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3권 제53장 요녀(妖女) 천요비자(天妖妃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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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해(血海).
마정(魔井).
돈이면 움직일 수 있는 중원최강(中原最强)의 양대살수조직.
지금까지 이들의 표적이 되고도 목숨을 부지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혼(邪魂) 낙궁(駱宮).
은향성녀(銀香聖女) 음수궁.
각기 양대살수 조직을 이끌어가는 이들을 세인들은 무림사상 최고
(最高)의 살수로 손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혈해!
마정!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전설(傳說)로 굳어진 죽음의 대명사들이었다.
혁련소천은 지금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 마정의 주인 음수궁이 오늘 밤 당신을 죽일 것이오
'음수궁...... 실제 나이는 구십을 넘었으나 이십 세 가량의 젊음
을 유지하고 있으며...... 너무나 아름답기에 스스로의 아름다움
에 취해 살아가는 희대의 미녀(美女).......'
.......
'남자를 지극히 경멸하며 남자 대신 아름다운 미녀들을 곁에 두고
자신의 성(性)의 쾌락(快樂)을 충족시킨다고 들었다!'
오오...... 여자가 여자를!
은향성녀 음수궁은 그런 여인이었다.
'헌데...... 대체 누가 그녀를 시켜 나를 죽이려 한단 말인가?'
혁련소천이 가장 의아해하는 것은 바로 그 문제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봐도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
았다.
그 순간 불현듯 혁련소천의 뇌리에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사!'
자신의 손 아래 웃으면서 죽어가던 그 여인.
'그녀 역시 마정의 제자...... 그렇다면 그녀와 음수궁을 움직이
는 자는 동일인(同一人)일 가능성이 크다!'
혁련소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그런 가정이 맞는다면 그는 나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환
히 알고 있다는 결론인데!'
거기까지 생각한 혁련소천은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짐을 금치 못
했다.
'.......'
혁련소천은 어두운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운 비바람이 몰려 들어왔다.
'음수궁...... 그녀는 확실히 날짜를 잘 선택했어.......'
혁련소천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묵묵히 빗줄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순간부터 비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더 이상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그렇군. 오늘 밤은...... 종정향이 종정세가에서 돌아오는 날이기도 하지!'
또 여인인가?
혁련소천은 밝은 표정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놓았다.
바로 그때였다.
(환사유풍입니다.)
"......."
혁련소천은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허공 어디에선가 환사유풍의 전음이 빠르게 들려왔다.
(음수궁의 종적은 도저히 살필 수가 없습니다.)
혁련소천은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음성으로 마주 전음을 보냈다.
(쉽게 발견될 정도라면 마정의 주인이라 할 수 없겠지.)
(헌데...... 이곳으로 오던 중 서천목산 서남쪽에서 이런 것을 발
견했습니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가져왔습니다만.......)
말이 끝나자마자 방문 바로 위 천장에서 금빛 물체 하나가 떨어졌다.
혁련소천은 물체를 빠르게 나꿔챘다.
'이것은.......'
그의 눈에 일순 이채가 스쳐갔다.
그것은 하나의 금빛 비녀로, 전체에 일곱 명의 나녀(裸女)가 정교히 새겨져 있었다.
혁련소천의 입가에 문득 기소가 어렸다.
"환사유풍."
"말씀하십시오."
"비 오는데 몸에 묻은 빗물을 잘 닦도록 하시오. 자칫 감기 걸리기 쉬우니까......."
"예?"
"후후후......."
혁련소천은 비녀를 꽉 움켜쥐었다.
'오너라, 음수궁. 아주 멋지게 상대해 주마......!'
아무래도 여인이란 남자를 알고 나면 더욱 아름다워지는 법인가 보다.
청순했던 여인도 조금은 요염해지고, 유약했던 몸은 화려하게 무
르익어 제법 교태까지 배어 흐르니.......
한 사내의 머리를 허벅지로 받쳐준 채 비스듬히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이 바로 그렇게 변해 있었다.
종정향, 바로 그녀였다.
종정향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채 마냥 느긋한 표정인 사내는 두말
할 것도 없이 혁련소천이었다.
혁련소천은 종정향의 손을 잡아 자신의 코에 대며 은근한 음성으
로 말했다.
"향아, 종정세가에는 별일 없었느냐?"
종정향은 빙긋 웃으며 명랑하게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사옵니다."
"흠...... 공야진붕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느냐?"
"......!"
혁련소천은 그녀의 손과 다리가 일순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괜한 것을 물어본 모양이구나."
"아...... 아니옵니다."
"허면......."
"이모님께 말씀드려 그에 관해 면밀히 탐사해 본 결과...... 나으
리의 말씀이 옳았음을......."
종정향은 말꼬리를 흐리며 의식적으로 시선을 딴 곳으로 옮겼다.
혁련소천은 여전히 그녀의 손냄새를 음미하며 조용히 말했다.
"아직도 그를 잊지 못했나 보구나."
종정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향아."
"......?"
"언젠가 나는 너에게 그를 죽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종정향은 흠칫 그를 내려다 보았다.
