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권 제51장 (51/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3권 제51장 다시 군마천(君魔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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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조각달이 밤하늘에 떠 있었다.

  하나는 서천(西天)  한귀퉁이에 그리고 또  하나는 연못의 잔잔한

  수면 위에.......

  부서져 내리는 달빛  아래로 연못 옆에 자리잡은  한 채의 정자가

  차가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자 안에는 세 명의 노인이 탁자를 중심으로 앉아 있었는데 그들

  은 바로 감천곡과 반태서, 그리고 공손무외였다.

  감천곡은 침울한 표정으로 야천에 떠오른 달을 우러르고 있었다.

  달빛 탓인가?

  이 순간 감천곡의 모습은 전에 비해 훨씬 늙고 초췌해 보였다.

  반태서와 공손무외는 그런 감천곡을  가끔 한 번씩 쳐다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때 꽉 닫혀져 있던 감천곡의 입술이 돌연 떼어지며 묵직한 음성

  이 흘러 나왔다.

  "반노제."

  "......?"

  "오늘이 며칠인가?"

  "구월(九月) 초사흘이오, 감노형."

  감천곡의 얼굴에 문득 쓸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벌써 넉 달이 지났군. 영호풍, 그가 떠난 지도......."

  반태서는 미간을 좁히며 눈썹을 모았다.

  "걱정되시오?"

  "솔직히...... 그렇다."

  이때 은빛 활을 어루만지고 있던 공손무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염려말게. 그는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이네."

  감천곡은 고개를 무겁게 흔들었다.

  "무림의 일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네."

  "자네는 영호공자가 단명지상이라 생각하는가?"

  감천곡은 공손무외에게 물었다.

  "관상 따위는 문제가 아니네.  그런 것으로 위안삼기에는 지금 내

  마음이 너무도 답답하다네."

  "......."

  "다른 일은 모두 제쳐두더라도 영호공자를 철신도로 호위해 간 한

  상지에게서도 단 한 번의 전서구조차 날아오지 않았네."

  "......!"

  "이로 보아 필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네."

  "음......."

  공손무외는 할 말이 없었다.

  감천곡은 어두운 표정으로 잠시 침묵하더니 문득 반태서를 쳐다보

  았다.

  "반노제, 혹시  영호공자의 사고를 외부에서  눈치챈 사람은 없을

  까?"

  반태서는 신중하게 말했다.

  "극비(極秘)를 유지해 온 만큼 없으리라 생각하오."

  "음...... 절대 이 사실이 외부로  흘러 나가면 안 되네. 만약 누

  군가 알게 되면 군마천은 뿌리째 흔들리게 될 것이네."

  공손무외는 감천곡을 응시하며 내심 생각했다.

  '감천곡...... 백 년  이상 무림천하를 종횡무진 휩쓸고 다녔으며

  구천과 십지의 주인 중 가장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로 태산이 무너

  져도 눈 한 번 깜박하지 않을 것 같던 그가.......'

  그는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며 연못으로 시선을 옮겼다.

  "......!"

  공손무외의 눈썹이 찡긋 곤두섰다.

  물에 비친 조각달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바람도 없는데.......'

  그렇게 느끼는 순간 공손무외는 활줄을 번개같이 퉁겼다.

  팅!

  파팍!

  예리한 소음과 함께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누가 감히......!"

  반태서의 신형이 섬전처럼 연못으로 쏘아갔다.

  동시에 그의 좌장이 기쾌무비하게 뻗어 나갔다.

  파― 앙!

  고막을 찢을 듯한 음향과  함께 거대한 물기둥이 무섭게 치솟는가

  싶더니 수면 밖으로 한 인영이 빛살같이 솟구쳐 나왔다.

  파― 앗!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복면인이었다.

  반태서는 허공중에서 날렵하게 신형을 뒤집으며 차갑게 냉소했다.

  "군마천이 네집 안방인 줄 아는가?"

  콰우― 우― 웅!

  그의 좌장에서 핏빛 강기( 氣)가 폭발하듯 쏘아져 나갔다.

  "하핫핫핫......."

  복면인은 낭랑한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을 쫙 펼쳤다.

  "철(鐵)의 기운을 오지(五指)로 모은다!"

  외침이 터진 직후, 그의 손에서 천둥치는 듯한 쇳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사위를 진동시켰다.

  "철장살음!"

  반태서는 대경실색하며 황급히 장세를 거두고 옆으로 쏘아갔다.

  공손무외는 자리에서 퉁기듯 일어섰다.

  "네가 어찌 구철마수를......!"

  그 순간 복면인은 수면 위에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서며 호쾌한 대

  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무릇  천하무학의 근원은  하나이나 대개는 비슷해

  보이는 법! 이것을 어찌 구철마수라 장담하는가?"

  "저...... 저 놈이......!"

  공손무외의 눈에서 일순 무서운 살광(殺光)이 폭사되었다.

  허나 이 순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누가 뭐래도 감천곡이

  었다.

  우우우우우―!

  그는 안면 근육을 무섭게 씰룩이더니 돌연 용음(龍吟)같은 장소와

  함께 신형을 번쩍 솟구쳤다.

  콰콰콰콰콰!

  아아! 이 소리를 어찌  인간의 손으로 바람을 뿜어낸 소리라 말하

  랴!

  실로 엄청난 거력(巨力)이 폭풍같은 기세로 복면인을 향해 휩쓸어

  갔다.

  그러자 복면인은 수면을 딛고 선 채 노도처럼 밀려오는 거력을 향

  해 연속 오 장을 내갈겼다.

  콰콰콰콰쾅!

  벼락치는 듯한 폭음, 수만 가닥의 경기가 사방으로 소용돌이쳐 나

  갔다.

  감천곡은 빙글빙글 신형을 돌려 수면 위로 가볍게 내려섰다.

  그 순간 뜻밖의 광소가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와하하하핫......."

  "으하하하하......."

  감천곡과 복면인의 입에서 똑같이  우렁찬 광소가 터져 나온 것이

  다.

  잠시 후 감천곡은 광소를 뚝  그치며 복면인을 향해 격동에 찬 음성을 토해냈다.

  "나를...... 속이려 하다니......."

  웬일인가?

  그의 두 눈은 이 순간 촉촉히 젖어들고 있었으니.......

  복면인은 웃었다.

  "후후후...... 역시 알고 계셨군요."

  복면인은 촉촉히 젖은 웃음과 함께 천천히 복면을 벗어갔다.

  그 순간 드러난 얼굴, 그것은 바로 혁련소천이었다.

  복면인의 진면목을 바라보는 감천곡의 노안에 부르르 경련이 일어났다.

  비록 알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얼굴을 대하고 보니 더욱 참기 어

  려운 격정이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영호공자......."

  "노선배님......."

  짤막한 한 마디였다.

  그러나 감천곡에게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다음 순간 감천곡은 하나뿐인  팔을 활짝 벌리며 퉁기듯 전방으로

  쏘아갔다.

  혁련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힘껏 끌어안았다.

  가슴과 가슴이 뜨겁게 맞닿았다.

  "철마기류를......."

  "됐네! 됐어! 자네만 무사히 돌아왔으면 된 거야......."

  두 방울 눈물이 감천곡의 주름진 뺨 위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분...... 이제 늙었구나!'

  감천곡을 끌어안은 혁련소천의 두 팔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달빛이 그들의 어깨 위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촉촉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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