨리면서 거짓말
처럼 무표정한 희랑의 얼굴.......
그런 그녀의 표정에서는 단 한 점의 환희나 희열을 찾아볼 수 없
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혁련소천은 더욱 거친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
어느 한순간이었다.
희랑의 손이 슬그머니 혁련소천의 등 뒤 명문혈(命門穴) 근처로
옮겨가는 것이 아닌가?
종정향은 숨가쁘게 흘러 나오는 환희 어린 신음을 듣지 않으려는
듯 애써 창 밖의 빗소리에 의식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이때 돌연 한 줄기 전음이 그녀의 귓속을 뜨겁게 파고들어왔다.
(향아, 이리 오너라.)
"......!"
종정향은 번쩍 눈을 뜨며 고개를 쳐들었다.
(급하다, 어서......!)
"......!"
종정향은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끼며 퍼뜩 혁련소천을 쳐다보았다.
순간 그녀는 하마터면 시선을 외면할 뻔했다.
혁련소천은 여전히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었고 한창 뜨겁게 부
딪히고 있는 남녀의 은밀한 부근이 그녀의 눈 속에 고스란히 파고
든 것이었다.
이때 혁련소천의 전음이 다급한 어조로 빠르게 이어져 왔다.
(옷을 벗어라, 어서......!)
"......!"
종정향은 움찔했다.
허나 그녀는 마음을 모질게 굳히고 빠르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순식간에 알몸이 되고 말았다.
바로 그때, 막 혁련소천의 명문혈을 짚어가던 희랑의 시선이 종정
향에게로 옮겨졌다.
'......!'
순간 희랑의 눈에 이채로운 빛이 번쩍 스쳐 지나갔다.
때를 같이 해서 혁련소천은 희랑의 몸이 돌연 불덩이처럼 달아오
르는 것을 느꼈다.
'역시......!'
그 순간 갑자기 희랑의 몸이 혁련소천에게 뱀처럼 휘감기며 밀착되어 왔다.
또한 여지껏 얼음장처럼 굳어 있던 그녀의 두 눈에 시뻘건 욕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강력하게 밀어붙이던 혁련소천의 동작이 돌연 뚝 정
지하는 것이었다.
"......?"
희랑은 의외롭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혁련소천은 빙긋 웃었다.
"향아의 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육체라고 할 수 있다. 흥분되는가, 음수궁?"
희랑의 전신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 무슨 소리를......?"
"천요비자 희랑은 네가 죽였느냐?"
"......!"
희랑의 낯빛이 거듭 변했다.
혁련소천은 그녀의 풍만한 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묻으며 조용히
말했다.
"천요비자의 금잠(金蠶=금빛비녀)이 우연히 산 속에서 발견될 리
는 없지 않겠나?"
"......!"
"후후...... 너는 알아야 했다. 내가 오늘 아무런 이유도 없이 희
랑을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아직 두 남녀의 몸은 하나로 합쳐져 있는 상태였다.
허나 이미 희랑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이때 문득 딱딱하게 굳어 있던 희랑의 얼굴에 한 줄기 요염한 미
소가 피어 올랐다.
"너는 금잠 때문에 내가 희랑이 아님을 눈치채었느냐?"
그 말은 최소한 자신이 진정한 희랑이 아니라는 것은 시인하는 말
이 아니겠는가?
혁련소천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그렇다면?"
혁련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마치 정인에게 속삭이듯 다정한 음성으
로 말했다.
"나와 관계를 맺는 동안 거짓 신음까지 흘리며 보여준 너의 연기
는 무척 훌륭했다. 허나...... 그것으로 나를 속이기에는 역부족
이었지."
"......!"
"또 한 가지...... 너는 향아의 육체를 보는 순간 너 자신도 모르
게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
"그 정도면...... 음수궁으로서의 꼬리를 전부 노출시킨 것과 다
름없지 않을까?"
그렇다!
놀랍게도 이 순간 희랑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는 여인은 바로 음
수궁이었던 것이다.
순간, 음수궁의 입에서 간드러진 홍조가 터져 나왔다.
"호호호...... 철부지 바람둥이 공자인줄만 알았더니 제법 뛰어난
관찰력을 지니고 있군."