때마침 혁련소천도 그녀를 빨아들일 듯한 강렬한 눈빛으로 응시하
고 있었다.
일순 두 사람의 시선이 짧은 공간에서 거미줄처럼 뒤엉켰다.
허나 그것도 잠시뿐, 종정향은 사르르 눈을 내리깔며 가벼운 미소
를 떠올렸다.
"나으리...... 더 이상 향아의 마음을 시험치 않으셔도 되시옵니
다."
"음!"
"이미 향아의 영(靈)과 육(肉)은 모두 나으리께 바친 지 오래이옵니다."
"흠......."
혁련소천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 네가 취하고저 하는 것이 있다면, 가장 확실히 가장 먼저 취하도록 해라.
태양검제 용천승의 말이 뇌리에 섬광처럼 스쳐간 것도 바로 그때,
혁련소천은 다시 입을 열었다.
"향아!"
"......?"
"혹시...... 남녀의 정사(情事) 현장을 본 적이 있느냐?"
"어머! 무슨 말씀을......."
종정향은 느닷없는 질문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오늘...... 향아는 보게 될 것이다."
"그...... 그게 무슨......."
"나는 오늘 밤 네가 보는 앞에서 한 여인과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
"어쩌면 너도 같이 끼게 될지도 모른다."
순간 종정향의 얼굴에 수치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꼬옥 깨물더니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나으리...... 비록 이 향의 전부가 나으리의 것이기는 하
나...... 수치도 모르는 음녀(淫女)는......."
"음녀라고 생각했다면 아예 이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혁련소천은 그녀의 말을 가로채며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종정향은 그의 눈빛에서 단순한 욕정이 아닌 또 다른 무엇인가를 읽었다.
'경솔했었구나.......'
종정향은 내심 후회하며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나으리의 명이라면...... 향은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따를 것입
니다. 헌데...... 상대여인은 누구인지......?"
혁련소천은 부드럽게 미소하며 그녀의 양 뺨을 감싸쥐었다.
"그 여인은...... 바로 너의 사부이다."
그 말에 종정향의 눈이 커졌다.
"저의......."
"천요비자."
비 때문인가?
이 밤에는 어찌 이렇듯 끈적끈적한 일만 자꾸 벌어지려 한단 말인
가?
천요비자. 군마천 팔당(八黨) 중 천요당(天妖黨)의 당주.
그다지 미인은 아니나 일신에 지닌 방중비술(房中秘術)은 거의 신
(神)의 경지에 도달해 있으며, 환락천 천주인 환락금랑(歡樂琴郞)
도사미와 함께 천하이대우물(天下二大尤物)로도 불리우는 색술(色
術)의 대가(大家)였다.
또한 그녀는 인생의 쾌락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멋진 여인으로
도 전해지고 있었다.
한 여인이 침상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었다.
일신에 걸친 옷은 잠자리 날개처럼 거의 반투명한 능라망사의였으
며, 다리를 요염하게 꼬고 앉아 있는 까닭에 희고 늘씬한 다리가
대담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약간 풀어헤친 앞섶 사이로는 놀랍도록 풍만한 가슴이 반
이상 노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화려한 탕기(蕩氣)!
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얼굴, 상큼한 두 눈은 크고 아름다우나
지극히 도발적이고도 요염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촉촉히 윤기가 흐르는 붉디붉은 입술까지.......
전체적으로 흠잡을 곳이 없는 미녀이기는 했으나 절세적이라 말하
기에는 어쩐지 부족하게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허나, 무엇인가?
그녀의 몸에 안개처럼 흐르고 있는 이 숨막힐 듯한 관능(官能)의
물결은.......
그 어떤 여인도 따라오지 못할 이런 분위기는 사내의 심혼을 온통
뿌리째 빨아들이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단언컨대, 이 여인을 보고도 뿌듯한 팽만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감
히 사내라고 말할 수도 없으리라!
바로 이 여인이 천요비자 희랑이었다.
그리고 지금, 침상에서 약간 떨어진 탁자에 한 사내가 술잔을 기
울이며 가끔 뜨거운 시선을 천요비자 희랑에게 던지고 있었다.
혁련소천이었다.
그 옆에는 종정향이 다소곳이 서 있었다.
실내에는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흐
르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천요비자가 붉은 입술을 떼며 침묵을
깨뜨렸다.
"요즘...... 소천주님의 주위에는 많은 미녀가 들끓는 것으로 아
는데 어찌하여 희랑을 찾아오셨는지 궁금하군요."
교태가 뚝뚝 떨어질 듯한 다정다감한 목소리였다.
혁련소천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나직이 웃었다.
"후후...... 여인이 꽃이라면 사내는 나비, 나비가 아름다운 꽃을
찾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섭리가 아니겠소?"
희랑은 요염하게 생긋 웃었다.
"대단하시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옆의 향아가 질투를 느끼지 않
을까요?"
그러면서 그녀는 종정향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종정향의 표정은 시종 담담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
다.
혁련소천은 종정향의 둔부를 쓰다듬으며 기소를 흘렸다.