혁련소천은 빙긋 웃어 보이더니 불쑥 엉뚱한 말을 꺼냈다.
"역시 그녀와 약간은 닮았군."
"그녀?"
"해사."
"해사... 호호... 그럴 테지. 어려서부터 그 아이와는 줄곧 한솥
밥을 먹으면서 성장해 왔으니까......."
"역시 그랬군."
이때 음수궁의 눈에 차가운 섬광이 스쳐갔다.
"허나 명심해라. 비록 그녀는 너를 죽이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와
다르다는 것을...."
"호호호...... 과연 그럴까?"
혁련소천은 문득 괴이하게 미소했다.
"후후후...... 나는 이미 네 몸에서 피냄새를 맡았다. 그것을 너
무 과신하지는 마라."
음수궁의 눈에 놀람의 빛이 스쳐갔다.
"그것을 어찌......?"
"후후후...... 천하에 내 눈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
다."
음수궁은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문득 야릇한 미소를 띠
었다.
"안타깝군. 이렇게 영리하고 귀여운 나의 님을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니......."
그러면서도 육감적인 입술을 혁련소천의 입술에 천천히 가져갔다.
그러나 혁련소천은 고개를 약간 치켜세우며 차갑게 냉소했다.
"헛수작 부리지 마라, 석녀(石女)."
"석녀?"
음수궁은 멈칫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에 무서운 살기가 화르륵 피어 올
랐다.
"죽일 놈......!"
동시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쩌쩌...... 쩍!
돌연 음수궁의 미간이 갈라지더니 시뻘건 핏물이 주르륵 흘러 나
오는 게 아닌가?
아아! 이 무슨 해괴한 광경인가?
놀랍게도 음수궁의 두개골이 갈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혁련소천은 그런 광경에 돌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것은......."
순간 음수궁의 입에서 소름끼치는 섬뜩한 요소(妖笑)가 터졌다.
"호호호...... 혈우마령(血雨魔靈)...... 영호풍, 피의 비(血雨)
속에서 영원히 잠들어라!"
"혈우마령!"
슈퍼억!
순식간에 음수궁의 전신이 그대로 폭발하면서 산산이 터져 나갔
다.
"향아, 피해랏!"
혁련소천은 다급한 외침을 내지르며 신형을 불가사의한 속도로 번
뜩이더니 동시에 좌장도 함께 움직였다.
펑!
"아악!"
종정향은 미처 영문도 알기 전에 혁련소천의 장력에 멀찌감치 나
가떨어졌다.
슈와아......!
피비(血雨)!
섬뜩한 핏물이 공간을 가득 메우며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혁련소천은 찰나간 수십 차례 신형을 뒤집더니 이어 실내 한쪽 구
석에 가볍게 내려섰다.
내려서는 그는 흠뻑 피비를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비를 잘못 맞으면 감기에 걸리기 쉽다고 했던가?"
혁련소천은 씨익 웃으며 전면을 응시했다.
그의 앞에는 눈부신 금발(金髮)에 두 눈이 바닷물처럼 푸른 벽안
(碧眼)의 나녀(裸女)가 우뚝 서 있었다.
실로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혁련소천의 눈에도 은은한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그것이 너의 진면목인가, 음수궁?"
금발의 나녀, 음수궁은 요염하게 웃었다.
"그렇다."
"아름답군."
금발의 음수궁은 흘러내린 금발을 자신있게 쓸어 넘겼다.
"물론이지. 천하에서 나를 능가할 미녀는 아무도 없으니까......."
혁련소천은 문득 침중하게 물었다.
"혈우마령은 시체의 몸에 자신을 합일시키는 사환천(死幻天)의 비
전무공, 어찌 네가 그것을 알고 있는가?"
사환천(死幻天).
구천과 십지 중 구천에 속해 있는 새벽.
돌연 음수궁의 현란한 나신이 번쩍 허공으로 치솟았다.
"가서 염라대왕으로부터 그 대답을 듣도록 해라!"
휘류류류륭!
눈부신 금발이 폭풍처럼 휘날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번쩍 치켜드는 그녀의 양 손바닥에 동그란 백색 반점이 나
타났다.
그것을 바라보는 혁련소천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월강수(月 手)!"
"호호호...... 가라! 애송이."
번― 쩍!
마치 달무리와도 같은 눈부신 백색광채가 혁련소천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웃!"
혁련소천은 다급성을 삼키며 급히 옆으로 신형을 날렸다.
사사사사......!
그 순간 백색 광채에 닿은 등 뒤의 벽이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런 광경에 혁련소천은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굉장하구나! 헌데 이미 천 년 전에 실전된 월강수를 음수궁이 어
찌......?'
빠르게 염두를 굴리는 그 순간 또다시 살기찬 음수궁의 교갈이 허
공을 갈랐다.
"영호풍! 각오해라. 스치면 죽는다!"
번― 쩍!
소리도 없었다.
달무리와 같은 백광(白光)은 그저 지독한 빠르기로 혁련소천의 몸
을 향해 쏘아올 뿐이었다.
'월강수는 상대의 내공이 아무리 강해도 죽음을 면치 못한다. 파
훼방법을 알기 전에는 그 누구도 막지 못하는 것이다!'
혁련소천은 안색을 굳히며 급히 신형을 움직이려 했다.
그 순간 음수궁의 득의충만한 홍소가 그의 귓속에 송곳처럼 파고
들었다.
"호호호...... 네 뒤에 종정향이 있다. 피하면 그녀가 죽는다!"
'아차!'
혁련소천은 멈칫 했다.
그러는 순간 백광은 이미 그의 가슴에 와 닿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
화르르르르릉!
찰나 혁련소천의 전신에서 시퍼런 자색의 불꽃이 날벼락처럼 쏟아
져 나왔다.
그 순간 백광과 자색 불꽃이 눈부시게 맞부딪치면서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터졌다.
"으― 악!"
계속되는 폭발 사이 돌연 비단폭을 찢는 듯한 비명과 함께 음수궁
의 신형이 거세게 퉁겨져 나갔다.
퍼― 펑!
그녀의 몸은 벽을 그대로 뚫고 밖으로 날아갔다.
휙!
그 순간 혁련소천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퉁겨져 날아가는 음수궁
의 뒤를 재빨리 따라붙었다.
음수궁는 후원 중앙에 있는 꽤 넓은 인공연못 옆에 내동댕이쳐졌
다.
그러나 그녀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곧 퉁기듯 몸을 일으켰다.
스슷!
그와 동시에 그녀의 면전에 혁련소천이 가볍게 내려섰다.
음수궁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며 경악과 불신에 찬 눈빛
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것은...... 앙천묵제 희여송의...... 살인마벽...... 네......
네가 어찌 그것을...?"
혁련소천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가서 염라대왕으로부터 그 대답을 듣도록 해라."
음수궁의 안색이 파리하게 굳어졌다.
자신이 했던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은 것이었다.
문득 음수궁은 옆의 연못을 힐끗 쳐다보더니 야릇한 미소를 떠올
렸다.
"영호풍, 내가 너를 죽이지 못했듯이 너 역시 나를 죽일 수 없
다."
"후후...... 도망갈 구멍이라도 봐두었나 보군."
음수궁은 연못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연못 아래의 지하수맥은 서천목산의 청림호(靑林湖)로 연결되
어 있지. 나는 사흘 전 희랑을 죽인 뒤 바로 이곳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는 번개같이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영호풍, 두고보자!"
풍― 덩!
물보라가 이는 순간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 혁련소천의 얼굴에는 한 줄기 차가운 냉소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놓치지 않는다, 음수궁......!"
스― 윽!
순식간에 그의 신형도 빨려들 듯 연못 속으로 사라져 갔다.
슈우우우―!
혁련소천은 물살을 가르며 무섭게 쏘아내려 갔다.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파파파팟―!
촤― 악!
그가 내려갈 때마다 주위의 물결이 엄청난 소용돌이와 격랑을 일
으키며 좌우로 밀려 나갔다.
한참동안 물살을 헤쳐가던 그의 앞으로 바닥에 뚫린 한 동혈(洞
穴)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동혈 앞엔 음수궁이 금발을 해초처럼 휘날리며 우뚝 서
있었다.
물 속의 나녀(裸女).......
그 모습은 정녕 가슴 떨리게 하는 환상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
다.