"여인에게 질투가 없다면 그것만큼 무미건조한 일도 없지. 허
나...... 진정한 사내는 아무리 많은 여인이라도 잘 다룰 줄 아는
법이오."
그의 말에 희랑은 까르르 간드러진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정말 뜻밖이군요. 소천주님의 말솜씨가 이렇듯 훌
륭할 줄은 미처 생각치 못했어요."
오오...... 교소가 터지면서 관능적으로 출렁이는 그 터질 듯한
가슴.......
희랑은 은밀히 눈웃음을 치며 종정향을 응시했다.
"향아? 네 생각은 어떠냐?"
종정향은 다소곳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소천주님은 소녀에게 있어 하늘과도 같으신 분...... 저는 아무
런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희랑은 다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바람둥이 하늘이신가? 호호호......."
웃는다기보다는 몸 전체로 사내를 부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
이리라.
혁련소천은 그녀의 웃음이 멎기를 기다린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희랑, 내가 그대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오?"
희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나는 요즘 향아로 인해 색(色)의 진미를 느끼고 있소."
"어머...... 그러세요?"
"그렇기에...... 향아를 그렇듯 훌륭하게 가르친 희랑에 대해 불
같은 호기심을 느끼고 이렇게 찾아온 것이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말이 아닌가?
희랑은 곱게 눈을 흘기며 조그맣게 웃었다.
"후훗! 지독한 욕심쟁이......."
"원래가 좀 그렇소."
"도대체 나중에는 몇 명의 처첩을 거느리게 될지 궁금하군요."
"다다익선(多多益善)."
"다다익선? 호호호호......."
희랑은 간드러진 교소를 터뜨리더니 천천히 침상 아래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곧장 혁련소천을 향해 사뿐사뿐 걸음을 떼놓았다.
대리석처럼 늘씬하게 뻗어내린 두 다리, 그것이 앞으로 내딛어질
때마다 그녀의 몸 전체가 파도치듯 관능의 물결을 일으켰다.
뿐인가?
일신에 걸친 옷은 도무지 옷이라 말할 수도 없는 엷은 능라망사의
에 불과했으니.......
보기 싫어도 대충은 다 보였다.
한껏 팽창되어 솟아오른 가슴, 그 위에 고개를 쳐들고 있는 포도
송이같은 유실, 쥐면 으스러질 듯한 허리와 그 아래로 풍만하게
퍼져 내려간 둔부.......
뿐이랴?
그 아랫배밑으로 은은히 내비치는 수림의 그림자는 또 어찌하
고.......
그 모든 것은 실로 보는 이의 숨통을 꽉꽉 틀어막기에 충분한 것
이었다.
희랑은 혁련소천의 뒤로 돌아가더니 백사같은 두 팔로 그의 목을
다정스럽게 휘감았다.
그리고는 혁련소천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바짝 대며 달짝지근한
입김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바람둥이 소천주님......."
혁련소천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붉디붉은 입술이 지독한 유혹의 빛을 담
고 혁련소천의 이마에 와 닿았다.
혁련소천은 속삭이듯 말했다.
"뜨거운 입술이군."
"갖고 싶으신가요?"
"남자니까."
"가지세요."
말이 끝나는 순간 혁련소천은 주저없이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와락 입술을 덮어 버렸다.
"으...... 음......."
희랑은 비음을 토하며 그의 머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이 순간 종정향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야 말았다.
고개를 돌린 그녀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우울한 기색이 떠오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
"......!"
입맞춤은 길고 뜨거웠다.
혁련소천은 이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희랑은 마치 흡반인 양 입술을 통해 자신
의 모든 것을 격렬하게 빨아들이려 하는 것이 아닌가.
허나, 혁련소천이 또 누구인가?
색(色)에 관한 한 묻지도 말라는 자칭 고금제일의 색인(色人)이 아닌가!
그는 천천히 희랑에게서 입술을 떼며 싱긋 미소했다.
"굉장해. 역시 천요비자답군."
순간 희랑의 두 눈에 미묘한 빛이 도발적으로 넘쳐 흘렀다.
"후훗! 당신도 대단해요. 웬만한 여인정도는 입맞춤만으로도 녹아
떨어지겠는 걸요."
혁련소천은 뜨거운 눈빛을 파도처럼 쏟아내며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는 희랑의 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희랑은 아무 저항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헌데, 혁련소천의 솜씨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안아 드는 순간 발끝으로 그녀의 망사의 끝자락을 밟고 있는 까닭
에 희랑이 그의 품에 안겼을 때에는 이미 적나라한 나신(裸身)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혁련소천은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구석구석을 훑어보며 천천히
침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종정향은 이어 고개를 푹 떨구었다.
꽉 움켜쥔 그녀의 양 손은 어쩔 수 없이 가는 떨림을 일으키고 있
었다.
"으음......."
"아...... 으음......."
종정향의 귀로 야릇한 신음이 천둥처럼 크게 전해져 왔다.
또다시 그녀의 몸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눈을 꽉 감으며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깨물었다.
'아아...... 차라리 천둥이나 크게 울렸으면.......'
쏴아아......!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끈적끈적한 밤비(夜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