혁련소천은 음수궁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볍게 내려섰다.
이때 음수궁의 전음이 그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애송이...... 너는 잘못 따라왔다.)
"......."
혁련소천은 힐끗 그녀를 응시했다.
음수궁은 푸른 눈을 빛내며 하얗게 웃고 있었다.
웃으면서 그녀는 붉은 입술을 나풀거렸다.
(내가 있던 곳은 일천 장 길이의 수중에 있는 마정(魔井), 내가
물에 있는 한 천하에 나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혁련소천은 빙긋 웃으며 마주 전음을 보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가끔 그런 말들을 하지.)
츄와아―!
말이 끝나면서 그의 신형이 물살을 가르며 가공할 속도로 쏘아갔
다.
"흥!"
음수궁은 차갑게 냉소하며 쌍수를 갈고리처럼 오므려 가슴 앞에서
교차시켰다.
찰나, 어느새 혁련소천은 그녀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꺼져!"
음수궁의 쌍수가 춤을 추듯 현란무쌍하게 번뜩였다.
푸푹! 푹!
둔음이 일며 혁련소천의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음수궁의 양 손이 그의 가슴 속 깊숙이 쑤셔박힌 것이었다.
일순 음수궁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어리석은......."
허나 그녀는 채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의당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야 할 혁련소천의 얼굴에 섬뜩하리
만큼 차가운 미소가 어려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너......."
음수궁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급히 몸을 뒤로 빼내려 했다.
헌데, 이 무슨 일인가?
혁련소천의 가슴 속에 박힌 양 손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이...... 이런......."
음수궁은 크게 당황하며 허둥거렸다.
그 순간 혁련소천의 두 팔이 그녀의 허리를 슬그머니 끌어안았다.
그리곤 속삭이는 듯한 전음을 음수궁에게 흘려내는 것이었다.
(인간한계에 대한 도전 중 나는 수관(水關)이란 관문을 거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꼬박 십 일 동안 물 속에서 버틴 적이 있지.)
"......!"
"그리고...... 전날 나는 동해의 거친 바다 속을 사흘 동안 꼬박
헤쳐 나간 적이 있어."
"아......!"
음수궁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의 빛이 나타났다.
혁련소천은 씨익 웃었다.
"후후후...... 음수궁, 너답게 죽여주마."
"안......."
음수궁은 전신을 바둥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하기 위해 입을 벌렸
다.
그 순간 혁련소천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와락 덮어 버렸다.
"......!"
음수궁의 눈이 커졌다.
허나 다음 순간, 그녀는 눈이 커지는 정도가 아니라 찢어질 듯 부
릅떠졌다.
우두두두둑......!
입술을 포갠 상태에서......
혁련소천이 그녀의 허리를 그대로 으스러뜨린 것이었다.
"......!"
입술이 막혔으니 비명도 내지를 수도 없었다.
그저 머리만 미친 듯이 도리질쳤으나 혁련소천의 입술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 토록 탐스런 금빛 머리결이 춤을 추듯 하늘거리고.......
그 토록 신비스럽게 빛나던 푸른 눈은 툭툭 불거져 나왔다.
마침내 그녀의 몸은 해파리처럼 축 늘어졌다.
혁련소천은 그제서야 그녀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어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선렬한 진홍빛 핏물이 음수궁의 입을 통해
덩어리째 쏟아져 나왔다.
눈은 허옇게 까뒤집혔고, 혓바닥은 한 자나 쑥 빠져 나왔으
니.......
이것이 음수궁의 죽음이었다.
혁련소천은 감고 있던 그녀의 허리를 천천히 놓아주었다.
'음수궁...... 차라리 너에게는 이런 죽음이 어울릴지도 모른
다......!'
스르르르......!
음수궁의 나신이 힘없이 약간 떠올랐다.
곧이어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나신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혁련소천
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지하수맥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흡인력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그
녀의 나신을 빨아당기는 것이었다.
금발을 수초처럼 하늘거리며 그녀는 자꾸만 멀어져 가고 있었다.
'잘가거라, 수궁.......'
혁련소천은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야릇한 감상에 젖어 한동안 움직
일 줄을 몰랐다.
여기는 물 속, 마정의 주인 음수궁이 죽어간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